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현상수배범 포획 (1) >
하수도 뱀의 근거지 근처에 자리 잡은 폐건물.
시멘트 가루와 흙먼지, 녹슨 철근과 부러진 나무판자밖에 없는 이곳에서 올리버 일행은 대기하고 있었다.
X구역에는 이런 곳이 널리고 깔려 있어 위험만 감수하면 이렇게 쉴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딱히 할 것이 없었기에 올리버는 챙겨온 여분의 감정과 생명력을 송장인형에 든 차일드들에게 제공했으며, 조와 샘은 같이 구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오언은 자청해 밖에서 경계를 섰다. 하수도 뱀을 기다리는 겸 경계 목적으로.
“캬르륵……."
“갸륵."
“딱. 딱. 딱."
송장인형에 든 차일드들이 모자라다는 듯 울음소리를 냈다.
올리버는 옷 안쪽을 확인한 후 말했다.
“죄송해요. 곧 일해야 할지도 몰라 더 이상은 못 드려요. 대신, 일 끝나고 돌아가면 특별식을 만들어 드릴게요. 참을 수 있죠?”
어르고 달래는 올리버의 말에 차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부터 먹성이 좋았지만, 지금은 훨씬 더 먹는 양이 많아졌다. 역시, 차일드를 함부로 늘리지 않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빈 시험관을 정리하는 등 뒷정리를 하던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조와 샘에게 시선이 갔다.
그 둘은 초조한 듯 대화를 나눴다.
“정말 뱀새끼가 우릴 도와줄까? ..…그놈들 이름처럼 하수도 뱀 같은 놈들이잖아? 교활하고, 더럽지, 병균도 득실거려 해롭고.”
“별수 없잖아, 그렇게나마 협조하겠다는데, 싸울 수도 없고. 그놈들도 그걸 알고 하는 말일 거 아냐.”
샘이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며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었다.
올리버가 끼어들어 질문했다.
“왜 싸울 수 없죠?”
올리버의 물음에 조와샘이 고개를 돌렸다.
올리버가 오해를 풀기 위해 추가로 말을 더했다.
"아니, 싸우자는 뜻은 아닌데. 이유는 알고 싶어서요. 왜 하수도 뱀이랑 못 싸우죠?”
조와 샘이 서로 바라보다가 조가 대답했다.
“이 근방에서 나름대로 큰 갱단이거든. 양은 양만의 질이 있어서 싸우기 부담스럽지.”
샘이 덧붙였다.
“거기다 Y, Z구역과의 커넥션이 있다는 소문도 있고.”
“커넥션요?”
“어, 거창한 건 아니고, 그쪽에 거래하는 조직도 있고, 보호세를 바쳐 보호해주는 조직도 있다 하더라고. 자칫 잘못 건드리면 그쪽이랑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조가 다시 바톤을 받았다.
“그럼, 일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지. 시에 거의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X, Y, Z구역이라 해도 나름대로 질서라는 게 있거든. 생각도 안 하고 그걸 깨면 여러 사람 피곤해져. 물론, 사건을 벌인 당사자가 제일 피곤하겠지만.”
올리버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떤 형태로든 사람이 있으면 질서가 생기고, 이것을 깨는 것은 정도만 다를 뿐 위험했다.
고아원과 광산, 조셉 패밀리처럼…. X구역이라고 다르지 않을 터였다.
외부인인 올리버에겐 별 감흥이 없어도, 조와 샘처럼 여기서 사는 사람이면 몹시도 중요한 문제.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중 조가 갑자기 올리버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봐, 데이브.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질문요? 예, 말씀하십시오.”
“하수도 뱀 대장인 가일이 흑마법사인 거 어떻게 알았어?”
“그 새끼 흑마법사였어?”
샘이 놀라며 물었고, 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올리버를 가리켰다.
“보였습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혹시, 사무실 올라가는 계단 입구 지키던 문지기 기억하시나요?”
“가면 쓴 근육 덩어리들?”
“네. 얼굴에 쓴 가면에 흑마법의 기운이 서려 있었거든요. 아마, 조작계열 중 정신조작 계열일 겁니다.”
“정신 조작?”
“예..…. 흑마법은 크게 화력, 질병, 조작, 창조 계열로 나뉘고, 또 거기서 세부적으로 나뉘거든요. 가령, 조작계열의 경우, 시체를 다루는 강령, 그림자를 다루는 그림자 계열, 생물의 정신을 조종하는 정신계열로 나뉘지요.”
올리버가 조셉의 서재에서 보았던 기초적인 흑마법 이야기를 했다.
조와 샘은 처음 듣는지 감탄했다. 대장이란 사람이 안 가르쳐줬나?
하긴 가공 감정을 쓰게 한 시점에서 제대로 된 교육과 거리가 먼 것을 쉬이 예측할 수 있긴 했다.
어쨌건 올리버는 마저 설명을 이었다.
“참고로, 정신조작은 조작계열 중 가장 어려운 편에 속합니다.”
“그래?”
“예. 시체나 그림자의 경우 저항하지 않지만, 생명체는 저항하거든요. 동물이 그나마 쉽지만, 사람은 저항이 아주 심해 여러 준비 단계와 보조장치가 필요로 합니다.”
“준비는 뭐고, 장치는 뭔데?”
“준비는 조종할 사람의 정신력을 저하시키는 걸 말하고, 장치는 흑마법의 효과를 증폭시켜 줄 가면이나, 문신, 목걸이 같은 매개체를 의미합니다.”
“아......."
“그럼에도 어렵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 명이 아닌 둘이나 통제하고 있는 가일 씨는 꽤 실력이 좋은 흑마법사라 할 수 있겠네요.”
"......."
조와 샘이 그렇다 할 말을 하지 않으며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감정은 약간의 두려움과 긴장, 존경심이 빛났다. 왜 저러나 싶었다.
그러던 중 임의로 달아둔 나무 문이 철그렁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커다란 쇠몽둥이를 든 오언이었다.
“저, 저기..…. 하수도 뱀 쪽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올리버와 조, 샘이 그 말에 일어섰다. 우중충한 밤하늘과 시계를 봤을 때 현재는 새벽 시간 때.
그 말은 즉, 가일이 말한 상황이란 거였다.
“당신이 조입니까? 너클 조?”
이마에 <살아남아라>는 문구가 새겨진 빼빼 마른 갱이 물었다.
그는 불안한 듯 눈을 두리번거렸다.
“어. 무슨 일이야?”
“우리 보스께서 고객이 튀었다고 했습니다. 길을 막은 우리 애들도 죽였고요. ..…여기 이쪽으로 가보시면 된답니다.”
갱이 쪽지를 내밀었다.
조는 그 쪽지를 받아 펼쳐 확인했다. 여러 글자와 함께 주소 비슷한 게 쓰여있었다.
“주소 같은데 어딘지 아시나요?”
올리버의 질문에 조가 대답했다.
“어, X구역 좌측 끝 오수 배출장.”
***
X구역 좌측 끝 오수 배출장.
그곳은 시에 의해 버려진 X구역 중 그나마 버려지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X구역 인근의 생활 오수를 이곳에 모아 버리기 때문으로, 그로 인해 X구역에서 웬만한 일이 터져도 상관 안 하는 시(市)조차 이곳을 건드리면 그에 따르는 대응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X구역 인간들도 여기에 무슨 소란을 일으키진 않아. 운이 좋아 본인은 경찰에 안 걸린다 쳐도 소란을 피워 민폐를 끼친 명목으로 같은 X구역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으니.”
“그건 그렇고. 켈 반군 놈들 나름대로 머리 좀 굴렸는데? 설마, 하수 배출장을 통해 빠져나갈 생각을 하다니. 브로커라도 고용했나?”
“뭐, 곧 확인할 수 있겠지.”
샘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수도 뱀의 대장 가일이 알려준 곳으로 가자 온갖 고약한 냄새가 퍼지는 오수 배출장 입구에 도착했다.
냄새 때문에 들어가기 망설여졌지만, 올리버와 조 등 일행은 여차하면 싸울 태세를 갖추며 들어갈 준비를 했다.
조는 너클을 꼈으며, 샘은 쌍권총에 흑마법이 깃든 총알을 장전했다. 오언은 긴장하며 쇠몽둥이를 꽉 쥐었다.
올리버는 감정을 추출해 자신의 몸에 블랙 슈트를 덧씌웠다.
조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들어가도록 하지. 다들 조심해. 이런 오수 배출장이나 하수도에는 오염생명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니.”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를 선두로 오수 배출장 안으로 들어갔다.
철퍽철퍽철퍽.
오수 배출장 안으로 어느 정도 들어가자 습기 때문에 축축하게 젖은 바닥을 만날 수 있었다.
거기에 바닥에는 경사가 생겨 자칫하면 미끄러져 넘어질 것 같았다.
“캬르르르….."
올리버가 넘어질까 봐 걱정한 차일드 하나가 낮게 울었다.
올리버는 괜찮다고 대답하며 선두에 걸어가고 있는 조와 샘을 관찰했다. 조는 쪽지를 보고 샘은 질문을 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
“어, 적혀져 있어. 하수도 3번 통로를 통해 중앙 교차로로 가면 된대. 거기서 접선하기로 했다고.”
“뱀새끼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거지?”
“그게 뭐 그리 중요해. 중요한 건 놈들이 있느냐는 거지.”
그 말과 함께 올리버와 일행의 발걸음을 더 빨라졌다.
처음에는 길을 헤맸으나, 가일이 보내준 쪽지와 벽에 새겨진 번호를 확인해 방향을 잡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수 배출장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고, 복잡해 좀 걸리긴 했지만 이윽고 올리버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기다. 있어.”
조가 통로 벽에 몸을 감추며 말했다.
콸콸 오수가 흐르는 물길 너머 넓은 공간과 그곳에 모여 있는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모두 행색은 초라하지만, 폭력에 익숙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개중에 흑마법사도 몇몇 있었다.
“씨발, 생각한 것보다 숫자가 많은데?”
샘이 수를 살피며 말했다.
“아무래도 가일한테 의탁한 놈들 말고도 다른 곳에 숨어 있던 놈들도 있는 거 같은데? ….데이브, 저 중에 마법사나 흑마법사 있어?”
올리버가 살펴보며 대답했다.
“흑마법사는 세 명, 그리고 인위적으로 신체를 조작한 사람이 다섯 있습니다. 개조인간은 아닌 거 같고, 흑마법사에게 시술받은 것 같아요.”
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혹시, 다수를 상대로 효과적인 공격 있어?”
“예, 타켓팅에 블랙 다트를 섞은 게 있습니다.”
“다행이네. 뭔지는 모르겠지만….. 샘. 우선 네가 저기 가운데에 총을 쏴줘. 연막탄으로.”
샘이 고개를 끄덕이며 탄창에 총알을 교체했다.
“데이브 넌 그다음 네가 말한 블랙 다트로 저 녀석들에게 광범위 공격을 해줘. 그럼, 그때 나랑 오언 그리고 네 송장인형과 함께 돌격해 마무리 지을게.”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자, 샘도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에 총을 들었다.
자세를 잡고 사격을 하려는 그 순간 올리버가 샘의 어깨를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 뭐 하는一”
—핑!!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샘이 서 있던 자리 위로 뾰족한 가시가 허공을 찔렀다.
다들 놀라 위를 봤는데, 천장 위에 매달린 몹시도 큰 곤충과 눈이 마주쳤다.
갈색 껍질 위에 무수한 털이 난 그 벌레는 전갈과 집게벌레를 적당히 뒤섞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크기는 중형견만 했으며, 길쭉한 배, 꼬리 부분은 전갈처럼 굽고, 그 위로 송곳 같은 가시가 달려 있었다. 사람에게도 치명적일 길이의.
“오, 오염생명체?!”
죽을 뻔했다 살아난 샘이 저도 모르게 말했다.
너클 조는 거대한 벌레를 주먹으로 쳐 죽인 다음 소리쳤다.
“이런 들켰어!”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올리버 일행이 숨은 하수도 입구 사이로 수류탄 2개가 덜그럭 굴러떨어졌다.
그 광경에 샘과 조, 오언이 얼어붙었다. 꼼짝없이 다 죽을 판이었다. 올리버만 없었으면 말이다.
[블랙 큐브]
영창과 함께 생긴 작은 블랙 실드들은 정육면체로 수류탄을 감쌌다.
덕분에 수류탄이 터졌음에도 블랙실드가 단단히 버텨 주변으로 피해가 번지지 않았다.
“뭐지? 불발인가?”
“알 게 뭐야? 쏴!”
그 말과 함께 켈 자유독립군 인원들은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총성과 함께 총알이 시멘트벽을 때렸다.
일행들은 모두 벽에 바짝 붙어 숨었다.
비록 화력이 높은 총은 아닌 듯했지만, 이 정도 집중 사격이면 송장인형이라 해도 적잖은 피해가 있을 듯했다.
약 처리를 통해 내구도를 높여도 본질은 시체이니.
샘이 소리쳤다.
“제기랄!! 뱀새끼가 우릴 팔아넘긴 건가?”
“아냐, 우리한테 안 이야기해줄 수는 있어도, 팔아넘길 이유는 없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릴 알아차린 거야."
“어떻게!?”
“내가 어떻게 알아!"
조와 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올리버는 그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정강이 바지 부분에 희미하게 거미줄이 걸려있는 것이었다.
오언이 소리쳤다.
“근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총만 쏘고 있는 거죠. 꼭..…"
—푸하하아아! 철퍽! 철퍽! 철퍽!
오언이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거센 오수 사이로 무엇인가 튀어나왔다.
개구리와 악어를 합친 듯한 양서류로, 사람보다 덩치가 크고, 입에도 이빨 같은 것이 있었다. 심지어 숫자는 자그마치 3마리나 되었다.
거기에 뒤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신경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로 흡사 발톱으로 돌을 긁는 거 같았다.
“..…벌거숭이쥐?
뒤쪽에서 찍- 찍-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괴생명체를 보며 올리버가 말했다.
털이 벗겨진 2미터가 넘는 쥐는 온몸에 주름이 있었고, 피부병에 걸린 듯 얼굴 주변이 울긋불긋 뭔가가 돋아있었다.
과거 거지패에서 봤던 것과 아주 똑같이 생겼다.
좌우로 오염생명체에게 둘러싸인 상황.
승리를 확실한 켈 자유독립군이 총 쏘는 걸 멈추며 소리쳤다.
”돈이나 밝히는 하이에나 놈들. 겁도 없이 여길 와?! 전부 똥이나 돼라.“
실제로 썩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 넓지 않은 통로에 앞뒤로 오염생명체에게 포위됐으면 그게 보통의 결과였다.
충분한 장비와 준비만 하면 웬만한 오염생명체를 잡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둘러싸이면 답도 없는 게 오염생명체였다.
육체 능력도 뛰어나고 몸에 가득 있는 병균 탓에 접촉하는 것만으로 위험하니.
조 역시 이 사실을 아는지 당황하며 샘과 오언에게 명령하고, 올리버에게 도와달라 부탁했다.
”뭐, 방법 없어?“
올리버가 대답 대신 감정을 추출한 후 영창했다.
[브레인 워시(brainw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