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45화 (145/633)

< 145. 하수도 뱀 (1) >

끼리리릭一

문을 열자 녹슨 경첩에서 귀를 긁는 쇳소리가 울렸다.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소리였지만, 조와 쌍권총 샘, 덩치 좋은 남자는 익숙한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자 흙먼지가 깔린 바닥과 거미줄이 쳐진 천장 모퉁이, 텅 빈 거실에 홀로 세워진 책상 하나가 보였다.

책상에는 X구역으로 추정되는 지도 한 장이 나이프에 박혀 고정되어 있었으며, 그 옆으로 올리버가 조에게 넘겨준 켈 자유독립군 간부의 현상수배서와 해당 자료가 올려져 있었다.

협력하기로 합의했을 때 올리버가 조의 요청에 따라 넘겨준 것으로, 조가 진심으로 자신과 일할 생각이기에 내준 거였다.

또 포레스트도 자료를 빌려주는 것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고.

‘간부들만 잡아 오면 시(市)에서는 누구와 협력하든 개의치 않을 걸세. 과정보다는 결과이니.’

그래서 조에게 자료를 넘겨줬다.

올리버는 무의식적으로 지도 위에 그려진 X구역을 살펴봤다.

낙후된 것 치고는 제법 큰 규모를 가진 X구역은 뒤쪽으로 거대한 강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강 너머로 Y, Z구역이 배치되어 있고. 왜 X구역이 이들의 경계선이라는지 지도를 보니 알겠네.’

올리버가 무의식적으로 지도에 그려진 X구역의 모습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그리 자세히 안 봐도 돼.”

조가 지도를 훌어보는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예?”

“지형을 숙지하려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어. 이 지도는 개발 완공 후 이미지를 바탕으로 미리 만든 거라, 대략적인 지형 외에는 쓸모가 없거든. 개발이 중간에 멈춰서.”

“아.…. 어쩌다가요?”

쌍권총 샘이 끼어들며 말했다.

“이 구역 시의원이 개발 예산을 빼돌리다 걸려 실각당했고, 이후, 테러와 사고가 연달아 발생했거든. 악재가 겹치고, 구역을 대변해줄 시의원도 공석이 된 터라 자연스럽게 개발이 멈춰 이 꼴이 됐지. 원래는 나름대로 괜찮은 공업지구를 만들려고 했다던데.”

호오..…. 흥미로웠다. 그저 낙후된 곳으로만 알고 있던 X구역에 이런 뒷사정이 있을 줄이야.

샘이 담배를 물며 대답했다.

“요즘이야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세상이니, 다른 구역 놈들은 이런 얘기는 모르겠지. 그렇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알아. 특히 늙은이들이 그때가 좋았다면서 한탄하거든.”

샘의 목소리에는 한탄과 안타까움, 짜증이 섞여 있었다.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그때는 살기 좋았는지 물어보려고 하였는데, 그때, 조가 탁자를 딱- 딱- 두들기며 이야기가 새는 것을 방지했다.

“써먹지도 못할 과거 이야기는 그쯤하고. 일단 일에 집중하지. 다들 그거 때문에 모인 거잖아?”

그 말에 샘이 담배를 피우며 고개를 끄덕였고, 올리버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의 말이 맞았다. 일단, 일에 집중해야 했다.

대화가 궤를 잡자 조는 우선 상황설명부터 했다.

“일단, 내가 조사한거부터 이야기할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에 끼워주는 대신 X구역의 수색은 조가 맡기로 했으니.

조가 빨간색 펜으로 넓게 표시된 곳을 짚었다.

강과 인접한 X구역의 안쪽이었다.

“알지 모르겠지만, 란다에는 의외로 국내뿐 아니라 국외의 도망자가 많이 몰리는 편이야.”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배웠거든요.”

사람이 많아 숨기 쉽고, 정보를 얻기도 용이하며, 무엇보다 외부 군대의 수색이 없어 도망자들이 몸을 숨기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포레스트가 말했다.

“그럼, 다행이네. 보통 돈이 있고 제대로 된 커넥션이 있는 놈들은 J구역에 숨어. 사람이 많아 몸을 숨기기 좋고, 쉴 데도 많거든. 돈이 없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커넥션이 있는 녀석은 노동자 거주지 외곽에 숨고. 거긴 외국인들이 많이 살아 누가 있어도 어색하지 않거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이리 자세한 정보는 몰랐는데, 감탄스러웠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 돈도 없고, 커넥션도 없으면요?”

“그럼, 여기 숨지.”

조가 다시 한번 빨갛게 표시한 란다 안쪽을 가리켰다.

“가난뱅이, 양아치, 인신매매범, 돌연변이가 득실거려 위험하긴 해도, 여긴 경찰이 오지 않아 힘에 자신만 있으면 숨기 꽤 괜찮은 곳이거든. 푼돈으로도 자잘한 심부름을 해주는 갱들도 있고.”

“아, 그렇군요. 그래도 범위가 넓은데, 숨은 곳을 찾으신 건가요?”

“어..…. 아니, 정확히는 알 것 같은 놈들을 찾았어.”

“알 것 같은 놈들요?”

“그래.”

조가 대답과 동시에 한 지점을 가리켰다.

하수도 근처에 자리 잡은 공장이었다.

“여기 근거지를 틀고 있는 갱들이야. 이름은 하수도 뱀.”

“하수도 뱀요?”

“어, 하수도에 사는 뱀 이름이야. 거기서 이름을 딴 거지. 더럽고 교활한 녀석들인데, 부업으로 도망치는 놈들을 숨겨주기도 해. 아마도, 놈들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커.”

“어째서죠?”

“최근 이놈들이 구매하는 식료품이 급격하게 증가했거든. 통조림이나, 빵, 술, 담배 같은 거 말이야. 이 구역에서 식료품을 취급하는 잡화점은 여기 랜스키 잡화점밖에 없어서 확실한 정보야.”

조가 몇 블록 떨어진 거대한 창고 건물을 가리켰다.

“잡화점이 하나밖에 없다고요?”

“말했잖아. 이 동네 험하다고. 여기서 가게 열어서 버틸 수 있는 인간은 많을 거 같아?”

“애당초 랜스키 그 영감은 저 거리주인이라 그런 거고.”

쌍권총 샘이 끼어들며 말했다.

“거리주인요?”

“별거 아니야. 저 근방에서 목에 힘줄 수 있는 인간을 우린 그렇게 불러.”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건, 이 하수도 뱀들에게 물어보면 아마 이놈들 흔적을 알 수 있을 거야. 생각 같아서는 여기까지 내가 알아내고 싶긴 했는데, 나 혼자 진행하면 문제가 생길 거 같아서…..”

조가 올리버의 안색을 살피며 말꼬리를 흐렸다.

올리버가 불쾌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런 조의 걱정과 반대로 올리버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일단, 물어볼 곳이 생긴 것이니.

“좋네요. 그럼, 바로 움직이면 되나요?”

“어, 그전에 일단 같이 움직일 인력을 소개할게. 합을 맞춰야 하니.”

조가 그 말과 함께 쌍권총 샘을 가리켰다.

“샘이야. 오염구역에서 만난 적 있지?”

“예, 오랜만입니다. 샘 씨.”

샘도 올리버를 잠시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나름대로 예를 갖춰 인사했다.

“그래, 오랜만이야.”

조가 고개를 끄덕이곤 다음 인물과 올리버를 소개해줬다.

조와 샘보다 어리지만 그 둘을 합친 것보다 크고, 무거워 보이는 검은 피부의 청년. 기껏해야 십 대 후반으로밖에 안 보였다.

“이쪽은 오언. 이번에 파이터 크루에 들어온 놈이지.”

오언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세요.”

올리버가 인사를 받아주며 그를 살펴봤다.

그는 불안해 보였고, 동시에 위축되어 있었다.

올리버가 판단할 건 아니지만 싸움에 어울리는 성격은 아닌 거 같았다.

최소한 올리버가 싸워본 사람 중 이런 성향의 사람은 처음이었다.

“보다시피 아직 어리고 경험도 없는 초짜지만, 힘 하나만큼은 확실하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조는 반 정도 거짓말을 했다. 오언의 힘은 믿지만, 자기도 확실히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능력보다는 성격 문제였다.

‘심지어 본인조차 불안감이 들끓어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눈치인데.’

올리버가 오언이란 남자를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조가 그런 올리버를 의식하더니 물었다.

“.…혹시 불안하면 뺄까? 여기서 가장 강한 건 데이브 너고, 일감을 가져온 것도 너니까.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그 순간 오언이 화들짝 놀라며 큰 소리로 말했다.

“바, 반드시 도움이 될 테니,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힘 하나만큼은 자신 있어요!”

정말 자신 있다기보다는 더 다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두려움과 책임감, 불안, 용기 등이 끈적하게 뒤섞여 들끓었다.

올리버는 알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무서움에도 이 일을 같이하려는 건지.

올리버가 이에 관해 묻자 쌍권총 샘이 오언을 대신해 대답했다.

“뭐긴 뭐야. 돈 때문이지.”

“돈요?”

“그래. 돈이 있어야 먹고살 거 아니야. 이 동네 오면서 뭐 느낀 거 없어?”

“음..…. 사람들이 숨어서 계속 지켜보는 거요?”

“아니, 맞긴 한데 그거 말고….. 이 동네는 제대로 된 일자리라곤 하나도 없어. 돈 벌어 먹고살려면 이런 식으로라도 목숨 걸고 일해야 해. 특히, 가족 딸린 놈은.”

샘이 그 말과 동시에 오언을 가리켰다.

“뭐, 그렇다고 동정하진 말고. 이 동네에서 태어난 새끼면 그게 운명이니까. 닥치고 따라야지. 넌 데려갈 건지 말 건지만 정해. 도움 안 된다 싶으면 이야기하고, 이게 서로를 위해서도 좋아.”

샘이 상황을 정리해주자 궁금증이 가신 올리버는 오언을 봤다. 그는 올리버를 보며 긴장한다.

“지금 잡으러 가려는 사람 중 혼자서 군인 수십 명을 습격해 살해한 사람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오언이 잠시 머뭇거리다 각오를 다진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각오는 다졌습니다.”

“그럼, 됐네요. 같이 가죠.”

올리버가 대답과 동시에 오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조와 샘은 웃옷을 입고 너클과 권총, 파이프 폭탄 등을 품 안에 챙겼다.

다들 의욕이 가득한 것 같았다.

“아, 그래도 이 정도 인원은 좀 부족한 거 같은데. 어디서 좀 더 데려오는 게 낫지 않아?”

“그럼 나눌 때 애로사항이 꽃피워. 돈까지 고려하면 위험해도 이 정도가 딱이야.”

샘이 묻고, 조가 대답했다. 올리버가 끼어들었다.

“인원수가 부족하나요?”

“당연하지. 갱한테 정보 얻으러 가고 여기 적힌 현상 수배범만 열 명이 넘어. 솔직히 넷은 너무 간당간당하지.”

“몇 명이 더 필요한데요.”

올리버의 물음에 샘이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글쎄.…. 실력 있는 놈 세, 네 명만 더 있으면 확실히 안전하긴 하지.”

“아.…. 그렇군요. 세 명이면 될까요?”

“어? 어어….. 데려올 사람 있어? 근데, 그럼 수익 분배가 꼬이지 않나?”

올리버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수익 분배는 안 해도 돼요."

올리버가 그 말과 함께 허리 뒤쪽에 찬 가죽 케이스를 열었다.

“빅 마우스. 저 좀 도와주실래요?”

***

올리버는 세 명의 사람들과 세 구의 송장인형과 함께 거리를 걸었다.

누구하고 같이 걸을 때는 대부분 뒤쪽이나 가로로 걷는 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을 차리자 올리버가 가운데에서 걷고 있었다.

양옆으로 조 일행과 송장인형이 각각 퍼져 있었고.

더 이상한 것은 조라던가 샘, 오언이 다소 긴장하며 올리버와 올리버가 꺼낸 송장인형-흑마법사, 저격수, 넝마를 살펴봤다는 거였다.

참고로 이들 세 구의 송장인형은 헌 옷방에서 산 롱코트나 후드가 달린 망토를 씌워 전신을 가린 상태라 겉보기에는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아마도.’

원래는 인조 피부와 특수 물감으로 최대한 사람처럼 꾸밀 생각이었지만, 아직 올리버의 실력이 어설퍼 제대로 위장하지 못해 이리 옷으로 꽁꽁 싸맸다.

‘그래도 겉보기에는 별문제 없어 보이는데 왜 그러지? 걷는 게 어색한가?’

올리버가 비틀비틀 걷는 송장인형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올리버가 고개를 돌려 조에게 질문했다.

“좀 많이 이상한가요? 송장인형요?”

조가 흠칫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뭐랄까..…. 직접 만든 거야?”

“아뇨. 오염구역에서 몇 개 주워서 수리한 겁니다. 아직 송장인형은 하나밖에 못 만들어 봤습니다.”

“아..…. 그렇구나.”

“예.”

"......."

"무슨 할 말 있으신가요?”

"너 혹시..... 아니다.”

조답지 않게 말을 하려다 말았다. 올리버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할 때, 샘이 끼어들었다.

“조가 묻고 싶은 건 저….. 인형?”

“흑마법사, 저격수, 넝마입니다.”

“아….. 어쨌건, 날뛰는 건 아니지?”

“예, 착한 아이들이라 얌전합니다.”

그 말에 호응하듯 송장인형에 들어간 차일드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소리 냈다.

“크르르…."

“캬..…"

“딱- 딱-”

정말 예의가 발랐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조와 샘, 오언은 반대쪽으로 반 발짝 물러났다.

“그, 어쨌건 너무 말하지는 말라고 해줘. 하수도 뱀 놈들에게 얕보여선 안 되지만 너무 위협해도 안 좋으니. 어쨌건 우리 목표는 대화니까."

조가 품 안에서 뇌물로 줄 500만 란다가 든 봉투를 들며 말했다.

보통 도망자들 숨겨주는데, 적게는 수백. 많게는 천만 란다를 받는다 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넘길 거라고 말이다.

잠시 후, 하수도 뱀의 본거지인 버려진 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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