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21화 (121/633)

< 121. 너클 조 (1) >

"정말 싸울 때 마력을 추출했나?”

갑작스러운 질문. 그냥 물어본 것 같지는 않았다.

"예, 그렇습니다.”

"후..…."

대답을 들은 포레스트는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걱정하는 감정을 빛내며 말이다.

"미리 듣긴 했지만, 그래도 놀랍군…. 설마 자네가 희귀 케이스일 줄이야. 왜 말 안 했는지 물어봐도 되나?”

"저도 제가 희귀 케이스인 줄 몰랐으니까요. 그보다 희귀 케이스란 게 구체적으로 뭐죠? 마력을 뽑는 흑마법사를 지칭하는 단어인가요?"

"뭐, 그런 셈이지. 그 외에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 특성을 가진 이들을 총괄하는 단어이기도 해.”

"연구요?”

“그래.…. 상황에 어울리지 않지만, 퀴즈 하나 내도록 하지. 누가 희귀 케이스라고 명명했을 것 같나?”

그 질문에 올리버는 에디스의 말이 떠올랐다. 상상력이 없는 놈들부터 죽어 나간다는.

"음..…. 마법사요?”

"정답이야. 마력을 뽑는 흑마법사, 마력비대증, 마력무생성증, 특수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혹은 지능이 높은 오거, 날개 달린 돼지 등등 보기 드물고 연구 가치가 있는 것을 통틀어 희귀 케이스라 칭하지. 개중에는 연구가 어느 정도 된 것도 있지만, 여하튼 자네의 경우도 거기에 들어가네.”

올리버는 관심을 보였다.

"마력을 뽑을 수 있는 흑마법사가 또 있나요?”

"적긴 하지만 있지. 왜 자네 같은 친구들이 있어 실망했나?”

"아뇨? 오히려 기쁩니다. 그 사람들한테 뭔가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는 사람도 없고, 만날지도 모르며, 그쪽에서 가르쳐줄지도 의문이지만, 올리버는 벌써 배울 예정이라는 듯 말했다.

어린애처럼 해맑기까지 했다.

포레스트는 뭐라 말할 생각도 들지 않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아, 그래서 에디스 님께서 경고해주신 건가요?”

"뭐가 말인가?”

"그분께서 제가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외로운 늑대는 표적이 되기 십상이라고 말이죠.…. 마법사를 조심하라는 뜻일까요?”

"아마 그럴 거야. 마법사들은 지식이 곧 힘. 연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양심도 개의치 않지.”

틀린 말 같진 않았다.

오염구역 지하의 끔찍한 실험실이 있었으니.

근래에는 퍼펫이 사용했지만, 그 원주인은 엄연히 마법사.

심지어 악마와도 거래하고 연구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퍼펫의 말이 전부였지만, 왠지 거짓은 아닐 거 같았다.

그러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마법사와 흑마법사의 차이점이 도대체 뭘까?

마법과 흑마법. 학문의 메커니즘도 똑같고 행동하는 것도 별반 차이가 없는데 말이다.

올리버가 생각에 빠진 사이 포레스트가 대뜸 말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예?”

"마법사.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이따금 막 나가는 치들이긴 하지만 바보는 또 아니야. 다짜고짜 자네를 납치하지는 못할 거야."

포레스트가 뭔가를 착각했는지 올리버를 안심시켰다.

올리버는 일단 가만히 들었다.

"이 도시는 여러 세력의 협력과 견제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중개인 조합도 미약하게나마 그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 비록 자네가 정식 소속은 아니지만, 나와 거래를 하고 있고, 근래 이름도 알리고 있으니. 마법사라도 자넬 함부로 납치하진 못할 거야.”

"그거 다행이네요.”

"다만, 그와 별개로 자네 역시 조심해야 하네.”

"조심하라고 하시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별거 아니야. 마법사들에게 트집거리를 주지 말라는 거네. 저쪽에 먼저 명분을 주면 중개인 조합도 도와주기 힘들거든. 상황을 지켜보다 슬그머니 발을 뺄 수도 있어.”

아하. 중개인 조합이라 해도 마법사들을 상대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하긴, 이 도시에서 마법사의 위상은 남달랐으니.

"알겠습니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해해줘서 고맙네. 이 도시의 평화는 아홉 살짜리 아이들의 자존심 싸움처럼 유지되고 있어 늘 아슬아슬하거든. 그래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몸을 사려야 해.”

포레스트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마 처음 이곳에 온 올리버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테지만, 지금은 살짝이나마 알 거 같았다.

이 거대한 도시는 유치하고, 사소한 부분이 있었다.

특히, 에디스 건에서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재밌었다.

수많은 건물과 자동차, 사람이 모여 사는 이 거대한 도시의 평화가 그런 감정으로 유지되다니.

뭐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여하튼 재밌었다.

올리버는 보수로 받은 무기명 통장과 명함, 그리고 책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으시다면 이만 일어나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 어차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니. 난 그사이 괜찮은 일이 있는지 찾아보지. 혹시, 원하는 일이나, 보수 같은 거 있나?”

원하는 일이나 보수라…….

"당장 뭐라고 대답하기 힘들군요.”

"그럴 것 같았어. 그럼, 일거리는 내가 대충 골라놓지. 혹시, 중간에라도 생기면 연락해서 말해줘. 최대한 맞춰 놓을 테니.”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정중히 인사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

올리버가 포레스트의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약 삼십 분 후.

종업원인 알이 사무실 문을 두들겼다.

똑- 똑-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자 알은 부드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고 포레스트를 바라보았는데, 그는 수많은 서류와 씨름하고 있었다.

모두 의뢰서로, 그 서류 중 30%는 데이브 앞으로 온 직접 의뢰였다.

“…사장님.”

"그래, 무슨 일인가?”

"양고기가 떨어져 다시 주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주문해두게. 늘 주문하던 거기서 하고. 양고기 맛이 일품이니.”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수표는 어찌할까요? 슬슬 대답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들은 포레스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 마른세수를 했다.

수표란 다름 아닌 이틀 전 찾아온 마텔 연구소 관계자가 준 것으로.

그는 먼 거리임에도 구태여 찾아와 간단한 식사를 하곤, 포레스트에게 수표를 건넸다.

음식 맛이 좋아서 준 것이라 했지만, 포레스트는 이것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았다. 물론, 그쪽도 그것을 알 테고.

이 바닥은 눈치로 대화했으니.

그 수표는 일종의 인사였다.

자신들이 데이브를 납치할 건데, 눈감아 달라는.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자신들의 힘을 믿는 오만한 행동.

포레스트는 이에 대답해야 했다.

사실 어떤 식으로 대답하든 그들의 행동을 쉽사리 바꿀 수 없을 테지만, 최소한 이쪽의 다음 대응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포레스트는 서랍 안에 폭탄처럼 고이 모셔둔 수표를 꺼냈다.

수표에는 고작 3억이라는 금액과 함께 마텔의 M사인이 적혀 있었다.

포레스트는 결심한 듯 정중히 거절하는 편지를 쓰곤, 수표와 함께 편지지에 넣었다.

"이거 우체국에 붙이고 오게. 특급배송으로.”

알은 정중히 편지 봉투를 받으면서도 불안한 듯 되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알의 질문은 얼핏 비겁해 보이나 실로 상식적인 것이었다.

마텔에서 준 수표는 인사이자 통보.

결코, 포레스트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했다. 그들은 이 도시에서도 나름 알아주는 강력한 집단이었으니.

막대한 자본력과 생명 학파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수많은 특허권으로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마법사 우월주의와 우생학에 심취한 자들이었지만, 강력한 힘을 지닌 그들의 제안에 거절하는 건 실로 위험했다.

경우에 따라 이 바닥을 떠야 하거나, 목숨을 잃을지도…..

이 도시에서 강자를 거스르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었으니.

허나, 그럼에도 포레스트는 처음의 선택을 고수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그들이 조금이나마 조심할 테니.

만약에 두렵다고 대답을 미루면 그때 가서는 누구에게도 도와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침묵은 동의나 다름없으니.

그렇기에 바로 지금 대답해줘야 했다.

"혹시, 가게가 망해도 걱정하지 말게. 최소한 퇴직금은 제대로 챙겨주고 일자리도 알아봐 줄 테니.”

"그런 뜻으로 여쭤본 것이 아닙니다. 사장님.”

포레스트는 알을 봤다. 붉은 피부의 알을.

"물론, 알지…. 우체국 좀 갔다 와 주겠나?”

"예."

알이 정중히 머리를 숙여 대답했다.

알이 나가고 다시 혼자 남게 된 사무실 안.

포레스트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솔직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마법사들의 경쟁도 내외적으로 심할 때라 아무리 생명 학파라 해도 함부로 행동하기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닐 터였다.

거기다 데이브는 현재 이름을 급속도로 알리는 해결사. 보는 눈이 많아 대놓고 납치할 수 없었다.

이름 없는 해결사였다면 중개인 조합도 못 본 척 넘어가겠지만, T구역을 넘어 전 구역에서도 이름을 알리고 있으니 중개인 조합도 그런 막장 사태가 일어나면 가만히 있지는 못할 터였다.

그런 꼴을 당하면 체면도 말이 아니고, 더 나아가 신용을 잃어 사업 자체가 주저앉을 수 있었으니.

하지만 그것만 믿기에는 이 도시는 위험했다. 음지뿐 아니라 양지까지.

그래서 포레스트는 의뢰 서류를 살펴봤다.

이중 최대한 조건이 괜찮은 의뢰를 추려 힘 있는 고객과 데이브를 연결해줘야 했다.

그렇게 다져진 인맥이 데이브와 자신을 지키는 방패가 돼줄 것이다.

근래 그 친구 덕분에 단순한 수입을 넘어 중개인 조합에서의 위상까지 높아졌으니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래, 당연한 거고 말고. 결코, 캔트에게 빚 갚는 게 아니야.”

***

"너 이 씨발 새끼 뭐세요?”

에디스가 알려준 블랙마켓 한구석.

올리버는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됐다.

이들은 약을 취급하는 약장수로, 올리버가 기프트에 대해 몇 가지를 질문하자 그게 영 못마땅했는지 둘러싸 살벌하게 노려봤다.

어디서 기프트를 구한 건지 질문한 게 이토록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줄이야.

"왜 대답을 안 하고 지랄이세요? 기프트를 어디서 샀는지 왜 물어봤어요? 어서 대답 안 하실래요. 씨발아.”

해골처럼 삐쩍 마른 남자가 재차 물었다.

그 역시 흑마법사인 듯했다.

그의 직원들로 보이는 덩치들이 어느새 쇠파이프를 들고 올리버를 노려봤다. 여차하면 휘두를 기세.

소란을 일으켰다간 소개해준 에디스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올리버는 정중히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혹시 제가 불쾌하게 해 드렸나요?”

"불쾌? 하..... 나. 돌겠네. 야, 너 어디서 왔어? 루디 그 개새끼가 보낸 거 맞지?”

"루디가 누구시죠? 어찌 됐건 죄송합니다. 그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여쭤본 거뿐입니다.”

"와..…. 뭘 확인하고 싶은데?”

"그게 개인적인 일이라 말씀드리기가 좀 그러네요.”

"아하….. 그럼, 말하고 싶은 생각 들게 해 줄게. 얘들아?”

그 말과 함께 덩치들이 올리버의 양 겨드랑이 밑에 팔을 넣어 붙잡았다. 심지어 쿼터스태프마저 빼앗으려고 했다.

"이것도 실례-”

- 꽈악.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꽉 잡았다.

제법 힘이 좋아 보이는 직원이 빼앗으려고 몇 번 당겼지만, 쿼터스태프는 올리버의 손에서 좀체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직원이 화가 난 듯 올리버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안 놔?”

“…죄송합니다. 선물 받은 물건이라서요.”

그 순간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다시 한번 정중히 말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기프트에 대해 알려주실 수 없으면 그냥 이대로 물러나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장사하시는데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해골처럼 생긴 사내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더니 후- 하고 뱉었다.

"너..…. 그냥 보내면 안 되겠다.”

그와 함께 사내가 뭔가 하려고 했다.

"이런, 맞네.”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 동시에 귀에 익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양복 차림에 지저분한 더벅머리를 기른 너클 조를 볼 수 있었다.

올리버가 조를 보며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조. 오랜만이네요.”

"그래, 오랜만이네…..”

해골처럼 생긴 사내도 조를 아는지 물었다.

"뭐야? 아는 사이야?”

"그래.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 손 놓는 게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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