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25화 (125/633)

< 125. 그냥 도와주는 사람 (1) >

"으흠……."

창고 지하실.

올리버는 핑크맨 시체와 씨름하고 있었다.

블랙마켓에서 주문한 의사와 흑마법사의 시체를 받기 전에 연습이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손질 작업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끙….."

메스로 핑크맨 시체의 배를 가른 다음 일전 블랙마켓에서 산 개복기(開腹機)로 틈 사이를 벌려 단번에 팍하고 배를 열었다.

묵직하게 올라오는 피비린내. 다행히 상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빅마우스가 삼킨 시체는 썩지도 않고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올리버는 집게를 이용해 내장을 꺼냈다. 물컹물컹하고, 미끌미끌해 아차 하면 놓칠 것 같았지만, 몇 번 하니 손에 익었다.

철퍽一

올리버는 보관기능이 있는 가방 속에 방금 막 꺼낸 호흡기관, 소화기관, 해독기관을 넣었다.

듣기로 블랙마켓에서 이와 같은 장기를 구매하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흑마법 아이템이나 약을 만들 재료로 말이다.

그리 큰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저번에 돈이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는 걸 보고 이런 기관을 팔아 절약 생활을 할 생각이었다.

목숨 걸고 번 4억 란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다니. 돈을 더더욱 아낄 필요성을 느꼈다.

내장을 꺼냄으로 속이 텅 빈 시체. 올리버는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피와 수분을 흡수해 부패를 막아주는 하얀 가루를 한 움큼 집어 안에 발랐다.

하얀 가루의 정식 명칭은 조분(燥粉).

본격적인 약품 처리 전 이 과정을 거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인형사 글립의 일지에 적혀 있었다.

퍼펫은 글립이 기억도 안 난다고 했지만, 의외로 그의 송장인형 쪽에 관한 재주와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일지에 적힌 내용, 메모 등을 보면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모아놓은 돈이나, 혼자 힘으로 검은손에 들어가는 등 열정 하나만큼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올리버는 문득 자신이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인 후, 그냥 방치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보관할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그러면 지금 보조-송장인형으로 만들 재료로 써서 돈도 아낄 수 있었을 테고.

"후..…. 다음부터 조심해야지.”

올리버는 그리 말하며 금속제 도구를 들었다.

갈고리를 넓게 펼친 듯한 이 도구의 명칭은 주걱.

시체 안에 발라져 뭉쳐진 조분(燥粉)을 긁어 제거하는 용도였다.

올리버는 뱃속에 바른 조분(燥粉)을 긁어내기 전 시체를 살펴봤다.

일단, 조분(燥粉)을 바른 안은 상당히 건조했고, 시체 역시 약간 마른 느낌이 들었다.

"좋아, 여기까지는 맞고….”

메모장을 살피며 올리버가 중얼거리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됐다.

한 손으로 시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주걱을 들어 안을 긁어냈다.

단, 최대한 상처가 생기지 않게, 조심히 내벽에 묻은 조분(燥粉) 가루만 긁어냈다.

뻑뻑하게 덩어리진 조분(燥粉)을 어느 정도 제거하고 껌딱지처럼 남아있는 잔여물은 천에 세정제를 발라 일일이 제거한 뒤 시체를 들어 그대로 불부식(不腐能) 강철제 수조로 옮겼다.

시체를 옮기는 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아..…. 진짜 조수를 만들어야겠네. 아니면 내가 힘을 키우거나.”

올리버는 커다란 수조에 시체를 힘겹게 옮긴 후, 다시 그 작업을 두 번 더 반복했다.

덕분에 수조에는 어느새 3개의 시체가 층층이 쌓이게 됐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의외로 시간이 없거나 대량생산을 할 때, 그리고 그리 중요한 작품이 아닐 경우에는 시체를 이런 식으로 가공 해도 문제는 없다고 했다.

올리버는 작업하느라 땀 범벅이 된 몸을 수건으로 닦은 뒤 특수재질 장갑과 앞치마, 그리고 마스크를 썼다.

그런 다음 창고 한쪽에 놔둔 다섯 개의 약통 중 하나를 가져왔다.

시체의 방부처리를 위한 약품으로 올리버는 뚜껑을 열어 한 통을 통째로 비웠다.

꿀렁꿀렁꿀렁.

투명하지만 약간 점성이 있는 액체는 천천히 수조를 채워 시체를 삼켜갔다.

수조를 가득 채웠을 때, 묵직한 물건으로 시체를 눌러 완전히 가라앉히게 한 뒤.

올리버는 자명종에 시간을 맞춰 주변을 이리저리 정리하고 휴식 시간을 가졌다.

이제부터 두 시간 동안 담근 후, 다시 꺼내 말리고, 다시 또 두 시간을 담가야 했다.

이 작업을 세 차례 해야만 부패하지 않고, 송장인형으로서의 내구성과 유연성을 가진 시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이게 기본 작업이라니..….

"왜 보조가 둘, 셋은 있어야 하는지 알겠네.”

올리버가 그리 말하고는 벗어놓은 옷을 뒤져 담뱃갑을 꺼냈다.

진짜 담배는 아니고, 필거렛이 든 담뱃갑으로, 당연히 마리 일행이 만든 필거렛 기프트였다.

올리버는 혹시나 해 필거렛을 한 개비 꺼내 살펴봤다.

과거 니나에게서 받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분노와 모성애, 어느 정도 상반되는 두 감정이 절묘하게 섞여 있었다.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에 물고 불을 붙여봤다.

필거렛을 펴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그러나 아쉽게도 올리버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뭐라고 할까….. 취향에 맞지 않았다. 아니, 맞다, 안 맞다를 넘어 어떤 ‘느낌’이랄 것을 받지 못했다.

처음 피웠을 때, 그러니까, 스승인 조셉의 감정으로 만든 필거렛을 피웠을 때는 엄청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필거렛을 타고 느껴지는 조셉의 감정을.

놀라웠던 것은 단편적인 감정의 조각이 아닌 조셉이 여태껏 살아오며 축적된 감정과 그 기억이 다 느껴졌다는 건데.

어떠한 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필거렛을 피던 그 순간 조셉의 대략적인 삶과 그가 느꼈던 강렬한 감정,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열망, 목표가 실루엣처럼 간접적으로나마 만끽할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올리버는 조셉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몸속에서 몰아치는 그 강렬한 감정의 파도란, 올리버에게 형용할 수 없는 충격과 기쁨을 줬다.

마치 진실로 살아있는 듯한..….

하지만 이 필거렛에서는 그걸 느낄 수 없었다.

제조법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재료가 문제일 뿐.

그러자 자연스럽게 옷 쪽으로 시선이 갔다.

저 옷 안에는 던칸에게서 추출한 아름다운 빛으로 만든 필거렛이 있었다.

그것도 자그마치 2개비나.

순간 고민이 들었다. 지금 피울지 말지.

자그마치 2개나 있었다. 그러니 하나만 피워도 되지 않을까? 딱 하나만.

"......."

침묵하며 고심해 빠진 올리버.

뭔가를 결심하듯 움직이려는 찰나 따르르르르르릉一! 자명종 시계가 울렸다.

날카롭고 높은 알람 소리는 매몰되어 있던 올리버의 정신을 깨웠다.

"...!"

자명종 위쪽 작은 망치가 양쪽의 거대한 종을 때렸다. 정신을 차린 올리버는 양 눈 사이를 주물렀다.

에디스의 일을 끝마치고 할 일이 많아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아무래도 그 탓에 피곤해진 모양이었다.

달칵-

올리버는 자명종을 끄고 다시 장갑과 마스크를 낀 뒤 방부액에 잠겨진 시체를 꺼냈다.

손잡이가 달린 갈고리로 시체를 찍지 않고 걸어 꺼낸 후, 미리 바닥에 깔아놓은 방수포 위에 널브러뜨렸다.

세 개 전부 다 말이다.

올리버는 메모지와 함께 시체를 살펴보았다.

방부액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피라던가 잔여물이 남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봤을 때 메모지에 작성된 것처럼 탄탄함도 가지고 있었다.

상당히 순조로웠다.

건조 후 올리버는 시체를 다시 들어 수조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다음 던칸-필거렛이 있는 옷을 잠시 바라보고는 미친 듯이 몰아치는 유혹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그래, 조금만 더 참자. 더 좋을 때가 있을 거야.”

***

몇 시간에 걸친 시체 손질을 마친 후 올리버는 양복 대신 평범한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일을 하러 가는 게 아니기도 했지만, 지금 갈 곳은 양복을 입고 찾아가면 몹시 눈에 띄기 때문이었다.

목적지는 다름 아닌 X구역 안쪽에 위치한 한 체육관.

근처에만 오면 어딘지 알 수 있을 거라는 조의 말처럼 확실히 체육관은 눈에 띠었다.

잘라놓은 식빵처럼 낮은 천장에 옆으로 넓게 펼쳐진 창고 같은 건물은 여러 잡동사니로 덧대 허름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안에는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런닝만 입을 채 운동하고 있었다.

대부분 근육질에 몸이 좋았으며, 폭력을 업으로 삼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여기서 조가 만나자고 했는데, 그와 꽤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너 누구야? 여기 사람 아닌 거 같은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대머리 사내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올리버가 내려다봐야 할 정도로 키가 작았으며, 어깨가 매우 넓고, 몸은 두꺼웠다. 특히 팔은 돌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는 팔처럼 단단한 눈으로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이봐, 누구냐니까?”

"안녕하십니까. 데이브라고 합니다. 사람을 만나러 왔습니다.”

"허.…. 인사성 밝은 친구네? 언제 여기가 약속 장소가 된 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죄송합니다. 조가 여기서 만나자고 했거든요.”

그러자 남자의 표정이 변했다.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조? 혹시 더벅머리에 늘 뚱한 표정을 짓고, 사람 죽일 때 너클 끼는 조?”

"어…. 아마 맞을 겁니다. 별명이 너클 조입니다.”

"그럼 맞네! ..…근데, 조랑 무슨 사이야. 샌님처럼 생겨 조랑 친구 같아 보이지는 않은데. 혹시, 삥 뜯기는 사이인가?"

대머리 사내가 이죽이죽 웃으며 말했다.

"어.……. 혹시 농담하시는가요?”

“..…허! 재밌군. 맞아. 농담이야. 겁쟁이는 아니구먼. 좋아, 좋아. 따라와 내가 안내해주지.”

사내는 이를 보이며 웃은 뒤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며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올리버는 그를 따라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땀이 수증기처럼 꽉 차 있었다.

"끄아아아악!”

“병신아! 똑바로 들어! 이 패배자 자식아!!”

“하나. 하나. 하나.”

"숫자 제대로 헤아려 개썅놈아..…!”

"쉬지 말고 계속 치라고 병신새끼야! 또 지면 널 그냥 해체해서 팔아버리려니까.”

사방에서 쇳소리와 바람을 가르는 소리, 샌드백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가운데서 욕설을 뱉으며 격렬하게 운동했고.

마치 싸우는 것처럼 악에 받친 상태였다.

처음 보는 활기찬 광경에 올리버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여어! 다들 파이팅이 넘치는구만! 크크크.”

운동하는 사람 중 몇몇은 고개를 돌려 대머리 사내에게 인사했다.

"아, 나오셨군요. 관장님.”

"그래, 내 새끼들은 하루라도 쉬는 걸 못 견디거든.”

대머리 사내가 자기 알통에 키스하며 대답했다.

"근데, 저놈은 뭡니까? 샌님 같은데?”

"나도 아까 전에 만나서 정확히는 몰라. 조랑 만나기로 약속했다던데?”

"조요? 그놈 삥 뜯는 거 옛날옛적에 졸업했잖습니까?”

"나도 몰라….. 어이, 저기 있네.”

대머리 사내가 체육관 구석에서 샌드백을 치고 있는 조를 가리켰다.

조가 주먹을 한번 내지를 때마다 무엇인가가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앙一! 타앙一! 타앙——!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육체의 힘.

올리버가 느꼈다시피 그는 흑마법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강한 사람이었다.

조가 특유의 독특한 스텝을 밟으며 순간 속도를 높여 있는 힘껏 샌드백을 때렸다.

따앙——!

체육관 내부를 울리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샌드백에 구멍이 생기며 그 사이로 모래가 촤악 쏟아졌다.

몇몇 이들은 감탄하는 미소를 지었다.

운동의 거의 끝났다고 판단한 건지 대머리 사내가 조를 불렀다.

"조!”

웃통을 벗은 채 땀을 흘리는 조가 고개를 돌렸다.

"그거 네가 물어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널 찾는 손님이 왔다.”

손님. 그 단어에 조는 그제야 대머리 사내 옆에 있는 올리버를 봤다.

놀란 표정을 지으며 시계를 확인하더니, 달려와 물었다.

"왜 벌써 온….. 겁니까?”

"급한 일 끝나면 오라고 하셨잖습니까?”

덤덤한 올리버의 태도에 비해 조심스러운 조의 태도. 심지어 어색하게나마 조가 존댓말을 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그게 적잖은 충격인 듯했고,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더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굳이 존댓말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위아래는 확실히 해야..…."

"전 그냥 잠시 가르쳐주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 선생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허리를 살짝 숙여 대머리 사내와 눈높이를 어느 정도 맞추며 말했다.

대머리 사내가 놀란 얼굴로 조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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