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퍼펫 (2) >
"혹시 저랑 같이 퍼펫과 싸우러 갈 사람 있나요?”
그 물음에 모두가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하룻강아지가 호랑이에게 덤비는 걸 본 표정.
아, 어쩌면 정확한 표현일지도.
일개 해결사에 불과한 올리버는 퍼펫에 비하면 하룻강아지에 불과했으니.
과거 캔트가 퍼펫에 관해 설명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영생의 퍼펫.
손꼽히는 흑마법사이자, 검은 손의 대표 간부 중 하나.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은 존재라 하였는데, 한 나라보다도 그 수명이 길다고 했다.
그 탓에 마약, 무기, 용병, 불법 의료 등등 손대지 않는 분야가 없다고 하였으며, 각 나라의 고위층과도 연줄이 있다고 했는데,
물론, 전부 실체가 없는 소문뿐이라 반은 헛소문 취급했지만, 어찌 됐건 올리버는 그런 존재에게 결투를 신청하게 된 셈이었다.
"너, 너 지금 제정신이야….?”
한 해결사가 말했다. 그는 겁에 질리고 동시에 절망한 상태였다.
"예? 무슨..…?”
"누구 멋대로 그따위 내기를 하냐고….! 상대는 퍼펫인데? 다 죽게 생겼잖아?!”
올리버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못 들으신 것 같은데, 어차피 퍼펫은 다 죽일 작정이었습니다. 혼란을 심어 우릴 분산시킨 뒤 따로따로 해치울 생각일 뿐이었죠.”
".....화, 확실한 게 아니잖아?”
"아뇨. 확실합니다. 저희를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올리버의 담담하고, 침착한 말에 겁을 먹은 남성은 물론 다른 해결사들도 뭐라 말하지 못했다.
올리버는 품 안에 넣어둔 플라스크를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멋대로 군 것이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었으면 분명 퍼펫은 저희끼리의 싸움을 부추겼을 거고, 결국 의미 없이 서로 싸웠을 겁니다. 그래서 먼저 움직인 것이니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전 여러분이랑 싸우기도 싫고, 죽이기도 싫거든요.”
설득이 먹힌 건지 더 이상 불평하는 이들은 없었다.
물론, 그 마음속은 아니었지만.
어째 함께 싸워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는데, 올리버는 딱히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혼자라도 움직일 생각이었으니.
슬슬 움직이려던 찰나 너클 조가 말을 걸었다.
“이봐.....”
"...? 예, 조 씨.”
"계속 씨자 붙이지 말고, 그냥 조라고 불러…. 낯간지러우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그 말씀 하시려고 부르신 건지요?”
샘이 조의 어깨를 잡았지만, 조는 뿌리치며 다시 말했다.
"너… 설마 퍼펫이랑 싸우러 갈 생각이야?”
"예,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아마, 어기면 당장 좀비들을 이쪽으로 보낼 겁니다.”
“….이기면 우릴 풀어준다는 건 사실이고?”
"예. 그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최소한 대답할 때는요. 보지 않으셨잖습니까?”
"아니, 내 수준으로는 못 봤어. 너만 본 거지. 이길 자신 있어?”
그 질문에 올리버가 생각했다.
"음…. 글쎄요. 제가 여태까지 상대해본 적이 없는 성향이어서 솔직히 확답할 수가 없네요.”
"상대해본 적이 없는 성향?”
"예, 다들 보통은 이기고 지는 것에 관심이 있는데, 퍼펫이라는 분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은 분 같거든요. 그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 있어 보여요. 그게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그때,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퍼펫은 불로불사에 관심 있다고 했어. 소문에 의하면 말이야.”
"불로불사요?”
올리버의 질문에 중얼거린 사람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 그냥 소문일 뿐….입니다.”
불로불사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조셉의 서적에 본 바에 따르면 그쪽 부분에 심취한 이들이 적잖게 있다고 했으니.
심지어 흑마법사가 아닌 자도 이에 관해 연구하거나 투자한다고, 과거 서적에서 본 적 있었다.
물론 여태까지 성공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지만.
하지만 단순히 불로불사라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흩어진 퍼즐이 맞물리지 않는다고 할까?
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봐, 대화하는데 끼어들어서 미안하지만, 내 질문부터 대답해. 이길 수 있어, 없어? ....만약 못 이기면 차라리 우리가 널 제압해 퍼펫이랑 협상하는 방법도 있는데.”
조의 말에 그 동료 해결사와 용병들이 자세를 취했다.
여차하면 움직일 수 있게.
어느 정도 진심이었다.
"글쎄요.….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길 생각으로 싸우기는 할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도 죽기 싫거든요.”
“……그래? 좋아, 그럼 나도 따라간다.”
"예?”
"나도 따라간다고.”
조가 당당히 말했다.
***
올리버는 퍼펫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탐색조가 들어간(들어갔던) 지하실 통로로 들어갔다.
올리버 외에도 파이터 크루의 너클 조, 쌍권총 샘, 해결사 돌주먹 아서도 합류했다.
조는 스스로 따라간다고 했고, 샘은 그런 조를 혼자 보낼 수 없어 따라왔는데, 아서는 왜 따라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이에 관해 묻자 그가 대답했다.
"이유? 이유가 뭐가 있어. 날 팔아먹으려는 놈들이랑 같이 있는 것보다 차라리 싸우겠다는 진짜 사나이랑 있는 게 더 나아서 그렇지."
"아..…."
올리버가 탄성 소리를 냈다. 확실히 거기 있는 것도 불안하겠지.
한순간이긴 하지만 퍼펫의 꼬드김에 넘어갔으니.
물론 그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뭐라고 할까? 퍼펫의 한마디 한마디는 어째 사람을 뒤흔드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사람의 약한 부분을 파고드는 무언가가.
"저기..….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양손에 권총을 든 샘이 끼어들며 말했다.
"예, 말씀하시죠.”
샘은 올리버를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하아……. 묻고 싶은 게 존나 많기는 한데, 가장 궁금한 거부터 물을게. 어떻게 알아본 거야?”
"예, 뭘요?”
“퍼펫. 송장인형이라는 거….. 나는 못 알아봤거든. 눈이 좋은 편인데도."
"......."
올리버는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퍼펫의 송장인형은 확실히 잘 만든 부류에 속한 것은 맞았다.
척 봐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동기화도 잘 돼 있어 자연스러웠으니.
허나, 올리버는 조금만 집중해서 보면 다 구분됐다.
덜 집중하고 더 집중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랄까?
그렇다고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샘의 감정 상태로 봤을 때 납득할 것 같지 않았기에.
그래서 적당히 살을 덧대 대답했다.
"예전에 퍼펫의 제자라는 분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제자?”
"예, 인형사 글립이라고, 자기가 퍼펫 씨의 제자라고 하던데 그분이 송장인형을 이용해 사람인 척하는 걸 본 적 있거든요. 그래서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어쩌다 만나게 됐는데?”
"어디서 머물고 있었는데, 그때 안타깝게도 의견이 맞지 않아 싸웠습니다.”
“....네가 이긴 거야?”
"어, 예.”
"다시 물을게. 퍼펫의 제자를 쓰러뜨렸다고?”
“예….. 운이 좋았죠.”
샘과 조, 아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놀라는지 올리버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럼..…. 퍼펫을 쓰러뜨릴 무슨 구체적인 계획도 가지고 있겠지? 여기까지 따라왔으니까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계획이랄 거 없습니다. 퍼펫을 직접 만나 쓰러뜨리려는 것 정도요? 그분만 쓰러뜨리면 자연히 바깥의 좀비들도 무력화될 테니까요.”
마음에 드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조와 샘, 아서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그러나 뭐라고 타박하지도 못했다.
자신들 스스로도, 그 외에 이렇다 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가만히 침묵하던 아서가 한마디 했다.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 거야. 이런 종류의 흑마법사는 직접 임하는 싸움에 약할 테니.”
모두의 시선이 아서에게 향했다.
"혹시 뭐 아시는 것 있습니까?”
"아니, 아는 건 아니고 전쟁터에서 몇 번 만나봤거든. 흑마법사.”
"흑마법사요? 용병입니까?”
"용병도 있고, 그냥 시체 주우려고 온 흑마법사도 있고….. 시체 줍는 건 그렇다 쳐도 가끔씩 살아있는 사람을 납치하려는 놈들도 있었지.”
"싸우신 적 있나요?”
"있긴 하지..…. 우리 분대원을 납치했었거든. 썩 즐거운 추억은 아니었어. 아마 이번에도 여러 함정을 피해야 할 거야…. 자네들은 왜 따라온 건가?”
아서가 갑자기 조와 샘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니, 나야 이 친구와 함께 지목당해서 따라온 거지만, 자네들은 왜 따라온 건지 모르겠거든. 특히, 거기 너클 낀 친구.”
아서가 너클 조를 가리키며 물었다.
샘이 불쾌한 듯 대신 말했다.
"뭐지? 우리가 무슨 속셈이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글쎄….. 나도 아는 건 소문뿐이긴 하지만, 퍼펫이 수많은 제자를 뒀다는 소문이 있잖나? 그래서, 응?”
샘이 불쾌한 듯 웃더니,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줬는데, 조가 그 손을 잡으며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말했다.
"걱정 마. 그런 건 절대 아니니.”
"그런가?”
"그래, 안타깝게도 난 퍼펫처럼 좋은 스승을 구하지 못했거든. 나 역시 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뿐이야. 경험상 이럴 땐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위험해서 따라온 것뿐이야.’’
반 정도 진심이었다.
샘이 한마디 더 보탰다.
"뭐, 퍼펫과 싸워 살아남는다면 우리 이름값도 높아질 테고.”
그러자 한차례의 다툼이 가라앉았다.
가만 보니 괜히 싸운 것이 아니었다.
다들 내색하지 않았지만,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지하실을 들어온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
퍼펫이 올리버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니 곧 나올 줄 알았는데, 그는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퍼펫이 변심해 마음을 바꿔먹었나 싶었는데, 그래도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기에 올리버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 말도 안 할 때 다들 더 불안해하니.
"음..…. 그건 그렇고 여긴 지하실도 생각보다 잘 정비돼 있네요.”
올리버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실제로 이곳 지하실은 시멘트와 벽돌 등으로 마감이 깔끔한 상태였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원래 이 거리의 주인들이 만든 지하실이거든. 마법사들. 돈 좀 들인 거지.”
낯선 목소리.
모두가 깜짝 놀라며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허리에 세이버(기병도)를 찬 남자가 서 있었다.
‘퍼펫.…. 그런데 어떻게?’
올리버가 순간 생각했다.
눈에 어느 정도 집중을 하고 있어 주변을 탐색 중이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올리버가 당황한 사이 아서와 조, 샘이 먼저 움직였다.
아서는 골렘 의수에 마력을 끌어모으더니 갑자기 나타난 퍼펫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돌과 마력으로 이뤄진 골렘 의수가 대포처럼 날아갔는데, 흡사 거대한 바위가 날아가듯 위협적이었다.
허나, 놀랍게도 퍼펫은 세이버를 단 한 번 휘둘러 골렘 의수를 양단했다.
날아가는 팔을 보며 아서가 경악해 말했다.
"시체 골렘도 맨손으로 부술 수 있는 건데..…!!”
“아….. B급이긴 해도 내 작품을 시체 골렘이랑 비유하니 조금 슬픈데? 그보다 진정들 하는 게 어때. 난 일단 대화를 하러 온 거니까-”
“-조까.”
샘이 양손에 권총을 들며 말했다.
그와 함께 총을 쐈는데, 흑마법을 머금은 총알이 날아가 퍼펫을 위협했다.
다양한 흑마법이 깃들어 있었는데, 올리버는 생소하지만 창의적인 공격법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아무렇지 않게 총알을 피하고 베는 퍼펫의 동작이었다.
셰비 때와 비교가 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송장인형에 따라 전투력은 물론, 전투 스타일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았다.
철컥. 철컥.
총알이 떨어진 샘.
퍼펫이 몸을 낮춰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한 명 정도 죽으면 내 말 좀 들어주려나?”
"그렇지. 너만 죽으면.”
너클 조가 동료와 퍼펫 사이로 끼어들며 말했다.
그는 흑마법으로 육체를 강화했는데, 과거 올리버와 싸웠을 때보다 더 날카로워진 움직임으로 퍼펫을 공격했다.
문제는 퍼펫이 그보다 더 날카로웠다는 거고.
그는 곡예와 같은 몸동작으로 조의 주먹을 가볍게 피할 뿐 아니라, 기습적인 하단 발차기도 피한 다음 다시 세이버를 휘둘렀다.
스응———— 딱!
조의 목이 잘리기 직전 블랙 슈트를 두른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로 퍼펫의 칼날을 막았다.
칼날은 감정을 머금고 있어 그냥 막았으면 쿼터스태프가 바로 베일 뻔했다.
"아..…. 넌 아직 죽이기 싫은데.”
"저도 죽기 싫습니다.”
올리버가 힘을 줘 쿼터스태프를 휘둘렀다.
퍼펫은 능숙하게 뒤로 물러났고.
확실히 셰비 때와 몸동작이 완전히 달라졌다.
단순히 송장인형을 바꾼 것만으로 저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일단, 의문을 뒤로 미루고 올리버는 해잇 불릿을 사용해 퍼펫을 노렸다.
퍼펫은 칼로 해잇 불릿을 벴다. 그리고는 분석하듯 말했다.
"조작과 질병 계열을 뒤섞어 사용할 뿐 아니라 화기계열도 능숙하게 사용하다라……. 너 정체가 뭐냐?”
딱———!
올리버가 단숨에 거리를 좁혀 쿼터스태프를 휘두르며 말했다.
"신기하네요. 저도 퍼펫 씨에게 궁금한 게 많은데요. 어떻게 기척을 죽인 건지, 어떻게 이렇게 다른 스타일로 움직일 수 있는 건지, 본체가 어딨는지요.”
“본체?”
퍼펫이 웃으며 말했다.
"서로 궁금한 게 많네. 그럼, 잠시 대화 좀 할까?”
"예, 좋죠.”
올리버가 그리 말하며 퍼펫의 세이버를 후려친 다음 쿼터스태프로 찔렀다.
퍼펫이 능숙하게 세이버로 막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라스 붐]
쿼터스태프 끝에 있던 라스 붐이 터지며 퍼펫의 송장인형 한쪽을 박살 냈다.
바닥에 가공 처리된 피부와 살점, 뼈대, 태엽 따위가 흩뿌려졌는데, 그럼에도 퍼펫은 세비 때와 마찬가지로 여유로웠다.
"아, 하루에 송장 인형을 두 개나 잃은 적은 있어도, 같은 사람에게 잃은 건 진짜 오랜만인 것 같은데.”
올리버가 퍼펫을 향해 쿼터스태프를 내밀며 물었다.
"그럼 이제 대화해 볼까요?”
"글쎄, 여기는 좀 그런데, 좀 더 안쪽에 가서 대화하는 게 어떨까?”
그러더니 퍼펫이 바닥에 손을 올렸다.
손에 머금고 있던 감정이 바닥 틈새를 따라 빠르게 이동했는데, 그와 함께 발밑에 부유감이 느껴졌다.
바닥이 무너지는 거였다.
"너처럼 재밌는 친구는 오랜만이야.”
그와 함께 올리버는 퍼펫와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