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던칸 (3) >
올리버는 당황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과거 딱 한 번 접한 성법을 여기서 다시 마주한다니.
그것도 흑마법에 광범위한 타격을 주는 홀리 라이트를.
올리버는 한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지만, 주변을 삼키는 찬란한 빛과 그 빛에 맞고 괴로워하는 송장인형(에든 차일드), 연기처럼 사라지는 해잇 불릿, 미니언을 보고 이게 착각이 아닌 현실임을 인지했다.
그 덕분에 바로 대응해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죽어라——!!”
짐승과 같은 커다란 목소리로 던칸이 말했다.
그는 몽둥이를 있는 힘껏 휘둘러 송장인형들을 박살 낸 다음 올리버쪽으로 달려와 다시 있는 힘껏 몽둥이를 때렸다.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쿼터스태프를 들어 방어를 취했다.
깡———!!!
굉음과 함께 올리버는 옆으로 날아갔는데, 던칸이 몽둥이로 내리찍으려 하자 타켓팅을 사용해 미끄러지듯 자리에서 벗어났다.
던칸이 쫓아오지 않나 뒤를 봤지만, 그는 이미 승리를 확신한 듯 지켜보기만 할 뿐 쫓아오진 않았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
"......."
바닥에 있는 힘껏 쓸려 상처와 흙먼지를 뒤집어쓴 올리버는 비틀비틀 일어섰고,
던칸은 몽둥이를 붕- 붕- 돌리며 올리버를 바라봤다.
"그 지팡이는 뭐지? 흑마법은 풀렸을 텐데, 내 톤파를 견디다니. 무슨 아이템인가?”
올리버가 그 말에 자신의 쿼터스태프를 봤다.
확실히 기이했다. 블랙 슈트는 홀리 라이트에 의해 분명 소멸됐을 텐데, 정상적인 경우라면 올리버의 쿼터스태프는 부러져야 마땅했다.
올리버도 이 점이 의문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더 궁금한 게 있었다.
“..…그거 어떻게 하신 거죠?”
"하一! 이거?”
던칸이 드물게 웃으며 황금빛 팔찌를 들어 보였다.
묘한 기운이 감돌고 있더라니.
“성법을 쓸 수 있는 아이템입니까?”
"그래, 신께서는 자비로워 돈만 지불하면 얼마든지 자신의 힘을 나눠주거든. 마할라….. 그리고 이런 것도 가능하지.”
던칸은 그리 말하며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구슬이 꿰어진 목걸이로, 나무 십자가가 매달려 있었는데, 그 나무 십자가를 손으로 쥐자 눈부신 황금빛이 빛나더니 던칸의 몸을 에워쌌다.
그와 함께 올리버와의 전투 중 입은 화상과 상처들이 회복되기 시작했는데,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올리버는 가만히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꽤 상황이 좋지 못했다.
체력도 감정도 상당히 소진한 상태인데, 상대는 회복까지하다니. 아니, 그 이전에 성법을 쓰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당장 불리한 상황이야 지금 가진 감정을 활용하면 어떻게든 극복 할 수 있지만, 성법은 도저히..…. 급격히 필거렛이 당겼다.
"어떻게 할래? 지금이라도 아가씨를 넘기고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게 어때? 그럼, 자비를 베풀도록 하지.”
“아, 죄송합니다. 감사한 제안이긴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라면 이미 믿을 만한 분에게 맡겨서 제가 죽어도 안전한 곳으로 갈 겁니다. 그러니 아가씨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던칸은 불쾌한 듯 무표정한 표정을 지었다.
"죽는 게 안 무섭나?”
"당연히 무섭죠.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고, 약속은 약속인지라.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어차피 저를 죽여도 아가씨는 못 찾을 텐데, 그냥 저도 놔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올리버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 했으니.
허나, 던칸은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혹시 거지새끼들에게 넘겼나?”
"......."
올리버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 어떻게 안 거지?
던칸이 올리버의 궁금증을 읽었는지 먼저 이야기해줬다.
“갑자기 너랑 아가씨가 사라졌다는 이야기 듣고 경찰국과 거리 갱들에게 물었는데, 근래 거지들이 커다란 조직을 이뤘다는 소문이 들리더군.”
"......."
"쥐새끼처럼 하수구를 통해 뒤가 구린 심부름을 하거나 이것저것 엿들어 판다고….. 반응을 보니 맞나 보군."
"......."
"무슨 인연으로 아가씨를 맡긴 건지 모르지만, 누구에게 있는지 알았으니 걱정할 필요 없지..…. 약속 하나 할까?”
“널 죽인 후에 그 거지 놈들부터 싹 다 죽여주지. 그거라면 내 특기이니 걱정하지 마. 시에서도 좋아할걸. 거리의 쥐새끼들을 대신 청소해준다니.”
"음..…. 좀 잔인한데요. 거기엔 사람들도 많은데.”
"사람이라니, 거지가 어떻게 사람이야.”
올리버는 그 말과 동시에 던칸의 머리를 향해 해잇 불릿을 쐈다.
대답하는 도중에는 대부분 반응이 늦어지기 때문이었는데, 던칸은 뛰어난 동체 시력을 이용해 톤파로 증오의 탄환을 막아냈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톤파로 바닥을 후려쳐 올리버에게 돌조각을 날렸는데, 올리버가 돌조각을 피해 움직이자 그 타이밍에 맞춰 달려들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뛰어난 신체 능력에 빠른 반응 속도, 거기에 절대적인 우위를 보이는 성법까지 쓰다니.
성기사를 상대하는 거나 다름없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하지만 아이템을 이용하는 것. 분명 사용에 제한이 있어.’
올리버는 상황을 파악하며 이길 방법을 모색해봤다.
벌써 죽자니 너무 아깝지 않은가?
올리버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보유한 감정과 생명력을 재차 확인했다.
‘감정은 아직 충분. 하지만 생명력이 부족한데..….'
올리버는 그와 함께 쓰러진 핑크맨 시체를 봤다. 생명력 아껴야 했다.
[블랙 실드]
올리버가 블랙 실드를 전개해 던칸의 공격을 막았다.
한 겹이었지만, 저번과 같이 깨지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범위를 좁히는 대신 응축시켜 방어력을 높였기 때문이었다.
넓은 장막을 원반으로 압축시켰다고 할까?
줄어든 방어 범위는 감정을 읽는 식으로 공격 방향을 예측해 보강했는데, 얼핏 보면 대단하지만 실상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방법이었다.
한 번만 공격 궤도를 잘못 읽어도 죽을 수 있으니.
던칸도 이를 아는지 웃었다.
"미쳤군!”
"다들 저더러 그렇다고 말하더군요. 이해는 안 가지만요.”
올리버가 던칸의 공격을 계속해 막으며 말했다.
던칸은 양손에 쥔 톤파를 화려하게 휘두르며 찌르고, 돌리고, 후려쳐 한시도 쉬지 않고 다각도에서 공격했다.
빠르고 변화무쌍할 뿐 아니라 한 방, 한 방이 묵직해 막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감정이 소비되었다.
실제로 휘두를 때 풍압마저 느껴졌는데, 이 이상의 소모전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그래서 올리버는 위험을 감수하고 감정을 실은 쿼터스태프를 휘둘렀다.
'닿아라.’
딱一!
회심의 일격은 던칸의 톤파에 막혔다.
던칸은 씨익 웃더니 아까 전의 굴욕을 씻겠다는 듯 다른 톤파를 들어 그대로 올리버의 쿼터스태프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마력을 톤파에 집중시켜서 말이다.
[라스 붐]
던칸의 톤파가 올리버의 쿼터스태프에 닿기 전 올리버가 먼저 라스 붐을 사용했다.
방심하고 있던 던칸의 양팔 사이에서 폭발이 터졌다.
공격에만 마력을 집중하느라 방어가 느슨해진 던칸은 신음을 뱉으며 양팔을 천천히 늘어트렸다.
오죽하면 놓지 않던 톤파 중 하나를 떨어뜨리기까지 했을까?
올리버가 바닥에 떨어진 톤파를 주우려 하자 급히 발로 걷어차 몇 걸음 뒤로 날려버렸다.
꽤 아파 숨쉬기도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올리버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여기까지가 올리버가 바란 상황이었기에.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해 주변을 빠르게 살펴봤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는데, 양손에 화상을 입고 피를 흘리는 던칸이 목걸이를 꺼내 자신을 치유했다.
올리버는 그 타이밍에 맞춰 바닥에 떨어진 톤파를 타켓팅으로 가져와 빼앗은 다음, 하나 남은 생명력 시험관을 털어 넣어 주변에 널브러진 핑크맨 시체들에 생명을 부여했다.
어차피 딱 한 번만 쓰면 되니 최소한의 생명력만 부여해 숫자를 늘리려고 했는데, 그런 다음 남은 감정을 상당량 사용해 좀비에게 흑마법을 부여했다.
타겟은 오직 던칸 한 명이었기에 [오브잭트 해잇]을 부여해 던칸에게만 공격하게 설정했고, [머슬업]을 사용해 근력을 상승시켰다.
덕분에 던칸은 단숨에 십여 명의 좀비 떼에게 둘러싸이는 형국이 됐다.
회복을 마친 던칸.
그는 당황하지 않고 남은 톤파 하나를 붕-! 붕-! 붕-! 휘둘러 다가오는 좀비들을 모두 해치웠다.
하긴,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가진 그에게 좀비 열댓 마리 정도는 홀리 라이트를 쓸 정도로 위협적인 적이 아닐 테니.
그때, 올리버가 추가로 좀비에게 흑마법을 부여했다.
별장에서 사용했던 흑마법, 블리스터(blister)였다.
주문과 함께 부서진 좀비들과 덜 부서진 좀비들 몸에서 보랏빛 수포가 돋아났다.
그 순간 던칸은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칼과 총은 안 무서워해도 병은 무서워하는구나.’
올리버가 새로운 사실을 배움과 동시에 흑마법을 사용했다.
[콥스 밤]
드루이드의 나무껍질 갑옷마저 뚫은 흑마법.
설사 방대한 마력의 갑옷으로 폭발을 견딘다 해도 블리스터로 인해 완전히 무사하기는 힘들 터인데,
던칸도 똑같이 생각하는지 다시 아이템을 이용해 성법을 발동했다.
[홀리 라이트]
찬란한 빛이 주변을 에워 감싸며 주변의 좀비와 흑마법을 불살랐다.
눈부실 지경. 다시 봐도 참으로 위협적이었다.
"너 정말..…”
-[임프리전]
던칸이 성법을 사용한 그 직후 올리버는 남은 감정을 모조리 꺼내 영창했다.
그러자 검은빛 감정이 진흙처럼 서로 뒤엉켜 던칸에게 다가가더니 거대한 부정형의 물질로 변해 막 성법을 끝낸 던칸을 집어삼켰다.
흡사, 파리지옥과 같았다.
던칸은 당황하며 마력을 발산해 밀어내고, 성법을 사용해 임프리전을 불태워버리려고 했다.
저항이 거셌지만, 남은 감정을 모두 사용한 임프리전은 끈덕지게 달라붙고, 불탈지언정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도대체 무슨…..!!”
던칸이 당황하며 소리쳤으나, 다시 임프리전에 삼켜지며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던칸의 감정은 혼란과 공포로 물들었는데, 그럼에도 올리버는 방심하지 않았다.
현재 올리버의 임프리전으로는 잠시 몸을 묶는 게 한계.
계속해 던칸이 저항하면 결국 먼저 사라지는 것은 임프리전이었고, 죽는 건 역시 올리버였다.
이 찰나의 순간 올리버는 이 힘든 싸움을 타계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올리버가 생각했다.
성법이 깃든 아이템에 사용 한계가 있다 해도 그게 얼마인지 올리버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 전에 올리버가 보유한 감정도 더 이상 없었고.
‘돌을 주워서 머리를 후려쳐야 하나? 아니면 쿼터스태프로 찌르나?’
단순한 물리 공격도 생각해봤지만, 가능성이 영 없어 보였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임프리전은 거의 소모됐고.
마법과 달리 성법으로 저항하자 임프리전의 소모가 빨랐는데,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었다.
요안나에게 썼을 때는 더 강한 성법도 그냥 무시했는데 말이다.
올리버는 혹시나 싶어 자신의 감정을 추출해 봤다.
다급한 상황이니 뭔가 나올까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건 원인이 뭐지?’
올리버가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대상을 봤다.
반쯤 줄어든 임프리전과 싸우는 던칸을.
‘일단 뭐라도 추출해야지.’
올리버는 그리 생각하며 양손을 허공에 들었다.
그리고는 던칸을 대상으로 대량의 감정과 생명력을 추출했다.
그런 다음 과거 마법사를 상대했던 것처럼 임프리전에 감정을 추가해 던칸을 옮아 매려고 했다.
일대일에서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상대방이 먼저 나가떨어질 확률이 높았으니.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성법을 사용하는 탓인지 던칸이 빠져나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는 것.
다급해진 올리버는 점점 추출량을 높였다.
"이런 늦가을 모기 같은 새끼가……!!!”
분노하며 소리를 지르는 던칸.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출력을 더더욱 높였다.
‘이 정도로 모자라. 더 많이…. 더 많이.…! 더 많이.…! 뭐든지 더 많이!’
그 순간 올리버는 생애 처음으로 감정과 생명력 말고 다른 하나를 더 추출할 수 있게 됐다.
바로, 마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