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협업 제안 (1) >
프로젝트.
꽤나 신경 쓰이는 단어였다.
그래서 올리버는 포레스트에게 질문했다.
“프로젝트가 뭐죠?”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야.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지. 그래도 듣고 싶나?”
“예.”
포레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가다듬었다.
“….시 공무원을 통해 시의원들이 새로운 무력집단을 만들 생각인 것 같네.”
“무력집단요?”
“그래, 무력집단. 좀 더 유연하게 다를 수 있는 사병 같은 거지. 경찰국과 시(市) 방위군은 엄연히 시 치안과 시 방어를 위한 행정기관이니. 아주 내키는 대로 부리는 건 힘들거든. 보는 눈도 많고.”
올리버가 왜 병력이 필요한지 물으려는 찰나 저도 모르게 그 이유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마법사들 때문인가요?”
“그렇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자네도 이제 이 도시에 익숙해졌나 보군.”
포레스트가 그리 말했지만, 썩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마법사가 란다를 중심으로 힘을 축적하니 시의원들도 초조한 거겠지. 그래서 자기들이 다루기 쉬운 유연한 무력집단을 원하는 거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야기라면 이미 충분히 많이 들었다. 다만,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왜 시(市) 공무원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는 거죠?”
“거기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추측은 가능하지.”
“어떤 추측이죠?”
“위험을 떠넘기는 거야. 세상이 넓다 보니 해결사나 길거리 마법사, 퇴역 군인 중에서도 마탑 마법사와 겨룰 수 있는 자들은 존재하거든. 문제는 이런 자들은 다루기 쉽지 않다는 거고.”
올리버는 가만히 생각해봤다.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인 거 같기도 했다.
무력을 쓰는 자들 중 괴팍한 자들이 꽤 있는 편이었으니. 그런 탓에 중개인이 존재하는 거였고.
“물론, 시의원 중 이런 자들을 잘 다루는 이들도 있고, 이미 자체적인 무력을 보유한 자들도 있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도 있지. 그래서 시 공무원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 걸 거야. 이미 길들인 개로, 떠도는 늑대들을 길들이겠다는 거지. 뭣보다 여차할 경우 책임도 떠넘길 수도 있고. 이게 생각보다 중요해.”
말뜻을 이해한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고 손해 보는 일 같은데, 시 공무원은 그런 일을 용케 수락했네요?”
“꼭 그렇게 볼 수는 없어. 최소한 아무 생각 없이 수락한 건 아닐 거야. 내가 아까 전에 길들인 개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시(市) 공무원은 꽤 영악한 개거든.”
새로운 이야기에 올리버는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포레스트도 그걸 봤는지 계속 이야기해 줬다.
“란다의 정책과 방향을 결정하는 건 시의원들이 맞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건 시 공무원일세. 그들은 란다 내 엄연한 엘리트 집단이야.”
“그렇습니까?”
“그렇네. 세금 도둑이나 철밥통이라고 대중은 욕해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란다의 한 축이야. 그런 그들이 수락한 거라면 나름의 속셈이 있다는 거지.”
올리버는 흥미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의 또 새로운 면을 본 기분이었다.
“그럼, 그 속셈은 무엇일까요?”
“글쎄, 일이 늘어나면 수고도 늘지만, 권한도 늘어나서….. 당장 대답하긴 힘들군. 좀 더 알아보고 대답해주도록 하지. 우선, 자네는 시에서 시킨 일부터 처리해주게.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요구부터 해결해줘야 하거든. 부탁해도 되겠나?”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철을 챙겼다.
“혹시 기한은 있나요?”
“이번 달 말까지면 되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알겠습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철을 챙기고 떠났다.
***
딸랑- 딸랑-
올리버는 알의 배웅을 받으며 레스토랑 밖으로 나왔다.
포레스트가 말한 이번 달 말까지 남은 시간이 짧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길다 할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올리버는 고민 끝에 바로 그들을 찾는 대신 차분하게 자기 일부터 하기로 결정 내렸다.
여유를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확실하게 일하기 위한 전력 강화시간이 필요한 거였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올리버는 택시를 잡아 R구역의 종합박물관 근처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택시 운전기사는 갈색 봉투에 담긴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차를 몰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가는 동안 뒷좌석에 앉아 포레스트가 준 서류철 자료를 살펴봤다.
켈 자유독립군이라는 조직의 크고 작은 간부들로, 불법적인 개조 시술을 받은 개조인간부터 흑마법사, 적지만 마법사도 있었다.
올리버로서는 꽤 신선했다.
실용적인 해결사 바닥도 마법사와 흑마법사의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인데, 이들은 한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니.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건지 궁금했다.
‘나중에 만나고 여유가 되면 물어볼까?’
올리버는 그리 생각하며, 해당 인물들의 현상금과 인적사항, 특징 등을 살폈다.
개중에는 현재 어디 숨어 있는지 예측해 놓은 자들도 있었다.
대부분 X구역으로, 올리버는 이들을 표적으로 삼아야겠다고 정했다.
대부분 위험성이 더 높지만, 어디 있는지 그나마 범위가 좁혀져 찾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듯했다.
‘다만 어떻게 찾아야 할지 걱정이긴 하네.’
나오기 전 올리버는 혈액이라던가, 해당 인물들을 찾을 수 있는 흔적이 있는지 포레스트에게 물어봤지만, 안타깝게도 없다고 했다.
노스랜드는 란다는 물론, 왕국령 보다도 행정체계가 안 잡혀 있어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확보가 쉽지 않다고 말이다.
‘음,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이 안오네.’
올리버가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도 어떻게 잡을지 고민했다.
짧지만 많은 일을 겪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게 많았다.
잠시 후, 차가 멈췄다.
R구역의 종합박물관 근처로, 올리버는 감사를 표하며 택시비와 팁을 건네줬다.
택시 운전사는 생글생글 웃으며 택시비와 팁을 받고는 올리버에게 잘 가라고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손님. 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기사님도 안전 운행하십시오.”
“늘 안전운행 합니다.”
택시 운전기사가 갈색 봉투에 담긴 병을 들이켜곤 대답했다.
***
올리버는 종합박물관 입구까지 가서는 옆으로 빠져 구석진 블랙마켓 입구로 들어섰다.
경비원으로 가장한 블랙마켓 직원이 경계하듯 바라봤지만, 올리버의 얼굴을 보곤 이내 신경을 껐다.
한참을 내려가자 박물관 아주 깊숙이 있는 블랙마켓에 도착했다.
그때그때 물량을 받아오는 세입자들이 많은 탓에 블랙마켓의 풍경은 올리버가 기억하던 것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한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을 상기하며 올리버는 곧장 블랙마켓 끝자락에 있는 크라임 펌의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다다르자, 이전에 봤던 것처럼 사무실 옆에 텅 빈 책상과 캐비닛이 자리해 있었다.
“이런, 오셨군요.”
텅 빈 책상 앞에 앉은 노신사가 말했다.
금테 안경에 오래된 양복, 팔토시를 낀 그는 올리버를 단박에 알아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물건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 말과 함께 올리버는 품 안에서 철 열쇠를 꺼냈다.
노신사는 정중히 열쇠를 받고는 살펴본 뒤 물었다.
“대금은 가져오셨습니까?”
“아, 잠시만요."
올리버가 깜빡했다는 듯 말하고는 품 안에서 지갑형 먹보주머니를 꺼냈다.
먹보주머니는 주변을 살피곤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했다는 듯 바둥대며 도망치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올리버는 아무런 악의 없이 또 손속의 자비 없이 억지로 입을 벌린 다음, 손으로 쑤셔 넣어 휘적거린 후 거꾸로 잡아 흔들기 시작했다.
오엑-!!
꾸에에에엑——!
꾸에에에엑———!
꾸에에에엑————!
꾸에에에엑—————!
요령이 생겼는지 저항이 줄어들며 흔드는 박자에 맞춰 투둑투둑 돈다발이 떨어졌다. 그와 함께, 먹보주머니의 눈물도 뚝뚝 떨어졌다.
노신사는 이제 익숙해졌는지 떨어지는 돈다발을 아무 말 없이 능숙히 정리했다.
잠시 후, 돈을 다 헤아린 노신사가 입을 열었다.
“잔금 1억 2천 5백 5십만 란다. 정확히 맞습니다.”
그 말과 함께 노신사가 근처에 있던 직원을 불러 돈을 건넸고, 다른 직원들은 조용히 물건을 가지러 가듯 몸을 옮겼다.
“제가 조금 늦게 오지 않았나요?”
올리버가 확인 차 물었다.
과거 물건을 주문하기 위해 작성한 서류 내용 중 물건 수령이 늦을 경우 그에 따른 관리비를 추가로 청구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노신사는 머뭇거리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일하는 태도에서 드러나듯이 자기 일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관리비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 안 늦었으니까요.”
“아, 그런가요?”
“네. 혹시, 다음에도 물건이 필요할 때가 있으면 저희 쪽을 방문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최대한 좋은 물건을 제공하도록 노력할 터이니…. 아, 저기 물건이 오는군요.”
노인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멜빵바지에 누런 런닝만 입은 덩치 둘이 거대한 시체주머니 하나씩 들고 다가왔다.
시체주머니에는 미세하게나마 마력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형태와 흐름으로 보아 얼음계열 마법인 듯했다.
“물건은 초저온으로 보관해 부패한 곳 없이 상태가 양호합니다. 단, 상온에 놔둘 시 부패가 빠르게 일어날 수 있으니, 이 점 참고해 주십시오. 여기, 물건의 자료가 적힌 서류입니다.”
노신사가 시체주머니의 지퍼를 내려 물건을 보여준 다음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올리버는 서류를 한번 훑어보고, 물건의 상태를 살펴봤다.
차가웠고, 노신사의 말대로 부패한 곳은 없었다.
‘이거랑 마텔 직원 시체를 가공한 뒤, 송장인형을 수리 개조하면 하루 이틀은 걸리겠네. 다른 것도 실험해 봐야 하니 최소 2일에서 3일……. 의뢰 까지 하기에는 조금 촉박하려나?’
올리버가 물건을 살피며 생각했다.
잠을 줄이면 최대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듯했으나, 문제는 켈 자유독립군 간부가 구체적으로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피라던가, 옷가지 등 추적할 수 있는 요소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니 어찌할지 고민됐다.
"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낯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더벅머리에 낡은 양복을 대충 입은 조가 서 있었다.
“아, 조.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도 같은 뜻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문제없으면 이야기 좀 해줘. 기다리고 계시니.”
조가 올리버 옆을 지키고 서 있는 노신사를 가리켰다.
노신사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기다리며 서 있었다.
“혹시 물건에 하자가 있는지요?”
“아뇨, 없습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물건에 하자가 없고, 이대로 수령 하신다면 여기 사인 부탁드리겠습니다.”
노신사가 확인 서류를 클립보드에 끼어 내밀었다.
올리버는 확인 서류를 한번 읽고 수령 확인 부분에 사인했다.
노신사가 사인을 확인하곤 정중히 말했다.
“저희 지점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요하실 때 언제든 방문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더 나은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올리버가 인사를 받아주자 노인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올리버는 조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한 다음 허리춤에 찬 가죽 케이스를 꺼내 빅마우스를 꺼냈다.
그런 다음 빅마우스에게 부탁해 받은 물건 두 구를 삼키게 했다.
“혹시, 무슨 일 있었어?”
뜬금없는 조의 물음에 올리버가 되물었다.
“예? 갑자기 무슨..…."
“아니, 그냥 좀.…. 더 듬직…. 아니야.”
조가 손을 저으며 자신의 말을 취소했다.
이번에는 올리버가 말했다.
“조는 일하시고 계시는 중인가요?”
“어. 먹고살아야 하니."
조의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가만히 그를 살펴보고 다시 입을 엳었다.
“혹시 절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그래.…. 혹시, 다음 수업은 언제 받을 수 있을지 확인할 수 있을까?”
“연습은 얼마나 하셨죠?”
올리버가 말한 연습이란 가공을 거치지 않은 감정을 추출하는 것으로, 기초 중의 기초였다.
흑마법을 이상하게 익혔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블랙 슈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초가 중요했으니.
조는 올리버의 물음에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시험관을 꺼냈다.
조잡한 싸구려 감정이지만 가공을 거치지 않은 거였다.
슈하아아아아一
조는 빠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 않게 감정을 추출했다.
처음 애먹었을 때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오, 대단하시네요. 생각보다 훨씬 빠르네요?”
"네 덕분이야."
“예?”
“네가 저번에 헤어지기 전 감 잡는 걸 잡아준 덕분에 어떻게 하는 건지 요령을 잡았거든. 그때부터 무조건 반복 연습했어. 덕분에 돈이 좀 깨졌지만..…. 어디서 배운 거야?”
“배웠다뇨?”
조가 자기 손가락을 하나 펴 반대쪽 손등에 댔다. 올리버가 요령을 잡아 줄 때 저런 식으로 간접적으로 잡아줬다.
“이렇게 해서 요령을 간접적으로 알려줬잖아? 그거 덕분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연습할 수 있었거든.”
“…? 배운 거 아닙니다. 그냥 옛날에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 .…신기하네.”
“왜 다른 분들은 그런 식으로 가르쳐주지 않나요?”
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굴 가르칠만한 실력의 흑마법사는 우리 대장밖에 못 봐서 잘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가르치는 건 너밖에 없었어.…. 처음부터 알았다고?”
"예."
올리버가 조를 살피며 대답했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조셉의 서재에서나 글립의 일지, 퍼펫의 책에서도 이런 식의 교육법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올리버는 문득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걸 자기가 어떻게 알게 된 거지?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마리를 가르쳐줄 때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럼, 이 다음은 언제쯤 가르쳐줄 수 있지?”
“아…. 죄송하지만 좀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일을 해야 해서 시간이 없거든요.”
“일? 해결사 일?”
“네, 말씀드리기는 조금 힘든-”
“-혹시 란다로 숨어든 켈 반군 놈들 이야기하는 거야?”
올리버가 말없이 조를 바라봤다.
조가 눈치껏 대답했다.
“소문 정도는 퍼지거든.”
“아, 그렇군요.”
“이봐, 데이브.”
“예?”
“혹시 괜찮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