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운송회사 (2) >
준비를 마친 올리버는 곧장 포레스트가 말한 곳으로 갔다.
35번 거리에 있는 호프먼 운송 회사로, 크라임 펌의 물류 중 한 부분을 담당하는 회사라 하기에는 어째 소소한 감이 있었다.
휑한 부지 주변에는 낮은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사용하지 않는 듯한 트럭이 십여 대 보였다.
상당히 노후화되었는데, 그럼에도 부지 가장 안쪽에 있는 건물에 비하면 괜찮은 편에 속했다.
저 건물은 언제 지어졌는지 마감이 다 벗겨져 벌거숭이쥐처럼 흉측했는데,
거기다 건물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무엇인가 소란스럽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거 놔라, 십새끼들아! 내 이참에 그 씨발 놈들을 작살을 내놓을 테니까! 대가리에 총알이 박히면 뭔가 교훈을 얻겠지!!!”
한 남성이 소리쳤다.
나이는 20대 중후반이었는데, 주변에 말리는 사람들에 비해 젊은 편이었다.
그는 분노, 초조, 자격지심 등 온갖 격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로 인해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말 그대로 감정에 휘둘리는 상태.
그에 반해 주변의 다른 이들은 짜증, 실망, 침울, 난감과 같은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남자를 말리고 있었다.
“아아, 심정 이해합니다. 사장님.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머피가 곧 사람이 온다고 하니-”
“-내가 혼자서 운전사 대가리 못 날릴 거 같아 그럽니까?”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다만, 아시지 않습니까? 요즘 시(市)가 시끄러운 거. 괜히 민감할 때 눈에 띄는 건 별로 안 좋습니다….. 그 적당할 때, 다시 교육하도록 하죠. 지금은 시기가 너무 안 좋습니다.”
지긋한 나이의 남자들이 젊은 남자를 번갈아 가며 설득했다.
다행히 먹힌 건지 젊은 남자는 고민하는 듯 보였는데, 지켜보는 올리버에게는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긴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서로 감정적 교류는 거의 없고 다른 생각들만 품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겉으로는 다들 아무런 티를 내지 않았다.
"아."
올리버가 멀찍이 떨어져 가만히 상황을 살펴보는 머피를 봤다.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실랑이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무엇인가 아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교활한 빛을 빛내며 말이다.
“머피 씨.”
뚜벅뚜벅 올리버가 다가가 말을 걸었다.
미간을 좁힌 채 인상을 쓰고 있던 머피는 곧장 표정을 풀며 올리버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아, 흑마법사님. 와주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쏠렸다.
모두 반가운 감정을 띠며 올리버를 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감정은 의문, 의심과 같은 것으로 변했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내려앉았는데, 그러던 중 한 뚱뚱한 중년 남성이 말했다.
"이, 이봐, 머피….. 이 사람이 자네가 말한 그 해결사라고?”
뚱뚱한 중년 남성은 모멸의 빛을 띠었는데, 이와 상반되게 머피는 확고한 믿음으로 대답했다.
“예, 이름은 데이브로, 제가 말씀드린 흑마법사님입니다. 큰 신세를 졌죠.”
머피의 확실한 보증 탓에 다들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올리버는 그들이 자신을 영 못 미더워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저 겉으로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인데, 그때, 누군가 말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전부터 말했잖아?”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곳에는 한 말쑥한 차림의 40대 남성이 서 있었다.
겉보기에는 30대 중반이었는데, 비싼 이발소에서 깎았는지 매력적인 올백 머리와 깔끔한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누구시죠?”
“….호프먼 패밀리와 전속 계약한 흑마법사인 힐턴입니다. 전 보스 때부터 있었던 사람이죠.”
올리버의 질문에 머피가 대답하는 사이, 힐턴이란 남자가 올리버를 가리키며 말했다.
"설마 다들 스무 살 남짓으로 보이는 애송이 하나 믿고 지금 그놈들을 상대하러 가자는 건 아니겠지? 그럼, 운전사 나부랭이가 우릴 더 우습게 볼 거야. 가뜩이나 노동조합을 통해 해결사 놈들을 얻어 기세등등해졌는데….. 거기에 기름을 붓는 꼴이라고.”
그러자 동조하는 듯한 웅성임이 들렸다.
귀를 기울이자 ‘애송이’, ‘확실히 좀…..’, ‘얕보인다.’와 같은 단어가 얼핏얼핏 들렸는데,
그렇다고 딱히 화가 나거나 불쾌한 것은 아니었다.
올리버와 저 사람들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
서로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그로 인해 신뢰가 없는 것 역시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올리버가 열심히 해 믿음을 심어주면 되는 일이니 그리 심각하지도 않았고.
그런데 , 머피는 어째서인지 올리버의 표정을 보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흑마법사님의 실력은 제가 보증합니다. 제가 직접 봤거든요. 제 이름을 걸고 말하는데,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그러니 어렵사리 모신 분께 실례되는 말 하지 마시죠. 제가 개인적으로 부탁해 와주신 분이란 말입니다.”
머피는 기본적으로 예의를 지켰으나, 자신의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상대측 사람들도 민망한지 큼- 큼- 거리며 딴청을 피웠는데, 호프먼이 상급 조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위에 있는 건 아닌 듯했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슨 내막이 있는 건가?’
심각한 건 아니지만 아주 약간 궁금했다. 물어보면 대답해주려나?
"....건방지구만. 이제 막 자리 잡은 신입 주제에 감히 우리 패밀리에게 큰소리를 치다니. 제임스 씨가 있을 때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힐턴이 악의를 가지고 말했다. 그는 일부러 저러는 것 같았는데, 덕분에 분위기는 심각해졌다.
통통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가 끼어들었다.
"이봐, 이봐. 다들 진정하자고….. 머피 이 친구가 애써 불러준 사람인데, 우리가 조금 예의 없게 굴긴 했잖아?”
"심각한 상황에 애송이 흑마법사를 데려왔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죄송하지만, 힐턴 흑마법사님. 이분은 이 구역에서 근래 명성을 알리고 있는 분입니다. 이미 몇 차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해결사들 명성은 반은 허상이지. 진짜 실력자들은 어디든 세력에 속하기 마련이라구..... 사장님. 그냥 제 제안대로 하시죠. 제게 약간의 자금만 주시면 제 과거 친구들을 데려와 건방진 트럭 운전사들은 물론 우리 사업을 위협하는 강도 놈들도 잡겠습니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다가가 뭐라 이야기했다. 돈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는데, 무슨 알력이 있는 거 같았다.
머피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올리버는 일단 자기 일부터 하기로 했다.
일에는 순서가 있었고, 자기 일부터 해야 뭔가를 요구할 수 있는 법이었으니.
"저기요?”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 다들 제 실력이 의심스러우신 거 같은데, 그럼 절 테스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럼, 서로 안 싸우셔도 될 거 같은데.”
올리버가 무슨 이상한 말을 했는지 다들 미묘한 감정을 띠며 올리버를 봤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것을 본듯한.
그때, 힐턴이란 잘 빼입은 흑마법사가 말했다. 무슨 오해를 한 건지 그는 적의의 감정을 내보였다.
“하….. 젊은 친구 혈기가 좋네. 어떻게 증명할 건데?”
“그건 잘 모르겠네요. 어떻게 하면 증명할 수 있을까요?”
“하! 그냥 멍청한 놈이네. 간단한 방법이 있지.”
힐턴이 그 말과 함께 시험관에서 감정을 단번에 추출했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흑마법진이 맺히더니 살의를 담은 해잇 불릿이 장전됐다.
흑마법진을 손가락 대신 힘을 응축하는 중심축으로 삼은 거였는데, 꽤 재밌는 발상이었다.
비효율이 더 크기 하지만, 잘만 하면 의외성을 줄지도.
"그럼, 어디 네 힘을 좀 볼-”
一촤르르르륵!
파바바바방———!
올리버의 그림자 촉수가 순식간에 힐턴의 발아래에서 솟아올라 준비 중이던 해잇 불릿을 박살 냈다.
1초도 안 되는 순식간이었는데, 이 광경을 본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힐턴, 호프먼 패밀리원, 머피 모두 말이다.
"........."
"........."
"........."
“…..아. 죄송합니다. 혹시 제가 착각했는지요? 가벼운 대련으로 실력 테스트하자는 건 줄 알았는데?"
올리버가 부드럽게 말했지만, 분위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올리버가 머피에게 속삭여 말했다.
"그냥 갈까요?”
"아니! 아뇨! 아닙니다. 가지 마세요.”
끼어든 사람은 산탄총을 들고 다른 나이 든 남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젊은 남자로, 그는 자신을 호프먼 패밀리의 보스 지미 호프먼이라고 소개했다.
"아버지 제임스 호프먼의 뒤를 이어 패밀리를 맡게 됐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머피 정말 제대로 된 분을 데려왔군. 고마워.”
어느새 힐턴에 대한 관심은 모두에게 멀어졌고, 그 대신 올리버 쪽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물에 빠진 와중 만난 보트처럼.
"저희를 도우시겠다고요?”
"예, 머피 씨와 계약했거든요.”
"좋군.…. 아주 좋아! 머피, 이번 일만 잘 해결되는 대로 원하는 조건 다 들어주지.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약속해.”
“감사합니다. 지미 씨.”
"그럼, 바로 좀 도와주시죠. 우선 건방진 트럭 운전사 놈들이랑 그놈들 돕는 해결사 나부랭이들부터 해치우죠.”
"...?"
올리버가 말없이 머피를 봤다. 이건 계약 내용에 없던 이야기였다.
실제로 머피는 올 게 왔구나 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올리버에게 양해를 구하곤 지미를 한쪽 구석으로 데려가 뭐라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한두 마디 오가는 사이 어느새 고함으로 변했는데,
지미란 남자는 처음 봤을 때처럼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뭐랄까. 아주 감정이 불안정했는데, 그럼에도 머피는 정중하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자신이 책임진다. 일단 믿어달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윽고 머피 혼자 이쪽으로 왔다.
"지미 씨께서 저더러 대신 협상해도 좋다고 허락하셨습니다. 저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
올리버는 머피를 따라 호프먼 운송 회사의 운전사들이 파업하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 멀지는 않았는데, 가는 도중 머피는 호프먼 패밀리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줬다.
성질을 잘 내던 지미는 지난 몇 달 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패밀리의 보스가 된 자로 평판과 수완 모두 뛰어난 아버지의 뒤를 이었지만 약간 조급함 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맞소. 그래서 그렇게 화를 냈던 거죠. 부디 이해 바랍니다. 젊은이 특유의 초조함이라고 할까요. 예예.”
인자하게 주름진 통통한 사내가 맞장구치듯 말했다.
그의 이름은 프랭크. 힐턴이 도발할 때 말려준 이였다.
지미가 도움 겸 감시라는 목적으로 붙여준 사람이었는데, 어째 머피와 매우 친밀해 보였다.
"그건 그렇고. 정말 대단하네. 머피…. 이런 분을 데려왔다니! 아니, 이야기를 들어 믿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더 대단하달까. 정말 고맙네. 자네들이 우리 급한 자금도 해소해줬고….. 젊은 나이인데도 대단하군.”
“아닙니다. 저도 호프만 운송 회사의 판매망이 필요해서 그런 거니 너무 칭찬하실 필요 없습니다.”
쿵짝이 잘 맞았는데, 감정 상태를 볼 때, 말 이상의 끈적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주고받는 묵시적인 무언가 말이다. 다소 음습하기까지 했는데, 무엇인지 대강 알 거 같았다.
‘다만 아직 물을 때는 아니군.’
"그런데 흑마법사님. 아까 운전사들 쪽 해결사 중 한 명과 아신다고 하셨죠?”
“예, 포레스트님 말씀에 따르면요. 아서 씨라고 있다더군요.”
“아아, 알 것 같네. 팔에 돌을 단 이상한 인간 아닌가? 그게 뭐였더라….?”
"골렘 의수요?”
"아! 네네. 그렇습니다. 그걸로 우리 애들 몇몇 패대기쳤지. 완전 바위 덩어리라..…. 트럭을 주먹으로 쳐서 몇 바퀴 굴리더군. 세상에.… 결국 그 모습을 보고 우리가 꼬리를 말았는데, 그게 지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말았지. 힐턴 그 녀석은 헛바람을 계속 넣고. 제임스 씨가 살아계실 때만 하더라도 얌전했는데, 돌아가시자마자 마치 자기가 대장인 것처럼 굴어.”
프랭크의 말에는 불만과 은근한 메시지가 섞여 있었다.
머피는 알면서도 모른 척했는데, 어째 이쪽 바닥도 꽤 재밌어 보였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아서라는 사람이 지금 책임자인 거 같은데, 흑마법사님께서 안면이 있으시다니, 최소한 대화를 시작하기는 쉽겠군요.”
"절 좋아하실지는 모르겠는데요? 자세히 대화해 본 적이 없어서….. 거기다, 전 설득을 잘하지 못합니다."
올리버가 여관 여주인과의 협상을 떠올리며 말했다. 호통만 듣고 끝났다.
“설득은 제가 하겠습니다. 흑마법사님은 대화할 물꼬만 터주시고, 혹시 모를 상황 때 뒤를 봐주십시오.”
머피는 은밀히 흥분과 야심을 뿜으며 그리 말했다.
아무래도 그는 단순히 호프먼 패밀리를 도와 판매망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 아닌 듯했다.
그게 뭔지 개인적으로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