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더럽고 변수 많은 일 (1) >
이후 올리버는 어쩌다 보니 제인의 개인 교습을 받아 뒷세계뿐 아니라 바깥 세계의 상식에 대해서도 배우게 됐다.
가령, 올리버가 살고 있는 이 란다가 연합 왕국(united kingdom) 소속이라는 걸 정식으로 배우게 됐는데,
제인이 말하길 연합 왕국은 세계 초강대국이라 했다.
‘마법 선진국이며, 바다를 지배하는 왕자 그리고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한 세계 최강국이죠.’
말투에 과장이 있을지언정 감정은 진심이었는데, 실제로 세계지도를 가져와 연합 왕국의 통치를 받는 곳을 하나하나 짚어줬다.
놀랍게도 연합 왕국은 작은 섬 국가에 불과했지만, 그 수십 배에 해당하는 광활한 식민지를 다스리고 있었다.
신대륙이란 곳과 동방 미지의 제국,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始) 제국의 해안 도시도 다스리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만한 영토를 어떻게 지배하는지 묻자 제인은 선진 문물과 진실한 외교로 평화롭게 통치권을 양도받았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지금도 선진 문물을 선물해주고, 최대한 그들에게 이로운 정책을 펼쳐 믿음과 신의를 다진다고 했다.
참고로 이 부분은 거짓이었다 아주 뻔뻔한 거짓.
여하튼 그녀는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이 세계를 이끄는 리더이자, 평화의 중재자이며, 세계의 중심이라 설명하였는데, 이 연합 왕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고귀한 자가 곧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고귀한 자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 란다는 그런 연합 왕국에서도 가장 특별한 곳이죠.’
이유가 뭔지 묻자 제인은 커다란 가슴을 펴며 말했다.
‘란다는 연합 왕국에 소속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연합 왕국과 대등한 관계이기도 하거든요.’
제인이 말하길 현재 란다는 연합 왕국의 제2의 수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했다.
실제로 이미 경제력은 단일 세력으로만 비교하면 확고부동한 1위로, 수도조차 감히 비교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 격차가 매해 줄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런 탓에 왕국의 국가 예산 중 30~40%가 란다의 세금으로 충당되고.
그런 상황에 초창기 란다 재개발 때 맺은 도시 협약에 따라 왕족은 물론 중앙 의회조차 란다에 함부로 관여하지 못해,
일부 사람들은 란다를 '나라 안의 나라’라고까지 부른다고 했다.
그냥 큰 도시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올리버가 잘못 안 듯싶었다.
정말 똑똑하다고 올리버는 제인을 칭찬했는데, 제인은 별거 아니라고는 듯 거짓으로 겸손을 떨더니 그 외에도 올리버가 궁금한 것을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가령, 란다의 기업, 정치 제도, 선거 방식 등.
그뿐 아니라 이쪽 관련자가 아니면 알기 힘들 법한 마법 사용자나 핑크맨에 관해서도 설명해줬다.
‘마력 사용자는 말 그대로 마력을 사용하는 사람이에요. 마법은 못 쓰지만 마력은 보유하고 있어 그것을 기반으로 신체를 강화하거나, 도구를 사용해 원시적으로나마 마법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죠. 참고로 던칸도 마력 사용자예요. 본인이 말하길 마력 비대증이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렇군요….. 그럼 핑크맨은 뭐죠? 과거에 몇 번 들은 적 있고, 던칸 씨나 니나 씨도 핑크맨 출신이라고 하던데. 핑크맨이 도대체 뭐죠?’
'사설 경비업체인데 실제로는 고도화된 용병 회사라 하더라고요. 강력한 개인과 조직화 된 단원으로 구성된 용병 회사. 거기다 경찰국 못지않은 전문 인력도 있어, 시 의원이나 회사 같은 굵직한 분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해요.’
실제로 이를 증명하듯 신문 기사 내용에는 핑크맨 사무소가 중앙 정계 의원이나 시 의원의 경호를 담당하게 됐다는 기사가 보였는데,
그 외에도 노스랜드의 한 탄광 마을에서 일어난 수만 명 단위의 대규모 시위를 단숨에 찍어 눌러 진압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첨부된 사진을 보면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는데, 그 위로 핑크맨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엄지를 치켜들며 웃고 있었다.
사진 아래로 <인간 도살자 맥맨 시위 진압 직후>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좀 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와 별개로 능력은 좋아 보였다.
그 외에도 제인은 핑크맨이 수많은 용병 네트워크도 보유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 내 천명도 동원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란다 내에서도 손꼽히는 무력집단이라는 게 아주 허풍이 아닌 듯했다.
올리버가 어떻게 이리 자세히 아는 거냐고 묻자 제인은 던칸이나 아버지께 직접 들었다고 대답했다.
사업 특성상 그들을 고용할 때가 많다고 말이다.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올리버는 다시 한번 제인에게 감사를 표했는데, 제인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올리버의 어깨나 가슴을 툭툭 건드렸다.
그때마다 손목에 달린 마법 아이템이 작동했고, 도대체 무슨 마법 아이템인지 알 수 없었다.
묻기도 난감하고.
그러던 중 갑자기 던칸이 해결사들을 소집했다.
"전 오늘 잠시 자리를 비울 것 같습니다.”
해결사들이 모이자마자 그가 대뜸 말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다들 어리둥절했는데, 본인도 이를 자각한 건지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갑자기 죄송합니다. 마님께서 호출하셔서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첫 모임 때처럼 드루이드 스콧이 손을 들었다.
"뭐, 상관없긴 한데, 이렇게 갑자기 빠질 수 있는 거요? 그….. 따님이잖소?”
"죄송합니다. 전 어르신에게 고용된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분 가족들 역시 모시고 있습니다. 어르신이 계셨다면 어찌어찌 거절할 수 있었겠지만, 현재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올리버가 질문했다.
"에디스 님이 어디 가셨습니까?"
"예, 재산증여에 낼 세금을 확보하기 위해 잠시 도시를 떠났습니다. 일종의 출장인 셈이죠.”
올리버는 순간 생각했다. 그럼, 더 떠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올리버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 마총의 니나가 날카롭게 질문했다.
"그럼, 여기 있는 경호원들도 전부 데려가는 거야?"
"아뇨. 그건 아닙니다. 한 명 빼고는 전부 이곳에 남아 평소 업무를 수행할 겁니다. 즉, 경비 인력은 줄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 다행이네. 일 늘어나는 건 죽는 것만큼 싫거든.”
스콧이 녹색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실질적으로 업무에 구멍이 뚫리는 것은 아닌 셈이었는데, 이에 다른 해결사들도 안도하는 눈치였다.
'조금 미묘하군.’
올리버가 안도하지만 미세하게 다른 몇몇 감정을 보며 생각했다.
어째 찝찝했는데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또 미묘했다.
결국 던칸은 거듭 양해를 구하고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는 약속한 다음 저택 밖으로 떠났다.
딱히 큰 문제는 없었다.
그의 말만 따라 경비 인력은 줄지 않아 큰 체감이 안 느껴졌으니. 그도 그럴 것이 던칸은 가끔 주변을 둘러볼 뿐 해결사들과 자주 접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와 반대로 던칸과 자주 접촉하는 제인은 불안한 듯 전보다 더 자주 케이크나 쿠키 등을 가지고 올리버를 비롯한 다른 해결사들을 찾아왔다.
해결사들도 그게 영 싫지 않은 눈치였는데, 그건 올리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인 상식과 시사, 생소한 단체 등 제인이 잘 설명해줬으니.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 참으로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았다.
단순히 좋아서 배운 것 이상으로 말이다.
말하는 걸 들어보면, 학구열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던칸이 가고 여느 때와 같은 날,
스콧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헤..…. 지켜야 할 아가씨랑 너무 가깝게 지내는 거 아니야?”
그는 제인과 헤어지고 신문을 다시 보는 올리버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그다지 이상하진 않았다.
그는 누구에게든 쉽게 다가가 말을 걸었으니. 덕분에 다른 해결사들과 농담 따먹기를 할 만큼 발이 넓은 상태였다.
"이것저것 가르쳐 주셔서요.”
"허허.… 정말 하수도에서 수행만 하다 나왔나 보네?”
"어디서 들으셨죠?”
"내가 이쪽에 들어온 지는 얼마 안 됐어도 인맥이 넓거든. 덕분에 주워듣는 게 많지. 드루이드잖아?”
그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닌 게, 드루이드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 증거로 파테르교를 제외한 나머지 종교는 모두 이단 사이비로 매도당했지만. 오직, 드루이드교는 묵시적으로나마 하나의 종교로 인정받았다.
이는 여러 요인이 있었는데, 그중 결정적인 요인은 마법사와 성기사 못지않게 드루이드가 특별한 힘을 쓸 수 있어서였다.
자연의 힘을 이용해 주변 환경을 이용하고, 육체를 강화하며 심지어 세계수조차 다룰 수 있었기에.
그런 탓인지 스콧은 거만을 떨며 말했다.
"드루이드는 마법사 못지않게 어디든 환영받지. 아니, 어쩌면 마법사 이상이지. 희귀하기도 희귀하지만, 더 다양한 범위에서 활동할 수 있으니. 범용성이 넓다는 거지.”
"아, 저도 들었습니다. 자연과 교감하고, 그 힘을 빌릴 수 있다고요?”
"아니, 요즘은 빌리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거라고 해. 우리의 정당한 권리지.”
스콧이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와 함께 정복욕, 보상 욕구, 야심, 쾌감 같은 공격적 감정이 스파크처럼 튀겼다.
"아, 네…..”
"물론이지. 기억하라고! 늙은 꼰대들은 자연을 지키고 숭배해야 할 존재로 보지만, 우리는 이용하고 지배할 존재로 보니. 그릇이 다르다고.”
“그렇군요.…. 그럼 세계수도 이용할 수 있나요?”
스콧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물을 마셨다. 태연한 척했지만,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못하는 눈치였다.
“….그건 왜 묻지?”
"그냥요? ....세계수에 관심이 있어서요.”
“캬하학! 마법사도 아니고, 흑마법사가? 시간 낭비, 정력 낭비지. 세계수에 접속도 못 할 텐데 왜?”
“..…흑마법은 못하나요?”
올리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당연하지. 그것도 못 배웠나? 엉터리로 배웠나 보군.”
순간 올리버는 과거 한번 접속한 적이 있다고 말할 뻔했다.
다소 어리둥절한 부분은 있었지만, 접속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떤 의미로는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열쇠 구멍에 열쇠를 맞추듯.
허나, 이걸 말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 않았는데, 다행히 스콧이 먼저 입을 열어줬다.
"세계수를 다루는 게 뭐 그리 쉬울 것 같아?”
그가 올리버의 어깨에 친근하게 팔을 올렸다.
"세계수는 드루이드도 쉽게 못 다루는 물건이고, 마법사는 더더욱 쉽게 못 다루는 물건이야.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상식이 정말 없군.”
"그런가요?”
"그렇고말고. 뭣도 모르는 머저리들은 세계수가 편리한 나무 정도로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 수많은 정보가 요동치는 바다인데, 자기 의지까지 있지. 그래서 마음에 안 들면 심술을 부려.”
올리버가 미간을 찌푸렸다.
세계수에 의지가 있다니. 이건 올리버도 알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렇습니까?”
"그럼, 마법사들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여하튼 그런 세계수를 이용하는 건 변덕이 심한 바다를 맨몸으로 헤엄치는 것과 같아. 뒤지기 딱 좋다는 거지.”
“음….. 그렇군요.”
"아는 게 없을수록 쉬워 보이지. 이해해."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문득, 세계수 공부를 다시 해볼까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송장인형에 관심이 쏠려 잠시 세계수 공부를 소홀히 했는데,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세상에 이토록 배울 것이 많다니. 즐겁지 않은가?
드루이드는 계속해 올리버의 어깨에 팔을 올린 채 설명해줬다.
"마법사나 드루이드나 세계수를 배우는데 엄청 애먹고 시간이 걸리지. 재능이 없으면 접속하는 데만 1, 2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건 5, 6년은 걸려. 그래서 넷 세일링만 할 수 있어도 어디 가서든 고급 인력 취급받는 거야. 그러니 괜한 희망 품지 말라고.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하! 여태까지 만난 흑마법사 중 가장 똑똑하군.”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그런데 이렇게 친절하게 이야기해주시는 이유가 뭐죠? 아, 이런 경우는 잘 없어서요.”
"이유? 뭐 별거 있나? 지루한 곳에 같이 일한 것도 인연이니, 친하게 지내자는 거지. 어때, 다른 사람들하고 오늘 한잔하기로 했는데, 같이 마시겠어? 이게 다 인맥인데.”
"술은 마시면 안 되지 않나요?”
"글쎄, 한잔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그와 함께 스콧이 손에 힘을 줬다. 손이 커다란 만큼 아귀힘 역시 좋았는데, 그럼에도 올리버는 정중히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모를 사태가 있을지 모르니 거절하겠습니다. 또, 제가 술을 잘 못 해서요.”
거짓말이 통한 건지 드루이드는 양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하지만 후회할 거야.”
"어째서죠?”
"더럽게 맛있는 술을 구했거든.”
드루이드가 그리 말하며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