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하수도 뱀 (2) >
하수도 뱀의 근거지인 폐공장은 하수도 근처에 있어 그런지 공기가 썩 좋지 못했다.
X구역 전반의 공기가 좋지 못했지만, 이곳은 유독 더 심했다.
“이봐, 너희들 누구야.”
낡아빠진 청바지만 입고 상체는 맨몸을 드러낸 빡빡머리 남자가 오래된 산탄총을 들고 위협했다.
벌거벗은 상체에는 <살아남아라>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저 멋으로 새긴 것 같지는 않았다.
올리버 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남자.
그 모습에 송장인형이 그르렁거렸지만, 올리버가 빨리 진정시켜 별문제는 없었다.
조가 상황을 살펴보더니 앞으로 몇 발자국 나와 빡빡머리 갱을 진정시켰다.
“싸우려고 온 거 아니야. 너희 대장 만나러 온 거지.”
"우리 대장은 왜?!"
빡빡머리 갱이 흥분하며 총구를 조쪽으로 돌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남자 감정이 불안정했다. 과거 조셉의 제자 시절 봤던 약쟁이들과 비슷했다.
불안한 감정과 그로 인한 흥분 상태가 그의 두려움을 낮추고, 공격성을 부추겼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지. 빈손으로 안 왔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걱정은 씨발! 누가 걱정을 해!! 이 동네에서 감히 우리 하수구 뱀을 위협한다고 팍-! 씨! 마!”
흥분한 빡빡머리 갱의 외침에 주변에 있던 다른 갱들도 서서히 몰려들었다.
석궁과 파이프 폭탄을 매단 작살, 싸구려 권총으로 무장한 갱 여섯이 창고 근처 있는 컨테이너 위에서 공격 자세를 잡았고, 트렌치 클럽과 쉴레일리, 블랙잭, 산탄총으로 무장한 갱들이 여덟 명 올리버 일행 근처로 모여들었다.
그 모습에 오언은 당황하며 쇠몽둥이를 들었고, 샘도 애용하는 권총에 손을 얹었으나, 조가 이들을 막았다.
“아아, 싸우러 온 거 아니라니까……. 이야기만 하러 온 거야.”
그때였다.
“어? 너클 조랑 쌍권총 샘?"
문지기들 대장 격으로 보이는 사내가 거칠고 조잡한 기관단총을 한 손에 든 채 말했다.
“거, 바깥에 사는 양반들이 안쪽에 어쩐 일이야?”
“너희는 아직도 바깥 안쪽 구분하고 있냐?”
“바깥과 안쪽이 구분되니까 구분하는 거지…. 그거 따지려고 왔어?”
조는 탐탁지 않은 눈치였으나, 따지지 않았다.
“그래, 그거 따지러 온 건 아니지….. 너희 대장 만날 수 있을까?”
“음..…. 무슨 일로?”
“일은 무슨 일이야. 일 얘기하러 온 거지. 빈손으로 온 건 아니니까 걱정마.”
조가 그 말과 함께 돈 봉투를 보여줬다.
“하..…. 혼자만 따라오면 대장한테 안내해 줄 게. 뭘 이리 줄줄이 데려왔어?”
갱이 조 뒤로 있는 일행을 보며 말했다.
올리버가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디며 물었다.
“죄송한데, 저도 같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넌 뭐냐? 처음 보는 놈인데.”
갱이 올리버를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데이브라고 합니다. 조 씨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죠. 죄송하지만, 저도 조 씨와 같이 대장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저도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서.”
“하하하하…..”
갱이 웃었다. 그러자 부하 갱들도 따라 웃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뚝 하고 웃음소리가 그침과 동시에 갱이 올리버의 이마에 대고 총구를 겨눴다.
“어디서 이름도 못 들어본 잡놈의 새끼가 감히 만난다 만다-”
“一캬하하하학!!”
송장인형-저격수의 몸에 들어간 세컨드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총구를 겨눴다.
소드 오프 샷건 두 자루를 문지기 갱에게 겨누고 등과 옆구리에 달린 여섯 개의 팔로 총을 들어 근처에 있는 갱들은 물론 저 멀리 컨테이너 위에 있는 갱들도 조준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장전되는 총소리.
수많은 팔 때문에 자세가 어설프게 보였으나, 폭력에 어느 정도 종사한 이들은 이 조준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 있었다.
최소한 여덟 개의 팔 중 여섯, 일곱 개는 적중할 수 있었다.
소드 오프 샷건 두 개에 겨눠진 갱이 대뜸 말했다.
“..…거, 대화로 합시다.”
***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세컨드의 적절한 개입으로 갱을 설득한 올리버와 조는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보안상의 이유로 나머지 인력은 전부 밖에서 대기해야 했지만, 그것만으로 썩 나쁘지 않았다.
이쪽 입장도 이해해 주는 게 맞았으니.
"호......."
시멘트로 꽉 채운 드럼통과 철조망, 거대한 나무 상자, 컨테이너로 엄폐물을 가득 세운 공장 외부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밖만큼이나 안에도 사람이 제법 많았다. 대략,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
그리 부유해 보이지 않음에도, 머피의 킴벨 패밀리보다 더 많았다.
“사람들 수가 꽤 많네요?”
올리버가 조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조가 어이없어하면서도 친절히 대답해줬다.
“여긴 먹이고 재워만 줘도 갱 되겠다는 인간들이 넘치거든.”
“아, 그렇군요…..”
실제로 공장 안에 갱들은 많았지만, 질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제대로 못 먹어 빼빼 말랐다. 과거 허버트 부교수를 회수할 때 상대했던 갱들과 비슷한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닌 거 같지만.’
“크르르르르르르르르......!!""
철그렁거리는 쇠사슬 소리와 함께 남들과 다소 다르게 생긴 사람이 튀어나와 올리버와 조를 위협했다.
다행히 목과 팔다리에 거대한 쇠사슬이 둘러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구부정한 자세임에도 키가 2미터는 가뿐히 넘었고, 근육도 상당히 발달해 사람임에도 맹수와 같은 위압감을 풍겼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툭 튀어나온 이마와 기형적으로 발단된 턱, 그 위로 솟은 송곳니로, 저것에 한 번만 물려도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두려움과 공포 그에 따른 분노를 이글이글 빛내며 올리버를 향해 그르렁댔다.
길 안내를 하던 갱이 깜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소리쳤다.
“아, 씨발 뭐야! 손님 데리고 왔는데. 제대로 관리 안 해?”
“아, 미안. 미안..…. 야, 멍멍이 앉아.”
“캬르르르르륵一!!”
턱이 큰 사람은 크르릉 소리를 내며 명령한 뚱보 갱에게 위협을 가했다.
덩치가 덩치인지라 뚱보 갱은 식은땀을 흘리며 움찔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근처에 있는 다른 갱들이 합세해 큰 턱을 가진 사람을 제압했다.
“씨발! 장대 가져 와! 장대! 전기 충격봉도!!”
"잠깐만! 잠깐! 지금 가져올게!"
“오메, 사나워라….. 이틀이나 굶겼는데 기운도 좋네.”
“잘됐네! 보스가 길들이는 데만 성공하면 이 근방에서는 이제 누구도 우리한테 못 덤벼!!”
올리버는 그 모습을 보며 비슷한 사람을 어디서 봤는지 고민하다가 이내 떠올랐다.
처음 조를 만났을 때 조와 한팀을 이뤄 싸운 큰 턱이란 사람과 비슷했다.
파이터 크루 소속 멤버로 돌연변이라고 했다.
올리버가 이에 관해 이야기하려 하자, 슬픈 감정을 뿜는 조를 볼 수 있었다.
그는 큰 턱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이윽고 제압당해 얻어맞는 장면을 몹시도 불편하게 바라봤다. 할 수만 있으면 말리고 싶을 정도로.
“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다시 안내해드리죠.”
안내자 갱의 말에 따라 올리버와 조는 다시 걸었다.
걸어가서 도착한 곳은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공장 내 사무실로, 안내해준 갱은 입구를 지키고 있는 두 문지기에게 뭐라 말했다.
두 문지기는 다른 갱들과 달리 가면을 썼고, 몸 역시 엄청난 근육질을 하고 있었다.
조보다도 더 말이다. 약이나 시술 등 인공적인 냄새마저 났다.
그렇게 다른 조직원들과 다른 그들이었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가슴이나, 머리, 팔뚝 등 신체 부위에 <살아남아라>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는 거였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윽고 대화가 끝나며 갱이 다가와 말했다.
“이야기 끝났습니다. 이제 이 사람들 따라가세요.”
그 말과 함께 가면을 쓴 문지기 중 하나가 도끼인지 칼인지 모를 무식한 쇳덩어리를 어깨에 짊어지며 고개를 까딱였다. 따라오라는 거였다.
텅! 텅! 텅!
발을 디딜 때마다 쇳소리가 울려 퍼지는 계단을 타고 공장 2층에 설치된 사무실 앞으로 갔다.
“들어오시게.”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 너머에서 말했다.
가면을 쓴 문지기가 문을 열며 들어가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올리버와 조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불쾌한 냄새와 함께 지저분한 사무실 그리고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기름이 가득한 곱슬머리, 지저분하게 깎은 짧은 수염, 뛰어나온 광대뼈, 주름이 깊이 파인 뺨.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굵은 테의 안경이었다.
그 안경은 남자에게 나약한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그의 능글맞으면서도 교활한 인상을 가렸다.
짧지만 긴 침묵.
조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하수도 뱀의 가일 맞아?”
“그렇소. 내가 가일이오. 그쪽은 덩치를 봤을 때 너클 조일 거고요.”
"......"
조는 살짝 놀랐다. 정보를 넘기는 모습은 없었는데 어떻게…..
하수도 뱀의 대장인 가일이 올리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송장인형을 다루신다는 분은 그쪽….?”
“예, 접니다.”
“대단하군. 진짜로요..... 송장인형을 다루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는 건데. 혹시 성함이?”
“데이브입니다.”
“데이브? ..…아, T구역에서 요즘 이름을 알리고 있는 그 데이브 말이오?”
“절 아십니까?”
“흐흐흐-! 이런 외지에 산다고 귀까지 먹진 않습니다. 않아요. 오히려 쫑긋 세우고 살지. 힘이 없으면 눈치라도 좋아야 하니. 흐흐흐흐흐. 어쨌건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뛰어난 흑마법사를 만난다니 영광이에요.”
“가일 씨도 꽤 뛰어난 흑마법사이지 않습니까?”
조가 몰랐다는 듯 움찔했다.
“흐흐. 칭찬 고맙습니다. 하지만, 구린 동네에서 자그마한 갱단이나 운영하는 3류 중의 3류입니다.”
올리버가 문지기의 가면을 가리키듯 얼굴을 두들겼다.
“그런 것 치고는 꽤나 정교하던걸요?”
그 순간 가일이 능글맞은 미소가 멈췄다. 그와 함께 안경에 가려진 교활한 분위기가 한층 두드려졌다.
아무래도 X구역 안쪽에서 살아남은 게 순전히 운만은 아닌 것 같았다.
“오….. 눈이 좋으시더군요.”
“전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더라고요.”
“흐흐. 재능이란 그런 거죠. 가진 자와 안 가진 자는 그 가치가 전혀 다르죠. 부럽습니다.”
가일은 다시 능글맞게 웃었지만, 한번 가면이 벗겨지니 그저 실없는 웃음 같지가 않았다.
짝-!
가일이 두 손을 맞부딪혔다.
“자, 그럼, 인사는 충분히 했으니, 일 이야기 할까요? 이야기할 게 있다고 하셨던데?”
“어, 혹시 고객 정보 좀 살 수 있을까?”
조가 그 말과 함께 돈 봉투를 꺼냈다. 500만란다가 든 돈 봉투였다.
“두께를 볼 때 500만 란다는 되는 거 같군요.…. 거금이죠. 특히, X구역에서는….. 혹시 켈 반군들 찾는 겁니까?”
"......!"
조가 다시 한번 놀랐다.
가일이란 남자는 우둔하고 게을러 보이는 외관과 달리 아는 게 꽤 많은 거 같았다.
하지만 조는 동요를 보이지 않고 되물었다.
“알고 있는 걸 보아하니. 네가 숨겨주고 있나 보군.”
“숨겨주고 있다뇨? 어디 숨어 있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주고, 돈 받고 심부름 좀 해준 게 전부입니다.”
“그럼, 어디 있는지 알려줄 수 있어?”
“글쎄요.…. 이 짓도 신용이 생명이라 알려달라고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닌지라.”
“얼마를 더 원하는 거지?”
“내 말뜻을 잘못 이해하셨습니다. 신용 문제라니까요.…. 우리가 고객을 넘긴다는 소문이 나면 앞으로 장사를 어떻게 합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조도 그냥 물러서지 않고 인상을 써 가일을 압박했다. 그와 동시에 다른 방법을 생각했는데, 가일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절충안이 있긴 합니다.”
“절충안?”
“예. 고객님들이 대금으로 큰돈을 지급했지만, 숨은 기간이 길어지고, 밥도 많이 먹어 지금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거든요. 곧 동료와 접선해 갚는다고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하지 않습니다.”
“확실하지 않다고요?”
올리버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예, 이런 종류의 장사는 손님들도 정상이 아닌지라 돈을 떼먹는 놈들이 많거든요. 경찰에 신고도 할 수 없으니 우리 같은 선량한 갱들은 당할수 밖에 없고….. 마침 오늘 새벽이 대금 지급일인데, 만약 그 전에 도망치면 그때 정보 넘기겠습니다. 그럼, 전 고객을 배신한 게 아니고, 그쪽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괜찮지 않습니까?”
조가 물었다.
“도망치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알려주지?”
“그건 이쪽만의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만약 놈들이 대금을 지급하면?”
"그럼, 알려드리기 약간 힘들죠. 값을 치른 고객을 팔긴 좀 그러니….. 하지만 걱정 마세요. 왠지 안 갚고 튈 것 같으니.”
"어떻게 알지?”
“그냥 압니다.”
조가 가일과 서로 노려보다 조가 돈 봉투를 툭 하고 던졌다.
가일은 돈 봉투를 챙김으로 계약이 성사됐음을 묵시적으로 합의했다.
올리버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조를 따라가다 말고 멈춰서 가일에게 한가지 질문했다.
“뭐 하나 여쭤볼 수 있을까요?”
“뭐죠?”
“살아남으라는 게 무슨 뜻이죠? 여기 있는 직원분들 몸에 새겨져 있던데요.”
“아, 별거 아닙니다. 그냥 우리 교리 같은 겁니다. 살아남으라는. 원초적인 생명체의 욕구라고 할까? 이런 곳에 살려면 믿을 게 필요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