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퍼펫 (4) >
검은 불이 켜지며 방 안에는 어둠이 걷혔다.
실로 아이러니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리버는 그런 감상에 젖는 대신 주변을 살펴봤다.
벽돌로 이뤄진,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은 과거 조셉의 비밀 제단을 연상케 했는데, 방 주변에는 해체된 시체 더미가 널려 있었다.
벽 중앙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동그란 원 안에 그려진 두 개의 초승달과 X자 표시, 촛대와 십자가.
처음 이곳으로 떨어졌을 때 봤던 것과 똑같은 문양이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퍼펫이었다.
"이렇게 직접 보니 반갑군.”
퍼펫은 40대 초중반에 키가 몹시도 큰 사내였는데.
피부는 창백하고, 코는 매부리코에 광대뼈는 매우 도드라져 흡사 해골과 같은 인상을 풍겼다.
올리버는 기이하기 그지없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저도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꽤나 특이한 몸을 하고 계시군요?”
퍼펫은 살짝 웃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골처럼 앙상한 손을 까딱 움직였다.
그와 함께 방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 찌꺼기 일부가 움직여 올리버가 들어왔던 하나뿐인 입구를 완전히 틀어 막아버렸다.
단순히 막은 것이 아니었는데, 치아와 턱뼈, 해골 따위가 허공에 이를 딱一! 딱一! 부딪히며 다가오는 무엇이든 물어뜯을 공격 의사를 내비쳤는데, 흡사, 광산 감독관들이 말한 지옥의 입구 같았다.
올리버가 담담히 말했다.
"훌륭하시네요. 미트 실드에 굶주림과 탐욕을 기반으로 저런 장애물을 만들다니요.”
"자유로운 발상이 흑마법의 기본이니…. 그래도 대단하군. 한 번 보고 이해할 줄이야. 기껏해야 스무 살 남짓인 거 같은데….. 누구한테서 배웠나?”
"신기하네요.”
"뭐가 신기하지?”
"제자 분도 같은 소리를 했거든요. 인형사 글립이라는 분요.”
올리버가 일부러 말했다.
혹시, 퍼펫을 동요 시킬 수 있을까 해.
허나, 퍼펫은 감정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차분할 뿐이었다.
“음….. 누군지 모르겠군. 미안하지만, 난 수백 년을 살았고,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어. 하나하나 기억하기 힘들지. 기억 안 나는 걸 보니 별 볼 일 없는 놈인 게 확실하겠군.”
그 말을 듣는 순간 올리버는 과거 인형사 글립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단 하나, 자신이 주인인 퍼펫의 제자라고 할 때의 자부심만큼은 또렷이 기억났다.
상반된 두 사람의 감정.
올리버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조금 슬프네요.”
"슬퍼? 무엇이?”
“글립 씨께선 퍼펫 님을 엄청 존경했거든요. 그런데, 퍼펫 님께선 기억을 못 하신다니, 뭐랄까….. 조금 슬프네요.”
퍼펫은 올리버를 빤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재밌군. 슬픈 게 뭔지도 모르는데, 슬프다고 말하니. 아주 이질적이야. 사람 흉내를 내는 짐승처럼….. 그대 정체가 무엇인가?”
정체가 뭐냐라….. 올리버는 이 질문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왔다.
“....전 T구역의 해결사 데이브입니다.”
"그래? 뭐 그거야 뭐 확인해보면 알겠지.”
그 말과 함께 퍼펫이 손을 뻗었다. 소름 끼치는 검은빛 감정을 머금은 손을.
[쓰러스트]
다행히 올리버의 행동이 더 빨랐다.
감정을 충격파로 전환 시켜 상대방을 밀치고 파괴하는 흑마법 쓰러스트를 먼저 쏜 것인데, 출력을 최대로 높여 쐈다.
적당히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
실제로 그 예상은 적중했다.
"그 몸..…. 도대체 뭔가요?”
올리버가 순식간에 파괴되고 찢어진 몸을 회복하는 퍼펫을 보며 물었다.
몸 안에서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생명력이 뿜어지더니 상처가 복구됐는데 참으로 기이하였다.
허나, 그보다 더 기이한 것은 퍼펫의 피부 아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줘一! 꺼내줘一! 죽여줘一!!”
"키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향향향—!!!”
"킬킬킬킬킬킬킬킬킬킬킬킬킬킬킬킬!!!!!!”
"꾸에에에에에에엑——!!”
"끄아아아악———! 죽여 버릴 테다! 죽여버릴 테다!!”
"엄마! 엄마! 엄마!”
"꾸에에에에에엑———!! 꾸에에에에에엑———!!”
그들은 퍼펫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듯 울부짖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손과 얼굴로 퍼펫의 뱃가죽을 밀어댔다.
그러나 밀기만 할 뿐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이 광경이 흡사 이 세상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기이한 불쾌감을 자아냈다.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보는 것만으로 병적인 혐오감을 일으킬 수준.
물론 올리버는 불쾌감보다 호기심이 일었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저것은 정상적인 흑마법의 범주에서 벗어난 거였다.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한지 순수하게 궁금했다.
"그 몸은 뭐죠? 송장 인형과 먹보 주머니를 합친 건가요?”
퍼펫이 자기 몸을 살펴보더니 대답했다.
"반은 정답이라고 해두지.”
그 말과 함께 퍼펫이 대량의 감정을 몸 안에서 끌어냈다.
여태껏 만난 흑마법사와 달리 자신의 몸에서 직접 감정을 추출한 거였다..…. 아니, 그 말은 어폐가 있을지도.
자신의 몸이라기보다는 그 안에 갇힌 수많은 사람에게서 억지로 뽑아낸 거였으니.
꽤 놀라운 발상이었다.
송장 인형과 먹보 주머니를 합쳐 그 안에 사람을 가두고 감정을 뽑아내다니.
역시 일반적인 흑마법의 범주에서 벗어난 거였다.
"도대체 정체가 뭐죠?”
"나야말로 자네 정체가 뭔지 궁금하군. ‘이걸’ 보고도 딱히 동요가 없다니….. 하긴, 이제부터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
퍼펫이 그리 지껄이며 느긋하게 감정을 흑마법으로 변화시켰는데,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올리버는 해잇 불릿을 쐈다.
모이고 있던 감정은 올리버의 재빠른 공격에 파괴되었다.
화력 승부로 가면 감정의 보유량이 압도적인 퍼펫의 승리가 자명, 그렇기에 틈을 보였을 때 최대한 몰아붙여야 했다.
퍼펫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오, 역시, 센스는 제법……."
———푹!
파바바밧——!
올리버의 쉐도우 스파이크가 퍼펫의 몸통을 관통했다.
그뿐 아니라 스파이크를 중심으로 가시가 더 돋아나 몸속에서 다시 한번 추가 타격을 주었는데, 그럼에도 퍼펫에게는 큰 피해가 없는 듯했다.
그는 온몸이 가시에 꿰뚫렸음에도 비명을 지르긴커녕 오히려 쉐도우 스파이크를 부숴 자력으로 빠져나오더니 다시 회복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몸 안의 사람들은 끔찍한 비명을 질렀고.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오……. 단순히 물리적으로 사람을 몸 안에 가둔 게 아니군요.”
"정답…. 그보다 이게 끝인가?”
"아뇨.”
올리버가 그렇게 말하고는 쿼터스태프를 바닥에 두들겼다.
탁—탁— 소리에 맞춰 블랙 큐브가 퍼펫을 둘러쌌는데, 단순히 퍼펫만 가둔 것이 아니었다.
블랙 큐브 안에 퍼펫 말고도 미니언이 있었다.
라스 붐과 익스플로전 퓨리를 최대한 먹인 미니언이 말이다.
"미니언, 부탁드립니다.”
그 말과 함께 퍼펫과 함께 갇힌 미니언이 블랙 큐브 안에서 폭발했다.
엄청난 폭발이었는데, 아마, 블랙 큐브로 감싸 화력을 제한하지 않았으면 올리버도 같이 휩쓸릴 정도였다.
폭발의 여파와 연기로 블랙 큐브 안이 보이지 않았지만, 올리버는 퍼펫을 쓰러뜨렸다고 확신했다.
감정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허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블랙 큐브를 꿰뚫고 올리버를 향해 무엇인가가 날아왔다.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증오의 탄환을 쏴 그것을 영격했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증오의 탄환을 꿰뚫는 것도 모자라 블랙 슈트까지 뚫어 올리버의 어깨를 맞췄다.
푹一!
패밀리를 떠나고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
올리버는 어깨에 박힌 것을 뽑아 확인했다.
다름 아닌 손가락.
퍼펫이 손가락에 흑마법을 담아 쏜 것이었는데, 생각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또 다른 흑마법이 느껴졌다.
시선을 앞으로 향하자 방구석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 찌꺼기들이 어느새 한데 모여 거대한 집게 팔을 형성했는데,
썩은 살점으로 이뤄진 팔과 갈비뼈로 이뤄진 손가락이 올리버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올리버는 급한 대로 해잇 불릿의 출력을 최대로 높여 쐈지만, 압도적인 크기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당하고 말았다.
쾅————!!!
썩은 살점과 갈비뼈로 이뤄진 집게 팔은 올리버를 붙잡은 다음 있는 힘껏 벽에 처박았는데, 커다란 소리와 함께 벽에 실금이 갔다.
그뿐 아니라 갈비뼈로 이뤄진 손가락이 꽉 조였는데, 올리버가 블랙 슈트를 두르지 않았으면 진즉에 다진 고기가 됐을 터였다.
척추가 부서지고, 갈비뼈도 부서지며, 내장이 으깨지는.......
오, 꽤 위험했다.
블랙 슈트가 쩌저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으니.
"..…어떻게 한 거죠?”
"뭘?"
블랙 큐브를 부수고 나온 퍼펫이 되물었다.
그는 폭발의 여파로 화상을 입고, 몸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놀랍게도 바로 회복하고 있었다.
별거 아니라는 듯.
"한순간 감정이 안 보였습니다. 저 위에서도, 이곳 지하실 벽도..…. 어떻게 한 거죠?”
"글쎄, 원래라면 대답해주지 않지만, 이 상황에서도 질문하는 자네 태도가 갸륵해 대답해주지. 너처럼 눈이 좋은 흑마법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배운 기술이야. 의외로 흑마법사끼리의 싸움에서 잘 먹히지. 눈이 좋은 놈들은 눈에만 의존하거든.”
"배웠다고요?..…. 혹시 악마에게서 배운 겁니까?”
"오..…. 눈치가 좋은데?”
"감정을 숨기는 것도, 그 육체도 도저히 일반적인 흑마법으로 안 보여서요..... 악마를 숭배해 얻은 겁니까?”
올리버가 조셉의 힘과 재능이 악마를 통해 얻은 것임을 떠올리며 물었다.
모욕할 의사는 일절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퍼펫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의도치 않게 올리버가 그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듯했다.
“..…말은 바로 하지.”
퍼펫이 뚜벅뚜벅 다가왔다.
늘 침착하고 여유롭던 그의 감정이 불쾌함으로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난 악마 따위를 섬기는 게 아니야…. 그저. 거래하는 것뿐이지. 수많은 연구를 하다 보면 가끔씩 막히는 부분이 있거든….. 그래서 가끔씩….. 아주 가끔씩 거래를 하는 거뿐이야.”
“….아, 그렇군요.”
올리버가 대답하며 손안에 머금은 감정을 폭발시켰다.
과거, 마탑 마법사들과 싸움을 연상해 흉내 낸 것인데, 감정을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올리버를 붙잡은 시체 팔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퍼펫은 당황하지 않고 손가락을 까딱여 부서진 시체 찌꺼기를 다시 합쳤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번에는 올리버가 더 빨랐으니.
퍼펫의 몸에 타겟팅을 건 다음 주변에 있던 갈비뼈와 치아에 추가로 흑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갈비뼈와 정강이뼈, 치아, 턱뼈 따위가 퍼펫의 몸 군데군데에 박혔는데, 흡사, 사방에서 총을 쏘는 것 같았다.
퍼버버버버버버벅—————!!!
덕분의 퍼핏의 몸에는 촘촘히 뼈들이 박혔고, 일순간 퍼펫의 움직임을 봉했다.
"기술은 좋지만 결국 잔기술. 나한테 이런 자잘한 공격은-”
[-라스 불릿]
올리버는 퍼펫의 몸에 난 균열을 향해 라스 붐을 최대한 압축시킨 증오의 탄환을 쐈다.
몸에 뼈가 잔뜩 박힌 퍼펫은 그렇다 할 방어를 하지 못했다..…. 아니면, 안 한 거거나.
콰광————!
처음보다 위력이 떨어지지만 강렬한 폭발이 일었는데, 더욱이 퍼펫의 몸 안에서 터진 것이라 더 위력적이었다.
연기가 걷히며 퍼펫의 상태가 보였는데, 퍼펫의 상체는 폭발로 반쯤 날아간 상태였다.
허나, 그것은 의미가 없었다.
폭발로 상체가 박살 났지만, 그와 동시에 회복하고 있었으니.
‘아냐..…. 저 회복이 공짜는 아니야.’
실로 그랬다.
피해가 커서 그런지 몸 안 사람들의 생명력을 엄청나게 끌어다 썼는데, 그 말은 즉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는 거였다.
올리버가 이대로 끊임없이 공격을 가하면 쓰러뜨릴 수도 있었다.
다만, 문제는..….
—콱!
퍼펫의 팔을 길쭉하게 늘려 올리버의 목을 잡았다.
악력이 상당해, 약해진 블랙 슈트가 단번에 부서졌는데, 이로써 올리버는 등껍질을 잃어버린 거북이 같은 상태가 된 거였다.
"슬슬 감정이 다 떨어졌나 보군…. 맞지?”
올리버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목에 악력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아쉽겠군. 하긴, 흑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화력에 한계가 있으니. 너…그럭저럭 재밌긴 한데, 그래도 딱 그뿐이군. 널리고 널린 천재에 불과해. 이제 그만 됐다.”
그 말과 함께 퍼펫은 올리버를 코앞에 끌고 와 입을 벌렸다.
사람을 통째로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입이 몹시도 크게 벌려졌는데,
올리버는 그때 퍼펫의 아가리 안에서 사람의 몸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봤다. 그건..….
"지옥의 입구다. 통째로 삼켜주마.”
붉은빛이 도는 검은 입안으로 퍼펫이 올리버를 삼키려 했다.
진짜 지옥인지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올리버는 눈앞의 광경에 매료된 듯 매우 주의 깊게 봤다. 어딘가 그리운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기분과 같은….. 그래서일까?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그 안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지옥의 입구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추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