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마텔 (2) >
마텔.
마텔.
마텔.
올리버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어디서 들었더라, 귀에 조금 익은..…. 아!
"생명 학파 연구소인 마텔 말씀입니까?”
올리버가 떠올리며 질문했다.
해결사가 되기 위해 포레스트를 찾아왔을 때 그는 테스트로 마텔에서 탈출한 키메라를 잡아 오게 시켰다.
올리버는 그걸 잡아 해결사가 되었고. 바로 엊그제 같으면서도 아주 오래된 기억이었다.
"생명 뭐라고요? 제가 그런 어려운 것까지는 모르죠. 그냥 마탑 소속의 연구기관이라고 하던데요.”
아무것도 모르는 여관 여주인. 올리버가 다시 질문했다.
"학생으로 데려갔다고요?”
"예..…. 자기네들이 지금 의욕 있고, 재능있는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고요. 공익차원에서. 알잖아요. 당신 도움을 받았지만 로스번이 스스로 글을 배운 거? 그게 대단하다면서 데려갔어요.”
"아..…. 그래서 보냈나요?”
"예, 로스번도 가고 싶은 눈치였고, 그쪽에서 돈도 좀 줬거든요. 로스번이 빠져 부족해질 일손에 대한 보상이라고요. 그래서 보냈죠. 안 보낼 이유 없잖아요?”
"어..…. 괜찮은 건가요?”
"괜찮다니 무슨 뜻인가요? 혹시 제가 로스번을 돈 받고 어디 엄한 데 팔았다는 건가요?”
여관 주인이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양손을 허리에 올렸다.
“아, 제 말은-"
“-이것 봐요. 당신이 좋은 손님이긴 하지만, 갑자기 찾아와 그런 말을 하는 건 실례죠! .…뭣보다 다시 오겠다고 해놓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이제 와 훈수 두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요. 보아하니 식사하러 온 거 같지도 않은데 나가요. 남의 가게에서 시간 빼앗지 말고."
여관 여주인은 정말 불쾌한 듯 손을 내저으며 올리버를 쫓아냈다.
올리버는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탁- 하고 문 닫기는 소리와 함께 올리버는 거리 밖으로 쫓겨났다.
올리버는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여관을 바라보며 ‘음..….’하며 침음(沈峰)을 냈다.
“마텔 생명 연구소라.….”
***
"데이브 씨….?”
딸랑. 딸랑.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알이 나왔다.
그는 올리버를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잘못을 들켰다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만난 그런 표정.
"안녕하세요. 알 씨. 잘 지내셨습니까?”
"아, 예,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벌써 오실 줄은 몰라서. 사장님을 만나러 오신 겁니까?”
"예, 혹시 만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때마침 식사 중이신데 괜찮으시다면 같이 하시겠습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한동안 절약을 해야 해서요.”
올리버가 딱히 음식이 내키지 않아 그리 대답했다. 그러나 알은 다시 권했다.
"하하. 돈은 괜찮습니다. 데이브 씨 같으신 분에게는 그냥 대접해 드릴 수 있는 게 영광입니다."
자기 같은 사람이라….. 친절했다. 하긴, 알을 포함해 여기 사람들은 다 친절했지.
친절에는 친절로 대답하는 게 맞았으나, 올리버는 영 음식이 안 당겨 다시 정중히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정말로. 사실, 입맛이 좀 없어서요.”
"아.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사장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알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의 말대로 포레스트는 식당 한쪽에서 식사하고 있었다.
구운 감자를 곁들인 흰 살 생선 요리로, 하얀 소스가 끼얹어져 있었다.
술은 화이트 와인을 곁들였고.
음식을 먹던 포레스트가 올리버를 봤다. 그도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손님이군. 생각보다 빨리 왔는데?"
”죄송합니다. 일 때문이 아니라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 찾아왔습니다.
올리버가 포레스트의 맞은편에 자연스럽게 앉으며 말했다.
"물어볼 거? 일단, 같이 식사하며 이야기하지. 알?”
알이 입을 열기 전 올리버가 먼저 말했다. 정말 입맛이 없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상하게 입맛이 없어서요.”
"그런가? 식사는 큰 축복인데. 잠시만…..”
포레스트가 올리버를 살펴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잠은 언제 잤나? 좀 피곤해 보이는데?”
"음.…. 글쎄요? 밀린 일 좀 하느라 조금 밤을 새웠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 몸이 재산인 친구가….. 일단, 좀 자고 오게.”
"말씀 감사합니다. 궁금한 것만 여쭤보고 그러겠습니다.”
"하아......"
포레스트는 못 이기겠다는 듯 올리버를 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생선살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린 후 화이트 와인으로 넘기며 물었다.
"그래, 궁금한 게 뭔가?”
"생명 연구소 마텔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달그락거리던 소리가 뚝 하고 끊어졌다. 마치, 가위로 실을 자른 듯.
포레스트는 얼음처럼 1,2초 멈춰 있다 눈만 살짝 들어 올려 올리버를 바라봤다.
"마텔?”
"예. 과거 키메라를 잡아 오라고 현상금을 걸었던 마텔요.”
"음..…. 어째서 거기에 관해 묻는 건지?”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갑자기 왜?"
"......"
올리버는 대답 대신 포레스트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의 침묵은 웬만한 말보다 무겁고 설득력이 있었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포레스트마저 한발 양보할 정도로 말이다.
"생명 연구소 마텔….. 생명 학파의 지원을 받아 건설된 연구소네. 당연히 생명 학파 소속이지.”
"뭘 연구하죠?”
"생명과 마법 전반에 관해서 연구하지만, 역시 집중해서 하는 건 의료와 군사 부문이야.”
"의료와 군사 부분요? 특이하네요.”
"그리 특이하지도 않아. 서로 상반되지만, 밀접하거든. 가령, 병사들의 부상을 치료해 외과 치료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고, 군사 부분인 개조인간의 기술을 변형시켜 상류층의 육체를 더 건강하고 강하게 바꿔줄 수 있지.”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보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신기하네요.”
"그 신기한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깨달아 빨리 성장했지. 생명 학파의 도움을 받아 군에 지원해 의료 마법을 발전시키고, 이를 특허로 냈지. 그 덕분에 현재는 군사와 의료 양 분야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오..…. 대단하네요.”
"대단하지.”
"그럼, 혹시 후원 같은 것도 하나요?”
"후원?”
"예..…. 제가 아는 사람 중 한 명이 마텔 사람을 따라갔거든요. 뭐라고 했더라….. 아, 학생으로 후원을 받아서요. 마텔에서 그런 것도 하나요? 대단한 곳이니 해도 이상할 것 같지는 않은데.”
올리버의 질문에 포레스트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아주 무겁고 무거운 침묵으로.
짧고도 긴 시간이 지난 후, 포레스트가 생선을 반쯤 남긴 채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마탑에서 아이들을 후원하는 경우는 왕왕 있네. 대외적으로 이미지도 좋아지고, 괜찮은 인제를 얻을 수도 있으니. 정 안되면 잡일을 시킬 일꾼으로라도 쓸 수 있고. 그마저도 안 되는 아이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쫓아내면 되니까 여유가 되면 그리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지.”
"아하, 그렇군요. 하지만 전 마텔에 대해 여쭤봤습니다. 포레스트 님.”
“마텔..…. 물론 마텔도-”
“-포레스트 님. 만약, 거짓을 말하실 거라면 아무 말씀도 하지 말아주십시오. 포레스트 님이 그러시면 좀 슬퍼서요.”
올리버가 오른손을 심장 위에 대며 정중히 부탁했다.
그 행동이 포레스트 내부에 무슨 변화를 일으켰는지 그가 포기하며 말했다.
"하아..…. 아마, 후원은 아닐 거야.”
"그렇습니까?”
"그래, 생명 학파들은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좋지만, 실상은 마법사 우월주의와 우생학에 심취한 자들이 대다수이거든.”
“우생학요?”
"우월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은 타고난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이론이지. 대부분 마법사가 이런 이론을 가지고 있지만, 생명 학파는 그 정도가 더 심해….. 그런 그들이 누굴 공짜로 후원할 것 같지는 않네. 그게 열등종이면 더욱.”
“아.…. 그렇군요.”
올리버는 놀라기보다는 자기 예상이 적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 왜 데려간 걸까요?”
"글쎄, 내가 어찌 알겠나? 혹시 중요한 사람인가? 자네가 아는 그 사람?”
"중요요? ..…별로, 아뇨.”
올리버가 대답했다.
실제로 로스번은 올리버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머물던 여관에서 얼굴 몇 번 마주한, 그러다 글 좀 가르쳐 준 게 전부인 사람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무것도…..
애당초 소중한 사람이라는 게 뭔지 올리버는 알지 못했다.
포레스트는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듯.
“……뭐, 그렇다면 다행이군.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네. 그냥 잊어버리게.”
“예?”
"잊어버리라고, 자네가 아는 사람. 무슨 일인지 난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냥 잊게.”
"음..…. 그래도 궁금한데요. 후원이 목적이 아닌데 왜 데려갔을까요?”
"반대로 묻지 왜 궁금하나? 그리고 안다고 뭐 달라지나?”
포레스트의 말에 짜증이라는 감정이 묻어 나왔다. 그가 어느새 식사를 멈추며 대화에 오롯이 집중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처음 왔을 때 해줬어야 할 말이 있는데, 깜빡하고 말 안 해줬군. 지금이라도 말해주지.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첫 번째 규칙. 대세를 거스르지 말게.”
“대세요?”
"그래, 란다는 거대한 도시고, 거대한 흐름과 거대한 물고기가 살고 있지. 그 흐름을 거스르고, 물고기에게 덤벼들었다간 죽음을 면치 못하네. 때때로 그게 비굴하고 수치스러울지라도.”
비굴하고 수치스럽다라..…. 어째 마지막 말에 감정이 평소보다 더 들어간 것 같았다.
"마텔과 문제를 일으키고 싶나? 마탑을 배경으로 두고 의료, 군사 부문에서 영향력을 쌓은 거대 연구소를 상대로?”
"음..…. 아뇨.”
"그렇다면 관심 끄게. 때때로 모르는 척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 뭔가를 할 것도 아닌데, 왜 알려고 하나? 어설프게 아는 것은 화만 초래하네.”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포레스트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올리버를 보고 포레스트가 불러세웠다.
"올리버.”
"예?”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하지만, 혹시나 해서 말하네. 더 이상 그쪽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나랑 약속할 수 있나?”
올리버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음….. 아뇨.”
***
마지막 대답에서 포레스트는 버럭 화를 냈다.
올리버는 그런 그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설득한 뒤 도망치듯 서둘러 레스토랑을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를 방문했다.
참으로 바쁜 하루인 것 같았다.
"이런.… 무슨 일이오?”
가게를 정리 중이던 책방노인이 갑자기 방문한 올리버를 보며 물었다. 바로 어제 보고 오늘 다시 보게 됐으니.
올리버는 그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뭐, 안녕하오. 어제 봤는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겠소? ..…그런데, 그대는 아닌 것 같구려.”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닌 일은 아니다라….. 그래도 뭔가 있기는 있나 보오.”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여러모로 눈치가 참 빠른 분 같았다.
하긴, 스스로를 책방을 운영하는 별 볼 일 없는 늙은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어딘가 남다른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사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코드어에 대해 해박하며, 그 외에도 잠시만 대화하는 것만으로 박한 다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력.
올리버는 그것을 아직 잊지 않았다.
그를 처음 만난 순간 느꼈던 방대한 마력을.
1초를 수백 개로 쪼갠 듯한 찰나의 순간이지만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그의 마력은 마력비대증이던 던칸보다도 크고 방대하며 순수했다.
올리버가 봐온 그 어떠한 마법사보다도 말이다.
그에 관해 묻지 않은 건 그저 적당한 타이밍이 없었을 뿐.
하지만 아무래도 그 타이밍이 지금인 것 같았다.
"무슨 할 말 있소?”
노인의 질문에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 혹시 마법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