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던칸 (4) >
마법.
그것은 신의 선택을 받은 소수만이 사용할 수 있는 학문.
혹자는 말한다. 그것은 오만이라고, 마법사 역시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마법사들이 한 업적은 감히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는 정치인, 경제인, 이제는 왜 있는지조차 모를 왕족, 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죽하면 위대한 신조차 이제 마법에 밀려났다고 떠들겠는가?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에 엄청난 자긍심을 가졌다.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 위대한 대마법사부터 기초 마법만 간신히 가능한 무늬만 마법사까지.
허나, 그 자긍심을 대가로 마법은 엄청난 재능을 요구했다.
우선, 마법의 원동력인 마력을 일정량 이상 보유해야 했고,
그 마력을 다룰 수 있는 마력제어능력과 마력을 사용해도 몸이 견딜 수 있는 마력친화력,
그리고 복잡한 마법의 술식을 이해, 분석, 구축할 수 있는 지능이 필요했다.
하나만 모자라도 성장 한계가 생기거나, 마법사가 될 수 없었는데, 생각 외로 이런 이들은 많았다.
가령, 던칸이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꽤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나 마법사가 되기에 나쁘지 않은 환경을 가진 그였지만,
타고난 마력량이 너무 많은 탓에 그는 마법사가 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사실이었다.
과도한 마력은 더 높은 제어능력을 요구하는데, 반해 던칸의 마력제어능력은 평균 정도이기에.
마법을 사용하려고 할 때마다 과도한 마력을 주체 못 하고 과부하로 늘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마법을 포기해야만 했다.
모두의 멸시와 경멸, 비웃음을 받으며 말이다.
그래서 던칸은 집을 떠나 차가운 거리로 나왔다.
마법사는 아니었지만, 마법사만큼 자존심이 강한 그는 자신을 무시한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잡으려고 했다.
그래서 핑크맨이 됐고, 노하우를 터득한 후 자립해 자신만의 핑크맨 사무소를 차리려고 했다.
비록, 그 도전은 부족한 사업 수완으로 실패해 에디스의 하수인으로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던칸은 꿈을 잃지 않고 다시 인생의 도박을 벌이고 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복수하기 위해 무엇보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누군가의 들러리로 산다면 그건 너무 슬프지 않은가?
허나, 그런 그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한낱 흑마법사에게.
"그, 그만 뽑아가!!!”
던칸이 비명을 지르듯 톤파를 휘둘러 올리버의 추출을 끊어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추출한 감정과 생명력을 뭉쳐 시험관에 넣은 뒤, 겸사겸사 뽑은 마력을 손에 쥔 채 감상하였다.
마치 길 가다 예쁜 돌이라도 발견한 아이처럼 올리버의 눈은 초롱초롱해졌는데, 그도 그럴 것이 마력을 뽑을 줄 자신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빨리 감정 생명력을 뽑기 위해 있는 힘껏 추출했는데, 설마 마력까지 뽑을 줄이야.
이런 경우는 배우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에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하던가?’
올리버가 손에 머금고 있던 마력 중 일부를 추출해 손안에서 조작해 보았다.
감정을 조작하는 것과 비슷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약간 더 쉬웠다.
감정은 그 힘이 강렬할수록 술사에게 저항하는 데 반해 마력은 힘이 요동칠 뿐이었으니.
파직一!
올리버의 손안에서 마력이 요동치더니 순간 푸른빛 전기로 바뀌었다.
"...!! 이 무슨-!”
“오….. 되네?”
던칸과 올리버가 제각기 반응했다.
과거 싸운 전격 마법사를 떠올리며 대충 흉내 내본 것인데, 올리버도 놀라고 말았다.
마법이라는 거. 흑마법과 차별되며, 모두의 인식과 대우가 높아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싶었는데,
현재 올리버가 느끼기로는 흑마법과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같았다.
그저 술사가 느끼는 대로 에너지원을 통제하다 그 흐름과 구조를 파악해, 머릿속의 이미지에 투영시켜 에너지원의 형태와 성질을 살짝 변경시키면 됐다.
그렇게만 하면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와 개념이 현실로 나타났다.
올리버는 마법을 사용했다는 기쁨이나 신비감보다 흑마법의 연장선을 배웠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가 됐건 흥미롭긴 했지만.
파지지지지직————!!!
올리버 마력을 전기로 전환시켜 바닥에 살짝 흩뿌렸다.
과거 조셉 패밀리에서 감정을 가지고 놀던 때와 비슷했다.
전기는 귀를 울리는 소리를 내며 여러 갈래로 나뉘어 바닥에 검은 그을림을 만들었다.
올리버는 전기를 통제해 보았다.
여덟 개로 무질서하게 나뉜 전기는 하나, 둘, 세 개로 합쳐 어느새 손가락 개수에 맞게 줄었는데,
올리버가 주먹을 살짝 쥐자 굵고 응축된 하나의 전기줄기로 변했다.
"음......."
올리버는 그리 소리 내고는 전기의 통제력을 강화해 주먹에 머금은 상태로 만든 뒤 더더욱 압축시켜 손안에 작은 구(球) 형태로 만들었다.
흡사, 푸른색 구슬과 같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막에 갇힌 번개가 폭풍처럼 요동치고 있는 게 보였다.
꽈악一!
올리버가 주먹을 쥐었다.
전기로 전환한 마력은 올리버의 주먹 아래에서 다시 마력으로 변화됐다.
그걸 본 던칸의 눈은 다시 커졌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눈앞의 마력에 더욱 집중했다.
전기와 같은 이치로 마력을 불로 바꿔보기도 했고, 마력으로 분자 구조에 영향을 줘 폭발을 일으킬 정도의 고온으로 만들거나, 반대로 온도를 낮춰 얼음 결정을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손안에 작은 돌개바람을 일으키기도 했고.
감정만큼은 아니었지만, 마법이라는 것도 확실히 재밌었다.
“……너는, 뭐냐?”
“예?”
“마력도 추출할 수 있는 흑마법사..…. 너 희귀 케이스냐?”
"글쎄요. 저도 방금 처음 알아서. 그 희귀 케이스가 구체적으로 뭐죠?”
던칸은 올리버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고, 대신 질문했다.
"그럼, 어떻게 마력을 제어하는 방법을 아는 거지? 그것도 여러 원소를."
“그냥 과거에 봤던 분들 흉내 낸 건데요?”
"......."
"전기, 폭발, 마력탄 그리고..…, 어! 공간학파. 그거는 약간 어렵네요.”
올리버가 보랏빛 공간 마법을 만들려다 실패하며 말했다.
작은 문이 생기기 전 소멸한 것인데, 공간학파의 난이도가 마법 전체 중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려운 것임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올리버는 이런 사실 따위 알지 못했기에 아쉬울 따름이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즐거운 날이었다. 몇 번 죽을 뻔했지만, 던칸 덕분에 마력을 가지고 놀 수 있었으니.
이에 감사를 표하려고 앞을 보자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분노, 억울함, 증오, 질투, 원망….. 수많은 부정적 감성이 요동치다 못해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던칸이었다.
"괜찮으신가요?”
올리버가 걱정하며 물었다. 저런 수준으로 감정이 요동치는 이는 처음 보았는데, 이성을 잡아먹을 정도였다.
실제로 던칸의 눈은 맹수처럼 변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천한 흑마법사 따위가!!!!!”
던칸은 마력이 담긴 목소리로 크게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올리버는 성법 아이템을 의식해 마력을 다뤄 공격했다.
‘폭렬 마법과 전격 마법..….'
올리버는 자기가 상대해본 마법 중 가장 효용성이 높다고 판단한 두 개의 마법을 즉석에서 합쳐봤다.
마력을 두 개의 성질로 나눠 변환시킨 후 그것을 손안에서 합쳐 주먹을 쥐었는데,
그런 다음 주먹을 내지르듯 앞으로 밀어냈다.
[체인 익스플로전 볼트]
즉석에서 만든 마법. 그러자 전기를 머금은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달려오는 던칸을 덮쳤다.
좁은 골목 좌우를 완전히 메꿔 위 말고는 도망칠 수 없었는데, 올리버가 이에 대비하며 마법을 준비했다.
[홀리 라이트!!!]
찬란한 빛이 세상을 비추자 전기를 머금은 연쇄 폭발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던칸이 마법 공격을 정면에서 뚫으며 소리쳤다.
"위대한 신의 힘은 흑마법뿐 아니라 마법조차 약화시킬 수 있다-!!!”
또다시 알게 된 새로운 정보.
올리버는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이상하게 겁나진 않았다.
잘못하면 던칸에게 당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참으로 이상했다.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손에 머금은 마력, 시험관에 든 생명력과 감정이 보았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퍼펫의 인공 영혼.
그것은 감정, 생명력, 마력을 합친 것에 불과했지만, 그 결은 완전히 달랐는데,
올리버는 그것을 떠올리며 세 개를 합쳐보았다.
"윽.…!"
반발 작용이 생각보다 심했다.
왜 퍼펫이 그토록 수많은 장비를 사용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던칸이 마력을 꾹꾹 담은 톤파를 휘둘러 전기 폭발을 깨버리곤 목걸이로 몸을 회복해 다시 올리버에게 달려들었다.
지쳐 보였지만, 올리버를 죽이기에는 충분했는데, 올리버는 손에 화상을 입는 것도 무시하고 어떻게든 생명력과 감정, 마력을 합치려고 했다.
꽤 힘들었다.
‘어쩔 수 없지.’
결국, 올리버는 목표하던 양을 대폭 줄여 극소량의 감정과 마력, 생명력을 합쳤다.
양이 적어지자 반발 작용을 억지로나마 누를 수 있었는데, 그렇게 만든 그것을 그림자에 투여해 바인 쉐도우를 발동했다.
재료가 다른 탓인지 평소 사용하던 바인 쉐도우보다 빨랐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마치 자기 의지가 있는 듯 올리버의 인지보다 더 능숙하게 움직였다는 거였다.
어떻게 던칸을 잡을지 안다는 듯.
지쳤다곤 하나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잡힌 던칸이 그 증거였는데,
발목이 잡힌 던칸은 다급히 성법 아이템을 발동했다.
[홀리 라이트]
그런데 이걸 웬걸 그림자 촉수는 여태까지 쓴 흑마법, 마법과 다르게 신성한 빛을 무시하고 오히려 던칸의 어깨와 목, 허리, 무릎마저 붙잡았다.
"뭐, 뭐야?!"
당황한 던칸. 그는 저항하려고 했지만, 그림자 촉수가 너무 강해 힘에 부치는 듯했다.
그때 그림자 촉수가 올리버에게 뭐라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기분이었지만,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이에 호응해 그림자에 머금어져 있던 마력에 변화를 주었다.
마력을 전기로 말이다.
“끄그극——!!!”
강력한 전기 충격으로 괴상한 소리를 내는 던칸.
그의 몸은 기괴하게 굳으며 무방비한 상태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마력을 뿜어 몸의 데미지를 상쇄시키려고 했다.
꺾이지 않는 의지가 그 원동력.
올리버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그 말과 함께 올리버는 양손을 허공에 들었다.
그리고 아까처럼 감정과 생명력, 마력을 있는 힘껏 뽑아댔다.
슈하하하하하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꺽———————!!!"
대량으로 빼앗긴 의지와 생명력, 마력으로 저항이 약해지자 전기 충격이 단숨에 던칸의 뇌를 직격했다.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오줌을 지리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흰 거품마저 물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더 버틸 수 있어요! 더 버틸……. 아.”
올리버가 아쉬움의 탄성을 내며 추출을 그만뒀다.
더 이상 하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는데, 바인 쉐도우를 풀자 던칸은 앞으로 그냥 쓰러지고 말았다.
중간중간 몸을 부들부들 떨었는데, 조금 안타까웠다.
"괜찮으세요?”
올리버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이래저래 일이 있긴 했지만 덕분에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기에..…. 무엇보다 아직 대답도 듣지 못했고.
“..…저기 던칸 씨. 권력을 왜 얻으려고 한 거죠? 대답을 못 들어서요. 던칸 씨?”
올리버가 정중히 질문하였지만, 의식이 날아간 던칸은 대답을 못 했다.
하아…….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때, 던칸이 단어를 읊조렸다.
“마탑..…. 증명…... 복수……. 난 결코……. 불량품이……."
올리버는 연관되지 않는 단어를 귀 기울이며 기억했다.
그때 눈앞에 믿기지 않는 것이 보였다.
전격 마법사, 조셉, 요안나 이후 처음 보는 아름다운 빛!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빈 시험관을 꺼내 아름다운 빛을 추출했다.
행여 사라질까 봐 손속의 사정을 두지 않고 한 방울까지 쥐어짜 시험관에 담았는데.
덕분에 과거 조셉이 죽었을 때보다 약간 더 많은 양을 뽑을 수 있었다.
올리버는 벌떡 일어나 시험관 뚜껑을 닫고 내용물을 빤히 바라봤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는데, 올리버는 감사의 뜻으로 던칸의 몸을 바로 눕힌 후 신발이나 옷매무새를 정리해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던칸 씨.”
올리버는 던칸의 두 눈을 감겨주고 가슴을 두 번 두드려 짧은 명복까지 빌어주었다.
그 덕분에 몇 초간 뒷골목 짧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후……. 그럼 이만 나와주시겠습니까?”
올리버가 어둠에 대고 말했다.
침묵이 대답으로 돌아갔으나 얼마 가지 않아 저벅저벅 발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핑크빛 정장을 입은 사내가 중절모를 벗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