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일이 끝나고 (2) >
"울랄라……. 이 멋쟁이는 누구죠?”
정보상 코코가 사무실에 들어온 올리버를 보며 말했다.
책상 너머에 앉은 포레스트도 맞장구쳤다.
"제법 잘 어울리지?”
"제법요? 이 정도면 파티장에 파트너로 데려갈 수 있겠는데요. 양복이 꽤 잘 어울려요. 데이브 씨."
코코의 말은 진심이었다.
올리버 본인은 잘 모르는 눈치였지만, 그는 양복이 썩 잘 어울렸다.
이 양복을 골라준 제인에게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칭찬 감사합니다.”
"진심이에요. 그나저나 꽤 현명하네요? 실례긴 하지만 그런 쪽 머리는 안 돌아갈 줄 알았거든요.”
"예? 무슨 말씀인지?”
"아, 아닌가요? 전 요즘 이름을 알리셔서 거기에 맞게 복색을 갖춘 건 줄 알았죠.”
해결사로서 이름값이 높아진 것과 복장이 무슨 상관인가 싶었지만, 다행히 포레스트가 알려줬다.
"이름이 알려지면 높으신 분들이 의뢰하러 오고, 보통 이때쯤 복장이라던가 외모 같은 걸 가꾼다네. 이 사업이 좀 특수하긴 하지만 결국 사업. 고객에게 믿음직한 이미지를 줘야 하거든.”
"아..…."
또 알게 된 새로운 사실. 올리버가 물었다.
"그렇군요. 그럼, 저도 그렇게 해야 하나요?”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야. 안 그러는 이들도 꽤 되니.…. 다만, 원활한 교섭과 의뢰인과의 친분을 다지기 위해서라면 하는 게 좋지. 일종의 예의거든.”
"맞아요. 옷차림은 예의죠.”
코코가 어깨를 으쓱이며 동의했다.
말 자체는 전부 진심이었고, 논리적으로도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조나단이라는 핑크맨 역시 깔끔한 양복을 입고 여태껏 만난 사람 중 정중한 편에 속했다.
여러 거물과 친분을 맺어 블랙마켓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올리버도 이를 따르는 게 좋을 듯했다.
"알겠습니다. 옷차림에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포레스트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코코는 가슴골 사이에서 명함을 하나 꺼냈다.
"혹시 옷이 필요하시면 여길 방문하세요.”
올리버가 명함을 받아들였다.
명함에는 <포 더 젠틀맨>이라는 글귀가 박혀 있었다.
"남성 양복 전문점이에요. 값을 조금 비싸지만, 이왕 입을 거 제대로 챙겨 입으셔야죠. 결코, 제가 돈을 투자해서 여길 소개하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고요.”
올리버는 명함을 살펴보곤 품 안에 넣었다.
아서에게서 받은 노동조합 명함과 함께 말이다.
"전 옷에 대해 잘 모르는데, 괜찮나요?”
"물론 괜찮죠. 그런 걸 대신해주기 위해 돈을 받는 거니. 제가 소개해서 왔다고 하면 신경 써서 해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돈 좀 써줘요. 부자들이 써야 그 밑에 가난한 사람들이 빵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죠. 이게 최근에 정립된 이론이었는데, 구체적으로 뭐였죠?”
"낙수 이론. 부자들 세금을 낮춰야 한다는 쪽에서 주장한 이론이지.”
포레스트가 대답했다. 그는 썩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자, 가벼운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그럼 바로 일 이야기로 들어가지. 가장 중요한 단계이니.”
그 중요한 단계는 다름 아닌 보수를 받는 것으로, 코코도 이를 부정하지 않듯 옆의 짐을 하나씩 들었다.
"예, 당연하죠. 유종의 미를 거두는 거니. 음..…. 데이브 씨. 괜찮으시면 앉아주시겠어요?”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코코는 리본으로 포장한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건 뭐죠?”
"직접 열어보세요.”
시키는 대로 상자를 건네받아 열어봤다.
꽤 가벼웠다. 상자를 열어보자 안에는 통장과 인장이 들어 있었다.
"무기명 통장이에요. 골드 스미스 은행이라면 어디든 사용 가능하며 자금의 출처도 추적당하지 않죠. 현금이나 다름없으니 편하게 쓰세요."
통장. 들어나 봤지,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유는 올리버 본인도 모르나 통장을 안 만들고 현금만 썼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먹보 주머니가 있으니 다량의 현금이 있어도 딱히 불편하지 않았으니.
허나, 통장도 하나 있어도 나쁠 거 같지 않았다.
"음?"
통장을 살펴보던 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왜 그러시죠?”
"이거 액수가 이상한데요?”
통장에 적힌 금액은 단 한 줄이었지만, 액수는 상상을 초과했다.
£400,000,000
"저도 이상해서 에디스 님에게 물어봤어요. 이 액수가 맞다더군요. 그 뭐라고 했더라..…. 자기는 빚지는 게 싫다고 말씀하셨어요."
올리버는 에디스를 떠올렸다.
마지막에 스스로 대답을 포기함으로 이야기를 끝낸 그를.
괜찮다고 했지만, 어지간히 마음에 걸린 눈치였다.
"꽤 대단하시네요.”
"예? 무슨 말씀인지요?”
"에디스 님께서 데이브 씨를 꽤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요. 이런 식으로 보수를 지급하는 분이 아니거든요. 아, 참고로 중개 수수료는 따로 지불했으니, 온전히 가지시면 돼요.”
올리버가 포레스트를 봤다. 그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다음 선물요.”
이번에도 코코가 리본으로 장식한 상자를 내밀었다.
안을 열어보자 싸인을 한 명함이 나왔다.
"블랙마켓이 있는 곳과 거기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이에요. 주로 약을 취급하는 곳이죠.”
"약?"
포레스트가 살짝 놀라며 올리버를 봤다.
"이거 놀랍군. 설마, 약을 하나?”
"아뇨, 그냥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머, 뭔가 재밌게 들리네요. 약을 파는 블랙마켓에서 알아볼 게 있다니….. 뭐죠?”
올리버가 코코를 봤다. 그녀는 진심으로 궁금해했고, 그건 포레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음……. 나중에 말씀드려도 될까요? 조금 개인적인 일이라.”
개인적인 일. 그들은 그 단어에 더 흥미를 느끼면서도 굳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흥미를 조절할 줄 아는 거였다.
"그럼 어쩔 수 없죠. 각자의 사정을 존중해줘야 자랑스러운 란다 사람이라 할 수 있죠. 그럼, 다시 일 이야기로 돌아가도 될까요?”
올리버는 명함과 통장을 품 안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코코가 건네준 상자는 다른 상자와 달리 꽤 불길해 보였다.
검은 상자에 검은 리본.
취급 주의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 책이에요.”
"그 책이라면….. 그 책이군요.”
올리버가 악마라는 단어를 일부러 피하며 말했다.
악마와 관련된 물건은 모두 금기 품목으로, 소유하거나 거래하는 것만으로 중범죄라고 했다.
"예, 죄송하지만 이 물건은 나중에 혼자 있을 때 확인해주시겠어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에 관한 서적은 법적인 것을 넘어 미신적인 부분에서도 불길하기 그지없으니.
"물건은 확실하다고 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올리버는 그 말을 믿었다. 에디스는 조금 특이하긴 해도, 약속을 어길 사람같지는 않았다.
확인은 집으로 돌아가 혼자 있을 때 해도 무방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리 가져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 기뻐라. 보통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 잘 없는데. 목에 힘을 딱주며 침묵하거나, 보수가 짜다고 투덜거리기만 하지.”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 늘 긴장하고, 두려워하니 예민할 수밖에.”
포레스트가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올리버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감정의 흥미로운 점이라면 연결성에 있었다.
서로 반대되거나, 상관없어 보이는 감정도 사실 서로에게 긴밀한 영향을 줬다.
기대가 있기에 실망이 있고, 열등감은 분노로 변하며, 두려움은 경계심과 공격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흡사, 거미줄.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경우는 너무 많았다.
가령, 올리버가 대부분 인생을 보냈던 고아원과 광산에서도 쉬이 볼 수 있었다.
고아원의 꼬마 대장은 늘 자기 자리가 위협당할까 두려워 누구보다 포악하게 굴었고,
광산 감독관은 상사에 대한 두려움과 열등감, 초조함을 해소하기 위해 올리버 같은 아이들에게서 어떻게든 우월함을 맛보려고 했다.
어쩌면 그런 탓에 감정을 과도하게 추출하면 해당 감정뿐 아니라 감정 전체가 바닥을 보이는 걸지도.
그때, 코코가 올리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데이브 씨는 누구보다 용감하신 분이겠네요. 여태까지 겁을 내거나, 화를 낸 적도 없이 늘 한결같이 예의 바른 분이니까….. 어머, 소설책에서 이런 거 봤어요. 강자의 여유라고. 그런 건가요?”
코코의 질문에 올리버가 갸우뚱거렸다.
"강자의 뭐라고요?”
올리버의 대답에 코코는 피식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하튼 이번 건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저희도 자세한 내막은 들어 올리버 씨가 얼마나 큰 힘써주셨는지 알아요. 진심으로 감사해요.”
"제 할 일 했을 뿐입니다.”
코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다시 가슴 사이에 손을 넣어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검은 고양이>라는 글귀가 박혀 있었다.
"저희 시스터후드에서 운영하는 가게예요. 만약에 생각 있으시면 와주세요.”
"놀랍군. 담당 중개인이 눈앞에 있음에도 그런 제안을 하다니.”
포레스트의 빈정거림에 코코가 웃었다.
"이해해 주세요. 포레스트 님. 약간의 뻔뻔함은 여자의 매력이잖아요? 아니면, 포레스트 님도 같이 오세요. 두 분이 같이 오면 가게 직원들이 찐한 서비스도 해줄 거예요.”
"그렇다면 이해할 수밖에.”
포레스트의 대답에 코코가 빙긋 웃더니 이만 물러나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붙잡으며 올리버가 물었다.
"저기, 코코 씨.”
"예, 무슨 할 말이라도?”
"찐한 서비스라는 게 구체적으로 뭐죠?”
"......."
***
"자네가 잘못했네.”
포레스트가 올리버를 타박했다. 마지막 한마디 때문에 코코와의 만남이 엉망이 된 건데,
찐한 서비스가 뭐냐고 묻자, 그녀는 대답을 망설이더니 고개를 저으며 나갔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심지어 대답도 안 해줬다.
"제가 뭘 잘못한 거죠?”
"그런 종류의 농담은 여자가 남자한테는 해도 되지만, 남자는 여자한테 하면 안 돼.”
"전 농담 안 했습니다.”
"찐한 서비스가 뭐냐고 물어봤잖아? 심지어 구체적이라는 단어까지 덧붙여서. 뭘 노린 거야?"
"말 그대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달라는 뜻입니다.”
"하..…. 관두지. 어쨌건 자제해. 자네가 그런 친구인 줄은 몰랐어.”
뭘 자제하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상 이야기해 봐야 풀리긴커녕 더욱 엉킬 것만 같았다.
"그건 그렇고. 일단 확인차 묻는 건데 일은 할 건가?”
올리버는 잠시 고민했다.
"아뇨. 잠시 쉬려고 합니다. 혹시 곤란한가요?”
"전혀.”
포레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큰 건하고 쉬는 게 보통이야. 컨디션을 회복하고, 부상도 치료하며, 그사이 유흥도 즐기기 위해. 하지만 자넨 그런 쪽은 아닐 거 같군.”
"아뇨, 저도 비슷합니다. 좀 쉬면서 실험이나 공부 좀 해보려 합니다. 개인적으로 알아볼 것도 있고요.”
"알아볼 거라면 아까 전 블랙마켓?”
"예.”
"그렇군. 묻지 않지. 개인적인 일 같으니. 다만, 조심하게.”
"조심요?”
"블랙마켓이 크라임 펌이나 기타 세력에 의해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재래시장은 아니니. 물건을 사는 거라면 몰라도 뭔가 뒤를 캐는 분위기를 풍기면 좋아하지 않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즉, 소란 일으키지 말라는 거였다.
"예, 알겠습니다.”
"비싸긴 하지만, 블랙마켓의 정보상이나, 시스터후드에게 부탁하는 방법도 있어, 정 안되면 내가 대리로 헤임달에 부탁해 줄 수도 있고. 그냥 말하는 거니 혹시 생각이 바뀌면 말하게.”
진짜였다. 포레스트는 무슨 속셈이 있는 게 아닌 진심으로 올리버를 위해 한 말이었다.
"친절하시군요. 감사합니다.”
"친절? 그건 아니니 감사할 필요 없어….. 혹시 오면서 뭐 느낀 거 없나?”
“음…. 사람들이 절 보는 것 같더군요.”
"앞으로 더 심해질 거야."
"예?"
"오염구역에서의 일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거든. 애당초 이쪽 바닥에 비밀이 드물긴 하지만.”
"그건 알 씨에게 들었습니다.”
"그럼 던칸을 죽여서 소문이 더 빠르게 퍼지는 것도 알겠군. 지금은 잊히긴 했지만, 한창 현역 시절에는 나름 알아주던 자이니. 특히, 어떻게든 이기는 집요함으로 유명했지.”
이해했다. 던칸은 꽤 강한 자였다. 흡사, 송곳.
겉보기에 화려하지 않지만, 상대방의 목숨을 끊는 치명성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거기에 흑마법사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성법이 깃든 아이템까지 챙겨 올 정도로 집요하고 치밀했다.
애당초, 마력을 뽑아내지 못했다면 죽은 건 올리버였을지도 몰랐다.
"그 외에도 마총의 니나와 드루이드 스콧의 배신까지 대응하고..…. 혹시 질문 하나 해도 되나?”
"질문요? 예, 말씀하십시오.”
"정말 싸울 때… 마력을 추출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