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35화 (135/633)

< 135. 작은 기적 (3) >

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장면이었다.

마법사들의 비밀 실험실에서 흑마법사가 당당히 고해성사를 하다니.

모르는 이가 듣는다면 말도 안 되는 질 나쁜 농담이라 비웃거나,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불경한 일이라며 면박을 줄 이야기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금 마텔 지하 비밀 실험실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뭐랄까……. 아주 모순적이면서도 성스러운 광경이었다.

고통받는 소년은 죄를 고할 때마다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났으며, 손을 맞잡은 흑마법사는 경전의 내용을 떠올리며 신께 대신 용서를 구했다.

모두 말없이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특히, 올리버를.

목소리는 감정이 없는 듯 차분하였으나, 실험실의 어둠 탓인지 그의 얼굴은 교묘하게 어둠에 뒤덮여 어떤 표정인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먼저 실험실로 간 동생을 구하지 못했어요. 도와달라고 했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소년은 눈물로 용서를 구했다. 동생에게 아니면 신에게.

올리버는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담담한 목소리로 신께 용서를 구했다.

“아버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는 나약하고 번민하는 존재이니. 아버지 저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자녀가 이렇게 비옵니다. 마할라.”

“마할라….. 감사해요. 끄읍, 감사-”

올리버가 우둘투둘 부풀어 오른 소년의 두 눈 위로 손을 부드럽게 올리며 말했다.

“-이제 괜찮으니 편히 주무세요. 눈을 감았다 깨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랍니다.”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두려움을 벗은 채 잠이 들었고, 올리버는 소년이 완전히 잠들 때까지 손을 잡아줬다.

"......."

짧고도 긴 침묵 후 소년은 완전한 잠에 빠졌다.

올리버는 손을 조심스럽게 놓으며 주변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잠시만 여기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올리버가 그 말을 남기며 실험실 밖을 봤다.

그곳에 불빛을 역광 삼아 서 있는 마텔의 연구원들이 있었다.

올리버가 로스번을 보며 다시 물었다.

“기다리고 계실 수 있나요?”

로스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맏형처럼 다른 아이들을 데려와 자기 등 뒤에 세웠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고 실험실 밖으로 걸어갔다.

올리버가 다가감과 동시에 마텔 관계자들은 뒤로 물러나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세계수의 정보대로 그 수는 많지 않았다. 다 합쳐 스무 명 정도?

하지만 하나 같이 마력의 양과 질은 엄청났다.

들어올 때 상대했던 세 명의 마법사 못지않은 자도 있었으며, 심지어 개중에 한 명은 다른 마법사들을 다 합친 것 이상으로 강했다.

비록 그가 대장은 아니었지만.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마법사들이 모인 무리 중 가장자리의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의 나이는 이십 대 중후반으로,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꽤 젊은 편에 속했다.

그는 올리버의 행동에 꽤 놀란 듯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색지 않았다.

“내가 여기 책임자인 걸 어떻게 알았지?”

“보니까 그냥 알겠던데요. 다시 감사드리죠. 방해하지 않아 주셔서요.”

“나야말로 고맙지. 재밌는 걸 봤거든. 고해성사하는 흑마법사라니. 진짜 진귀한 걸 봤어.”

올리버도 동의했다. 자신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갔다.

그저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마음이 불편했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약간 짜증이 난다고 할까?

그래서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혹시 지나갈 수 있게 길 좀 비켜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많이 피곤하거든요.”

남자는 뒤쪽을 한번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힘들겠는데, 이 난리를 치고 그냥 보내줄 수 없지. 무엇보다 저기 반쯤 죽은 녀석들은 내 친구야. 높은 성적으로 졸업한 학파 내 엘리트이기도 하고. 피해 보상을 받아야겠어.”

“그거 다행이네요.”

“뭐?”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옆에 세우고, 웃옷을 벗으며, 양손을 걷어붙였다.

“사실 저도 그냥 가기 조금 그랬거든요.”

그 말과 함께 올리버는 자신의 가슴 위로 손 올려 감정을 추출했다.

슈하아一

한 줌에 불과했지만, 올리버는 자신의 감정을 추출했다. 필거렛도 없이.

아주 이례적인 순간.

그와 동시에 마법사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가 극도의 경계심을 품으며 마력을 끌어모아 올리버를 공격하려고 했다.

올리버도 그에 맞춰 반갑게 대응하려고 했고.

"헬.…."

파핫하아아아아———!!

그때였다.

올리버와 마법사 사이에 거대한 빛이 터졌다. 그 어떠한 전조도 없이.

놀란 반응을 보았을 때 마텔의 행위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그때였다.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외상값 받으러 왔네. 젊은 친구.”

벗겨진 윗머리, 미역처럼 축 늘어진 주변머리, 달걀 같은 두상, 오래된 옷을 입은 책방 노인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

올리버는 당황했다.

책방 노인을 이곳에서 보다니. 그보다 어떻게 나타난 거지?

그리고 놀란 것은 비단 올리버만이 아닌 듯했다.

마텔 연구소 관계자들은 모두 노인의 등장에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도대체 당신 뭐야? 저놈이랑 한패야?”

한 마법사가 그리 물었다.

그러던 중 유독 눈에 띄던 나이 든 마법사가 동료 마법사를 말리며 끼어들었다.

감정 상태를 보았을 때, 책방 주인이 누군지 아는 눈치였다.

“아카이브 멀린?”

“호오….. 날 아나?”

책방 노인은 올리버와 대화를 나눴을 때의 겸손한 목소리가 아닌 오만할 정도로 당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그와 함께 오만할 정도로 당당하던 마텔 관계자들은 웅성이는 소리를 내며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카이브 멀린이란 단어를 듣고 말이다.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마법사가 멀린의 물음에 대답했다.

“20여 년 전 멀리서 뵌 적이 있습니다. 생명 학파 테어도어 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핀 루소라 합니다.”

“아아, 기억나는군. 희귀 케이스. 테어도어 밑에 있다고 해서 죽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군. 축하하네.”

핀이라 불린 남자는 그 말에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단순히 겉모습이 아닌 진심으로 존경과 예를 담아서 말이다.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싸움이 일어날 것 같던 분위기는 거짓말처럼 잦아들고,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마법사 무리의 대장 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불쾌한 듯 끼어들었다.

“다들 지금 뭐 하는 거야?”

나이 많은 마법사가 말하려던 찰나 책방 노인, 아니, 멀린이 말했다.

“어디 보자……. 인위적이다 할 정도로 빛나는 금발과 벽안(善眼)에, 잡티 하나 없는 흰 피부,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건장한 체격과 쭉 뻗은 키, 꼿꼿한 자세, 안경도 안 썼군..…. 아하, 요즘 말 많은 테어도어 녀석 손자인 칼인가 보군. 만나서 반갑네. 자네 할애비 친구일세.”

멀린이 스스럼없이 내민 손을 칼은 말없이 바라봤다.

성질 같아서 단박에 무시하고 싶었지만, 멀린의 기백에 눌린 듯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멀린이 허허허허 웃으며 손을 거뒀다.

“생긴 것만 아니라 성격도 딱 제 할애비를 닮았군.”

칼이 발끈했다.

“입조심 하시지요. 과거 할아버님과 무슨 관계인지 모르지만, 그분은 지금 생명 학파의 수장이신 그랜드 마스터입니다.”

멀린은 놀라거나 화를 내긴커녕 빤히 바라봤다. 마치, 측은하다는 듯.

“..…이보게 루소.”

“예, 멀린 님.”

“요즘 친구들은 날 모르나 보군.”

“죄,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망각은 큰 축복이니. 솔직히 알아보길 바란 것도 아니고.…. 그냥 신기해서 그러네. 그런 의미로 이 친구는 내가 데려가지.”

멀린이 올리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모두 놀란 반응을 보였지만, 그는 의견을 굽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이 친구는 내가 전부터 눈여겨본 친구인데, 자네들이 먼저 수작을 부렸지 않은가?”

“눈여겨 봤다고요?”

“아하..…. 프로젝트를 제대로 검토도 안 하고 그냥 대충 승인했나 보군. 참 자네들은 한결같다니까. 어떤 데서는 참으로 똑똑한데, 어떤 부분에서는 참으로 허술해.…. 아니면 책임자 잘못이거나.”

멀린이 눈을 가늘게 뜨며 칼을 내려다봤다.

칼은 그 눈빛을 받자마자 분노의 감정을 내비쳤지만, 멀린의 위압감에 눌려 아무 말도 못 했다.

“자네들 일하는 방식은 아네.”

“네…..”

“이 친구를 계속 감시했을 텐데, 아마 찾아보면 나와 같이 있던 장면도 찾을 수 있을 거야. 내가 자네들을 느꼈으니.”

"......."

“내가 이 친구를 좀 재밌게 보고 있었지. 그런데 내 허락도 구하지 않고 이 친구에게 수작을 부렸다? ….내가 좀 불쾌해도 되는 문제 아니겠나? 편하게 대답해봐.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칼이 뭐라 말하려고 하자, 루소가 그를 말렸다. 꼭 아이를 말리는 보모 같았다.

“죄송합니다. 멀린 님…. 아무래도 저희가 일을 다소 경솔하게 벌인 것 같습니다.”

“허허, 순순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 보기 좋구만. 하긴, 마법사들이 일하는데 사고가 터져야 제맛이지. 옛날에는 그거 때문에 높은 탑에서 실험했다고 하지 않나? ..…어쨌건, 그런 의미에서 이 친구 데려가도 되겠나? 죽은 사람도 없으니 좋게 좋게? 응?”

멀린이 올리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친절한 질문 같았지만, 그를 가장한 통보에 가까웠다.

상대측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납덩어리 같은 침묵이 주변을 내리눌렀다.

루소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오히려 저희를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짝-!

멀린이 손뼉을 쳤다. 일을 마무리했다는 듯이.

“좋군. 그럼, 자네도 협조해주겠나?”

멀린이 등 뒤에 선 올리버를 돌아보며 물었다.

올리버는 멀린을 보고, 자신의 손에 머금어진 감정을 보더니 이윽고 뒤쪽 실험실 문을 봤다. 정확히는 그 안에 있을 애들이었지만.

“예, 다만 저분들도 같이 갈 수 있을까요?”

올리버가 닫힌 실험실 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요구에 가까웠다.

마텔 연구소의 칼이 발끈 소리쳤다.

“누구 마음대로!!”

갑작스러운 호통에 루소가 당황하며 말리려 했지만, 칼은 듣지 않았다.

“이거 놔봐요! 저기 있는 아이들은 최근 실험에 성공한 녀석들인데! 그걸 가져가겠다는 거잖아!!”

칼은 소리쳤다.

단순한 자존심을 넘는 문제인 것 같았다.

멀린은 뭔가 대충 눈치챈 듯 물었다.

“음……. 윤회 프로젝트에 관련된 애들인가?”

“그렇습니다!”

칼이 소리쳤다. 반응을 보아 보통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았다.

멀린은 잠시 고민하더니, 올리버를 봤다. 뭔가 물으려고 했지만, 올리버의 표정을 보고는 포기하며 다시 마텔 관계자들을 봤다.

“..…위자료로 내가 받아가지.”

“!! 지금 장난-”

"-장난 아닐세. 어린 친구….. 난 자네와 장난칠 사이도 농담 따먹기 할 위치도 아니네. 확실히 하자고. 자네들은 조용히 지내는 내 영역에 멋대로 발을 들이밀어 날 번거롭게 했네. 자네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내겐 매한가지야. 난 보상받아야겠네.”

"......."

“어찌할 텐가? 지금 내 합당한 요구를 수락하고, 모두가 웃는 얼굴로 헤어질까 아니면 어디 마법사답게 실력으로 해볼까. 참고로 난 딱히 그런 것도 싫지 않다네.”

그 순간 멀린이 몸속 깊이 숨겨놨던 마력의 일부를 해방시켰다.

마력 입자가 공기를 타고 사방으로 빠르게 흩뿌려져 모든 것을 훑고 지나갔다.

얼마나 힘이 넘치는지 몸이 저릿저릿할 정도.

힘의 차이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단순하지만 효과가 좋아 칼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후우, 후우….. 이따위 짓이 용납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감히, 남의 연구 성과를一!!”

“용납이라고 했나? 어린 친구,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럴만한 힘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지. 자네 할애비가 안 가르쳐주든가?”

"......."

칼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그때 루소가 다시 끼어들었다.

그는 어느새 이 사태를 최대한 잠재우는 걸 목표로 삼았다.

“데려가셔도 됩니다. 멀린 님. 다만, 한 가지 약속을 해주십시오.”

“…..무엇인가?”

“..…저기 있는 아이들의 몸을 조사해 저희 연구물을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 같은 학자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칼이 뭐라 항의하려고 했으나, 루소가 인상을 써 그를 말렸다.

“좋아 그러지. 같은 학자로 약속하겠네."

그것으로 사건을 일단락되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멀린이 올리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젊은 친구, 아이들 데려와 주겠소?”

“예.”

올리버는 자신의 감정을 시험관에 도로 넣은 뒤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들은 데리러 갔다.

멀린은 혼자서 마텔 관계자들과 대치하였다.

정작 머릿수와 분위기는 정반대였지만.

칼이 나직이 말했다.

“..…이 일은 할아버님께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내가 직접 만나러 갈 테니.”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