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피로 (4) >
올리버가 세 남자를 봤다.
흰색 가운을 입은 세 남자를.
금발, 적발, 대머리.
마텔의 직원인 듯했는데, 몸 안에 흐르는 마력을 볼 때 보통 직원은 아니었다.
하긴, 올리버의 공격을 제대로 막은 것만 봐도 그 정도는 쉬이 알 수 있었다.
"바르바리가 뭐죠?”
"마법을 못 쓰는 야만인.”
"즉, 열등종이라는 거지.”
적발 마법사가 바인 쉐도우처럼 발밑에서 얼음을 만들어 올리버의 발을 묶었다.
상당히 빨랐다. 얼음은 마력을 머금고 있어 단순히 차가운 것을 넘어 사람의 생명력을 소모하게 했다.
올리버가 발이 묶인 사이 대머리 사내는 양팔을 강철로 변화시킨 후 강철 벽에 손을 대 철을 흡수 팔의 무게를 높여 그대로 올리버를 후려쳤다.
캉———————!!!!!
강철 팔에 맞은 올리버는 복도 저편으로 날아가는 그대로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충격이 상당했다.
그 모습을 본 적발 마법사가 대머리 마법사에게 핀잔을 줬다.
"야 이 무식한 새끼야. 그렇게 세게 때리면 어떡하냐..…. 암만 실험용 쥐새끼라도 건강한 게 최곤데.”
"아니..…. 기절 안 했어.”
대머리가 뭔가를 눈치챈 듯 강철 바닥에 손을 박아 넣었다.
물리적인 힘이 아닌 마법을 통해 융합시킨 것으로 마력을 넣어 제어하자 단단한 강철 바닥이 밀가루 반죽처럼 울렁이더니 기둥처럼 솟구쳤다.
파바바바바박!!
파르르르르르륵——!
거대한 강철 벽이 솟구치자 은밀하게 접근 중이던 올리버의 그림자가 가로막혔다.
꽤 놀라웠다. 여태까지 이런 식으로 막힌 적은 없는데.
적발 마법사가 당황해 뒤로 물러섰다.
"개자식-! 비겁하게.’’
"죄송합니다. 다들 강하신 분 같아서요.…. 제가 좀 급하거든요.”
타다다다다다닷一!
순식간에 달려와 거리를 좁힌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휘두르며 말했다.
적발 마법사가 재빠르게 얼음 갑옷으로 전신을 방어했지만, 괜찮았다.
강력한 마법이긴 했지만, 화력을 집중시키면 올리버 쪽이 더 강했다.
붕——— 깡!!
올리버와 적발 마법사 사이로 뭔가가 빠르게 튀어왔다.
금발 마법사로, 그의 다리는 사람의 것이 아닌 짐승의 것으로 변했고, 양팔에는 마력으로 이뤄진 칼이 한 자루씩 들려 있었다.
"오, 땡큐.”
"너 빚진 거다.”
적발과 금발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올리버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재정비하려는 적발 마법사, 공격 준비를 하는 대머리 마법사, 높은 출력의 마력과 비상식적인 생명력을 뿜어대는 금발 마법사.
마법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지만, 이들 어딘가 정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위험했다.
팟一!I
올리버가 뒤로 물러났다. 블랙 슈트의 다리 출력을 높여 최대한 빠르게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이걸 웬걸.
짐승의 다리로 따라붙은 금발 마법사가 칼을 창으로 변화시켜 올리버를 공격했다.
쵕아——!!
마력 창과 블랙 슈트를 덧씌운 쿼터스태프가 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오올-! 길바닥 쓰레기 주제 제법!”
"마법사님도요. 연구실에 틀어박힌 마법사는 다들 허약하다고 하던데.”
"우린 좀 특별하거든!”
그 말과 함께 금발 마법사가 한쪽 손을 들어 그곳에 마력을 끌어보았다.
출격이 심상치 않았지만, 괜찮았다. 올리버가 더 빨랐으니.
"미니언.”
올리버의 품 안에서 나온 작은 미니언은 머금고 있던 해잇 불릿을 쏴 마법사가 모으던 마력을 맞췄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악———!!!
하늘빛 마력이 폭탄처럼 터졌다. 당연히 마력을 모으던 손도 멀쩡하지 못했다.
“끄윽-!”
고통으로 행동이 순간 멈춘 금발 마법사.
올리버는 이 타이밍을 놓지 않고 쿼터스태프를 빠르게 휘둘렀다.
쩌저! 쩍一! 쩌억一!!
세 군데서 울려 퍼지는 타격음.
다리와 어깨, 옆구리로 모두 부러졌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아까 전도 그렇고 손맛이 이상했다. 일반적인 인간의 근육과 뼈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근육과 뼈의 밀도가 높았다.
쩌저저저저적.
마무리하려는 찰나 바닥을 타고 얼음이 다가왔다.
아까 전과 같은 마력이 담긴 얼음.
올리버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는 실수였다.
[아이시클(icicle)]
엄청난 속도로 뾰족한 얼음이 날아와 올리버에게 꽂혔다.
다행히 블랙 슈트 덕분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대신 블랙 슈트를 구성한 생명력이 엄청나게 깎여 나갔다.
순간적인 위력만큼은 전격 계열보다 못하지만, 독처럼 지속적인 피해를 줬다.
우우우우웅——콱!!
게다가 벽에서 갑자기 강철 기둥이 튀어나와 올리버를 옆에서 타격했다.
그뿐 아니라 벌레처럼 찍어 눌러 꼼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쩌적!
블랙 슈트에 균열이 가는 게 느껴졌다.
충분히 숨이 막히는 상황이었지만, 적들은 그것으로도 부족한 듯했다.
대머리 마법사가 아까 전보다 더 큰 강철 팔로 올리버를 후려치기 위해 달려온 거였다.
"아주 무사히 잡는 건 포기한다. 어차피 치료하면 돼.”
금발과 적발이 동의하자 대머리 마법사는 강철 팔에 마력을 집중시킨 뒤, 있는 힘껏 휘두를 준비를 했다.
그 짧은 순간 올리버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계산했다.
자신을 누르는 강철 기둥. 후려치려는 강철 팔. 한정적인 블랙 슈트.
"음....."
"죽지 마라.”
대머리가 그리 말하며 올리버를 향해 강철 주먹을 내질렀다.
올리버는 맞을 부위를 예측해 블랙 실드를 다섯 겹 만들고, 블랙 슈트도 집중시켰다.
그리고 하나 더.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쿼터스태프를 움직여 대머리 마법사의 가슴에 댔다.
[라스 붐]
캉—————!!!!!
펑——!!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폭발음이 울렸다.
올리버는 뒤로 날아갔으며, 대머리 마법사의 가슴은 스쿱으로 퍼진 아이스크림처럼 움푹 들어갔다.
"컥......."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는 대마리 마법사. 꽤 아파 보였다. 물론, 아픈 것은 올리버도 마찬가지였다.
타격 부위에 블랙 슈트를 집중하느라 뒤로 다른 부위는 사실상 무방비해져 뒤로 날아갈 때 여기저기 타박상을 입었다.
이쯤 되니 흑마법 뿐 아니라 운동도 본격적으로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조 정도는 안 되더라도 웬만한 부상은 견딜 수 있게 말이다.
‘음, 조한테 부탁할까? 아니면 그 관장님이란 분? 그러고 보니 그분 이름이 뭐였지? 아, 피곤해.’
잠을 안 자서 그런지 올리버가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꼈다.
머리가 아파서 그런지 점점 몸이 무겁게 느껴졌고, 덕분에 비틀비틀 일어났다.
탕!!!
금발 마법사가 쓰러진 대머리 마법사를 보곤 분노라는 감정을 빛내며 빠르게 달려왔다.
마력 출력을 한껏 높이며 말이다.
"감히 가짜 놈이 우리에게……!”
금발 마법사는 대머리 마법사를 뒤로하고 올리버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마력량이 얼마나 높은지 몸 밖으로 뿜어져 나올 정도였다.
그는 마력창을 붕 휘둘러 강철 기둥을 양단한 뒤 그 기둥을 올리버에게 던졌다.
붕——— 하고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소리.
올리버는 블랙 슈트로 다시 몸을 무장했다.
이번에는 아끼지 않고 상당히 많은 감정을 소모해 다섯 겹으로 말이다.
온몸이 시커멓게 뒤덮이며 검은 연기가 중간중간 뿜어졌다.
올리버는 그 상태로 쿼터스태프를 휘둘러 날아오는 강철 기둥을 상대방에게 되받아쳤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도로 날아가는 강철 기둥.
핑-!
금발 마법사가 기둥을 또다시 양단해 그대로 올리버 쪽으로 거리를 좁혔다.
"지금이야!!”
금발 마법사의 외침과 함께 어느새 주변을 은밀하게 감싼 마력이 보였다.
특수한 술법을 부여했는지 올리버도 한순간 마력을 감지하는 게 늦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쩌저저저저적——!
마력에 술식이 발동됨과 동시에 공기 중의 수분을 빨아 들어 주변의 모든 것을 얼어붙게 했다.
바닥, 천장, 벽 그리고 올리버를.
완전히는 아니지만, 얼음조각이 올리버의 몸 곳곳에 붙어 블랙 슈트의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소모시켰다.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성가셨다.
체력을 계속해 떨어뜨리고 추위로 몸을 얼게 해 행동에 제약을 줬으니.
거기에 다른 적도 있었다.
촤악——!
금발 마법사가 올리버에게 단숨에 접근해 창을 휘둘렀다.
얼음을 떼려다 말고 올리버는 창을 피했다.
그 사이 몸에 붙은 얼음조각은 점점 커져 덩어리가 됐고.
가만 보니 단순히 생명력을 소모시키는 게 아니라 마력으로 생명력 일부를 빨아들여 얼음을 더 키우는 것 같았다.
‘이 방식 흑마법과 비슷한데?’
"어딜 정신 팔고 있어!”
금발 마법사가 그리 외치며 창을 좌에서 우로 크게 휘둘렀다.
마력을 응축한 덕분에 블랙 슈트가 찢어지며 올리버의 가슴에 가로로 상처가 생겼다.
촤악-!
뜨거운 통증. 방울방울 바닥에 떨어진 붉은 피.
금발 마법사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짐승의 다리로 올리버의 가슴을 발로 찼다.
커다란 타격음이 울려 퍼지며 올리버가 날아가 또 벽에 부딪혔다.
오늘 참 많이 처박히는 날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머리가 점점 더 아파 왔다.
지끈. 지끈. 지끈.
"하아..…."
피곤해 한숨을 쉬는 사이 사방에 맺혀있던 얼음 결정이 곰팡이처럼 올리버의 몸을 감쌌다.
냉기가 온몸을 타고 전해져 피부를 뚫고 살에 스며들어 뼈까지 닿았다.
"이제야 반응이 오나 보네."
———팍!
금발 마법사가 마력으로 만든 창을 쌍검으로 바꾼 후 하나를 올리버의 허벅지에 꽂았다.
"오케이 관통. 기동력 제거. 포획 끝……. 마크 상태는 어때?”
"어..…. 괜찮아. 바로 치료하면 돼.”
적발 마법사가 말하자, 금발 마법사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식이 아닌 진심.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는 것 같았다.
점검을 마친 뒤 금발 마법사는 짜증과 분노, 그리고 복수의 기대를 품으며 올리버를 봤다.
"하, 씨..…. 너 재밌는 놈이다?”
"절 아시나요?”
“크크크..…. 우리가 바보로 보여? 가죽 가면 쓴 정도로 사람을 못 알아볼까.”
올리버는 너무 안일했나 라는 생각을 하며 침묵했다. 그와 함께 벽에 붙어있던 성에(Window frost)가 올리버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점점 얇아지는 블랙 슈트.
금발 마법사가 웃었다.
"크크. 어디 나사 빠진 놈이라더니, 진짜구만. 이 와중에도 표정이 평온하네…. 재밌어. 아주 재밌어.”
"얼굴 표정을 잘 바꾸지 못해서요. 연습해도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
“예….. 그리고 일단 사과하겠습니다. 소란을 피워 불쾌하신 거라면요.”
금발 마법사의 표정은 점점 안 좋아졌다.
올리버가 두려워하거나 분해하길 바랐지만, 그러지 않자 화가 난 것이다.
그는 악의를 내보였다.
"소란? 걱정하지 마. 난 오히려 기쁘니까. 솔직히 네가 안 올까 봐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와줘서 기쁠 지경이야. 늙은 암퇘지한테 비싼 돈 주고 쥐새끼 사온 게 괜한 돈 낭비가 아니었어.”
지끈. 지끈.…. 올리버의 머릿속에 캔트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올리버를 유인하기 위해 로스번을 데려간 걸지도 모른다는.
아무래도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아아아….. 잠이 왔다. 너무 피곤해서 두통이 점점 심해졌다.
"야, 그쯤하고 기절시켜. 일단, 마크 녀석부터 치료해야 해.”
"잠깐만. 이 새끼 재수 없는 포커페이스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어….. 왜? 너 때문에 쥐새끼가 납치당했다니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껴? 흑마법사 주제에?”
"아뇨.…. 그냥 약속을 어기는 게 찜찜해서요.”
"약속? 냉기 때문에 슬슬 정신이 나간 건가? 야, 이거 풀어. 이러다 얼어 죽겠다.”
"그럼 기절부터 시켜. 그 새끼 희귀 케이스라 아차 하면 마력 빨린다.”
"무슨 걱정이야? 네 얼음에 뒤덮여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을 텐데?”
"혹시, 로스번은 어떻게 됐죠?”
올리버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추위로 얼어 죽어가는 사람처럼 작은 목소리로.
금발 마법사는 같잖다는 듯 올리버를 보고 하! 하고 작게 웃더니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아직은 멀쩡하니….. 좋아 이렇게 하자. 널 철저하게 실험한 후, 네 특성 인자를 뽑아 그 꼬맹이에게 심어줄게. 외롭지 않겠지? 비록, 더럽게 고통스럽겠지만.”
조롱으로 날린 말이었지만, 올리버는 다른 부분에서 포인트를 잡았다.
"아직은 멀쩡하다라….. 아직은….. 감사합니다.’’
“뭐?”
금발 마법사의 질문에 올리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임프리전]
그 말과 함께 올리버의 몸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블랙 슈트가 마지막 발악을 하듯 얼음을 깨고 앞에 있는 금발 마법사를 덮쳤다.
진흙 덩어리처럼.
양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감정 덩어리의 접근에 금발 마법사는 당황하며 올리버의 허벅지에 박은 마력 칼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는 강렬한 통증.
올리버는 꾹 참으며 얼음 구속에서 풀린 상체를 열어 시험관을 꺼냈다.
[임프리전]
두 번째 임프리전은 감정이 충분해 금발 마법사를 완전히 삼킬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질량으로 밀어붙여 올리버의 허벅지에 박힌 칼을 놓치게 할 수도 있었다.
“큭-! 이런……!”
올리버는 자신의 허벅지에 박힌 마력 칼을 잡아 마법을 구성하는 술식을 느꼈다. 그리고는 대충 반대로 풀어, 그대로 소유권을 가져왔다.
"뭐, 뭐야?”
대머리를 부축하던 적발 마법사가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올리버는 방금 통제권을 가져온 마력을 사방에 있는 얼음에 넣었다.
[프리즌]
그 말과 함께 얼음의 통제권 일부가 올리버에게 넘어오며 사방에 맺혀있던 성에가 자신의 주인과 대머리 동료를 덮쳤다.
“끄으으응….”
올리버가 손수건으로 상처 난 자신의 다리를 급한 대로 꽉 묶었다.
이 상태로는 이들을 쓰러뜨린다 해도 로스번을 데려가는 게 쉬울 거 같지 않았다.
다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몸도 차갑고. 배까지 고팠다.
그러고 보니 식사한 지 꼬박 하루를 넘긴 상태였다.
'....아니, 반나절인가?’
갑자기 책방노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잠을 안 자면 인지능력과 기억능력이 떨어진다는.
잠이 왔다. 도대체 여기엔 왜 온 건지….
아무튼, 뭔가 체력 보충할 게 필요했다.
"체력 보충..…."
그 순간 올리버는 인프리전과 씨름 중인 금발 마법사를 보았다.
그의 넘치는 마력과 생명력을.
책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건지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시도해보고 말았다.
“....흐읍.”
숨을 크게 들이쉬는 올리버.
그 호흡과 함께 금발 마법사의 생명력이 올리버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와 함께 피가 멈추고, 상처가 아물며, 얼음으로 낮아진 온도가 점점 회복해갔다.
"아, 좀 낫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