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95화 (95/633)

< 95. 신분증 (2) >

주점 안쪽에 있는 사무실은 그리 크지 않았다.

포레스트 레스토랑의 사무실 크기와 엇비슷했는데, 사무실 내부가 정리되어 있지 않아 체감상 더 좁게 느껴졌다.

두 명 정도 있으면 적당했고, 세 명쯤 되면 약간 답답할 크기였다.

머피가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근래 일이 많아 조금 지저분하네요.”

"아닙니다. 확실히 바쁘신 것 같더군요.”

올리버가 북적북적한 주점을 떠올리며 말했다.

사람이 꽉 찰 정도로 많았으며, 적잖은 이들이 마법주를 마셨는데, 한 잔 마시는데 적잖은 비용을 썼다.

"자, 여기 있습니다."

머피가 서랍 아래에서 갈색 종이봉투를 꺼내 올리버에게 건넸다.

올리버는 종이봉투를 열어 안에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올리버의 가짜 출생증명서와 수첩 형태의 신분증이 있었다.

올리버가 수첩 형태의 신분증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올리버를 미묘하게 닮은 얼굴과 함께 ‘데이브 라이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외에도 태어난 곳,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도 있었고.

"이건..…?”

"새 신분증입니다. 마음에 드시는지요?”

올리버가 신분증과 출생 증명서를 확인했다.

"예. 마음에 듭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군요. 1등급 신분증을 준비한 보람이 있어요.”

“1등급요?”

"아, 모르시나 보군요. 가짜 신분증도 급이 나뉘거든요. 종류는 다양하지만 보통 3개 등급으로 나눕니다.”

올리버가 흥미를 보였다. 이런 자잘한 이야기에서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기에.

"괜찮다면 어떻게 나누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안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혹시 술 좋아하십니까?”

"그냥 한 모금 마실 줄만 압니다.”

"좋군요.”

머피가 그렇게 말하며 사무실 한쪽에 놓인 마법주를 따랐다.

녹색 형광빛을 띠었는데, 주점에서 팔던 것과 달리 마력의 농도가 꽤나 짙었다.

쪼르륵. 머피가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가짜 신분증은 크게 세 개로 나뉩니다. 1등급, 2등급, 3등급…. 3등급은 그저 신분증 겉모습만 흉내 낸 장난감으로, 경찰이 조금만 자세히 봐도 들키는 쓰레기죠. 2등급은 시 공무원에게 뇌물을 찔러주고 만든 거로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자세히 조사해보면 들키고 말죠.”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1등급은 좀 다릅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신분을 가져오는 거거든요.”

"원래 있던 신분요?”

"예, 제대로 된 신분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중에서도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거든요. 그들 대다수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크라임 펌은 그들의 신분을 빚 대신 몰수합니다.”

올리버가 자신의 신분증을 봤다.

"그럼, 원래 주인이 따로 있는 신분증이라는 건가요?”

"예. 그래서 일일이 사람을 만나 대조하지 않는 이상 들킬 염려는 없죠. 신분증을 만든 사람은 분명 실존했던 사람이니까. 한 사람의 인생을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리버가 신분증에 박힌 얼굴을 봤다.

"신기하네요. 저랑 얼굴이 비슷한데요?”

"마법 수술로 성형시켜서 그렇습니다. 적당한 구실과 뒷돈만 있으면 신분증을 새로 발급받을 수 있거든요. 이때, 얼굴과 함께 이름도 고객의 편의대로 바꾸죠.”

호오…. 올리버는 재밌는 옛날이야기라도 들은 반응을 보였다.

"방법은 간단하고, 안정성도 높지만. 적당히 조건이 맞는 사람을 찾고 이후 성형, 뇌물, 뒤처리 비용 탓에 1등급 신분증은 조금 비싼 편입니다.”

"예, 저도 얼추 들었습니다. 포레스트 님이 지나가면서 말씀하시길 몇억은 한다고 하더군요.….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아뇨, 흑마법사님께서 해주신 것에 비하면 그리 대단하지도 않죠. 저번에 제가 덕을 많이 봤습니다…. 술맛은 어떻습니까?”

"아, 아직 안 마셨습니다. 잠시만요.”

올리버가 그리 대답하곤 녹색 형광빛 마법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꽤 먹을 만했다.

“….맛있네요.”

올리버의 반응이 기대한 바가 아니었는지, 머피는 약간 아쉬움을 빛냈다.

“아….. 다행이군요. 입맛에 맞으신지요?”

"네, 맛있네요.”

"다행이네요. 부유층을 겨냥해 만든 제품이거든요.”

“부유층요?”

"예, 앞서 말했다시피 전 단순히 밀주를 만드는 게 아닌 상품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비용이 더 들어감에도 술병에 라벨을 붙여 포장하고,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상품의 품격을 만들려고 하고 있죠.”

머피의 마법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고객에 맞춰 품질도 다르게 만들어 수익을 극대화할 생각입니다. 이건 도시의 정치인이나 마법사, 자본가에게 팔 고급품입니다. 이름은 ‘구트 드 뒤우’죠."

“.…무슨 뜻이죠?”

"신의 물방울이란 뜻입니다. 갈로스 언어죠.”

"갈로스요?”

"이 나라 아래에 있는 대륙국입니다. 그쪽과 많이 싸웠죠. 같은 편도 해봤고요. 싸움은 못 하지만 음식이랑 술은 잘 만드는 놈들이죠."

"그쪽 언어로 제품 지은 이유가 있습니까?”

"예,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대다수 사람들은 뜻도 모르는 외국어가 있어 보인다고 좋아하거든요.”

"아..…."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피의 말은 반 정도 진심이었는데, 꽤 재밌는 이야기였다.

올리버가 다시 한번 마법주를 마셨다.

포레스트가 준 술에 비하면 확실히 중독성이라던가, 계속 마시고 싶어지는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았다.

그때, 필거렛처럼 감정을 이용해 술을 가공하면 더 맛있을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니지 낭비려나? 주점에서 파는 술을 만드는 데만 해도 엄청난 양의 감정이 소모될 테니.’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머피 씨.”

"예, 편히 말씀하시죠. 흑마법사님.”

"저번에 말씀하시길 크라임 펌에서 부동산 회사 같은 것도 운영한다고 하던데, 창고 같은 건 얼마 정도 있어야 살 수 있습니까? 뭐, 꼭 살 필요는 없고, 빌리는 것도 괜찮기는 한데."

올리버가 물었다. 신분증도 생겼으니 이제 하나둘 준비해둬도 나쁘지 않을 듯싶어서.

당장 살 수는 없을 테지만, 가격 정도는 알아봐도 나쁠 거 같지 않았다.

그러자 머피가 미소 지었다.

"이거 재밌군요.”

"예? 무엇이 말씀이죠?”

"저도 그거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했거든요.”

"...?"

"흑마법사님. 혹시, 창고를 가질 수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외부와의 감시나 눈으로부터 자유로운 창고 말입니다. 때마침 제가 헐값에 하나 구해서.”

“..…그럼, 좋기는 한데요.”

"그럼,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머피가 창고를 그냥 준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 상응하는 부탁이 있었다.

"트럭 문제요?”

"예."

“머피 씨께서 트럭 사업도 하시나요?”

"아뇨, 전 아닙니다. 저희 패밀리보다 위에 있는 패밀리가 하죠. 호프먼 패밀리로, 여러 사업을 하는 데 주력은 운송사업이죠.”

"운송사업요?”

"예, 호프먼 운송회사라고, 거대한 트럭에 짐을 실어 어디든 무엇이든 배달합니다. 밀가루나 술, 통조림, 옷, 연료 같은 거요..…. 가끔씩 약이나, 밀수품, 마법주 같은 것도 실어나르죠.”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머피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제법 중요한 이들인 듯했다.

그들은 합법적인 운송 외에도 크라임 펌의 물건 등을 배달하였는데, 이미 그쪽 관련 경찰들과도 커넥션이 형성돼 높은 배달성공률을 보인다고 했다.

즉, 음지 양지 물류의 한 부분을 차지한 셈인데, 그런 곳이 최근 적잖은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하였다.

"무슨 곤란이죠?”

"계속 누군가 트럭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습격하고 있다고요? 누가요?”

"그건 저도 확실히는 모릅니다. 이 바닥이 언제 총 맞아도 이상하지 않은 바닥이라서요. 개인적 원한, 사업, 정치 등 수많은 이유와 용의자가 있죠.”

진심.

“음….. 추측도 안 되나요?”

"사실 몇 명 있긴 합니다. 호프먼이 일을 제대로 못 하면 크라임 펌 이사진에서 사업권을 다른 쪽으로 넘길 테니까요….. 네다섯 패밀리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하진 않습니다. 괜찮은 용병을 쓰는지 꼬리도 안 잡히거든요.”

"그럼, 제가 그 습격하는 놈들을 잡아줬으면 한다는 겁니까?”

"예, 참고로 호프먼 쪽에서 이미 몇 번 시도하긴 했습니다. 적잖은 돈을 써 이름난 해결사들도 써보고요. 하지만 막지 못하고 생돈만 날렸죠….. 아!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뭐죠?”

"트럭이 연이어 습격당하자 운전사들이 지금 파업하고 있습니다.”

"왜요? 습격당해 동료분들이 죽어서 그렇습니까?”

"그것도 있는데, 회사 측에서 서류에 장난질해 원래 받아야 할 보험금의 반을 빼돌렸거든요.”

"아……. 그거 나쁜 거 아닙니까?”

"아주 나쁜 짓이죠.”

"그런데 그걸 왜 저한테?”

"운전사들이 그냥 파업만 한 게 아니라 노동조합을 통해 해결사들도 지원받았습니다. 작정한 거죠. 그것도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다.

"별로 그런 건 하고 싶지 않은데요?”

"예?"

"전 일반인이랑 엮이는 일은 안 하고 싶거든요. 흑마법사라서. 잘못하면 저 감옥 갑니다. 아니지, 죽나? 여하튼요.”

그 외에도 그다지 내키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이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보다는 이익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더 잘 먹혔기 때문이었다. 깔끔하기도 깔끔하고.

"아, 제 설명이 부족했군요. 파업하는 운전사들을 죽여달라는 게 아니라 협상할 때 도와달라는 겁니다.”

"협상요? 죄송하지만 전 협상에 관해서 아는 게 없습니다.”

"그냥 흑마법사님쯤 되는 분이 등 뒤에 서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쪽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적정선에서 합의하려고 하거든요. 보험금의 65퍼센트를 지급하는 거로요.”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요?”

"이 정도면 많이 양보한 겁니다. 일반 사업체도 이런 일은 하고요. 35퍼센트는 일종의 수수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썩 공감되지는 않았지만, 굳이 따지지도 않았다.

이 도시의 생리야, 올리버보다 머피가 더 잘 알겠지.

"그럼 왜 노동자들이 협상하지 않는 거죠?”

"원래라면 할 텐데, 도와주고 있는 노동조합 놈들이 계속 헛바람을 넣고 있거든요. 원래 보상금에 두 배는 받게 해준다고요. 그중 절반 이상을 자기들이 먹을 거면서. 즉, 저희랑 협상해도 운전사들이 가져가는 몫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즉, 해결사님께서 저희들 뒤에 서서 약간의 설득력을 보태주면 좋겠다는 겁니다. 물론, 필요할 경우 힘을 좀 빌려야 하긴 하겠지만, 최대한 성가시지 않게 하겠습니다.”

머피가 아주 조곤조곤 조심히 설명했다. 어째 전보다 훨씬 조심스러웠다.

"과연 제가 있겠다고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요?”

머피가 마법주를 한 모금 마셨다.

“.…전 흑마법사님이 마법사와 싸우는 걸 봤습니다. 분명 도움이 되실 겁니다. 특히, 근래 더 재밌는 소문도 퍼졌고요.”

“소문요?”

"예, T구역의 한 흑마법사가 퍼펫과 싸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요. 시에서 최대한 막고 있지만, 결국 소문은 퍼질 겁니다.”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려주신 건데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퍼펫을 만나고, 살아남은 것이 중요한 거죠.”

올리버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게 과연 좋은 건지.

해결사로서의 명성이 오르는 건 목표한 바이긴 했지만, 왠지 또 이런 식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펫을 쓰러뜨린 것은 오롯이 올리버의 힘이라기보다는 지옥의 입구와 인공영혼과 같은 강력한 에너지원 덕분도 있었다.

하긴, 상관없으려나, 이미, 벌려진 일이니.

"요컨대, 호프먼 운송회사 일을 도와주면 창고를 주시겠다는 건가요?”

"예, 형태는 구매로 하든 장기 임대로 하든 원하는 대로 맞춰 드리겠습니다.”

"그럼, 지금 어딘지 볼 수 있을까요?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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