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05화 (105/633)

< 105. 경호 (1) >

부으으으으응.

올리버는 빠르게 변하는 바깥에 풍경을 봤다.

꽤 인상적이었다.

"신기하군요.”

"무엇이 말입니까?”

"바깥 풍경이요. 란다에서 이런 걸 볼 줄 몰랐거든요."

올리버가 우거진 숲을 보며 말했다.

란다의 노동자 구역은 대부분 잿빛이었고, 유흥업소가 몰린 거리로 나가야 그나마 색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란다 중앙부에 공원이 있긴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이런 숲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광산에서 나와 조셉과 여행할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나?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란다가 아닙니다.”

올리버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그는 올리버를 임무 장소로 데려가기 위해 온 에디스의 고용인이었다.

"예?”

"정확히는 란다 외곽. 란다와 왕국 사이에 있는 일종의 중립지대입니다. 도시 협약에 따라 란다 내에서는 어떠한 개발을 해도 자유지만, 도시를 벗어난 중립지역부터는 개발에 제한이 따릅니다. 그 덕분에 숲이 있는 거고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하시군요.”

"상식입니다.”

"그런가요? 확실히 제가 신문을 좀 읽을 필요가 있네요. 어찌 됐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예의를 지켜 말했으나, 어째 직원분의 반응은 영 좋지 못했다.

표정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으나, 감정은 올리버에 대한 의심, 불신 등이 빛났는데, 영 못 미더운 거 같았다.

'그런데 왜 안도하는 걸까?’

올리버가 생각했다.

묻고 싶었지만, 왠지 물으면 안 될 것 같아 최대한 참았는데, 그러는 사이 어느새 숲을 벗어나 사람의 손을 탄 듯한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감정도.

"거의 도착했나요?”

"...?! 네, 그렇습니다. 곧 별장에 도착합니다.”

직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느 순간 숲에서 완전히 벗어나 푸른 들판과 호수가 보였는데, 호수 앞에는 말 그대로 커다란 집이 떡하니 있었다.

저런 집을 어디서 봤더라..…. 아, 조셉과 함께 호텔에 머물 때 <멋진 휴양지로 떠나자>라는 광고지에서 봤다.

"저런 집이 실제로 존재했군요. 난 책에만 존재하는 건 줄 알았는데요.”

올리버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직원은 별달리 말이 없었는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란다 중립지역에서는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어디든 예외는 있는 법입니다. 특히, 어르신만큼 부유하신 분은요. 미개발된 곳은 건드릴 수 없으나, 원래부터 있었던 곳은 약간의 로비를 통해 손 볼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이쪽으로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올리버는 시키는 대로 직원을 따라갔다.

그가 안내한 곳은 저택 안에 마련된 거대한 공간으로 화려한 곳이었는데, 수많은 의자와 함께 독특한 조각상 따위가 있었다.

참고로 방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제복을 입은 방위군 같은 사람들이 다섯.

해결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넷.

마지막에 도착한 올리버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직업 특성 탓인지 모두 올리버를 가늠했는데,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다 도착했군.”

의자에 앉아 있던 대머리 사내로,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꽤 인상적인 남자였다.

몸에 마력이 감도는 물건을 여러 개 걸치고 있었으며, 하나하나 상당한 수준의 마법이 걸려있었다.

그뿐 아니라 본인 역시 방대한 양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고, 아닌 게 아니라 과거 싸웠던 마탑 학생은 물론 전격 마법사보다도 더 많은 마력을 품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법사는 아닌 듯한데, 뭐지?’

올리버가 생각하는 사이 대머리 사내는 입을 열었다.

"다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내 이름은 던칸. 여러분을 고용한 어르신의 고용인입니다.”

다들 본능적으로 던칸이란 남자의 실력을 가늠했는지 겉으로 태연하게, 속으로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던칸이란 남자는 돌처럼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을 이어갔다. 매우 능숙해 보였다.

"모두 아실 테지만, 여러분은 어르신의 따님인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 고용됐습니다.”

"......."

"물론 여러분들만 지키는 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 제 부하 열 명도 같이 지킬 겁니다. 여러분을 고용한 것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무력이 필요해서이니, 평소에는 딱히 힘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2주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큰 키에 녹색 머리를 물들인 사내로 오염구역 때 저런 사람을 한 번 본 적 있었다.

"예, 말씀하시죠.”

녹색 머리 사내는 녹색 수염을 매만지더니 팔짱을 끼며 말했다.

"친절한 설명 고마워. 그런데, 왠지 내가 듣기에는 뭐랄까? 음...... 너희는 침입자를 물기 위한 경비견이니 조용히 지시에나 따르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뇨. 들은 대로입니다.”

던칸이란 남자가 침착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여기 있는 분들 실력이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다들 각 구역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실력자죠. 허나, 경호는 좀 더 전문성이 필요한 일. 편하게 쉬시며 컨디션을 조절하다 저희가 필요로 할 때 움직여주시면 됩니다.”

"음, 말은 그럴듯하지만, 영 못 미더운데. 구체적으로 어떤 전문성이 있는 거지?"

그 말과 동시에 던칸이 허리 뒤쪽에서 뭔가를 꺼내 채찍처럼 빠르게 휘둘렀다.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 어느새 그의 옆에 있던 돌 조각상이 부서져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맞은 부위가 산산이 부서졌는데,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ㅓ형태로 생긴 독특한 몽둥이. 몸 안에 있던 방대한 마력이 몽둥이로 전이돼 순간 엄청난 위력을 냈어. 신기하네.’

올리버가 찰나의 순간 보았던 모습을 분석했다.

"..…보다시피 전 마력 사용자입니다. 그리고 과거 핑크맨이기도 했고요. 당연히 이쪽 관련 업무를 전문적으로 해보기도 했습니다. 혹시, 다른 질문 있나요?”

그러자 놀랍게도 처음 의견을 제시한 사내가 양손을 보이며 뒤로 물러났다.

"아뇨. 이제 없수다. 그럴만한 사람이었군.”

생각 이상으로 순순히 물러났는데, 그뿐 아니라 분노나 창피, 좌절감조차 없었다. 마치 미리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음......'

던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음..... 부디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시한다고 해도 그건 일상생활의 한에서입니다. 혹시, 불한당이 나타나 그들을 상대해야 하면 그건 전적으로 여러분께 일임할 겁니다. 저희는 아가씨를 보호해야 하니 말이죠. 엄밀히 말하면 저희 역할은 보조일 뿐이니. 평상시에만 적당히 따라주시면 됩니다.”

놀랍게도 그의 설득 실력은 뛰어났다.

대부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것으로 보이지 않던 기 싸움이 일단락됐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그럼, 여러분이 지낼 숙소를 배정해 드리겠습니다. 2주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답답할 수도 있지만, 부디 협조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던칸이 부하 직원들과 함께 방 밖으로 나왔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해결사들만 남게 되었다.

모두 어색하게 서로를 살펴보았는데, 그러던 중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까 전 던칸에게 호기롭게 질문을 하던 장신의 녹색머리 남자였다.

"다들 자기소개나 하는 게 어때? 다들 좋든 싫든 2주 동안 이 집에서 같이 지내야 하는데.”

상당히 쾌활했는데, 어딘가 능글맞은 구석도 있어 보였다.

길게 기른 머리와 짧게 자른 수염 탓에 나이가 많아 보이지만 실상은 꽤 젊은 듯했다.

한쪽에 거대한 짐을 둔 삼십 대 중반 남성이 대답했다.

"불필요한 이야기는 자제하지. 어차피 일 때문에 모인 건데.”

"아, 우울하구만. 내가 이 바닥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잘 모르지만, 이게 다 인연이고 인맥인데. 서로 알아두면 누가 알아? 나중에 좋은 일자리 소개받을지?”

"그래서 여기 온 거야, 당신? 인맥으로?”

한 여성 해결사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다부진 몸매를 하고 있었으며, 꽉 끼는 가죽조끼와 바지를 입었다.

그 외에도 머리에 실크햇과 고글을 동시에 썼고.

"아, 나? ..…나야 당연히 인맥도 좋고 실력도 좋기 때문이지. 마총(魔銃) 아가씨.”

"나를 알아?”

"알다마다. 니나. 핑크맨 사무실에서 제법 명성을 쌓은 저격수잖아? 그 강력한 총으로 갱단 3개, 대규모 노동자 폭동 7회 진압했다지? 궁금한데 , 왜 좋은 직장 놔두고 길거리로 나오는 거지?”

마총이라 불린 여성은 담배를 하나 꼬나물었다.

아니, 담배가 아닌 필거렛이었다. 그것도 어딘가 낯이 익은.

"후우..…. 드루이드가 왜 길바닥으로 나왔는지, 알려주면 이야기해주지.”

"내가 드루이드인 걸 어떻게 알았어?”

"척 봐도 존나 드루이드잖아. 대가리 녹색물이나 빼고 말하던가.”

드루이드는 칼칼칼 웃었다. 아주 호탕했다.

"이유? 별거 있나? 빡빡한 구시대적 가르침 대신 활기차고 즐거운 새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이리 속세로 나온 거지.”

"인조이먼트군.”

"빙고! 자신의 재능을 자신을 위해 쓰라! 우리 가르침이지. 자 그럼, 이제 아가씨 차례군. 왜 좋은 직장 버리고 이쪽으로 나왔나?"

"월급이 짜서. 존나게.”

"짧지만 더할 나위 없는 이유군. 다른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 없어?”

".........."

모두 침묵하였는데, 그러던 중 올리버가 손을 들었다.

"아, 우울한 흑마법사가 손을 들었군. 너무 차별적인 발언인가?”

드루이드가 재밌는 농담이라는 듯 킬킬 웃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자기가 궁금한 걸 질문했다.

“마총(魔銃) 아가씨. 그거 뭐죠?”

올리버가 여자의 손에 든 담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담배잖아? 왜 여자는 담배 피우지 말자는 주의야?”

"아뇨. 필거렛인 것 같아서요.”

"...!"

필거렛.

감정을 가공해 담배와 섞은 일종의 가공 마약.

과거 올리버의 관심사이자, 취급했던 물건이었다.

허나, 단순히 그것 때문에 대화의 흐름을 깨며 질문한 것은 아니었다.

여성이 하..…. 하고 한숨 쉬며 말했다.

"이래서 흑마법사들은 싫다니까….. 왜? 신고라도 하게?”

"아뇨. 그냥 필거렛인 걸 확인하고 싶어 여쭌 겁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잠시 볼 수 있을까요?”

"잠깐 고민 좀 해보고. 음..…. 싫은데? 하나에 삼십만 란다나 하는 거라고. 심지어 품귀 현상이 일어나 더 귀하고."

"한 갑에?”

"아니, 한 대에.”

"워.…! 담배 하나에 삼십만? 말세구만.”

"담배가 아니라 필거렛이야. 그것도 그냥 싸구려 필거렛이 아니라 기프트라고.”

"기프트요?”

"어. 흑마법사인데 모르나 봐? 최근 블랙마켓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신생 필거렛 브랜드인데, 더럽게 인기가 많아. 무슨 사이비 흑마법사 교단에서 만들고 있다 하던데, 품질이 비교가 안 되지.”

여성은 말을 마치며 필거렛 연기를 후- 하고 뱉었다.

"고로 못 준다는 거야. 정 한 대 피우고 싶으면 네 돈 주고 하나 사던가? 나도 웃돈 주고 산 거야.”

웃돈? 올리버가 품 안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주변 몇몇 사람들이 긴장한 듯 근육을 수축시켰는데, 올리버는 지갑을 꺼내 십만 란다 여섯 장을 꺼냈다.

"이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하! 하나 사겠다고?”

"아뇨. 빌리고 싶습니다. 아주 잠시만 빌려주세요.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올리버가 말하자 여성은 잠시 노려보더니 이내 담뱃갑에서 필거렛을 하나 꺼내 건네줬다.

"이상한 짓 하면 한 대 맞을 줄 알아.”

올리버는 감사를 표하곤 필거렛과 지폐를 교환했다.

조심히 들어 눈에 신경을 집중하고 봤는데, 담배 안에 상충하는 두 개의 감정이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내 레시피인데?’

덜컥-

던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들 따라오시죠. 아가씨를 만나 뵙게 해드리겠습니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