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피로 (1) >
"음..…. 커피 드시겠소?”
책방 노인이 물었다.
가게 앞 탁자에 앉은 올리버는 정중히 거절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으니 그냥 드시오.”
노인이 그 말과 함께 주전자를 가져와 오래된 컵에 검은색 커피를 따랐다. 그리고는 그 위로 약간의 위스키를 따라 넣었다.
“으차..….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한 것이오?”
책방 노인이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왜 지금 내가 마법사냐고 묻는 것이오. 여태까지는 안 물었잖소?”
"여태까지는 딱히 물을 이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여쭤보고 싶은 게 생겼거든요. 느닷없이 죄송합니다.”
“호….. 궁금한 게 생겼다라 흥미롭구려. 흑마법사님께서 이 다 늙어 빠진 마법사에게 뭘 궁금할지 진심으로 궁금하오.”
"...!"
"뭘 그리 놀라시고 그러오. 늙어서 늘어나는 건 주름이랑 눈치뿐이오.”
노인이 별것 아니라는 듯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그는 이 상황에 조금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평온할 뿐이었다.
"하.…. 그래, 궁금한 게 무엇이오?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오래 살아 잡다한 지식은 좀 아오. 아는 범위 내에서 대답해 드리겠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니. 그 말은 올리버에게 작은 의문을 줬다.
찰나이긴 하지만 노인에게서 느껴진 마력은 인상적이었다.
전격 마법사, 마탑의 학생, 마력비대증 던칸을 포함해.
그의 마력은 그 누구보다 방대하고, 동시에 순수하고 차분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력을 잘 통제했고.
그런 그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니. 감정도 제대로 읽히지 않아 거짓말인지 참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평소였다면 따져봤겠지만, 올리버는 더 급한 사항이 있어 이 부분을 넘겼다.
“….혹시 마텔에 대해 아십니까?”
"마텔?.…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군. 왜 그러시오?”
"제가 아는 사람이 현재 그곳에 있습니다.”
"아는 사람 누구요?”
"혹시 제가 글 가르쳐준다고 책을 사 갔던 것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오…. 여관 일꾼. 인상적인 기억이었소. 흑마법사가 누굴 돕는다니 흥미로웠지. 혹시, 그거 무슨 실험이었소?”
".....아뇨. 정말 그냥 도와준 겁니다.”
"그렇군. 그 아이 이름이 뭐요?”
“로스번입니다. 그리고 현재 그는 마텔로 갔습니다. 학생으로 후원해준다고요….. 마텔에 정말 그런 정책을 시행합니까?”
노인은 대답 대신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음….. 반대로 묻겠소. 어떤 걸 듣고 싶소? 마음 편한 거짓말, 불편한 진실. 무엇을 듣고 싶소.”
“? ....당연히, 진실을 듣고 싶습니다.”
"호, 그렇소? 의외구만. 대부분은 마음 편한 거짓말을 원하는데.”
올리버는 이해가 가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세상 누가 진실보다 거짓을 원한단 말인가?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젊은 친구. 진실은 불편하고 잔혹해 대부분 사람은 감당도 못 하오. 결코, 허세가 아니오. 사람은 찬란한 제국은 동경하나 침략자가 되긴 싫어하듯, 모순적이지. 그래서 진실을 불편하게 여긴다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그대는 그럴 것 같았소….. 마지막으로 묻겠소. 정말 진실은 원하오?”
"예."
"그렇다면 가르쳐드리리다. 아마, 실험체로 끌려갔을 것이오.”
"실험체요?”
"그렇소. 실험체…. 혹시, 마텔에 대해 아시오?”
"대충은 들었습니다. 의료와 군사 부문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생명 학파 휘하의 연구소라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양파 겉면에 불과하오. 양파 중심은 영생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소.”
“영생요?”
"그렇소. 영생. 말 그대로 영원히 사는 것 말이오.”
순간 퍼펫의 말이 떠올랐다.
이곳 마법사들 역시 악마를 연구하고 심지어 거래까지 한다는.
"왜 영생을 연구하는 거죠?”
“? 반대로 묻겠소. 왜 영생 연구를 하느냐고 묻는 거요?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라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리는 분야인데.”
"그렇습니까?”
"아주 그렇소. 영원한 삶과 젊음은 인간의 영역에서 달성할 수 있는 걸 다 이룬 자들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건데..... 좀 당혹스럽구려. 여태까지 그런 질문을 한 자가 없었는데.”
"그렇군요..…. 근데, 영생을 연구하는 것과 로스번을 데려가는 것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죠?”
톡- 톡- 책방 노인이 자기 관자놀이를 두들겼다.
"이걸 교환하기 위해서요.”
“..…머리요?”
"정확히는 뇌. 더 정확하게는 뇌 속 정보를 바꾸는 거요.”
"뇌 속 정보요?”
"그렇소. 가령.....”
책방 노인이 올리버의 손을 잡았다.
"내 머릿속 정보를 그대 머리에 옮기는 거지. 보다시피 내 육신은 늙었지만, 그대는 젊지 않소? 만약 내 기억과 지식이 그대에게 옮겨 육체의 소유권을 빼앗는다면 난 그만큼 젊음과 생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거지.”
"가능한가요?”
"아직은 불가능이오. 뇌라는 건 인간이 수천 년간 쌓은 문명과 날씨마저 바꿔버리는 마법보다 더 복잡하고, 섬세한 물건인지라. 하지만, 실험 단계에 도달한 건 맞소.”
노인이 올리버의 손을 놓으며 말을 이었다.
"현재 생명 학파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부문이오. 인간의 육체 자체를 강화해 보려고 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로 판명이 됐거든. 그래서 편법으로 육체를 바꾸는 걸 택했소. 나 역시 그게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올리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실험 당하는 애들은 죽나요?”
"글쎄, 내가 어리석어 잘 모르겠소. 죽는 것보다 더 나쁘지 않을까 하오. 죽음은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거지만, 그건…..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아니니.”
맞는 말이었다. 마법사의 뇌 정보를 아이들에게 옮긴다고 그 원주인의 정신은 죽는 게 아니었다.
죽지도 살지도 않는 상태가 되는 거지. 도대체 그건 어떤 상태일까?
그리고 더 의문인 것은 이런 실험이 어떻게 도시 한복판에서 진행되고 있는지였다.
..…아니, 솔직히 의문은 아니었다.
이미, 마법사들이 인체실험을 한다는 것은 여기저기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
공공연한 비밀.
다만 뭐랄까.…. 음..…. 그래, 로스번이 그런 곳에 갔다고 하니 약간 이상했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아는 사람이 그곳에 있다니 느낌이 좀 달랐다.
왜 하필 로스번이 끌려갔을까?
책방노인이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예?”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었소…..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 내게 물었다는 건 신경 쓰인다는 건데. 구하러 갈 생각이오? 로스번이라는 친구 말이오.”
느닷없는 질문에 올리버가 고민했다.
“음.…. 글쎄요. 그건 좀 무리가 아닐까요? 애당초 제가 구하러 가야 할 이유도 없고요.”
"뭐, 그건 그렇긴 하지. 마탑 기관은 이 도시 공권력 위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니. 경찰도 방위군도 못 하는 걸 젊은 친구께서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애당초 구해줘야 할 의리도 없고.”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마법 학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으나, 올리버는 그 규모와 힘을 희미하게나마 추측할 수 있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인체실험을 한다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었을 거고, 아마, 힘 있는 자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던칸 같은 강자도 결국에는 마탑 경쟁에서 밀려난 자였으니.
이건 올리버가 나설 영역이 아니었다. 올리버는 말이다.
"질문에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사 오지 않았는데, 나중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일어나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이오?”
"예, 그전에 한 곳 더 들릴 생각이지만요.”
"어디요?”
"성당요.”
***
어두운 성당 안.
올리버는 졸린 눈을 비비며 하품했다.
며칠째 잠을 줄이고 새길 수차례. 이윽고 피로가 몰려온 거였다.
이토록 피곤해 본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광산을 벗어난 이후 처음이려나?
하긴, 그때는 피로라는 걸 몰랐지. 늘 피곤했으니 그게 당연한 상태인 줄 알았다.
그것이 불과 1년 전. 하지만 이제는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끼이이이——
성당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촛불을 든 사제와 온몸을 가린 여성이 들어왔다.
사제는 자리를 비켜주듯 물러나 줬고, 여성은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녀는 약간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충격이네요.”
나지막한 여성의 말에 올리버가 고개를 한번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성기사님.”
"전 그래도 당신이 진지한 사람이라고 해서 알려준 거예요. 그런데, 헤어진 지 하루도 안 돼서 절 다시 호출해요? 제가 나오는 게 쉬울 것 같나요? 당신은 도대체 절 뭐라 생각하는 거죠?”
올리버는 다시 사과했다.
"늦은 시간 갑자기 불러 죄송합니다. 성기사님. 하지만 결코 성기사님을 가볍게 생각해 부른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호기심만을 위해 부른 것도 아니고요. 부디 잠시만 제 이야기 들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올리버의 부탁에 요안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앞 좌석에 앉았다.
".....무슨 일 때문에 부른 거죠?”
"성기사님께 도움을 청할 일이 있어 불렀습니다. 정확히는 신고하는 거지만요."
"도움? .…신고요?”
"예. 마법 연구소가 한 사람을 실험목적으로 데려갔습니다. 인체실험요.”
"......."
"성기사님?”
"예?”
"아, 듣고 계시는군요. 마법사가 생체 실험목적으로 사람을 데려갔습니다. 열다섯 살 정도의 남자아이를 말이죠….. 성기사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딘가요?”
"생명 학파 산하의 마텔 연구소입니다.”
"...확실한가요?”
“? ….예, 혹시 몰라 마법사한테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 같다뇨…. 증거는 없나요?”
“예….. 증거는 없습니다. 그건 제 능력 밖인지라. 하지만 거의 확실합니다.”
"그 정도 말만으로는 조사할 수 없어요.”
“?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왜 조사할 수 없죠? 한번 알아보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뭐가 간단한 게 아니죠? 와인햄에서는 잘 수사하시지 않으셨잖습니까?”
올리버는 절대 비아냥거릴 의도로 물어본 게 아니었다. 그저 정말 궁금할 뿐이었다.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됐다.
올리버가 부탁한 것은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한 수사일 뿐인데, 이마저도 안된다는 듯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니 필거렛을 수사할 때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는데 말이다.
설마, 생체 실험보다 필거렛을 파는 게 더 큰 죄인가? ...아니, 그건 아니었다.
올리버가 상식이 부족하다고 하나, 생체 실험이 필거렛을 파는 것보다 더 큰 범죄라는 건 알았다.
윤리적으로든 뭐든 말이다.
그렇다면 성기사가 나서야 하는 일이지 않은가?
그들은 인류와 약자들을 지키는 방패이니.
이해하기 힘든 대답은 올리버의 호기심에 더 기름을 뿌렸다.
"성기사님?”
“..…란다에는 도시 협약에 따라 서로 간에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어요.”
"성기사님. 전 아이가 생체 실험당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도시 협약이 아니라요.”
"들어보세요.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
"마법사들의 일탈도 막는 것이 성기사의 일이긴 하지만, 란다는 아니에요. 교단과 란다의 협약에 따라 저희 성기사는 악마와 흑마법사에 대해 단속만 할 뿐 마법사에 대한 수사 권한은 없어요.”
올리버는 뺨을 긁적였다.
"어째서죠?”
".…복잡한 정치적 문제예요.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교단은 종교 집단이지 않았나요? 그런데 웬 정치?"
그 말이 요안나가 발끈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올리버는 교단을 욕보인 것이니, 그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요안나는 올리버의 표정을 본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평소와 같은 무덤덤한 표정이지만 어째서인지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실한 요안나마저 움츠러들게 할 정도로 말이다.
"......."
"......."
"......."
"......."
납처럼 무거운 침묵이 도래한 성당 안.
요안나를 말없이 바라보던 올리버가 침음(沈時)을 냈다.
"음..…. 성기사님?”
“..…예.”
"혹시나 해 여쭤보는 건데, 교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혼자서는 못하시나요?”
"혼자라뇨?”
"말 그대로 혼자서요. 성기사라는 신분과 성기사님의 힘 정도면 어떻게 알아보실 수 있을 거 같은데. 정 안 되면…..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요안나는 잠시 고민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불가능해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성기사님께서 마음만 먹으시면 됩니다.”
"안 돼요.”
"왜죠?”
“….그런 짓을 했다간 교단에 적발될 테고, 잘못하면 성기사직을 빼앗길지도 몰라요.”
"이해가 안 갑니다. 애당초 성기사란 인류와 약자를 지키는 방패. 어찌 제 역할을 하는 데 벌을 받죠? 설사 벌을 받는다 해도 자기 일을 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전 지금 전혀 이해가-”
“-시끄러워요!!”
요안나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어찌나 큰지 텅 빈 성당 안에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제가 성기사 일을 하지 못한다면 제 동생들은 다시 과거와 같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말 거예요! 아니면 뿔뿔이 흩어지거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들지 마세요!”
요안나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줄곧 보였던 신앙의 가면이 벗겨지고 말았다.
그녀는 흥분한 탓에 숨을 몰아쉬었고, 얼굴은 상기됐으며, 눈에는 이유 모를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웬만한 남자라면 모두 동정할 모습. 그러나 올리버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평소와 똑같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지만, 훨씬 무미건조했다.
"그러고 보니 성기사님이 성기사가 되고 나서야 고아원이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하셨죠?”
"....그래요.”
"성기사님이 자기 일을 하면 동생분들은 배가 고플 수도 있고, 추레하게 입을 수도 있고, 어쩌면 광산에 팔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마텔에 있는 아이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요안나는 입을 꾹 다물며 침묵했다.
".....경전을 읽었습니다."
"......."
이해는 안 되지만 재밌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목동과 양 이야기 읽어보셨습니까?”
"..…그만 하세요.”
"목동이 신께 기도해서 한 무리의 양을 받았지요.”
"..…그만.”
"그러던 어느 날 목동이 양을 한 마리 잃어버렸습니다. 작고 비쩍 말라 볼품없는 양을요.”
"......."
"어느 날 신께서 그 양이 어디 있냐 묻자 목동을 잃어버렸다고 대답했습니다. 찾으려고 했다간 다른 멀쩡한 양들도 잃어버리고 말거라고.…. 신께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요안나는 마치 죄를 짓는 죄책감을 지으며 눈을 꾹 감았다. 아주 괴로워하였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침묵했다.
침묵.
"하..…. 하, 하."
단 두 명밖에 없는 성당 내부에 웃음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
아주 낮고 음산한 웃음소리가.
평범하면서도 평범과 거리가 뭔 웃음소리에 요안나는 저도 모르게 올리버를 바라봤는데, 그는 웃고 있었다.
도덕, 윤리, 법, 신념, 용기, 인간성을 모두 비웃고 조롱하는 듯한 그런 웃음을.
겉보기에는 평범했으나, 바로 앞에서 보는 요안나는 결코 평범한 웃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소름 돋으며,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한순간 숨 쉬는 것마저 잊을 정도로.
올리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도 구하라.”
"....예?"
"신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목동에게. 그래도 구하라..... 이해는 안 가지만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전 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진심으로요. 갱, 장사꾼, 사제, 성기사, 부자, 빈자, 아이, 어른, 여자, 남자 모두 어려운 상황일 때 그분을 찾았거든요….. 뭐랄까 아주 평등한 분 같더군요. 그런데, 아니었나 봅니다.”
올리버가 그 말과 함께 품 안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요안나가 선물로 준 경전이었다.
"돌려드리겠습니다. 제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요안나는 거부하지 못하고 올리버가 내민 경전을 받았다.
그러자마자 올리버는 곧장 뒤로 돌아 성당 밖으로 걸어나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요안나는 왠지 두 번 다시 올리버와 마주할 일이 없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 그를 요안나가 불러 세웠다.
"지금 어디 가나요?”
“...집에 돌아가 잠이나 잘 생각입니다. 오늘 많이 피곤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