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더 큰 건 (1) >
철퍽. 철퍽. 철퍽.
악취가 진동하는 오수 배출장 하수도.
올리버는 그곳에서 휴잇과 앨리스터 그리고 그들이 다루던 괴물 거미 파커를 짊어진 채 앞으로 걸어갔다.
돌아가는 길이 폭탄으로 무너져 내려 막혔지만, 다행히 하수도가 미로처럼 여러 개의 길이 나 있어 샛길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길 찾는 게 특기는 아니지만, 눈에 신경을 집중해 조 일행의 위치를 표시 삼아 이동하니 어찌어찌 익숙한 길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기력이 빠진 조 일행과 갑자기 나타난 십여 개의 감정을 확인한 올리버가 생각했다.
조는 그들을 경계하였지만, 적들은 딱히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일단, 적은 아닌 것 같았다.
‘뭣보다 익숙한 사람도 한 명 있고.’
그렇다고 아주 마음 놓을 수도 없는 노릇.
올리버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노획물을 짊어진 채 뛰어갔다.
어둡고, 축축한 하수도에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윽고 조 일행이 있는 장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무슨 일 있었나요?”
격렬한 전투 흔적이 있는 하수도 내부를 살펴보며 올리버가 물었다.
체력이 이미 바닥을 보이다 못해 지하로 파고 들어간 조는 올리버를 보자마자 반가움과 안도감을 빛내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자빠지려던 걸 송장인형-흑마법사가 기괴한 울음소리를 부축해줬다.
“크으. 크으. 크으.”
올리버는 휴잇, 앨리스터 등 짊어진 이들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조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하아…. 좀 많이. 설명하면 좀 길어져."
그때, 익숙한 제 3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거 진짜였잖아. 아니, 당연한 건가? ....그래도 이 친구들하고 협업할 줄이야. 재주 좋군.”
정체불명의 무장 집단 가운데서 한 거구의 남성이 나타났다.
양팔에 정교한 골렘 의수를 단….. 바로, 아서였다. 돌주먹 아서.
오염구역에서 올리버와 처음 만나 같이 싸우고, 머피와의 일로 다시 만나 또 같이 싸운.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다.
“아서 씨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서가 한층 업그레이든 된 신형 골렘 의수로 거친 머리카락을 넘기며 대답했다.
“나도 만나서 반갑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자넬 보니 한편으로는 놀랍군..…. 자넨 아닌 것 같지만.”
“아뇨. 저도 놀랐습니다. 다만, 전 좀 더 멀리 있을 때 아서 씨 존재를 봤거든요.”
“봤다고? 아.…. 맞아 자넨 흑마법사니까. 눈도 좋겠지.”
“그런 것 같습니다.”
아서는 태연한 척 웃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감정을 빛냈다.
마치 크나큰 실수를 간신히 피한 그런 감정이었다.
반쯤 널브러진 조가 숨을 헐떡이며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내가 저 인간 보자마자 너랑 같이 일하고 있는 거 이야기 안 했으면, 나랑 샘, 오언 다 죽이고 우리가 잡은 거 훔쳐갔을 거야.”
아서가 이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어허, 무슨 그럼 섭섭한 말씀을..…."
“그럼, 이 녀석 쓰러뜨린 후 총 들고 나타난 이유가 뭐지?”
조가 자기 뒤쪽에 얼굴이 완전히 뭉개진 데이몬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서는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나오라 그러지 않았나?”
조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경험에 의한 의심으로, 그런 경우가 많이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하긴, 캔트가 이에 관해 이야기하긴 했지. 같은 해결사와 중개인을 조심하라고.
아서가 올리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넨 날 의심 안 했으면 좋겠군. 두 번이나 같이 일한 사이인데.”
올리버는 그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의심 안 합니다. 설사 그러셨다고 해도 무슨 사정이 있으시겠죠….. 전 저대로 행동하면 되니 의심하거나, 불쾌하지 않습니다.”
아서에게 별 감정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아서의 표정은 한순간 굳었다.
그와 함께 그의 감정에 약간의 불쾌함과 공포, 안도가 스쳐 지나갔다.
“……자네다운 말이군.”
무슨 말실수를 한 건가 싶었다. 그래서 올리버는 주제를 재빠르게 바꿨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신 거죠?”
“나도 자네와 같은 일을 맡았네.”
“켈 자유독립군요?”
“자유독립군이라….. 거창한 이름이군. 그보다는 그냥 어리석은 반란군 놈의 새끼들이지. 정보상을 통해 이놈들과 접선하려던 바퀴벌레들을 소탕하고, 내친김에 이놈들까지 잡으려고 왔어. 한 발짝 늦었지만.”
올리버가 뒤를 돌아봐 잡은 켈 자유독립군을 살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데이몬은 얼굴이 박살 나 죽어 있었다.
‘뭐, 혈마법이나 그런 걸로 신분 확인이 가능할 테니, 현상금이 줄어드는 것 외에는 별문제가 아니네.’
올리버가 아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예. 저희가 운 좋게 한 발짝 빨랐네요.”
아서가 인정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수는 우리 반밖에 안 되면서 대박을 터트렸군. 데이몬에, 앨리스터, 거기에 마법 해커 휴잇. 다 합쳐 얼만지 감도 안 오는구만.”
“저 세 분만 합치면 5억 6천입니다. 다른 분들까지 합치면 잘하면 6억 아슬아슬하게 될 수 있고요…. 근데, 데이몬 씨가 죽어서 잘은 모르겠네요.”
올리버의 순수한 대답에 아서 뒤편에 있는 일부 사람들의 감정이 찰나이긴 하나 탐욕이 요동쳤다.
그도 그럴 것이 1억이란 돈도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란다에서 6억은 엄청 큰돈이었다.
그 감정을 읽은 게 올리버만이 아닌지, 조는 체력이 고갈됐음에도 악착같이 일어서 싸울 자세를 잡았다. 송장인형-흑마법사, 저격수도 자세를 잡았다.
그에 호응해 아서 일행도 총을 고쳐 잡았다.
아서가 자기 동료들을 재빨리 진정시켰다.
“아아, 왜들 이래? 왜들. 누가 보면 진짜 우리가 빼앗으려고 여기 온 건 줄 알잖아? 다들 무기 내려."
동료들을 제대로 통제하는 건지 아서의 말에 모두 무기를 내리며 긴장이 다시 가라앉았다.
가만 보니 저들 중 몇몇이 눈에 익었다.
실크햇을 쓴 여성 저격수, 기계 팔과 고글을 낀 남성, 외골격 장갑으로 무장한 남성 등등.
오염구역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다만, 과거에 봤던 것보다 무기, 전투복 등이 더 좋아진 상태였다.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볼 때 보통 물건은 아니었다.
“다들 전에 봤을 때보다 좋은 장비를 하고 있네요. 벌이가 좋으시나 봅니다.”
“음? 아아.…. 글쎄, 해결사가 자기 돈으로 무장 바꾸는 게 쉽지 않아.”
“그런가요?”
“그럼, 해결사란 직종이 벌이가 괜찮긴 하지만, 늘 그런 것도 아니고, 괜찮은 장비는 대부분 비싸거든. 성실히 돈을 모아 장비 바꾸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그럼 어떻게 바꾸신 거죠?”
“괜찮은 물주를 만나야지.”
“물주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한 가지 제안해도 될까. 자네랑 같이 크게 한탕 해보고 싶은데?”
아서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제안했다.
***
[진짜인가?]
오수 처리장 밖으로 나온 올리버가 통신기기에 대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포레스트 님. 질병계열 흑마법사 데이몬, 오염생물체 조련사 앨리스터, 마법 해커 휴잇을 잡았습니다. 데이몬은 죽었는데, 발악하다 제압하는 도중 얼굴이 완전히 뭉개졌습니다.”
[그건 별 문제 안 되네. 나머지 둘은?]
“그들은 기절만 시켜 놨습니다. 그런데..…."
올리버가 그답지 않게 질문하려다 말고 말꼬리를 흐렸다.
[뭔가 무슨 일인가?]
“……아뇨. 아닙니다.”
올리버 답지않은 태도에 통신기기 너머로도 느껴질 정도로 포레스트가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캐물을 수는 없는 노릇. 포레스트는 다시 일 이야기로 넘어갔다.
[뭐, 좋아. 그 외 몇 명이라고?]
“현상 수배서에 있던 개조인간 다섯 그 외 같이 있던 일반병들도 스물한 명 정도 잡았습니다. 혹시, 병사들도 현상금이 나오나요?”
[현상금은 원칙적으로 현상수배가 걸린 사람만 지급하지만, 시(市)를 설득해 받을 수 있도록 하겠네. 그래 봤자, 50에서 100만 란다겠지만.]
포레스트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올리버는 오히려 기쁠 따름이었다.
100만 란다라 해도 일반병을 다 합치면 2천 1백만 란다. 그럼, 올리버 앞으로 1천 5십만 란다는 떨어진다는 거였다.
“그 정도만 돼도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 없네. 시(市)는 필요할 때 쓸 줄 아니까. 물론, 자네가 간부를 셋이나 잡아서 그런 거야. 그럼… 다 합쳐 스물아홉 명을 잡은셈이군.]
“예, 좀 죽긴 했지만 그렇습니다. 저희만으로는 다 데리고 갈 수 없는데, 혹시 도움 좀 받을 수 있겠습니까요?”
[물론이네. 여기 데려오는 것도 오히려 문제니…. 30분만 기다릴 수 있겠나? 중개인 조합에 연락해 수배범들을 시에 대신 넘길 인력을 보내주겠네.]
“예,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런 업체도 있습니까?”
[이것만 하는 건 아니고, 중개인 조합과 꾸준히 거래해 신용을 쌓은 용병대가 있어. 우리 몫의 일부를 수고비로 지급해야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필요한 친구들이지. 그럼, 보고할 이야기는 그게 끝인가?]
“아뇨. 하나 더 있습니다.”
[그런가? 뭔가?]
“이야기하자면 좀 긴데, 혹시, 아서 씨 아십니까? 돌주먹 아서 말입니다.”
[아네. N구역의 중개인 엔과 계약한 해결사지. 퇴역군인 출신으로, 혼자서도 강하지만, 자기와 같은 퇴역군인들과 합을 합칠 때 더 유능함을 뽐내는 친구지. 왜 그러나?]
"방금 하수도에서 만났습니다. 자기들도 켈 자유독립군 잔당을 쫓아왔다고요.”
[그리 이상하지는 않군. 아서도 시(市)에게 일을 받았을 테니. 그럼, 동선이 겹치는 건 흔하지….. 혹시 그쪽에서 무슨 수작 부리지 않았나?]
포레스트가 과하진 않지만, 경계심을 가지며 물었다.
란다 하수도는 지상과 단절된 또 다른 공간이니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었으니.
“없었습니다. 오히려, 동료분들을 진정시켜줘 원만하게 해결됐습니다.”
[그럼, 원하는 게 있다는 거군.]
“예, 정확히는 저랑 같이 크게 한탕 해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탕 크게? 그럼, 거물급 인사를 잡을 거라는 이야긴데. 설마, 윌레스라도 잡을 생각인가?]
윌레스. 기억하는 이름이었다.
켈 자유독립군의 지도자급 인물 중 하나로, 원소학파에 위장한 신분을 통해 들어가 마법을 배우고 그 안에서 충분히 거물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 켈 자유독립군에 자원입대한 인물이었다.
마법 실력뿐 아니라, 노스인 특유의 강력한 신체능력과 근접 전투 능력으로 입단과 동시에 맹위를 떨쳤다고 했는데,
이 한 명을 잡기 위해 왕국에서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고, 종군 마법사도 다섯이나 투입했다고 했다.
큰 타격은 줬으나 결과적으로 윌레스를 놓치고, 참전한 종군 마법사도 셋이나 죽었지만.
여하튼 여러 의미로 대단한 사람인 거 같았다.
“현상금이 12억 맞습니까?”
[그렇지. 많은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 원소학파 내에서도 지지를 받은 게 허언이 아닌지 전투뿐 아니라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 꽤 위험하거든.]
“큰 그림요?”
[정치적 상황과 시대 흐름을 읽을 줄 안다는 뜻이네. 단순히 힘만 센 것보다 그게 더 위험해. 실제로, 강력한 전투력이 부각되지만, 힘을 숨길 때를 아는 눈치와 몸을 낮춰 기회를 찾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거든.]
“꽤 잘 아시네요.”
[나 역시 왕국 사람이지 않은가? 어쨌건 흥미롭군. 윌레스는 란다로 피난 안 왔을 줄 알았는데..…. 아서에게 뭐라 대답했나?]
“포레스트 님과 대화 후 답변드린다고 했습니다. 아서 씨는 기꺼이 수용했고요.”
[그렇단 말이지. 어지간히 자네 도움을 받고 싶은가 보군. 단순히 돈 때문에 그러는 거 같지는 않은데.]
그때 올리버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본능적으로 이게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움이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아서 씨를 비롯해 같이 일하시는 동료분들 장비가 몹시도 좋은 것으로 바뀌긴 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서 씨의 의수가 특히 많이 바뀌었고요.”
[그 정도인가?]
“예, 마력의 흐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기하군. 좋은 장비는 해결사들의 꿈이자 필수이긴 하지만 말처럼 쉬운 건 또 아닌데.]
“그리고 괜찮은 물주를 만나야지라고 말했습니다.”
[.........]
포레스트가 침묵했다. 당황이나 무지에서 오는 침묵이 아닌, 무엇인가 깨달았을 때 일어나는 침묵이었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시(市)의 지원을 등에 업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