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던칸 (2) >
붕-! 붕! 부우우우웅—————쾅!!!!
"오호....!”
올리버가 박살 난 다중 블랙 실드에 감탄하며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ㅓ형태의 몽둥이를 든 던칸은 확실히 강했는데, 에디스의 측근이자, 전(殿) 핑크맨 간부라는 경력에 걸맞는 강함이었다.
‘솔직히 얼마나 강한 분인지 올랐는데, 이제는 좀 알겠네. 핑크맨이라는 거 꽤 세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뒤로 물러난 올리버.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던칸이 있는 힘껏 달려와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
여태까지 올리버가 상대한 사람 중 가장 빨랐는데, 솔직히 대응하기 버거웠다.
그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빨랐고, 위협적이었기에
[쓰러스트]
올리버가 충격파를 발사해 던칸을 타격했다.
증오의 탄환은 경이적인 반사신경으로 후려쳐 막았기에 점(點) 대신 면(面) 공격을 택한 것이었는데, 다행히 이건 통했다.
기껏해야 발목이나 좀 잡는 수준이지만.
"흥......!"
"시멘트 벽이 부서질 정도로 쓴 건데….”
충격파를 버티는 던칸을 보며 올리버가 말했다.
그의 몸은 여간 단단한 게 아니었는데, 거기에 방대한 마력까지 더해져 더더욱 피해를 주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 충격이 아닌 한 점을 집중하면 어떨까 싶었다.
[쉐도우 스파이크]
올리버의 그림자가 앞으로 쭉 뻗어나가 던칸의 발아래에서 빠르게 솟구쳤다.
그림자 말뚝은 제각기 던칸의 발목, 복부, 가슴, 턱을 노렸지만, 던칸은 충격파에 몸을 맡기며 뒤로 재빠르게 피하곤 몽둥이를 휘둘러 그림자 말뚝을 박살 냈다.
올리버는 난감했다.
충격파로 발목과 시야를 잡고, 그 타이밍에 맞춰 쉐도우 스파이크로 끝장내려는 뻔하면서도 효과적인 작전이 고작 거리만 벌리는 선에서 끝나다니.
물론, 가까이 붙으면 부담스러운 던칸을 상대로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그래도 꽤 난감했다.
'음.......'
올리버는 몸을 풀 듯 몽둥이를 붕-! 붕-! 돌리는 던칸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꽤 여유로워 보였다. 아니, 당연한 건가?
해잇 불릿은 피하거나 후려쳐서 막고, 라스 붐은 마력으로 견디며, 그림자 계열 흑마법은 역시 통하지 않으니.
그렇다고 블랙 슈트를 믿고 근접전을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장 피해야 할 상황이었다.
화력도 높은 데다 근접 전투 기술도 조 이상인 듯했는데, 만약 저 빠른 몽둥이에 한 번이라도 맞았다간 스턴 상태가 올 거고 이후 연타라도 당하면 다진 고기가 되고 말 터였다.
오염구역에서 상대한 퍼펫이 끝을 알 수 없는 적이었다면, 던칸은 치명적이고 숨 막히는 상대였다.
아차 하면 목숨을 잃는.
솔직히 어떤 의미로 더 나빴다.
퍼펫을 상대할 때 보았던 지옥의 입구나 인공 영혼과 같은 역전의 요소를 던칸에게서는 찾을 수 없었기에.
그렇다면 지금 올리버가 살아남을 방법은 현재 보유한 감정과 상황에서 최대한 승리의 요소를 찾는 것.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무슨 말을 해야 던칸이 호응할지 고민하던 중 그가 입을 열었다.
“..…실력이 꽤 좋군.”
“….감사합니다?”
"농담이 아니야.”
맞았다. 그는 진심이었다.
"흑마법사라면 세 자리 가까이 상대해 봤고, 그중에 이름난 녀석도 있었어.…. 그놈들과 비교해도 넌 꽤 대단하군. 나이를 생각하면 성장 가능성도 있어. 이대로 죽이기 꽤 아까워.”
"칭찬 감사합니다.”
"진심이야. 진짜 아까워. 길거리에서 푼 돈이나 만지다 여기서 끝장나기에는..…. 제안하지. 내 밑으로 안 들어오겠나?”
예상치 못한 제안. 올리버는 놀랐다.
싸우는 도중 이런 제안을 받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는데, 더 놀라운 점은 단순 속임수가 아니라는 거였다.
던칸 그는 진심이었다.
"때마침 네 덕분에 눈여겨본 인력을 둘이나 잃었거든. 그 빈자리를 네가 채워. 대우는 그 둘 이상으로 해주지."
올리버는 긴장을 늦추지 않되 한숨을 돌리며 물었다.
"음.…. 둘이라 하면 스콧 씨랑 니나 씨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눈치가 없지는 않나 보군.”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주변에서는 제가 눈치 없다고 말하던데…..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뭐지?”
"제인 아가씨를 해치려는 이유가 혹시 핑크맨 같은 사무소를 차리기 위해서입니까?"
올리버가 확인차 물었다.
확실하다곤 하지만 그래도 본인 입으로 듣고 싶었는데, 말보다 감정이 먼저 대답해주었다.
".....그래, 문제 있나?”
"아뇨. 다만 이해가 안 가서요. 그 뭐랄까..…. 제인 아가씨는 던칸 씨를 꽤 믿은 것 같은데 왜 배신하신 거죠?”
"그딴 게 궁금해?”
"예, 전 궁금합니다. 대답해주시면 저도 제안에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올리버가 그리 말하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시간을 끄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대답을 듣고 싶은 것도 있었다.
제인은 던칸을 믿었고, 제인을 맡길 정도면 에디스도 던칸을 꽤 믿는다는 뜻.
그런데 갑자기 배신이라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던칸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올리버를 꽤 탐내는 거 같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야.”
"......사무소 차리는 거요?”
"아니, 그건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고. 핑크맨 사무소에 대해 아나?”
"약간요?”
"뭘 들었는지 모르지만, 네가 들은 건 일각에 불과할 거야. 그들은 양지에서 활동하지만, 동시에 음지에서 더 왕성히 활동하지. 그들을 필요로 하는 정치인, 기업인, 자본가들을 위해. 그 덕분에 핑크맨은 고객의 영향력을 사용할 수 있고, 이윽고 이 도시 이 나라의 또 다른 권력자이기도 하지.”
“….힘을 가지고 싶다는 겁니까?”
"맞아. 모두가 그렇듯이.”
"아…..”
올리버가 자신의 이해력에 감탄했다. 옛날에는 이런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난 단순히 어느 단체의 일개 직원이나 누구의 하수인으로 소중한 인생을 끝날 생각이 없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거물이 되고 싶어..…. 에디스가 20년 동안 일한 나를 위해 작은 선물이라도 남겨줬으면 나도 이러지 않았을 테지만, 곧 죽는다는 공포에 총기(聽氣)를 잃고 나와 함께 쌓은 재산마저 토막 내려고 하니 선택지가 많지 않거든…. 난 내 몫을 챙겨야겠어.”
"그래서 에디스 님 말고 그 가족 쪽에 붙은 건가요?”
“..…흑마법사 주제 날 비난하나?”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다. 진심으로.
"아뇨. 그냥 확실히 하려고 여쭤본 겁니다. 전 제가 누굴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그 꿈 아주 중요한 꿈 같은 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아니, 이제 내가 대답을 들을 차례야. 이야기를 마저 듣고 싶으면 내 밑으로 들어올 건지 말 건지부터 대답해. 대우는 결코 섭섭치 않게 해주마. 길바닥 생활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를 보여주지.”
약속은 약속. 올리버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음…….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역시 조직 생활하긴 꺼림칙하네요. 핑크맨 사무소랑 비슷한 일을 하면 노동자도 공격해야하는 거 같던데. 전 흑마법사라서요.”
"멍청하군. 그 정도는 얼마든지 덮을 수 있어.”
“그렇군요…..”
올리버가 다시 생각에 빠졌다. 하수도에서 새로운 거지 무리를 만든 캔트가 떠올랐다.
“….그래도 싫네요. 죄송합니다.”
“좋아….. 그럼 죽어라.”
속았다는 분노와 함께 던칸이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올리버 쪽으로 달려들었다.
다시 봐도 빨랐지만, 슬슬 눈에 익었는데, 올리버는 타이밍에 맞춰 쉐도우 스파이크를 촘촘하게 발동했다.
가느다란 그림자 말뚝이 벽을 이루듯 촘촘히 솟구쳤는데, 던칸은 뛰어난 반사신경을 발휘해 코앞에서 멈추더니 몽둥이를 휘둘러 성냥개비처럼 그림자 말뚝을 가볍게 부러뜨렸다.
파괴된 그림자는 동력을 잃고 다시 평범한 그림자로 돌아갔다.
이를 확인한 던칸이 곧바로 움직이려 하자 무엇인가가 발목을 잡는 것을 확인했다. 바로 올리버의 그림자 촉수였다.
눈치채지 못하게 일부러 그림자 촉수의 출력을 낮춰 사용했는데, 그 탓에 약간만 힘주면 끊어질 수준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올리버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하니.
딱- 딱- [블랙 큐브]
여섯 장의 블랙 실드를 연결한 블랙 큐브가 던칸의 주변을 에워쌌다.
던칸은 당황하지 않고 ㅓ형태의 몽둥이에 방대한 마력을 꾹꾹 담아, 있는 힘껏 휘두르려고 했다.
".....응?"
휘두르려다 말고 던칸이 같이 블랙 큐브 안에 있는 미니언을 보고 멈췄다. 그리고…….
—————쾅!!!!
라스 붐을 꽉꽉 넣은 미니언이 폭발했다.
과거 퍼펫을 상대했을 때 즉석에서 조합한 흑마법.
강력한 폭발을 사용해도 주변의 피해를 제한할 수 있고, 큐브 안에 있는 상대에겐 응축된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피해를 준 것 같았다.
하지만 올리버는 방심하지 않았다.
폭발에 휘말렸어도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기에.
올리버는 단숨에 감정을 추출해 즉석에서 미니언 네 개를 만들었다.
해당 미니언에게 해잇 불릿을 먹였는데, 만들어지자마자 붉은 화염과 검은빛 연기가 덮인 그곳을 향해 증오의 탄환을 뱉어냈다.
퓨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푸퓻—————!!!!!!
기관총처럼 쏟아지는 증오의 탄환.
하나하나의 위력은 낮았지만, 압도적인 수로 인해 던칸은 피할 수는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던칸이 괴성을 지르며 올리버 쪽으로 뛰어왔다.
그는 몸 안에 있던 방대한 마력을 끌어모아 갑옷처럼 둘렀는데, 마력의 낭비가 상당했지만, 효과는 뛰어나 미니언들이 쏘는 증오의 탄환을 견딜 수 있었다.
흡사 장갑차와 같았는데, 올리버는 이를 계산하며 해잇 불릿을 손가락 끝에서 만들었다.
가장 기초적인 흑마법 해잇 불릿.
기초 중의 기초지만, 사용하는 감정의 질과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그 위력은 기초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기도 했는데, 상대가 살아있는 사람인 점을 고려하면 살상력과 그 효용성은 매우 높은 흑마법이었다.
올리버는 이 사실을 기억하며 증오의 감정을 있는 힘껏 압축시켰다.
‘더..…. 더..…. 더..….'
서로에 대한 반발력이 강한 증오는 압축됨에 따라 그 위력이 배가 됐다. 그리고 그 위력만큼 시간이 필요했고.
조금만 더 있으면 던칸의 마력 갑옷을 꿰뚫을 탄환이 완성됐는데, 문제는 던칸이 약간 더 빨랐다는 것.
이 점 때문에 올리버가 해잇 불릿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지 않은 거였다.
그럼에도 하필 지금 이 방법을 쓴 것은 그 부족한 시간을 끌어줄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끽…! 끽…!"
“딱- 딱- 딱- 딱- 딱- 딱- 딱-"
"키히이이이이———!”
올리버의 송장인형이 담벼락을 넘어 등장했다.
바로 이 결정적인 타이밍을 위해 올리버가 송장인형을 사용하지 않고 핑크맨을 홀로 상대한 것인데,
근접 타입은 검사뿐이었지만, 다른 송장인형 역시 방어력이 높고, 무게가 나가 한순간 방패 역할을 해줄 수 있을 터였다.
올리버는 그사이 압축한 증오의 탄환을 쏴 던칸에게 치명타를 줄 생각이었다.
의표를 찌르는 확실한 계획.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가진 게 비단 올리버만은 아닌 듯했다.
[홀리 라이트]
던칸의 영창과 함께 성스러운 불빛이 주변을 감쌌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