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10화 (110/633)

< 110. 초대 (1) >

부우우우웅.

란다 외곽도로 위. 차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차는 시중에서 널리 볼 수 있는 F-시리즈. 어디에서나 쉬이 볼 수 있는 차종이었는데,

운전석과 그 옆 보조석에는 약간 독특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바로, 흑마법사 해결사인 올리버와 부유층의 사생아 딸인 제인으로, 보기 드문 조합인 그 둘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눴다.

"생각보다 운전을 잘하시네요.”

"그렇습니까?”

“예.…. 아, 다른 뜻이 아니라 반나절 만에 배운 것 치고는 정말 잘하셔서요. 정말 반나절만에 배운 거 맞나요?”

"예. 트럭 운전사들에게 배웠습니다.”

"트럭 운전사요? 아, 훌륭하신 분들이시죠. 이 란다에 꼭 필요한 분들이니까요. 기차가 대동맥이라면, 그분들은 미세혈관이니."

제인은 거짓과 진심을 섞어 말했다.

운전사들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그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딱히 좋은 타이밍은 아닌 것 같아 참았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차분한 척했지만, 현재 제인의 감정 상태는 썩 좋지 못했기에.

죽다 살아난 것과 배신당한 게 적잖게 충격인 듯했다.

"불편하시면 뒤에 앉으셔도 됩니다. 아가씨.”

"뒤요?”

"예, 좀 피곤하신 듯 보여서.”

제인이 약간 고민스러운 듯 뒤를 봤다.

"음….. 아뇨, 괜찮으시다면 여기 앉아있을게요. 약간 불안해서. 혹시, 제가 옆에 있는 게 싫으신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여기 앉아있을게요. 제가 싫은 게 아니라니 너무 기쁘네요.”

제인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진심으로 쉬었다기보다는 올리버를 의식한 행동에 가까웠는데,

그럼에도 올리버기 눈길 한 번 주지 않자 섭섭함을 느끼며 옷과 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머릿속도 같이 정리하였는데, 배신 당했다는 충격과 분노를 억지로 밀어버리곤 앞으로 어찌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별장에서부터 느낀 거지만 이래저래 강인한 사람이었다.

“..…괜찮으면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올리버가 대뜸 물었다.

"질문요? 아, 예. 얼마든지요.”

"도움을 청할 곳이 어딘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곧 란다에 도착할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요."

그러자 제인이 곤혹스러운 감정을 띠며 눈을 감았다.

최대한 표정을 숨기려고 했지만 미세하게 드러났고, 감정을 꿰뚫어 보는 올리버의 눈을 속이기도 불가능했다.

도움받을 곳이 사실 없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닐 터였다.

처음 도움받을 곳이 있냐고 물었을 때, 있다고 한 것은 거짓이 아니었으니.

내키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상황에서도 망설여질 곳이란 건가? 어딘지 실로 궁금했다.

그런 올리버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제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시스터후드예요.”

“예?”

"시스터후드. 아, 잘 모르시려나?”

"아뇨. 압니다. 여성분들이 서로 돕기 위해 모인 여성단체 아닙니까? 로비도 하고. 가게 단속이나, 노동자 인권, 투표권 같은 거요?”

"예, 맞아요. 꼭 그런 곳은 아니지만….. 여하튼, 그쪽으로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아, 거기 소속인가요?”

"뭐, 비슷하긴 하죠.”

"아뇨….. 잊어주세요. 그냥 잘못 말한 거예요. 아직 혼란스러워서..…. 어찌 됐건 그곳에 가면 도움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늘 침착함으로 무장해 연기하던 제인은 큰 충격 탓에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별장 안에서 보여주던 연기가 계속해 흔들릴 정도로.

"충격이 많이 크신가 보군요."

"예, 약간요…….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인데 데이브 씨께선 도움을 청하실 분 없나요?”

"예?”

"아니, 그러니까….. 만일의 경우 시스터후드에 못 갈 경우를 대비해서요. 란다 조금 안쪽에 있으니 가는 도중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올리버는 생각했다.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만일의 경우지만, 시스터후드에게 도움을 받지 못할지도 몰랐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 잠시만요.”

올리버가 그리 대답하곤 품 안에 포레스트에게서 받은 통신장치를 찾아봤다.

중개인 특성상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조언을 구할 수 있을 터.

허나, 야속하게도 품 안에서 꺼낸 딱정벌레 모형의 통신장치는 망가져 있었다.

제인이 실망한 듯 말했다.

"망가졌네요?”

"예, 스콧 씨랑 싸울 때 망가졌나 보네요.”

제인이 말없이 올리버를 보다 대뜸 물었다.

“..…원래 그런 성격인가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스콧. 그러니까 드루이드. 배신했다면서요…. 심지어 죽을 뻔하고요."

"예. 주먹이 정말 강하셨거든요.”

"그런데도 씨를 붙이시네요?”

"...? 그게 예의라고 배워서요."

"죽을 뻔했는데, 악감정이 없어요? 아니면, 무슨 캐릭터라도 만드는 거예요?”

제인이 진심으로 물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듯.

올리버는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딱히 원망은 없습니다. 저도 필요하면 사람을 죽여서 그분을 딱히 원망할 생각이 안 듭니다. 뭔가 이유가 있었겠죠."

제인은 말 그대로 어이없어했다. 너무 어이없어 기운마저 빠진 것 같았다.

“하….. 그럼, 던칸도 이유가 있었을까요?”

제인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배신감과 슬픔, 절망을 품으며, 동시에 진짜 궁금하기도 한 눈치였다.

아무래도 던칸에 대한 신뢰가 남다른 것 같았다.

“….던칸과 친하셨나요?”

"글쎄요? 이제는 모르겠네요. 진짜로요.”

그와 함께 어색한 침묵이 자리 잡았는데, 그럼에도 자동차는 제 역할을 묵묵히 다해 어느새 목적지인 란다에 제인과 올리버를 데려다주었다.

저 너머로 솟아오른 회색빛 붉은빛 건물이 그 증거였다.

올리버는 저 건물들을 보자마자 천천히 서행해 도로를 벗어나 숲 속으로 차를 몰았다.

제인이 놀라며 물었다.

"...데이브 씨? 지금 뭐 하는 거죠?”

"이제부터 내려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올리버가 그리 대답하며 별장을 벗어나기 전 챙긴 옷가지와 신발, 모자를 챙겼다.

"어째서요?”

“던칸 씨가 무슨 대비를 했을지 모르니까요. 아가씨를 해치기 위해 해결사까지 매수한 분이니, 아마, 실패한 후에도 무슨 대비책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기다 이 차는 별장 앞에 있던 차. 차 번호판을 알고 있을 테니, 이걸 타고 란다로 들어가면 곧 발각될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안전합니다.”

다행히 제인은 바로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에서 내렸다.

"옳은 말씀이네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대답과 함께 남성용 셔츠와 바지, 외투, 모자, 신발을 건넸다.

"자, 갈아입으세요.”

“.......여기서요?"

“…? 예, 그 옷도 눈에 띄니.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올리버가 진심으로 물었다. 제인은 뭐라 말하려다 말고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요. 이쪽은 보지 말아 주시겠어요?”

“…? 예, 뭐.....”

올리버가 그리 대답하며 등 뒤를 돌았다.

부스럭부스럭 제인이 옷 갈아입는 소리가 들렸는데, 올리버도 늦지 않게 옷을 벗어 갈아입었다.

"전 다 갈아입었습니다. 아가씨는-”

"-잠깐 뒤돌지 말아요! 아직 다 못 갈아입었다고요!”

다급히 소리를 지른 제인.

올리버가 흠칫 놀라며 멈췄다. 몇 초의 시간이 지난 후 제인이 말했다.

“..…이제 다 갈아입었어요.”

"그럼, 뒤돌아봐도 되나요?”

“……네.”

올리버가 뒤를 돌아봤다. 남성복을 입은 제인이 서 있었다.

남성복이라 그런지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는데, 올리버가 아리송해하며 물었다.

"음..…. 이것도 눈에 띌까요?”

제인이 헐렁헐렁한 자신의 옷을 보며 말했다.

"아뇨.… 빈민가에 사는 여느 여자처럼 보일 거예요. 그쪽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입고 다니니까요.”

"아, 그럼 다행이네요.”

“..…혹시 일부러 그러는 건가요?”

"예? 뭐가요?”

"....아뇨, 아무것도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제인을 봤다. 뭔가 튀어나온 못처럼 눈에 띄었는데, 뭔지 감이 안 왔다.

핑크빛 머리도 모자 안에 넣어 가렸는데……. 아!

"그 마법 아이템 좀 벗어주시겠어요?”

"마법 아이템요. 복장에 비해 너무 눈에 띄어서요.”

제인이 ‘아..…소리를 내며 자신의 팔찌와 목걸이, 귀걸이를 봤다.

올리버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제인은 망설이면서도 장신구를 벗었다.

"어떻게 아신 거죠?”

"무엇을 말씀이죠?”

"이 장신구. 마법 아이템인 거요?”

"마력이 흐르고 있는 게 보이니까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무슨 아이템인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제게 닿을 때마다 마력을 발산하던데, 무슨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거든요.”

".....!"

제인의 감정에서 곤혹스러움이 빛났다.

"그……. 나중에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뭐, 편하신 대로. 그럼, 움직일까요?”

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올리버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외곽도로를 쭉 걷자 잠시 후 란다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올리버에게도 제인에게도.

"여기가 어딘지 아시나요?”

"글쎄요? 저도 이곳은 처음 와봐서. 그래도 썩 나빠 보이지는 않네요.”

주변을 둘러보며 올리버가 대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는데, 치안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놓고 범죄가 일어날 정도로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최소한 X구역에 비하면 말이다.

"여기서 택시 하나 타서 바로 목적지로 이동하면 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안쪽으로 가면 아마 택시가-”

올리버가 말을 멈추며 한쪽 방향을 바라봤다.

대상이 누군지 모르지만 뭔가를 유심히 찾는 사람들이 여덟 명 있었는데, 뭉쳐 있는 게 아니라 2인 1조로 나뉘어 있었다.

심지어 이리저리 어지럽게 흩어진 게 아닌 규칙적인 포위망을 짰는데, 감정 상태도 이에 걸맞게 단단한 상태였다.

여차하면 싸울 수 있는. 별장에서 만난 습격자처럼.

제인이 침묵하는 올리버를 보며 불안하게 물었다.

"데이브 씨..…?”

"잠시 이쪽으로.”

올리버가 제인을 데리고 다급히 구석진 길목으로 갔다.

구석진 길목으로 간 이유는 다름 아닌 수상쩍은 이들이 여기엔 없었기 때문.

물론, 정면으로 뚫고 가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대로변에서 흑마법을 쓰는 건 올리버에게 너무 부담이 커 이쪽으로 빠졌다.

또, 보유한 감정 역시 넉넉한 편이 아니었고.

하지만 이는 실수인 듯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올리버와 제인을 찾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어 이쪽으로 몰려드는 거였는데, 마치 흔적을 찾아 뒤쫓아 오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바로, 그 순간 올리버의 눈에 주머니에 넣은 마법 장신구가 보였다.

"아가씨. 그 마법 도구 버려주세요.”

"예? 아, 예!”

상황의 심각함을 눈치챈 제인이 곧바로 장신구를 버렸다.

그러나 이미 포위망이 좁혀 들었는데, 올리버는 골목 더 깊숙이 들어갔다.

딱히 갈 데도 없었으니.

그러자 점차 미로 같은 길목에 들어섰는데, 올리버는 자신이 늪에 빠진 것을 직감했다.

이대로 싸워야 하나 싶었는데, 그때, 길목 아래에 있는 하수도에서 웬 목소리가 들렸다.

"이보세요! 이봐요!”

"...?"

올리버와 제인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낡아빠진 실크햇을 쓴 거지가 있었다.

조금 낯이 익었다.

T구역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였다. 올리버도 종종 적선했고.

그런데 여기 어떻게?

그러거나 말거나 거지는 빠르게 이쪽으로 오라며 낮게 소리쳤다.

"빨리 오세요. 어서!”

머뭇거리는 제인. 허나, 올리버는 거지의 감정 상태를 보고 악의가 없다고 판단해 제인을 데리고 거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건장한 거지 둘이 나타나 하수구를 막고 있던 쇠창살을 들어 뽑아 입구를 만들었는데, 제인과 올리버가 들어가자 다시 꽂아 감쪽같이 복구시켰다.

"자, 따라오세요. 그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리버는 그분이 누군지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해 제인을 데리고 거지가 말하는 대로 따라갔다.

조용히 어둠 속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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