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39화 (139/633)

< 139. 가치 (4) >

“허허…! 이건 예상 이상인데….”

멀린이 책을 수십 장 찢어 그 위에 올라타 하늘을 날며 말했다.

지상을 내려다봤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얼음 대지 위로 마치 잉크가 쏟아진 듯 거대한 암흑이 뒤덮였다.

‘아니, 잉크가 쏟아진 것보다는 구멍이 뚫렸다는 게 좀 더 적절한 표현일까?’

놀라우면서도 당혹스러웠다 .

한 세기를 넘게 살며 수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심지어 종군 마법사로 수많은 적과 이국의 땅을 둘러보았지만, 이런 것은 처음 보았다.

이성과 직감 모두가 보통이 아님을 소리쳤다.

‘한 가지는 확실해. 그때, 피하지 않았으면 그렇다 할 저항도 못 하고 제압당했을 거야.’

멀린이 말한 그때란, 젊은 친구가 필거렛을 피운 순간으로, 그는 필거렛을 한 모금 마시더니 얼굴이 기괴하게 요동치며 감정을 추출해 흑마법을 사용했다.

헬 서먼(Hell Summon) 이라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흑마법을 말이다.

정말 이름처럼 지옥을 소환한 건지 아니면 이름만 그런 것인지 멀린으로서는 알 수 없었으나, 단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조금만 반응이 늦었으면, 지상을 뒤덮은 극한의 어둠에 자신 역시 잡아 먹히고 말았을 거란 거였다.

아카이브인 자신마저.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하늘 위로는 못 오는 것 정도군.”

하지만 이는 착각인 듯했다.

지평선까지 확장하던 어둠은 갑자기 수축하더니 그와 함께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흡사, 냄비에 진흙을 넣고 끓이는 느낌이라고 할까?

끓듯 울렁거리는 어둠이 파바박 터지며 어둠이 촉수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왔다.

쏴아아아아아아—!

멀린은 확신했다. 붙잡히면 끝이라고.

그렇기에 멀린은 책을 펼쳐 새로운 책들을 소환했다.

마력으로 이뤄진 책에서 다섯 권의 책이 튀어나오며 별의 꼭짓점처럼 다섯 방향으로 멀린을 감쌌다.

멀린은 손에 마력을 집중해 책들을 조종했다.

파라라라라라락!

파라라라라라락!

파라라라라라락!

파라라라라라락!

파라라라라라락!

책들은 제각기 허공에 펼쳐져 빠르게 넘어가며 그중 종이 몇 장이 찢어져 분리됐다.

찢긴 종이는 기계처럼 멀린이 지정한 자리로 가 마법진을 형성했다.

"흠......."

멀린은 찢어진 종이에 써진 술식과 저장된 마력 그리고 자신의 마력을 연동시켜 하늘 위에서 거대한 마력 방패를 만들었다.

웬만한 종군 마법사들이 협력해 만든 전쟁용 폭격 마법조차 막을 정도로 강력한 방어 마법이었다.

콰앙————!!!

하늘을 향해 뻗어진 불길한 촉수가 멀린의 대방어 마법과 부닥쳤다.

다행히 멀린의 방어 마법이 더 강했다.

촉수가 마력으로 이뤄진 방어막에 막혀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는 거였다.

'.....응?'

멀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촉수는 잉크처럼, 독처럼 천천히 멀린의 마법을 잠식하고 있었다. 잠식을 막는 보호 마법까지 무시하고 말이다.

멀린은 침식되어가는 자신의 마법을 보며 이 검은 촉수는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기껏해야 시간만을 벌 수 있을 뿐.

이 공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공격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뿐이었다.

그 순간 멀린은 망치로 머리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실력 테스트였던 싸움이 어느새 제법 진지한 싸움이 된 거였다.

이런 기분을 맛보는 게 몇 년 만인지.

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어느새 방어 마법을 반 이상 잠식한 촉수를 보고 고민을 접기로 했다.

적당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마음을 먹은 멀린은 자세를 풀고 양손을 펼쳤다.

그와 함께 자신의 마력을 하늘 위로 흩뿌린 다음 힘을 꽉 주며 통제권을 가져왔다.

얼음의 땅을 뒤덮은 우중충한 구름이 요동쳤다.

일부가 아닌, 눈에 닿는 구름 전체가.

쿠르릉—! 쿠릉! 쿠르르….…쿵!!

요동치는 구름 사이로 일어나는 거대하고 푸른 번개들.

흡사, 하늘이 분노한 것 같았다.

그 가운데서 멀린이 말했다.

“하아..…. 부디 죽지 마시오. 젊은 친구.”

그 말과 함께 멀린이 팔을 내리쳤다.

그 순간 구름 사이에서 요동치던 번개가 검게 물든 땅을 중심으로 일제히 쏟아졌다.

쿠르릉……쾅!! 콰과과과쾅——!! 꽝—! 콰가가가꽝—!!!!

귀를 멀게 하고 마음을 위축시키는 굉음과 함께 셀 수도 없이 크고 작은 번개가 내리쳤다.

바라보는 눈을 태워버릴 밝기와 흉폭하게 날뛰는 굉음이 검게 물든 땅뿐 아니라, 그 일대까지를 쉼 없이 두들겨대었다.

번개가 땅을 때릴 때마다 지면이 벗겨지고, 얼음 위에 불이 붙으며, 땅이 뒤집히며 균열이 일어났다.

말 그대로 대재앙.

그러나 멀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애당초 이런 마법이니.

원소 학파의 전격 계열 전문인 묠니르 소학파의 최상위 등급 [하늘의 진노]는 대기 중의 마력과 번개의 권능을 가져와 그 힘을 인위적으로 응축 발산하는 폭격 마법.

마법보다는 재해에 가까운 것이었다.

힘이 너무 강해 공격 대상에 대한 한정적인 지정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로 인해 피아식별조차 힘들어 전쟁에서조차 사용이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마법이었다.

그런 마법을 스무 살 남짓의 젊은이에게 쓰다니.

허나, 멀린은 후회하거나 창피해하지 않았다.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질은 그만큼 멀린을 두렵게 했다.

파하하하아…….

지상을 내리치던 번개가 어느새 그쳤다.

힘을 소진한 탓인지 늘 우중중하던 하늘도 맑게 개었다.

과연 아까 전처럼 젊은 친구가 살아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때, 대지를 하얗게 뒤덮은 눈먼지에서 무엇인가 요동치는 게 보였다.

“설마…..”

그 설마가 맞았다.

거대하고 검은 무엇인가가 눈먼지를 뚫으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애—! 응 애—! 응애—!

귀를 찢는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그것은…….

그것은 아기였다. 진흙으로 만든 듯 검붉고 질척질척 거리는 아기.

산처럼 크고… 또 거대한… 그 압도적인 크기와 혐오감, 공포에 멀린은 수십 년 동안 느껴보지 못한 섬뜩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신생아처럼 미숙하게 생긴 크고 혐오스러운 아기는 멀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기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귀여움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사람과 닮은 혐오스러운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멀린은 책에서 수십 장의 종이를 찢어 그대로 날렸다.

거대한 아기의 팔에 종이가 파바박 박히며 잠시 후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펑—! 퍼버버버버벙——!!

그와 함께 아기의 팔이 날아갔다. 아기는 고통스러운지 문자 그대로 하늘이 찢어지게 울었댔다. 그럼에도 아기는 쓰러지지 않고 다시 손을 뻗었다.

놀랍게도 팔이 회복되고 있었다.

개미처럼 작은 수많은 아기가 한데 뭉쳐져서 말이다.

오싹..….

멀린은 어느새 마음속 여유가 날아가며 수많은 책을 소환해 찢어가며 마법을 발동했다.

거대한 아기 주변으로 수십 개의 마법진을 펼치며 마력으로 이뤄진 쇠사슬이 아기를 속박했다.

촤르르르릉..…콰직! 촤앙-!

촤르르르르르르르륵......핑—! 퇑!!

촤르릉..…팍! 촹-!

철컹철컹. 터더덩——!!

텅—! 촤륵! 촤르르르르륵!! 텅!!

그와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공간 학파의 이차원 생물도 완벽하게 속박할 수 있는 속박 마법이 아기를 제대로 구속하지 못해 요동치는 거였다.

아기는 하늘을 찢을 듯 울며 버둥거렸다.

수많은 마력과 복잡한 술식으로 만든 쇠사슬은 그때마다 어떻게든 아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요동쳤다.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곧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부서질 것이 자명.

멀린은 바로 행동을 취했다.

‘하늘의 진노로 집중사격해 단숨에 소멸시킨다..…. 그런데 이거 옛날에 한 번 마주한 기분이 있는데 언제였지?’

멀린은 희미한 기억을 되짚으며 하늘에 마력을 뿌려 다시 권능을 가져와 힘을 결집시켰다.

아까 전에 한 번 사용한 탓에 하늘에서는 큰 힘을 거들 수 없었지만, 문제없었다.

부족한 화력은 자신의 마력으로 보충하면 그만이었으니.

멀린이 마력 하트에서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아까 전과 같은 위력의 마법이 준비됐다. 아니 그 이상이 모였다.

멀린은 한 손으로 마법의 통제권을 넘긴 다음 추가로 마력을 끌어모아 거대한 아기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요격을 위한 타겟 마법을 걸었다.

말 그대로 빈틈없이 공격 지점을 지정했다.

“하늘의-”

-핑! ……퍽!!

공격을 발동하려는 순간 무엇인가 빠르게 날아와 멀린의 머리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책들이 방패 역할을 해준 덕분에 궤도가 틀어져 살았는데, 만약, 그게 아니었으면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멀린은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봤다.

거대하고 포동포동한 아기의 입. 무언가가 있었다.

온몸에 검은색 장갑(裝甲)이라도 두른 듯한 인형(人形). 너무나도 검어 이 세상 것이 아니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파바바방——!!

검은색 인간은 손가락으로 멀린을 겨눠 증오의 탄환을 쐈다.

멀린은 책으로 방어막을 펼쳐 막으려고 했고.

아까 전처럼 방심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해 말이다.

그럼에도 놈의 공격이 자신의 방어막을 갉아먹고 있는 게 느껴졌다.

선대 아카이브의 마력이 담긴 책을 그저 평범한 공격으로 갉아먹고 있는 거였다.

‘빨리 반격을.......'

반격을 가하려는 순간 검은색 인간이 쿼터스태프로 책 방어막을 찢으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도약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님에도 말이다.

“젊은 친구 그대요?!”

멀린의 질문에 검은 인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멀린에게 바짝 붙어 그의 양손을 붙잡은 다음 마력의 흐름을 교란해 발을 디디고 있는 종이를 무력화시켰다.

“후, 돌겠군.”

한마디 말과 함께 멀린은 검은 인간에게 붙잡힌 채로 추락했다.

올리버라고 추정되는 검은색 인간은 눈, 코, 입이 없음에도 웃는 것 같았다.

멀린은 생물학적인 불길함을 느끼며 떨어지려고 애썼으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단순히 멀린의 힘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이게 너무 상식 밖으로 강한 거였지.

하고자 한다면 단숨에 숨통을 끊을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말 그대는 날 놀라게 하는군."

어느새 자신의 마법 통제권을 빼앗아 가는 올리버를 보며 멀린이 말했다.

하늘이 쿠르르르르릉-! 요동치며 푸른 번개가 뱀처럼 요동침과 동시에 추락 중인 멀린과 검은 인간을 향해 떨어졌다.

[번개 신의 가호]

그 말과 함께 아무도 없는 세상 끝 얼음 땅에 태양 빛과 같은 찬란한 섬광이 터졌다.

인간의 고막으로 들을 수 없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떨어져 제각기 땅 위에 추락했다.

귀가 먼 듯 세상의 그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핑——거리는 소리만 울릴 뿐.

그런 재앙의 한 가운데서 멀린이 비적비적 일어났다.

모든 전격 마법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번개 신의 가호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놀라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멀린은 청명한 하늘과 울퉁불퉁하게 뒤집힌 얼음 땅을 바라보며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이와 같은 감각을 어디서 느꼈는지 떠올랐다.

나이를 먹으면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설마 이를 잊을 줄이야.

멀린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새삼 놀라웠다.

‘이제는 노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해야 할지도..….'

그때였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검은색 인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불에 탄 듯 화상을 입고, 어깨가 빠지며, 팔은 덜렁거리고, 양다리는 부러져있었다. 서 있는 게 용한 지경.

그러나 별거 아니라는 듯 파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몸이 저절로 회복하며 멀린 쪽으로 다가왔다.

멀린은 어느새 동등한 상대….. 어쩌면 자기보다 더한 강자를 상대하듯 여유를 벗으며 자세를 잡았다.

뚝.

검은색 인간은 완전히 회복함과 동시에 멈춰 섰다.

무슨 일인지, 멀린은 알 수 없어 가만히 지켜보았다.

잠시 후, 얼굴을 덮고 있는 검은색 물질을 스스로 찢으며 올리버가 얼굴을 내보였다.

그는 몹시도 피곤해 보였다.

"어르신......."

“……말씀하시오.”

“이제 정말 한계인데, 죄송하지만 이쯤에서 그만할 수 있을까요. 이제 정말 쉬고 싶어서요. 제가 졌습니다.”

멀린은 놀란 눈으로 올리버를 보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멀린은 홀린 듯 대답했다.

“그럽시다.”

그 말과 동시에 올리버를 덮고 있던 검은 물질이 사라지며 만신창이가 된 올리버가 그대로 땅에 엎어졌다.

잠자고 있었는데, 멀린은 그걸 보다가 지친 듯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하……. 이거, 이거 아무래도 재밌는 말년을 보내겠군.”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