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 퍼펫 (3) >
추락하는 올리버.
떨어지기 직전 올리버는 주변을 훑었다.
조와 아서, 샘이 도와주려고 다가왔지만, 갑자기 지하실 벽이 부서지더니 좀비 떼가 나와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철저하게 계산된 움직임.
올리버는 자신의 손과 벽에 타겟팅을 걸어 스스로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쿼터스태프로 같이 떨어지고 있던 퍼펫을 찔러 붙잡았다.
푹一!
라스 붐으로 몸통 한쪽이 날아가고, 쿼터스태프에 몸통이 꿰뚫린 퍼펫이 웃으며 말했다.
"좀 난감한데..…. 나름대로 야심 차게 준비한 건데, 이렇게 대응할 줄은…. 약간 민망하기까지 해.”
"거짓말이셨습니까?”
"응? 뭐가?”
"이기면 풀어주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잖습니까?”
“아아.…. 그랬지. 그런데, 이기지 못했잖나? 설마, 이 몸뚱이를 이겼다고 나한테 이겼다고 말할 셈은 아니지?”
퍼펫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제발…. 제발, 그러지 마. 오랜만에 재밌는 친구 만났는데, 다른 바보들처럼 굴지 말아줘. 이걸로 날 쓰러뜨렸다는 건 손가락을 다치게 했으니 이겼다는 수준이니까.”
퍼펫은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싸움의 승패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자신이 졌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 좀 더 가벼운 마음가짐이었다. 마치 이게 싸움조차 아니라는 듯이.
허세가 아닌 진심이었는데, 꽤나 보기 드문 유형이었다. 호기심이 일어날 정도로 말이다.
“….이러시는 이유가 뭐죠?”
"호기심이라고 해두지.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조금 위기로 몰아 넣어주는 게 최고거든. 최소한 내 경험상으로는….. 민망하지만, 부탁 하나 해도 될까? 그냥 당했다고 생각하고 아래로 와 줄 수는 없겠나? 좀 진득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부탁하지.”
올리버는 위를 봤다.
“..…저 위는 어떻게 됐죠?”
"해결사들이 하는 일을 하고 있지. 박 터지게 싸우는 거. 나름대로 잘 저항하지만, 곧 제압 가능할 거야.”
실로 그랬다. 조와 샘, 아서가 저항하고 있었지만, 좀비들의 수는 끝이 없었다.
좁은 공간 특성상 곧 제압될 듯했다.
"죽이실 겁니까?”
"음..…. 당장은 아니. 왜, 죽여줄까?”
"아뇨, 이왕이면 안 죽여주셨으면 합니다.”
퍼펫이 과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오..…. 그런 성격이었나?”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좀 챙겨주라고 배웠거든요.”
"같이 일하는 동료? 클클클….. 꼭 열 살짜리 아이처럼 말하는군. 어떤 놈이 가르쳐줬나? 뭐, 좋아, 이러면 어떨까? 저 위에 있는 네 일행은 가급적 죽이지 않지. 대신, 자네도 그냥 아래로 내려와 줘. 걱정은 말고, 밑에 함정 같은 건 없으니까. 그저 대화해보고 싶은 거야."
"저도 반가운 제안이긴 한데, 뭐가 궁금하신 거죠?”
"오, 글쎄? 내려오면 대답해 줄게.”
올리버는 1초 정도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타겟팅을 풀어서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지하실임에도 높이가 상당하였는데, 다행히 착지했을 때 충격은 없었다.
블랙 슈트 덕도 있었지만, 아래 쿠션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컹한 무언가.
어두워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올리버는 감정을 소량 태워 주변을 밝혔다.
올리버의 발아래 심각하게 부패한 살덩어리들이 보였다.
"........"
"비위가 좋은가 보군? 콜린 녀석이랑 데이비드는 보자마자 토하던데. 특히, 콜린은 묠니르 소학파 소속이었는데도 토를 했지. 겁에 질린 듯 눈물을 흘리며. 클클클.”
올리버는 눈물을 흘리지도, 토하지도 않았지만, 그 마음은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살덩어리는 단순히 부패한 것을 넘어,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사람을 밀가루 반죽처럼 섞은 모습이었다.
뒤틀리고 섞여진 얼굴에서 그 고통과 절망이 그대로 드러났다.
올리버가 그렇게 부패한 살덩어리를 관찰하던 중 벽에서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문양이었는데, 비슷한 형태의 문양을 과거 본 적 있었다.
조셉의 비밀 제단에서 말이다.
"동그라미. 2개의 초승달, X자 문양, 촛대와 십자가..…. 악마를 숭배하던 곳인가요?”
"틀렸어. 그래도 반은 정답이야.”
"여기 있는 살덩어리…. 혹시, 퍼펫 님의 작품입니까?”
"음.…. 아니, 내가 나이를 먹어 뻔뻔하긴 하지만, 학자로서 남의 공을 가로챌 생각은 없거든. 원래 주인들의 작품이야."
원래 주인?
"마법사들 말씀입니까?”
"정답이야. 의외로 눈치가 빠른데? 말하는 거는 엄청 답답한데.”
올리버는 퍼펫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가 진심인 것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도 악마와 거래합니까?”
"맞아, 연구하기도 하고 때때로 거래하기도 하지. 악마란 인간계를 병들게 하고 멸망시키려는 무서운 존재지만, 동시에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지혜를 가지고 있으니. 편리하고 유용한 존재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
올리버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흑마법사만 악마를 이용할 수 있다는 건 약간 차별적인 생각 같았으니.
마법사 역시 필요하다면 악마를 이용할 수 있을 터였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올리버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런 올리버를 보고 쿼터스태프 아래에서 퍼펫이 웃었다.
"클클. 신기하군…. 마법사가 악마와 관련이 있다고 하면 대다수 믿지를 못하던데, 심지어 흑마법사들조차.”
"그런가요?”
"물론이지. 상식이라는 게 그래서 무서운 거야. 자유로운 발상과 합리적인 추측을 막거든. 마법이나 흑마법이나 그 근본은 같은데."
올리버는 다시 살덩어리와 벽에 그려진 수많은 문양을 봤다.
무슨 실험을 한 건지 감이 안 왔다.
생명체와 관련된 거 같기는 한데.
이에 관해 묻자 퍼펫이 말했다.
"글쎄, 알려줄 수는 있겠는데, 여기서는 그렇군. 내가 시키는 대로 와 줄 수 있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올리버는 고민도 하지 않고 퍼펫이 시키는 대로 방을 나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올리버가 눈에 신경을 집중해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지하실에 내려와 퍼펫을 만났을 때처럼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군요?”
"내가 실험실에 애정이 많아 보안에 신경 쓰거든. 약간의 보호 장치를 걸어뒀지.”
"여기도 실험실인가요?”
“F구역의 지하실 대부분은 실험실이야. 대개 불법적인 실험이지. 늘 느끼는 거지만 란다의 땅 아래는 빈자(貢者)에게나 부민(宮民)에게나 유용한 것 같아.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자신의 피난처로, 후자는 자신의 치부를 숨기는 곳으로 쓴다는 거지.”
올리버는 가만히 그 말을 들었다.
이야기하는 모양새가 아주 많은 것을 아는 눈치였다.
하긴, 아주 오래 산 존재라 하였으니 당연한 걸지도.
“..…여기서 뭘 하시는 건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올리버가 한 실험실을 지나치며 물었다.
실험실에는 수많은 시체가 보였다
단순한 시체가 아닌 수술의 흔적이 있었는데, 개중에는 사람의 신체를 교묘하게 엮은 시체와 밀가루 반죽처럼 섞은 것도 있었다.
처음 떨어진 곳처럼 말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훨씬 사람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당연히 실험을 하고 있었지.”
“실험요?”
"그래, 그게 아니면 학자인 내가 귀중한 시간을 써 가며 왜 여기 있겠나?”
학자라….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학자란, 학문에 능통한 사람. 혹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니까.
마법사나 흑마법사나 크게 보면 학자였다.
"물론 세간에는 난 무슨 고위험등급 범죄자, 뒷세계의 거물, 대(大) 흑마법사라고 부르지만, 이는 크나큰 오해야. 난 그저 연구를 원할 뿐이거든. 그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약간의 소란을 일으킨 것뿐이고. 다소 억울하지.”
진심이었다.
퍼펫은 자신의 그런 명성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기에 싸움 역시 그렇게 목숨을 걸지 않는 거였고.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연구라는 것에서 엄청난 집착을 보였다.
무슨 연구인지 올리버는 절로 궁금해졌다.
“..…그 연구가 뭐죠?”
"클클….. 글쎄, 바로 대답해 주면 재미가 없어서. 반대로 묻지. 자네는 왜 해결사 일을 하고 있나? 내가 볼 땐 딱히 조잡한 흑마법 실력으로 편하게 돈 벌려는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올리버는 문득 생각했다. 왜 자신이 해결사 노릇을 하는 건지.
생각해보니 꽤 복잡했다.
성기사 요안나의 조언에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을 시발점으로, 이후 캔트를 만나 해결사가 되기로 했다.
어떠한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고 블랙마켓을 이용하기 위해.
이에 관해 간략하게 이야기하자 퍼펫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왜 조직에 소속되지 않으려는 거지? 블랙마켓을 이용하려면 조직에 소속되는 게 더 나을 텐데.”
"글쎄요? 조직에 소속되면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해야 할 때가 있어서요?”
올리버가 거지 아이와 여자를 검은손에 상납하려던 인형사 글립을 떠올리며 말했다.
지금 생각해도 좀 그런 방식이었다.
"아니면 어디 만만한 패밀리를 습격해 먹는 것도 방법이지. 이후에는 밑의 부하들을 시켜 단물만 빨아먹는 거고.”
"글쎄요? 그것도 좀 그렇습니다.”
“…뭐가 그렇다는 거지?”
"과거 비슷한 상황에 놓여 봤습니다. 동료분들이 열심히 해주시기는 하는데, 어째 점점 시간이 갈수록 자기들 일은 뒷전이고 제가 원하는 일만 하려고 했거든요.”
"좋은 것이지 않나?”
"편하기는 한데, 뭐랄까? 그래도 좀 그렇습니다. 다들 나름대로 예쁜 빛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새 사라져서요.”
“빛.…?"
"예, 빛이요. 퍼펫 님도 흑마법사면 알지 않습니까? 사람들 중 몇몇이 품고 있는 예쁘고 아름다운 빛요.…. 그것에 관해 탐구하기 위해 제가 조직을 떠나 해결사 일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뭐, 지금은 떠난 것 자체가 좋은 선택인 것 같았지만요.”
올리버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막상 조직을 떠나고 아름다운 빛에 관해 알아낸 것은 없지만, 그래도 꽤 즐거웠다.
캔트를 만나고, 여러 다른 사람들을 만났으니.
그 과정에서 세상에 관해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배울 수 있었고.
가령, 중개인이 라던가, 해결사라던가, 뒷세계라던가, 퇴역 군인이라던가.
하물며 여관에서 허드렛일하는 소년조차 용기를 내 글을 배우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꽤 즐거운 일이었다.
퍼펫도 흥미가 생겼는지 물었다.
"나는 감이 잘 안 오는군. 그 아름다운 빛이라는 게 뭐지?"
처음 들어보는 질문.
올리버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아름다운 빛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빛은..… 아름다운 빛입니다.”
스스로 말하고도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이게 전부였다.
과거 요안나에게 이에 관해 대답을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대답을 듣지 못했다.
이야기가 도중에 삼천포로 빠졌으니.
그녀가 뭐라고 했더라? 아! 올리버가 망가졌다고 했다.
문득 올리버는 그녀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약사님의 협상을 통해 파테르교 셀랜드 지부로 무사히 돌아갔다던데.
그러던 차퍼펫이 말했다.
"넌 꼭 나방 같군.”
"예?”
"빛이 있으면 그곳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 웃긴 건 자기도 왜 그러는 건지 모른다는 거지. 그냥 본능 같은 거지….. 하지만 그런 태도가 싫지 않아. 학자에겐 필요한 기질이니.”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퍼펫님께서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곳에서 무엇을 연구하는지?"
사실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퍼펫은 생각 이상으로 순순히 대답해줬다.
“……인간을 만드는 방법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지.”
“인간요?”
"그래..…. 정확히는 부활시키는 거지만, 연구해보니 부활이나 만드는 거나 별반 다른 바가 없더군. 둘 다 인간의 영역이 아니야.”
올리버가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요?”
"그래. 아, 여기서 좌측으로 돌아가….. 개인적인 연구에 의하면 그렇다는 거야. 껍데기는 흉내 내겠는데, 안쪽이 글쎄.…. 영혼은 신의 영역이라는 사제들의 헛소리가 어느 정도 맞더군.”
올리버는 퍼펫이 시키는 대로 좌측으로 틀어 이동했다.
그 끝에는 문이 있었는데, 과거 조셉과 함께 X구역 비밀 제단에 간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그런데, 묻고 나서 이런 질문하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왜 이리 친절하게 답변해주시는 건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나름대로 예의랄까? 수백 년을 살면 사는 게 아주 지루하거든. 그래서 작은 즐거움이라도 주는 어린 친구들에게 잘해주고 싶어.”
퍼펫이 한 박자 쉬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확인해보고 싶거든.”
"예, 무엇을 말이죠?”
퍼펫이 대답하지 않고, 갑자기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축 늘어졌다.
올리버는 딱히 놀라지 않고 문을 열었는데, 그곳에 한 남자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축 늘어져 있었는데, 그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더니 말했다.
"널 넘길지, 아니면 내가 이용할지.”
그와 함께 방에 검은 불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