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작은 기적 (1) >
사방이 막힌 어둡고 좁은 공간.
그곳에 한 소년이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로스번. 고아이자, 여관 일꾼, 그리고 마탑의 학생……. 아니, 학생이 될 줄 알았던 쥐새끼였다.
실험용 쥐새끼.
뭐, 이 도시에서는 흔한 경우였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행운과 능력으로 쥐었다고 생각했다가 저 밑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아이들은.
특히, 고아의 비율이 높았다.
그들은 기회를 가장한 위기가 이곳 란다에 수없이 많다고 조언해줄 어른이 없었으니.
어쩌면 그게 죄라면 죄였다.
"정말 그게 죄인가요?”
로스번이 양 무릎을 감싸 안은 채 나직이 물었다.
혼자뿐인 독실이기에 대답이 돌아올 리 만무했지만, 놀랍게도 어둠 속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은은하고 누나의 목소리처럼 상냥한 목소리가.
환청이었을 확률이 다분하지만, 로스번은 이미 개의치 않았다.
환청인지 아닌지 무엇이 그리 중요하겠는가?
로스번은 그저 대답을 갈구했다.
"정말 제게 조심하라고 이야기해 줄 어른이 없는 게 죄인가요?”
"글쎄요?”
어둠 속 목소리가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로스번은 혼란스러워했다.
"그, 그럼 제가 여기서 왜 벌을 받는 거죠? 저, 저는 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데요…?”
상냥한 목소리는 다시 회의적으로 답변했다.
"글쎄요.…. 벌을 받고 있다면 죄를 지은 게 아니겠어요. 그게 아니면 이런 꼴을 당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소년은 침묵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죄를 짓지 않았다면 어찌 벌을 받고 있겠는가? 만약 그런 거라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 죄를 짓지 않았는데, 벌을 받다니.
소년은 자신의 몸을 만져봤다.
상체에는 붕대가 둘려 있었다. 아주 두꺼운 붕대가.
주사를 맞고 자고 일어나니 이 상태였는데, 연구원이란 사람들이 말하길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마쳤다고 말했다.
약간의 고통만 견디면 열등한 바르바리에서 진정한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말이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바르바리는 뭐고, 진정한 인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로스번이 입을 열었다.
“저는요.….”
"예, 듣고 있답니다.”
"그, 그냥, 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그냥… 공부할 수 있게요..... 혹시, 그게 죄인가요?”
다시 회의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요? 공부하고 싶다는 게 죄라는 생각은 안 드네요.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하죠. 배움은 미덕이며 기쁨이니."
로스번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어둠인 건 매한가지였지만, 눈을 감으면 좀 더 생각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그럼 귀찮게 해드렸기 때문인가요?”
"귀찮게요?”
“예….. 글을 배우고 싶어 손님을 귀찮게 했기 때문인가요?”
"음.…. 그 손님이 싫어했나요?”
로스번은 양손으로 머리를 쥐었다. 선생님이 싫어했었나?
"아, 아뇨….. 아마 아닐 거예요. 그럼, 글을 배운다고 해서 게으름을 피웠기 때문인가요? 여관 일요?"
"게으름을 피웠나요?”
로스번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글을 배우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조금 빼긴 했지만, 대신 남은 시간 동안 더욱 열심히 일했다.
혹시 책(責)을 잡혀 간신히 얻은 기회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정말..…. 정말 열심히 했다.
그렇기에 로스번은 더더욱 이해가 안 갔다. 혼란스러웠다.
"아뇨..…. 저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정말요?”
로스번은 그 말에 머리를 감싸며 바닥에 이마를 처박았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설마 아니었던 걸까?
애당초 열심히 했다는 건 뭘까?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없을 때 어둠 속 목소리가 나직이 말했다.
"사실 로스번이 게으름을 부려서, 손님을 귀찮게 해서 여기 온 거 아닐까요? 그래서 여관집 아주머니가 로스번을 넘긴 거고, 글을 가르쳐준 손님이 만나러 안 온 게 아닐까요?”
로스번의 머리는 혼돈으로 뒤덮였다.
어둠 속에 너무 오래 있었는지, 이제 뭐가 뭔지 구별이 안 됐다.
자신이 열심히 살았는지,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지금 자신이 앉은 건지 엎드린 건지 뭐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로스번은 정말 죄인인 걸까?
그래서 이곳에서 벌을 받는 것일까?
".…아, 아니에요. 그건 아니에요.”
"뭐가요?”
"제가 사모님한테 보내달라고 했어요. 공부하고 싶다고, 그러니 절 판 게 아니에요.”
"그래요?”
"예..…. 그리고 선생님도요. 바빠서 못 오신 걸 거예요. 그런 적이 이미 몇 번 있었어요. 그런 걸 거예요. 분명, 그래서 못 찾아오신 걸 거예요.”
로스번이 그렇게 소리쳤다.
마치 발버둥 치듯이.
열심히 일했건만 팔리고,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에게 잊혀졌다니. 그건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그래서 로스번은 이를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최소한의 안식을 지키기 위해.
어둠 속 목소리도 이 점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군요. 하지만 당신은 여기 있고, 아무도 당신을 찾지 않고 있군요.”
로스번의 눈은 크게 다시 흔들렸다.
뭐가 됐건 그게 사실이었다. 간신히 몸을 누울 수 있는 좁은 공간 어둠 속에 혼자 있는 로스번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자신은 여기 팔렸고, 아무도 자신을 구하지도 찾지도 않는다.
그 순간 로스번의 머릿속에 분노가 솟구쳤다. 원초적인 분노가.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혹시 놓친 기억이 있나 싶어 더욱 깊숙이 머릿속을 더듬어 봤다.
여관으로 막 취직이란 면목으로 팔려왔을 때, 아니면 고아원에서의 삶을 되살펴 봤다.
무엇이 그토록 잘못이었는지.
접시를 깬 거? 아픈 친구를 끝까지 돕지 않은 거? 원장님이 시킨 청소를 제때 못 끝낸 거?
그러자 문득 한가지 생각에 도달했다.
“..…전 태어난 게 죄인가요?”
어둠 속 목소리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그 침묵이 그 어떠한 긍정보다도 로스번을 설득시켰다.
자신은 태어난 게 죄였다.
수많은 어른이 한 말처럼 고아는 태어난 게 죄고, 종국에 지옥으로 갈 터였다.
로스번은 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화가 나나요?”
로스번이 작게 고개를 들자 어둠 속에서 희미한 실루엣이 보였다.
기괴한 짐승 위에 타고 있는 여인이.
그녀가 부드럽게 물었다.
"복수하고 싶나요?”
"....예.”
"그럼, 도와드릴게요.”
느닷없는 제안. 그러나 로스번은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으나,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스러웠다.
그녀가 도와준다면 복수는 할 수 있겠지만, 상상을 초월할 재앙이 퍼질 것 같았다.
로스번의 상상을 훨씬 초월할 재앙.
복수하고 싶었지만, 마음속 양심이 그러지 말라고 소리쳤고 로스번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
"복수하기 싫나요? .…착한 아이네요. 자기가 그런 꼴을 당했어도 남을 해치기 싫다니. 정말 대단해요. 진심이랍니다. 그런데 그거 아나요?”
"당신이 이렇게 착하게 굴어도 이 세상 그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다는 거? 왜냐면 당신처럼 착한 아이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또 미래에도 있을 거거든요.”
그 말과 함께 어둠으로 구성된 그녀가 손을 뻗어 로스번의 관자놀이를 톡 하고 건드렸다.
그러자 로스번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기억의 파편이 희미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광산에서 일하는 아이, 거리에서 신문을 파는 아이, 부모에게 버림받는 아이, 몸을 파는 아이.
과거, 현재, 미래 수많은 선량한 아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고통받았다. 한결같이.
그러자 무서운 허무함이 찾아왔다.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지키고픈 소중한 무언가가 부질없이 느껴지는 허무함이.
그 허무함 속에 남은 것은 분노뿐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향한 분노. 자신들을 방치하고 모른 척한 세상에 대한 분노.
로스번이 입을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
“..…복수…..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해요?”
그 순간 어둠 속 여인이 희미하게 미소짓는 것 같았다.
그녀가 은은히 말했다.
"간단해요. 모든 걸 바치세요.”
“예? .…모든 거요?”
"예, 모든 걸. 당신의 꿈, 희망, 노력, 삶, 양심, 인간성, 영혼 뭐든지요. 그럼, 당신이 느끼는 분노 그 이상의 복수를 해드릴게요. 결코, 그 누구도 잊을 수 없게.”
로스번의 심장이 두근댔다.
달콤한 말에 속아 이곳에 온 이후, 아니, 삶에 대다수 두근거리지 않던 그의 심장이 요동쳤다.
지금 말고 몇 번 이런 적이 있었는가? 아마, 선생님이 글을 가르쳐 줄 때 외에는 없었다.
복수할 수 있다. 자신을 이곳에 떨어뜨린 세상에, 자신을 모르는 척하는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이 세상에 상처를 남길 수 있었다.
로스번은 당장이라도 기꺼이 바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복수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 상처를 남기고 싶었다. 자신의 흔적을.…!
입을 떼려던 그때 로스번의 머릿속에서 한순간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아플 때 쉬게 해주고 밥을 더 챙겨준 사모님이. 그리고 자신의 부탁을 수락해준 데이브가.
충동과 이성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끄으으으윽!!"
로스번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어둠 속 그녀가 로스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각 탓인지 모르지만, 그 손길은 몹시도 부드러웠다.
"선택하기 힘들면 안 해도 돼요. 전 그런 것도 싫지가 않거든요. 진심으로요.”
"......"
"기특한 의미로 한가지 말씀해드릴게요."
"......?"
"당신이 복수하지 않으면 당신은 구원받을 거예요.”
"....구원요?”
"네. 물론요. 선량하게 산다면 고아라도 신께서 구원해주시거든요. 평등한 분이거든요."
로스번은 그 순간 한 줄기 빛을 만난 느낌이었다.
어둠 속 여인이 입을 열기 전까지.
"물론, 당신과 함께 잡혀 온 분들은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요.”
“……다른 사람들요?”
"예, 그분들은 구원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거든요. 당신처럼 죄를 안 짓고 성실하게 살기란 쉽지 않은지라."
로스번은 다시 번뇌에 빠졌다. 다시 뭐가 뭔지 모르겠다.
모두를 구할 방법 따위는 없는 건가? 다시 분노가 치밀어올라 왔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형용할 수 없는 분노는 이제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냥,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모두 다 말이다!
피로와 분노로 생각조차 귀찮을 그때 로스번이 입을 열었다.
마침내 결정을 내리려고 했다.
“전一”
———쾅!
"...?"
저 멀리 입구에서 들려오는 굉음. 로스번은 물론 시선을 한 번도 돌리지 않던 어둠 속 여인마저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기쁜 듯 또 아쉬운 듯 말했다.
“……이런, 아무래도 그분이 먼저 오신 듯하네요. 아쉬워요.”
"예?”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느낄 수 있었던 어둠 속 여인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여태까지 나눈 모든 대화가 환상처럼 느껴졌다.
———쾅!
——————꽝!
연이어지던 굉음이 울리더니 이윽고 부서진 소리가 들렸다.
이 역시 환청이 아닐까 했지만, 흔들리는 바닥과 벽이 아니라고 말해줬다.
여태까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로스번이 있는 방 앞에 멈춰 섰다.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는 로스번.
철문을 잡는 소리가 들리더니 콰득一! 소리와 함께 철문이 끼이익 열렸다.
천천히 방안을 비추는 빛.
그 빛과 함께 한 남자가 보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로스번은 그가 누구인지 알 거 같았다.
그가 말했다.
"좀 늦었습니다. 로스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