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00화 (100/633)

< 100. 이사 (1) >

"해, 해잇- 크아아아악-!!”

호프먼 패밀리의 사무실.

호프먼 패밀리와 전속 계약한 흑마법사 힐턴이 소리를 질렀다.

그는 머피가 가져온 증거를 보자마자 부정하며 발악하더니 이내 감정을 추출해 공격하려고 하였는데, 올리버가 먼저 쉐도우 텐타클(shadow tentacle)을 써서 그를 제압했다.

바인 쉐도우과 쉐도우 스파이크를 섞은 것으로 포획과 공격을 전부 할 수 있었는데,

그 증거로 올리버의 그림자 촉수는 힐턴의 팔을 찌르고, 목을 움켜쥐어 순식간에 제압했다.

한주에 기본 수백씩 받아 가는 실력 있는 흑마법사 힐턴은 켁-! 켁-!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주변에 있던 호프먼 패밀리의 멤버와 보스인 지미조차 그 광경에 두려움을 느꼈는데,

머피는 여세를 몰아 그를 설득했다. 마치 몰아치는 늑대처럼.

"여기 보십시오. 지미 씨….. 트럭 강도들의 아지트에서 찾은 트럭 운송 시간과 물자 목록입니다. 내부자 짓이고, 범인은 힐턴입니다.”

머피가 습격 지시가 담긴 손편지를 추가로 내밀며 말했다.

누군가 힐턴의 필기체라고 중얼거렸는데, 이에 힐턴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아니라고 부정했다.

“….아, 아, 아닙니다. 사장님. 제… 켁! 가 왜…? 그런 끙..…."

"사로잡은 트럭 강도들을 심문해보니, 더 이상 패밀리에 남을 이유가 없다고 불평했다더군요. 특히나, 젊은 보스 밑에 있기에는 자존심이 허락 안 한다고 말이죠.”

머피는 방금 거짓말을 했다.

정확히는 젊은 보스가 아닌 무능한 애새끼라고 말했는데.

하지만 대충 뜻은 통했는지 호프먼 패밀리의 젊은 보스인 지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아직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지만, 거의 믿는 것 같았다.

하긴 눈앞에 확실한 증거가 있었으니.

“….어딨어, 내통자.”

지미의 물음에 머피가 밖에 신호를 줬다.

아서가 양손에 트럭 강도를 셋씩 붙잡아 끌고 왔다.

바닥에 던지다시피 내렸는데,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특히 올리버에게.

"....이 새낀 뭐야?”

지미가 육포처럼 쭈글쭈글해진 남자를 보며 물었다.

힐턴도 아는 사람인 듯했다.

"배, 배런.…! 어떻…끅으으윽-!”

"이 육포 같은 녀석이 말해줬습니다. 힐턴이 내부자라고. 돈을 더 받아야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확신이 생겼는지, 지미는 분노를 서서히 꽃피우며 말했다.

“..…거, 흑마법사 양반.”

"예."

"저 개새끼, 팔다리 좀 부러뜨려주쇼.”

"알겠습니다.”

올리버의 대답과 동시에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깔끔한 양복에 수염을 한 힐턴이 아기처럼 울며 바닥에 쓰러졌는데, 모두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니, 딱 한 명. 지미만 빼고.

그는 구석에 놓인 산탄총을 몽둥이처럼 들더니 사지가 부러져 꼼짝도 못 하는 힐턴을 패기 시작했다.

자존심을 다친 수치심, 배신감, 분노 그리고 주변의 눈을 인식한 초조함 따위가 보였는데, 감정의 상태가 꽤나 구석에 몰린 듯 보였다.

아무래도 젊은 보스로서의 중압감이 상당한 것 같았다.

퍽—! 퍽—! 퍽一! 소리가 한참을 울려 퍼졌는데, 힐턴의 얼굴과 바닥이 붉게 물들 때쯤 지미는 멈췄다.

"헉. 헉……. 이 개새끼랑 저 개새끼들 가둬두세요. 어디 연구실에 팔아버리려니까.”

심각한 지미의 목소리에 호프먼 패밀리원들이 시키는 대로 끌고 갔다.

바닥에 붉은색 선이 생겼는데, 올리버는 슬슬 자기 일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고맙군. 머피.”

지미가 담뱃불을 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도움이 돼서 기쁩니다.”

지미는 미묘한 시선으로 머피를 봤다.

고마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와 동시에 머피에게 경계심을 품었다.

“..…아지트는 어디 있지?”

"예, 위치는 확인했고, 저희 쪽 애를 박아뒀습니다. 준비되시면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다행이군…물건은 있나?”

"예, 있습니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팔지 못하고 남은 게 있습니다.”

“돈은?”

“..…확보했습니다. 장물로 빼돌려 그런지 값은 그리 많진 않지만, 어느 정도 피해를 축소 시킬 액수긴 합니다."

"다행이군.”

"다만, 한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머피가 올리버와 아서를 봤다.

"저기 지미 씨, 저희가 찾은 돈 중 절반은 흑마법사님과 아서 씨가 챙겼습니다.”

"뭐? 누구 마음대로?”

"통상적인 관례상 그렇습니다. 해결사들이 일하는 도중 노획한 물건이나, 돈은 해결사들이 어느 정도 챙깁니다. 아니면 돈을 더 주고 고용해 돈도 찾아오라고 의뢰해야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지미가 뭐라 한마디 하려 하자, 프랭크를 비롯한 늙은 관리인들이 그를 뜯어말렸다.

어차피 공짜로 골칫덩어리를 해결한 셈이니, 그 정도는 수고비로 줘도 된다는 거였다.

지미는 억지로 이 사실을 받아들였는데, 슬슬 이야기의 끝이 보였다.

‘이제 돌아갈 수 있겠군. 창고 위쪽에 작은 숙소가 있었으니까. 그쪽으로 이사할 준비부터 해야겠다.’

그때였다. 갑자기 지미가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저 말씀입니까?”

"그렇소. 당신….. 보아하니 제법 실력이 뛰어난 흑마법사 같은데. 혹시 일자리 필요 없소?”

"...?"

"때마침 우리 쪽에 일자리가 하나 비는데. 어떻소? T구역에서 일할 거면 우리와 같이 일하는 게 좋은데. 우리 패밀리에 들어오는 건 어떻소. 섭섭지 않게 대우해주겠소.”

뭐라고 할까. 추진력이 좋았다. 다만, 타이밍은 좋지 못했다.

"죄송합니다만, 정중하게 거절하겠습니다.”

“….어째서지?”

"전 지금 생활도 괜찮거든요. 뭣보다 조직에 소속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요.”

"그런 뻔한 소리 하지 말고, 원하는걸-”

“-잠깐만요. 지미 씨.”

머피가 개입해 작게 귓속말했다.

뭐라 설득하였는데, 말솜씨가 좋은 덕분인지, 들끓고 있던 지미의 감정은 점차 누그러졌다.

“….뭐, 좋아. 그럼,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소.”

"예.”

올리버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해소되며 이야기가 끝났는데, 올리버는 머피, 아서와 함께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이제 진짜 끝이었는데, 머피가 올리버와 아서에게 말했다.

"두 분 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데이브 씨께 감사합니다. 나름 다칠 각오하고 간 건데, 생각보다 쉽게 해결됐네요.”

그건 사실이었다. 올리버가 함정을 파훼하고, 블랙 다트로 광범위 공격, 이후에는 송장인형이 모든 걸 다했으니.

그러나 올리버는 이 사실을 부정했다.

"아뇨. 아서 씨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협상이 수월하게 됐고, 때마침 저도 송장인형을 테스트해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뭐, 나도. 덕분에 짭짤한 부수입이 생겨 불만 없어. 이걸로 새 골렘 의수 맞춘 비용은 얼추 해결할수 있겠어.”

트럭 강도들이 모은 돈은 제법 꽤 많았는데, 아무래도 골렘 의수가 상당히 비싼 모양이었다.

하긴, 그쪽 지식이 없는 올리버가 보기에도 복잡한 구조를 하고 있었으니 이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마력의 지속적인 골렘 유지, 사용자와의 동기화, 강력한 위력.…. 이쪽 분야도 시간 날 때 배워보고 싶네. 책방에 있으려나?'

"흑마법사님. 서류 작업을 마무리해 늦어도 삼 일 전까지 깔끔하게 대금을 넘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바쁠 것 같아. 혹시, 가시는 길까지 태워드릴까요?”

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찰나, 아서가 올리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으면 나도 좀 이 친구와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소…..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머피는 아서를 바라보더니 이내 물러났다.

"예, 알겠습니다. 흑마법사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머피가 눈치껏 물러나 줬다.

덕분에 올리버와 아서만이 남게 됐는데, 아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품 안에 손을 넣어 작은 명함을 꺼냈다.

"이건 뭐죠?”

올리버가 명함을 보며 물었다. 딱딱한 글씨체로 노동조합이라는 글씨가 박혀있었는데, 글자 아래에는 손을 맞잡은 노동자들이 서 있었다. 단결하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현재 내가 반쯤 고용된 조직이야. 이 도시에서 핍박받는 노동자들을 아주 약간 도와주는 단체지.”

"돈은 받나요?”

"아주 쪼금….. 먹고는 살아야지. 혹시 일거리가 필요하면 한 번 찾아와. 물론, 자네 같은 친구는 일이 부족할 틈이 없겠지만, 꼭 포레스트 씨와 거래하라는 법은 없잖나?”

"음.…. 생각해보겠습니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그리고 같은 해결사로 조언하나 해도 되겠나?”

"예, 말씀하시죠.”

"그 송장인형…. 오염구역에서 주웠다고 했는데, 퍼펫의 송장인형인 거야?”

“글쎄요.…. 그냥 널브러져 있던 걸 주웠는데, 실패작 아닐까요?”

아서의 감정에 의심이 빛났다. 허나, 따져 묻지는 않았다.

"뭐, 좋아.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니. 다만, 대낮이나 사람 많은 데서는 남용하지 마. 뭐가 됐건, 사람시체를 사용한 거라 꼬투리 잡히기 쉽거든. 특히, 송장인형은 여러 가지 오해의 소지를 주고.…. 적당히 사용해.”

순수한 호의였는데, 올리버가 감사를 표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별거 아니야. 덕분에 목숨 한번 건졌고, 짭짤한 부수입도 올렸으니. 그리고 사람들은 능력 있는 친구에게는 다들 친절하거든. 덕 좀 볼까 싶어서.”

"그런가요?”

"아주 그렇네. 그럼, 다음에 또 보지."

***

"후……. 아쉽네요. 진심으로.”

올리버가 머물던 숙소 여관 주인이 말했다.

"당신은 돈도 제때 내고 딱히 유별나진…. 유별나긴 하지만, 괜찮은 편이었는데.”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사 준비를 마친 올리버가 대답했다. 뭐, 이사 준비라 해봐야 대단할 것도 없었지만, 기껏해야 가방 하나만 챙겼다.

"진심이에요. 전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살려고 젊은 시절 악착같이 돈을 모아 이 여관을 샀거든요…. 로스번이 아쉬워하겠네요. 로스번 어서 나와! 데이브 씨 이제 가신다고 하신다.”

잠시 후, 실망과 슬픔, 아쉬움과 같은 감정이 범벅된 로스번이 주뼛주뼛 나왔다.

현실에 대해 아는 소년은 애써 슬픔을 억눌렀는데, 올리버가 떠나 많이 아쉬운 듯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도와달라고 해 몇 가지 도와줬고, 지금은 어느 정도 읽기와 쓰기 간단한 산수도 가능했는데, 그럼에도 아직 자신에게 이토록 의지한다니.

문득, 마리가 떠올랐다.

"그…. 자, 잘 가세요. 선생님.”

"......."

올리버는 뺨을 긁적였다.

평소였다면 잘 있으세요 하고 돌아갔을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캔트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 고마워요…. 가끔씩 찾아올게요.”

로스번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여기 밥이 맛있어서요.”

"어머, 그런 말도 할 줄 아세요?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앞으로 많이 말하겠습니다. 어차피 전 요리 할 줄 모르니…. 그러니 그때 한 번씩 보죠. 로스번.”

울 것 같던 로스번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아.…. 예, 예!”

그렇게 이야기를 끝마치고 올리버는 여관 여주인과 로스번의 배웅을 받으며 새로운 숙소인 창고로 떠났다.

역시 이게 맞는 것 같았다.

차일드를 비롯한 새로운 흑마법 연습과 송장인형 실기 연습 등을 위해서는 창고로 가는 게 맞았다.

"오셨군요.”

창고에 다다르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머피가 반겨주었다.

그는 자동으로 들고 있던 서류철을 펼쳐 올리버에게 내밀었다.

서류철에는 형식적인 계약서가 쓰여있었다.

"자산으로 보유하시는 건 자칫 노출될 우려가 있어, 장기 임대 형식으로 드리겠습니다. 일단 구색은 갖춰야 해 보증금과 월세는 명시했지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아예, 계약도 건너뛰고 편하게 쓰시게 해드리고 싶지만, 저도 리스크라는 게 있어서요.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뇨, 맞는 말씀입니다.”

실로 그랬다.

창고에서 올리버는 뭐가 됐건 흑마법과 관련된 연구 실험을 할 텐데, 서류상의 소유주 명의가 머피로 그대로 있을 경우 나중에 빼도박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 있었다.

이 정도 배려만으로 충분히 과했다.

올리버는 물 흐르듯 서류를 읽은 다음 펜으로 사인했다.

올리버의 정식 가명 ‘데이브 라이트’로 말이다.

"오, 글씨체가 멋있군요. 꼭 귀족 같습니다.”

“귀족요?”

"예, 멋들어져 보이는 것에 신경 쓰는 이들이라 글씨체 연습만 몇 시간은 한다고 하죠. 비아냥거릴 뜻이 아니라 글씨체가 정말 멋져 그렇습니다. 연습하신 건가요?”

"아뇨, 그냥 원래부터 이렇게 썼습니다.”

머피가 한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뭐..…. 그렇군요. 어찌 됐건 축하드립니다. 이로써 이 창고는 흑마법사님 소유나 다름없습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큰일을 한 것 같아 기쁘네요.”

올리버는 그리 말하며 창고를 봤다.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