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96화 (96/633)

< 96. 운송회사 (1) >

머피는 올리버를 데리고 공장지대 근처에 있는 한 창고로 데려갔다.

꽤나 깊숙했는데, 주변에 다른 창고들도 많이 있어 눈에 띄지는 않았다.

마치, 숲속에 나무를 숨긴 느낌이랄까?

이에 관해 머피가 추가로 설명했다.

"꽤 조용한 곳이죠? 흑마법사님.”

"예."

"실제로 조용한 곳입니다. 이곳 창고 중 갱이 소유한 것도 있는데, 저를 포함해 몇몇이 돈을 모아 경찰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해 평소에는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물론 건수가 생기면 이야기가 다르지만요.”

"그렇군요.”

"네. 하지만 평소에는 얼씬도 안 합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좀도둑들이 꼬이는데, 그 역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근방에는 경비도 삼엄해 좀도둑들도 잘 안 오거든요.”

실제로 이해됐다. 자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띄엄띄엄 험악한 인상의 경비원 및 창고 직원들이 보였는데, 평범한 노동자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타인에게도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일부러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렸는데,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관심을 끊으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올리버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외부와 분리되어 있고, 이웃마저 서로에게 신경 쓰지 않다니. 흑마법 연구를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여깁니다.”

머피가 한 건물 앞에 멈췄다.

구석에 있는 허름한 이층집으로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1층을 멋대로 부숴 창고로 개조한 건물이었다.

올리버가 안으로 들어가 둘러봤다.

조잡하고 좁았지만, 썩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오히려 처음 지낼 곳치고는 괜찮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럭저럭 실험할 공간은 나오겠는데?’

머릿속으로 이곳을 어떻게 실험실로 만들지 구상하던 중 머피가 말을 걸었다.

"흑마법사님?”

"음, 예?”

"아, 죄송합니다. 제가 방해했는지?”

"아,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요? 여긴 눈속임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올리버는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이내 그 말뜻을 알게 됐다.

2층으로 오르는 통로 중 좁은 샛길로 빠져나가자 아래로 내려가는 비밀 입구가 보였는데, 그 아래 상쾌할 정도로 넓은 지하실이 있었다.

"여긴?”

"이곳이 진짜 창고입니다. 들어가는 입구가 좁아 잘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흑마법사님이 쓰기에 오히려 좋다고 생각합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넓기도 넓고 실험대로 쓸만한 커다란 탁자 3개와 물건을 올릴 수 있는 책장 선반 따위가 있었다.

"이건 아직 쓸 수 있겠네요.”

"마음에 드십니까?”

"예. 정말 마음에 드네요.”

올리버가 솔직히 말했다. 환경도 이 정도면 쾌적했고, 주변의 입지도 나쁘지 않았다.

아직 부동산 가격에 대해 아는 게 없긴 했지만, 이것저것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아주 비쌀 거 같았다.

퇴역군인들 말에 따르면 이 염병할 도시의 부동산 가격은 가히 살인적이라고 했으니.

이 창고 가지고 싶었다.

“..…질문 몇 개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말씀하시죠.”

"제게 의뢰가 있으면 포레스트님을 통해서 하면 될 텐데. 왜 직접 말씀하시는 거죠?”

"오해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히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 아니니. 그저 어떻게든 흑마법사님의 도움을 받고 싶어 직접 말씀드린 겁니다.”

"...?"

"저희가 다시 만난 지 얼마 안 되긴 하지만, 흑마법사님은 그새 명성이 더 높아지셨습니다. 뭐,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닙니다. 흑마법사님 실력을 봤으니….. 명성이 높아지면 고객들 수준도 높아지는 게 당연지사. 그럼, 제 의뢰는 거절당할 확률이 높아지니 이리 직접 말씀드린 겁니다. 이런 말 뻔뻔하긴 하지만 꼭 좀 도와주셨으면 하거든요.”

"이해가 안 가네요…. 엄밀히 말하면 운송회사 일은 머피 씨 일이 아닌 다른 패밀리 일인데 왜 이렇게까지 부탁하시는 거죠?”

"이 일을 도와주면 제 사업에 훨씬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네. 현재 제가 생산 중인 마법주는 저희 주점에서 파는 것 외에 다른 곳에도 팔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 구역에서 파는 거라면 제가 직접 거래를 트지만, 이 구역 외에 다른 구역이나 도시로 팔 경우 크라임 펌을 통해 팝니다. 제가 판매망을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

"중간 다리를 하나 거치기 때문에 수익은 줄고, 유통과정 중 물건에 장난질하는 이들도 있어 품질 역시 떨어지죠. 제 사업 신조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제 판매망을 개척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운송회사를 도와주려는 건가요?”

"네. 저 혼자서 판매망을 만들면 다른 곳에서 견제하겠지만, 호프먼 패밀리 같은 중간 조직이 끼면 훨씬 안전하거든요.”

"중간 조직요?”

"구역을 관리하는 이사 바로 아래 있는 조직이죠. 저 같은 하위조직의 위이기도 하고요. 요컨대, T구역에서 적잖은 발언권을 가진 이들입니다.”

머피의 목소리에는 점점 힘이 더 해졌다.

"현재 크라임 펌에 유통되는 건 ‘상품’이 아닌 그저 ‘밀주’. 전 호프먼을 통해 제 ‘상품’을 유통할 겁니다. 점점 생산량을 늘려가고 있으니, 계획대로만 되면 몇 년 안에 킴벨 브랜드를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난관을 헤쳐가야 하는데, 흑마법사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너무 멀리 나간 이야기 같지만, 머피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전에 봤을 때보다 부유해졌을 뿐 아니라, 야심 역시 더욱 이글거렸다.

뭐, 나쁘진 않았다.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초창기 마리나 피터, 여관일꾼인 로스번과 비슷한 예쁜 빛이었으니.

‘거기다 다른 생각도 있으신 것 같고.’

머피가 다소 초조함을 빛내며 물었다.

"흑마법사님?”

"뭐, 좋네요.”

"예?”

"조건 괜찮은 거 같아요. 도와주고 창고 받는 거.”

"아, 감사합니다.”

"대신 조건 좀 걸 수 있을까요?”

"조건요? …예, 말씀하시죠.”

"첫 번째 적정 수수료를 책정해 포레스트님에게 이 일을 직접 의뢰해 주세요. 그럼, 제가 의뢰를 수락하겠습니다….. 별건 아니고, 그냥 겁이 나서요.”

겁이 난다라, 머피는 그 말을 전혀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반인들 상대하는 일은 안 하고 싶습니다. 시 공무원하고 성기사님을 만나 겁이 나거든요.”

머피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이내 관뒀다. 대신 부탁했다.

“….좋습니다. 다만, 협상 중에 그쪽에서 폭력을 쓸 것 같으면 보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습니까?”

"예, 그건 해야죠.”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포레스트 씨에게 정식 의뢰를 넣는 거라면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그건 맞았다. 포레스트의 경우, 자신이 맡은 의뢰에 관해 정식으로 조사하니.

캔트가 말하길, 번거롭기도 해 몇몇 중개인은 이를 건너뛰기도 한다는데, 포레스트는 그러지 않는다고 했다.

덕분에 비효율적이라도 더 안전하다고 했고.

"아무리 빨라도 2, 3일은 걸릴 텐데, 괜찮겠습니까?”

“….솔직히 아까운 시간이긴 하지만, 못 쓸 시간도 아니죠.”

"그럼,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부탁요?”

"예, 혹시 이 창고 지금부터 제가 좀 쓸 수 있을까요? 계속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못했거든요. 어쩌면 일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데….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

머피와의 대화 나흘 후, 올리버는 지하 창고에서 한창 땀을 흘리고 있었다.

웃통을 벗고, 헌 옷 가게에서 산 청바지와 작업 장갑을 끼고, 탁자 위에 놓인 송장인형과 한창 씨름을 벌였는데,

첫날만 해도 올리버가 졌지만, 잠도 자지 않고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연습한 덕분에 현재는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

올리버가 졸린 눈을 비비며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캔트님. 식사랑 잠은 거르지 말라고 하셨는데, 재밌어서 그만두지를 못했네요. 이해 바랍니다.’

올리버가 어느 정도 수리를 마친 송장인형 ‘흑마법사’와 ‘저격수’. 그리고 반쯤 개조를 마친 ‘넝마’와 ‘검사’를 바라봤다.

이것 모두 퍼펫의 송장인형이었는데, 올리버가 주운 거였다.

이거 외에도 몇몇 개 더 있었지만, 그중 대부분을 송장인형 흑마법사, 저격수, 넝마, 검사를 고치는 재료로 써 완전히 해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딱히 아깝지는 않았다.

어설프긴 하지만 올리버만의 송장인형이 생겼으니.

‘거기다 재밌는 실험도 할 수 있었고.’

올리버가 송장인형 근처에 있는 시험관을 보며 생각했다.

시험관 내부에는 검은색 구(球) 같은 것이 떠 있었는데, 이것은 미니언이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그냥 미니언이 아닌, 생명력과 감정을 뒤섞은 ‘조금 더’ 공을 들인 미니언이었다.

올리버가 감정과 생명력이 든 플라스크를 꺼내 시험관 안에 든 미니언에게 감정과 생명력을 먹였는데,

미니언은 희미한 기쁨의 감정을 빛내며 감정과 생명력을 촵- 촵- 게걸스럽게 먹었다.

‘흥미롭군. 퍼펫 님의 인공생명을 흉내 내본 것뿐인데.…. 그건 그렇고 이거 이름을 붙여야 하나? 미니언이라고 계속 부르자니 구분이 안 되는데? 뭐로 붙여야 하지? 일회용은 아니니까 적당한 이름이 있어야 할 거 같은데….. 그냥, 차일드라고 부르자.’

올리버가 2초 고민하고 결론을 내렸다.

그때였다. 귓가에 삐- 삐-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올리버는 작업대 위에 놓인 포레스트 직통 통신기기를 들었다.

사용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던가?

올리버가 통신 버튼을 누르며 귀에 댔다.

"여보세요.”

"그래, 나네. 잘 들리나?”

"예, 잘 들립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아니, 별로 못 지내. 자네 덕분에 갑자기 업무가 확 생겼으니. 오염구역 건만 아니더라도 그냥 무시했을 거야.”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런 말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염구역 건은 포레스트 님 잘못이 아니니. 그저 포레스트 님이 친절하게 절 도와주신 거니까요. 제가 눈치가 없긴 해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포레스트가 침묵했다.

통신기기를 통한 대화라 감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포레스트가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말고.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우선 조사는 끝났네. 머피가 말한 건 대부분 사실이야.”

올리버는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화를 통해 그가 한 말이 대부분 진심인 걸 알았으니까. 대부분은.

"제게 직접 의뢰한 이유가 뭐죠? 창고 하나를 주는 거라면 그냥 포레스트 님을 통해서 해도 수락했을 거 같은데.”

"그거에 관해서도 조사해봤네. 자네가 거절할까 봐 직접 부탁한 거라는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일종의 쇼맨십이 아닐까 하네.”

"쇼맨십요?”

"나를 통해 자네를 고용하는 것 보다, 자기가 직접 나서 자네를 고용하는 게 뭐랄까…. 더 친밀한 관계처럼 보이거든.”

“…? 이해가 안 갑니다만.”

"쉽게 말해 이거야. 난 이렇게 대단한 흑마법사를 알고 또 개인적으로 부탁해 데려올 수 있다….. 아무래도 머피는 호프먼 패밀리를 도와 유통망뿐 아니라, 자기 존재를 상급 조직에 각인시킬 모양이야. 무력을 갖춘 조직은 어디서든 존중받으니.…. 얄팍한 속임수지만, 또 먹히니 나쁜 방법은 아니야….. 혹시 불쾌하나?”

"아뇨.”

올리버가 진심을 대답했다. 고아원과 광산에서 더한 것도 보고 겪었기에. 그 정도야 뭐….

무엇보다 올리버도 창고를 이용할 수 있었고.

딱히 불만은 없었다.

포레스트가 다시 한번 물었다.

“진심인가?”

"예,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끔씩 자네가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무서운 건지 감이 잘 안 오네. 뭐가 됐건 자네 자유긴 하지만….. 그래, 의뢰는 정식으로 수락할 건가? 지금 거절해도 문제는 없네.”

"아뇨, 수락하겠습니다. 이미 덕을 좀 봐서요.”

"뭐, 그렇다면 그러지..…. 그럼, 당장 움직여 주게. 머피가 지금 자네가 와줬으면 한다는군. 지미 호프먼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했다든가 하더군.”

"지미 호프먼이 누구죠?”

"운송회사를 운영하는 호프먼 패밀리의 젊은 보스. 머피가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했네. 이러다간 직원들과 싸움이 날 거라고 말이야. 직원들 곁에 해결사들도 있으니 잘못하다간 괜한 피만 흘릴 테지.”

올리버가 몸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서둘러 옷을 입었다.

"혹시 트럭 운전사들 곁에 있는 해결사들이 누군지 아시나요?”

"알아냈네. 뭐, 딱히 어렵지도 않았지만, N구역의 아서를 비롯한 퇴역군인 출신 해결사들이네..…. 그러고 보니 둘이 만났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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