< 153. 더 큰 건 (3) >
올리버는 여느 때처럼 택시를 타고 X구역을 방문했다.
이로써 여섯 번째 방문.
여전히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구역에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급한 일을 끝내면 스승님을 찾아갈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지막으로 찾아뵌 지 너무 오래됐다.
차 머리를 돌려 이동하는 택시를 뒤로하고 올리버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 조와 만나기로 했던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좀 걷자 비교적 안쪽에 위치한 체육관에 도착하였는데, 그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올리버 쪽으로 몸을 틀며 인사했다.
“왔어?”
다름 아닌 조였다.
"예, ..…혹시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오늘 만나기로 했으니까. 그건 그렇고 우선 그거 좀 받을 수 있을까?”
“아, 잠시만요.”
올리버가 품 안에서 배가 불룩한 먹보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지갑형 먹보주머니로 현상금의 절반을 삼킨 녀석이었다.
“수수료를 제외한 6억 4천 8백만 란다 중 절반인 3억 2천 4백만 란다가 여기 들어있습니다. 확인해보셔도 됩니다.”
조는 먹보주머니를 받고 몇 번 주물러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헤아려 볼게.”
“예, 편하신 대로. 그리고 이거 받으십시오.”
올리버가 품 안에서 붉은색 약물이 병을 세 개 내밀었다.
“이건?”
“포션입니다. 아서가 말한 큰 건에 참가하겠다고 하니, 지원해 준 겁니다. 아, 포션 구하셨습니까?”
조가 고개를 저었다.
블랙마켓에 고용되며 쌓은 얕은 인맥을 이용해 그레이마켓, 블랙마켓, 유통업자들을 수소문했지만, 제대로 된 물건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좋은 물건은 더 힘 있고, 돈 많은 자들이 먼저 채가는 법이니.
그런 의미에서 조는 그 포션이 상당히 고마웠다.
“고마워..…. 돈은?”
“음….. 어차피 시에서 지원으로 받은 거니, 안 받아도 될 것 같은데요.”
X구역은 물론 이쪽 바닥에서도 보기 힘든 태도였지만, 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자들은 몰라도 올리버가 하면 납득갔다. 아니, 올리버가 하면 뭐든지 납득갔다. 그 정도로 올리버는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보통 사람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기이하면서도 압도적인..….
“그럼, 들어갈까요. 시간도 없으니.”
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올리버를 데리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체육관은 저번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드넓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웃통을 벗은 채 운동 중이었다.
쾅!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샌드백을 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끼익 끼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쇳덩어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들 열심이었다.
“아, 왔군.”
근육질 거구들 사이에서 땅딸막한 대머리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남들의 허리밖에 안 왔지만, 팔과 가슴, 다리 근육이 몹시도 발달해 자갈처럼 단단한 인상을 풍겼다.
그리고 본인도 이를 아는 듯 자신의 두 배 되는 사람들이 넘침에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했다.
전에 조를 만나러 왔을 때 만난 적 있는 이 체육관의 관장 딘클리지였다.
“반갑습니다. 관장님.”
“어. 볼일 있을 때만 찾아오는 우리 조. 그쪽은…. 데이브 맞지?”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딘클리지 씨.”
“씨는 무슨…. 그냥 관장님이라 불러. 듣자 하니 우리 체육관에 등록하고 싶다고 하던데.”
“예, 당장은 일이 있어 안 되지만, 여유가 될 때 운동을 좀 배우고 싶긴 합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무모하구만. 우린 가벼운 운동이 아닌 진짜 수컷이 되기 위한 운동밖에 안 하거든, 어설픈 각오면 지금이라도 다른
체육관을 찾는 게 나을 거야. 그게 서로를 위해 좋지.”
“아, 그럼 그러겠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여기서 배우고 싶다니 특별히 잘 가르쳐주도록 하지. 본격적으로 할 때 되면 찾아오게.”
맞물리지 않는 대화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조는 조언해주었다.
“저런 식으로 말하긴 해도 새 회원은 언제나 환영이니 신경 쓰지 마. 그보다 관장님. 지하실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좋아, 하지만 딱 두 시간이야. 그리고 나랑 약속한 거 잊지 말고. 머리가 벗겨졌어도 내 기억력은 날카로우니.”
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올리버를 데리고 지하 훈련실로 내려갔다.
훈련장은 저번에 봤던 대로 퀴퀴한 공기와 거대한 링, 샌드백, 미트, 글러브로 가득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바닥에 피 흔적이 약간 더 진해졌다는 것 정도.
올리버가 웃옷을 벗으며 물었다.
“약속이 뭐죠?”
“아? ....별거 아니야. 도박 격투기 시합에 참가하라는 거야. X구역에서 몇 안 되는 큰돈이 도는 판인데, 여기 체육관 이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몇
번 참가하기로 했어.”
“아,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옛날에도 선수로 뛰셨다고 그러셨죠?”
“지금은 아니지만, 다시 참가하게 생겼네.”
조의 목소리는 약간의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자세히 묻고 싶지만, 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바로 수업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시간도 없으니.”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정이 든 시험관을 하나 꺼내 조에게 내밀었다.
조는 저번과 달리 제법 능숙하게 감정을 추출했다. 외외로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감정을 손에 최대한 쥐고 계셔보세요.”
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따랐다.
1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감정은 안정적으로 조의 손에 머물렀다.
“그럼, 이번에는 최대한 가늘게 뽑아보시겠어요?”
조는 바로 감정의 형태를 변형시켰다. 비록, 실만큼은 아니지만, 손가락 마디 정도 굵기는 됐다.
"큭.....!"
그마저도 버거운지 조는 인상을 쓰며 최대한 집중했다.
올리버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 손가락을 가져다 조의 손등에 댔다.
간접적으로 요령을 잡아주는 것으로, 실제로 손가락 굵기만큼 뽑히던 감정은 그 1/4로 얇아졌다.
사실 이보다 더 얇아야 하지만 올리버는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천천히 진행했다. 확실히 배우는 게 우선이니. 그런데, 조는 생각이 다른듯했다.
“저기, 데이브.”
“예, 조?”
“이 상태로도 블랙 슈트를 만들 수 없어? 요령을 피우려는 건 아니야. 다만, 다음 때까지 어떻게든 써먹을 방법을 찾고 싶어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힘듭니다.”
“그래?”
“예, 굵기가 너무 굵으면 전신을 뒤덮을 만큼 유연해지지 못하고, 빈틈도 많아져 방어력도 많이 떨어집니다.”
“전신을 두르는 방어용이 아닌, 공격용으로 쓴다면?”
“..…예?”
“가령, 이 정도 굵기의 감정과 생명력을 천이 아닌 갑옷을 만들 듯 엮어서, 한쪽 팔에만 두르는 방식이면 어때?”
올리버는 곰곰이 생각했다.
전신이 아닌 한쪽 팔에만 두르고, 촘촘한 방어가 아닌 공격을 위한 블랙 슈트를.
올리버가 생각한 블랙 슈트와 그 궤가 벗어나는 거 같지만, 영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만요.”
올리버가 품 안에서 두 개의 시험관을 꺼냈다.
감정과 생명력이 든 시험관.
올리버는 두 개외 시험관에서 동시에 감정과 생명력을 추출한 다음 조의 것과 비슷한 굵기로 변형시켜 오른쪽 손과 팔, 어깨에 둘렀다.
흡사 철근을 두른 느낌. 썩 나으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공격력은 더 우수할 수 있었다.
굵기를 늘린 만큼 더 많은 생명력과 감정을 이용할 수 있으니.
“대단하시네요. 전 이런 식으로는 생각 못 했는데.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정말?”
“예, 진심으로요. 좀 더 빨리 써먹는 건 차라리 이쪽일 것 같네요. 이름은..…. 블랙 아머로 할까요.”
작명센스가 별로 인지 조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딴지를 걸진 않았다.
“그럼, 그쪽 위주로 가르쳐줄 수 있을까?”
좀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는 목표가 생기자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걷어붙였다.
블랙 슈트를 하려면 감정을 실처럼 뽑아내는 조절 능력을 끼워야 했지만, 방금 만든 블랙 아머는 바로 조립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럼, 최대한 빨리 가르쳐 드릴게요. 저도 할 일이 있어서요.”
“응? 할 일이 뭐야?”
“별 건 아닙니다. 개발하고 싶은 기술이 하나 있어서요.”
***
올리버는 그날 이후 바로 돌아와 자기 작업에 들어갔다.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이긴 했지만, 조에게 팔과 다리에 블랙 아머를 두를 수 있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줬다.
철근 크기로 감정과 생명력을 뽑아낸 다음 해당 부위에 맞게 엮는 법을 종이에 적어주기까지 했다.
조립하는 작업 역시 조는 꽤 어려워했지만, 올리버가 일대일로 반복 연습을 도와주니 시간은 느릴지언정 혼자서 팔과 다리에 장착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 시간이 길게는 2, 3시간, 짧아도 1시간을 넘긴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일이라 올리버는 체육관이 문 닫을 때까지 도와준 후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좋은 아이디어에 생각보다 빨리 자기 연구에 시간을 투입할 수 있었다.
올리버가 할 연구란 다름 아닌 마법으로, 공간학파의 마법과 멀린의 기술을 접목하려는 거였다.
"음......."
숙소 내 텅 빈 지하실. 올리버는 침음성을 내며 마력을 추출해 양손에 마법을 시전했다.
무색의 투명한 마력은 올리버의 손에 모여 점차 질서와 체계를 잡아갔다.
그와 함께 점점 보랏빛으로 물드는 마력. 잠시 후, 보랏빛 마력이 올리버의 손안에서 응축됐다.
파악一!
응축된 보랏빛 마력은 허공에 찍힌 점처럼 압축되다 이내 폭발하듯 작은 포털을 형성했는데, 한 쌍을 이룬 다른 포털은 올리버의 반대쪽 손에 열려 있었다.
“호오..…."
올리버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력을 추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올리버는 공간학파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연습했다.
전투용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의 편리성과 외외성이 있었으니.
그러나 손꼽을 정도로 배우기 힘든 학문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올리버 혼자서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었다.
준비 단계까지는 어찌어찌 가능한데 정작 포털을 열려고 하면 허물어진 거였다.
이에 관해서는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 그렇다고 손 놓고 포기할 수는 없어 올리버는 자신만의 해결 방안을 모색해봤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하나가 아닌 두 개의 포털을 동시에 만드는 것으로,
하나의 포털을 열어 다른 곳에 길을 뚫는 것이 아닌, 두 개를 동시에 만들어 연결하는 거였다.
놀랍게도 이런 방식을 사용하자 두 포털이 연결되며 발동됐다.
만드는 위치가 제한되고, 크기 역시 주먹 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올리버는 이에 크나큰 가능성을 봤다.
이것만으로는 큰 가치가 없지만, 다른 것과 접목한다면 충분히 사용 가능한.
그래서 올리버는 바로 다음 단계에 들어갔다.
우선 올리버는 눈을 감으며 포털을 해제, 마력으로 변환시킨 후 다시 포털을 만들었다.
마력의 낭비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반복 작업을 하자 손끝을 따라 마법에 내재한 마력의 형태와 흐름이 조금씩 느껴졌다.
포털을 만들고, 마력으로 변형시키고, 포털을 만들고, 마력으로 변형시키고…….
감각과 재능에 의존해 만든 포털의 구성이 머릿속에서 점차 구체적인 형태를 띠어 갔다.
이는 마법을 성공시켰던 때와 또 다른 색다른 기쁨을 주었다.
파직.....파지직.....!
올리버가 주먹을 꽉 쥐자 포털이 가루처럼 부서지며 마력으로 변했다.
올리버는 그 상태로 두 손을 모아 마력을 합친 다음 미리 준비한 잉크병에 쏟아부었다.
응축시킨 마력은 HLF(마석 액화 연료/Hearthstone Liquefied Fuel)처럼 변해 잉크에 스며들었다.
멀린이 사용한 책은 이와 비교할 수 없는 방식을 썼지만, 올리버는 일단 자신만의 방법을 연구하며 마력과 잉크를 완전히 뒤섞은 다음 종이 위에
아까 전 파악한 공간 마법의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원 하나와 작은 원 두 개. 원 안의 독특한 형태의 그물망. 그리고 좌우 대칭의 나무뿌리 형태의 연결선들.’
기계로 그린 듯 종이 위에 마법진이 그려졌고, 말린 다음 올리버는 그 위로 종이를 덧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마법진을 그렸다.
슥- 슥- 슥슥- 쓰스스슥-
똑같은 마법진을 종이에 다 그린 후, 올리버는 두 장을 각각 지하실 양 끝에 놓은 다음 마력을 흩뿌려 발동시켜봤다.
공중에 흩뿌린 마력은 종이와 접촉해 마력을 머금은 잉크를 발동시켜 종이 위에 포털을 발동시켰다.
포털의 크기가 개구멍 수준에, 발동시간도 2, 3초에 불과했지만 충분했다.
아주 아주 큰 성과였다.
올리버는 이를 바탕으로 던칸을 송장인형으로 바꾼 후, 흑마법을 가미해 올리버식으로 만든 공간학파 마법을 접목했다.
그렇게 새로운 공격 수단을 확보했을 때 포레스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서 쪽에서 연락이 왔네. 윌레스의 위치를 확보했다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