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더 큰 건 (2) >
부우우우웅……끽.
포레스트의 말대로 30분 정도 기다리자 X구역 오수 배출구장에 6대의 차량이 도착했다.
그중 3대는 소총으로 무장한 용병들이 대거 타고 있었다.
‘나머지는 현상수배범을 태워 갈 차량인가?’
중개인 조합과 거래하는 용병이라 그런지 그들 모두 스타일만 조금 다르다 뿐이지, 같은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체계라던가 질서란 게 잡혀있었다.
“당신이 T구역 27번 거리 해결사 데이브요?”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접니다."
대장으로 보이는 용병이 당당하면서도 적당히 예를 갖춰 인사했다.
“반갑소. 중개인 조합에 고용된 ‘세이프티 가드(safety guard)’의 포울이오. 말씀한 현상수배범을 인계받기 위해 왔소. 어딨소?”
올리버는 남자의 감정을 살폈다. 그의 감정은 진심이었다.
올리버가 오물 배출장 아래 있다고 대답하자 그는 능숙하게 팀원을 나눠 일부는 주변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인원은 구속 장치를 들고 따를 것을 명했다.
갱들과 다르게 팀원 하나하나가 낭비하는 움직임 없이 움직여 남들보다 3, 4배는 더 빨리 준비를 마쳤다.
“안내 부탁드립니다.”
준비를 마친 포울은 올리버에게 말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오물 배출장 아래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가자 물기가 고인 바닥에서 철퍽- 철퍽- 소리가 퍼졌고, 이윽고 조금 더 들어가자 조 일행과 아서 일행, 송장인형, 켈 자유 독립군 수배범들을 볼 수 있었다.
확인하자마자 포울이 막대기 같은 통신장치에 대고 말했다.
“통신. 통신. 중개인 조합에 요청 받은 대로 스물아홉 명의 수배범들을 찾았다. 바로, 확보 후 돌아가겠다. 이상."
그러자 통신장치에서 치지직 소리와 함께 말 몇 마디가 나오더니 뚝 하고 끊겼다.
통신을 끝낸 포울이 올리버를 바라보며 물었다.
“질병계열 흑마법사 데이몬, 오염생물체 술사 앨리스터, 마법해커 휴잇은 어딨소? 그들이 가장 중요한데."
올리버가 조 옆에 나란히 묶여 누운 세 사람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두 사람과 한 구의 시체였지만.
“이쪽은 휴잇이고, 이쪽은 앨리스터.…. 죽은 것은 아니지요?”
“때려서 기절시킨 후, 흑마법으로 잠재웠을 뿐입니다. 하루 이틀 후에는 깨어날 겁니다.”
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쪽이 데이몬?”
“예, 제압하는 과정에 얼굴을 뭉개지긴 했지만, 그가 맞습니다. 혹시 문제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얼굴이 망가져도 신분을 알아낼 방법은 있으니. 다만 현상금은 좀 깎이겠소.”
올리버가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포울은 성실하게 자기 일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부하들을 시켜 새로운 구속 기구를 씌운 후, 하나씩 하나씩 밖으로 데려갔다.
“수고하셨소. 데이브 씨. 여기서부터는 중개인 조합의 요청에 따라 우리가 인수인계하겠소. 현상금은 중개인에게 요청하면 될 겁니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대단합니다.”
“네?”
“이 정도 성과를 낸 사람이 현재는 없었거든. 잡병을 포함했다지만 한 번에 서른 명 가까이….. 개중에 세 명은 나름 거물급이고. 이 바닥에서 생긴 명성 중 반은 허언인데, 그쪽은 아닌가 보오.”
세이프티 가드의 포울은 전투복 앞에 달린 주머니에서 반짝이는 철 케이스를 꺼냈다.
딸깍.
철 케이스가 열리자 안에 든 명함이 보였다. 그는 그중 한 장을 뽑아 올리버에게 내밀었다.
“모두 그러하듯 우리 용병단도 늘 뛰어난 인재를 원하고 있소. 언제 생각나면 찾아오시오. 떼돈을 벌게 해준다는 헛소리를 하지 않는 대신 안정적인 근무환경과 외부로부터의 핍박으로는 보호해 주겠소.”
올리버는 말없이 명함을 받았다.
외부로부터의 핍박이 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아직 올리버가 당해본 적이 없지만, 흑마법사는 객관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속했으니. 그럼에도 딱히 관심 가진 않았다.
“제안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예를 갖춰 대답하자 포울 역시 대충 알겠다는 듯 부하들을 데리고 이동했다.
지상에서처럼 그들의 행동은 빨라, 이곳 지하에서 아서 일행과 올리버 일행만 남게 됐다.
양손에 골렘 의수를 단 아서가 다가와 물었다.
“내 제안 어떤가?”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아서 씨..…. 자세한 내용은 포레스트 님을 통해 전해드려도 될지요?”
아서가 씨익 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
***
그렇게 아서 일행과 헤어지고 올리버는 조와 함께 오언과 샘을 챙겨 자리를 떴다.
참고로 앨리스터가 다루던 거미 파커는 딥 슬립으로 재워 송장인형을 통해 따로 챙겼다.
앨리스터의 말에 따르면 자신과 오랫동안 교감해 올리버가 다룰 수 없을 거라 했지만, 어차피 해부해 연구할 거니 딱히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올리버는 조와 함께 X구역의 무면허 의사에게 가 오언과 샘을 맡겼다.
다행히 둘 다 크게 다치진 않았다.
오언은 심각한 타박상과 골절을 입고, 샘은 뇌진탕과 내상만 좀 입었다고 했다.
무면허 의사의 말에 따르면 최소 몇 주는 푹 쉬어야 한다고 했지만, 조는 고개를 저으며 최대한 빨리 회복시킬 테니 올리버에게 자기들도 아서가 말한 큰 건에 끼어달라고 부탁했다.
올리버는 알겠다고 바로 수락하였는데, 그러자 조가 안심하는 빛을 띠었다.
사실 위험한 일을 하러 가는 거나 다름없는데, 기뻐하다니.
이에 관해 묻자 조가 이리 대답했다.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야 하니까.”
간단하면서도 확고한 대답에 올리버가 질문했다.
"그런데 의사분께서는 몇 주 쉬셔야 한다고 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어. 그레이마켓이나 블랙마켓에서 돈 좀 쓰면 포션을 구할 수 있을 거야. 최근 질 좋은 포션이 조금씩 조금씩 풀리고 있으니. 마탑이랑 무슨 비밀 조약을 체결했다던데, 사실인 거 같아.”
‘포션이라….. 음.….’
“그래서 말인데, 현상금 받으면 바로 줄 수 있을까? 지금 총알이 다 떨어져서.”
“아, 알겠습니다. 내일이나 모레쯤 현상금이 나올 테니 그때 전해드리겠습니다. 받으러 오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가져다드릴까요?”
올리버의 질문에 조가 잠시 고민했다.
“..…괜찮으면 가져다줄 수 있을까? 저번에 만났던 체육관으로?”
“체육관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일 들어가기 전에 시간 뺏는 건 미안하지만, 나 다시 한번 가르쳐 줄 수 있을까? 블랙슈트 말이야.”
“아….. 아아. 뭐, 예. 가능합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그게 이제 확실히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거든….. 액수만 맞춰주면 돈도 지불할게.”
올리버가 그럴 필요 없다고 대답하려던 찰나 머릿속에 불이 반짝하고 들어왔다.
“돈도 좋지만, 이왕이면 다른 걸로 보답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다른 거? 뭔데?"
“저 운동 좀 가르쳐주십시오. 지금 하고 있는 걸로는 이제 한계가 느껴져서요.”
조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올리버를 봤다.
***
“아, 정확히 시간에 맞춰서 오셨군.”
조와 헤어지고 하루가 지난 후, 올리버는 포레스트를 찾아왔다.
“예, 이 시간쯤 오면 된다고 하셔서요.”
“그렇지. 원래는 점심이나 저녁때쯤 불러 식사라도 대접해주고 싶었지만, 일이 바빠 일부러 어정쩡한 시간에 불렀네. 이해 바라네. 뭣보다…..."
포레스트가 말을 잠시 멈추며 무엇인가를 꺼냈다.
테두리가 겉으로 마감된 검은색 서류 가방 두 개였다.
“이런 거금을 들고 식사하긴 좀 그렇지. 확인해보게. 전부 10만 란다권으로 채워 가방 하나당 3억 2천 4백만 란다. 다 합쳐 6억 4천 8백만 란다네. 7억 2천만 란다에서 수수료 10퍼센트를 제한 금액이네.”
올리버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죄송하지만, 포레스트 님. 뭔가 약간 이상한데요? 저도 대충 계산했지만, 기껏해야 현상금은 6억 란다 아닙니까? 데이몬은 죽었으니 더 낮아질 거고요.”
“그게 맞는 계산법이긴 하지. 데이몬은 죽었으니 1억 안팎으로 줄었을 거고, 앨리스터는 1억 1천, 휴잇은 3억. 나머지 자잘한 친구들 스물여섯 명. 넉넉하게 쳐줘도 6억이 안 되지. 즉, 자네들은 1.2배 이상은 더 받은 셈이라 할 수 있지.”
중개인으로 먹고사는 사람답게 그는 돈을 딱 계산해 이야기했다.
“왜 1.2배 이상을 더 준 거죠?”
“시(市)를 기쁘게 해줘서 그렇다네. 이 문제로 시(市)도 중앙의회에 압박을 받고 있거든. 그런 와중에 자네가 크게 한 건 해줬으니, 그에 맞게 보너스를 지급한 거야. 이러면 다른 해결사들도 좀 더 눈에 불을 켜고 일할 테고.”
석연치 않았지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일을 잘했다고 1.2배나 더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게 전부인가요?”
“음..…. 일단, 돈부터 챙기게. 그런 다음 이야기해주겠네.”
포레스트의 말에 올리버는 먹보주머니를 두 개 꺼냈다.
지갑용으로 사람의 피부와 눈알, 치아로 이뤄진 먹보주머니를 돈다발 위에 올리자, 하나둘 눈을 뜨며 게걸스럽게 돈을 삼키기 시작했다.
“각각 자기들 것만 드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먹보주머니들. 포레스트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더니 대뜸 입을 열었다.
“혹시 자네 사람 덩치만 한 먹보주머니 가지고 있지 않나?”
“예. 빅마우스입니다.”
“이름까지 붙였군.”
“붙여달라고 해서요.…. 그런데 포레스트 님께서 어떻게 아시는 거죠? 보여드린 적 없는 거 같은데.”
“소문이 들리거든. T구역의 데이브란 해결사는 사람 크기만 한 먹보주머니를 데리고 다니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산 채로 먹게 한다고 말일세.”
“….말도 안 되는군요."
“이 바닥은 원래 이상한 소문이 잘 나네.”
“그렇습니다. 먹보주머니는 살아 있는 건 먹지 못합니다. 죽은 시체는 몰라도요.”
“……혹시 방금 그거 개그인가?”
“…? 아뇨.”
“다행이군. 그렇다면 자네 개그 솜씨는 처참한 걸 넘어 끔찍했을 테니. 소름 끼쳤으니 앞으론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게.”
어떤 부분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슬퍼지려고 했다. 정말 자신에겐 농담의 재능이 없는 걸까?
“어쨌건, 다름이 아니라 몇몇 사람들이 그 먹보 주머니를 통해 자네를 알아보고 있네. 그러니 조심하게. 신분이 먼저 노출되는 건 자칫 불리한 상황이나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니.”
“알겠습니다. 그런데 먹보주머니로 신분이 노출된다고 하니 조금 이상하네요.”
“사람 크기만 한 먹보주머니는 보기 드무니.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 빅마우스인가 하는 거 괜찮나? 그 정도 덩치가 되면 주인에게 덤비려고 하던데?”
“전혀요. 만드시는 분도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착한 아이입니다.”
“그렇다면 대단하군. 먹보주머니가 편리하지만, 그 물건의 특성 탓에 늘 제작과 사용이 제한되거든. 그만한 크기에 먹보주머니를 착하게 만들 수 있다면 블랙마켓 생산부에서 스카우트할지도 모르겠군.”
“생산부요?”
“유통을 쥔 거대기업의 횡포이지. 뛰어난 재주를 지닌 수공업자를 자기네 공방에 억지로 취직시키려고 하거든. 사탕과 매를 흔들며.”
“아..…."
올리버는 공기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게 사실이면 좀 더 급하게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먹보주머니가 슬슬 부족해지니 더 주문하고, 기술도 배울 수 있는지 물어봐야 했다.
꺼억-
먹보주머니 두 개가 자기들 덩치의 몇 배에 달하는 현금을 먹어 치웠다.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다.
올리버는 그 먹보주머니를 들어 품 안에 넣고 포레스트 맞은편에 앉아 물었다.
“그럼, 이제 질문에 대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포레스트가 텅 빈 가방을 바닥으로 치우며 대답했다.
“시(市)에서 아서랑 협업해주길 바라는 눈치일세.”
“아서 씨요?”
“그래. 전에 그 친구가 시(市)의 지원을 등에 업었다고 이야기했지?”
포레스트는 통신장치를 통해 아서와 그 동료들이 시(市) 공무원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이번 임무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시의 장비도 지원을 받은 것 같다고 했는데, 솔직히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했다.
시의 프로젝트가 어떤 형태인지 아직 정확히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공무원 혹은 준(準)공무원에 해당하는 위치일 터이고, 시의 개 노릇을 해야 하지만 그만큼 지원도 받을 수 있을 터이니.
물론, 급여야 해결사 노릇 할 때보다 줄어들지 모르지만, 박봉은 아닐 거라고 했다.
급여를 최소한으로 주는 건 대체 가능한 업무를 수행하는 말단뿐. 자신만의 영역과 특기를 가진 자라면 의외로 높은 급여를 준다고 했다.
“예, 그런데 그게 왜 그러십니까?”
“별로 상관은 없어. 그냥 이번 임무를 통해 시의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게 좋을 거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은 것 같아. 실제로, 참가할 경우 필요한 장비를 지원해주겠다고 하네.”
올리버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애당초 프로젝트에는 관심이 없었고, 장비 같은 것도 아직 크게 필요한 걸 못 느꼈다.
"아, 그럼 아서 씨는 추가 장비를 얻기 위해 저랑 협업을 제안하신 건가요?”
“그렇지. 일의 사이즈가 커지면 지원도 늘어나니. 그게 윌레스를 잡는 거면 더욱 그렇고.”
“저번에 말씀하신 윌레스 말씀이시군요.”
“그래, 말했다시피 대단한 사람이야. 그만큼 왕국 입장에서는 짜증 나는 존재고. 정말 란다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를 잡는다면 시(市)는 괴롭힘에서 벗어나는 걸 넘어 중앙의회와 다른 사항에 대해 협상도 할 수도 있겠지.”
올리버는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노스랜드의 켈 자유독립군은 왜 그리 저항하는 거지요? 신문을 보니 광산 사용 문제나 노동자 문제가 있지만, 확 하고 이해되는 건 없거든요.”
“음……,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럼 시간이 좀 많이 필요하네.”
“역사요?”
“그래. 차라리 책 읽는 걸 추천하지. 노스랜드에서 써진 역사책과 왕국에서 써진 역사책을. 양쪽 입장에서 봐야 이해되거든.”
“조언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럼, 어떻게 아서 쪽과 협업할 생각인가?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위험하긴 하지만, 보수와 시(市)에 자네 존재감을 새기기에는 나쁘진 않은 일이야.”
올리버는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예, 그럼 수락하겠습니다.”
“좋군. 그럼, 아서 쪽 중개인과 시(市)에 통보하겠네. 윌레스의 위치를 파악한 건 그쪽이니, 작전 주도권은 그쪽이 가지겠지만, 보수는 공평하게 가져오겠네.”
“알겠습니다.”
“혹시 요청할 일 있나? 부탁을 들어줬으니 너무 어려운 게 아니면 도와줄 거야.”
올리버가 고민하다 대답했다.
“음……혹시, 포션 좀 얻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