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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84화 (84/633)

< 84. 독 안에 든 쥐 (2) >

한 차례 가라앉은 분위기.

올리버는 질문했다.

"파이터 크루분들이랑 용병분들은 오염구역 안을 탐색하다가 이곳으로 도망쳤다고 들었는데, 아서 씨는 어쩌다 이곳에 들어오신 거죠?"

골렘 의수(義手)를 한 아서는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대답했다.

"후우……. 일행들과 함께 좀비들을 퇴치하다가 어쩌다 보니.”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아서는 올리버를 잠시 바라보다 품 안에서 지도를 꺼냈다.

올리버가 가진 것보다 더 상세한 지도였는데, 그는 한 해골 표시를 짚었다.

"이곳으로 갔는데, 좀비 떼에게 습격을 받았지.”

"좀비들이 대거 출몰하는 위험한 곳 아닙니까?”

"맞아. 원래라면 우리도 갈 생각이 없었는데, 인원수에 비해 좀비를 생각보다 많이 못 잡아서.….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고 후딱 한탕 한 후 돌아갈 생각이었지.”

나쁜 생각 같지는 않았다.

장비와 숫자만 갖추면 어느 정도 좀비는 상대할 수 있었으니.

허나, 그것도 일반적인 경우에 한해서였다.

"어느 정도 각오하고 갔지만, 마주했을 때는 그 이상이었어. 좀비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건물 위에서 총을 쏘지 않나, 폭탄을 던지지 않나. 심지어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달려들었어.”

올리버의 예상대로였다.

"우린 당황했지만, 어찌어찌 대응했는데, 문제는 이놈의 좀비 떼가 끊임없이 쏟아진다는 거야. 결국, 중과부적….. 도망쳤고,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이곳에 들어오게 됐지.”

“……아서 씨가 먼저 왔나요? 아니면 휴 씨가 먼저 왔나요?”

굿맨 용병대 대장 휴가 대답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우리, 그다음은 저 친구들, 그다음 이 해결사들이랑 마지막에 저 친구들이 들어왔지. 아, 이제 너희가 마지막이지."

샘이 자신의 총을 정비하면서 휴에게 말했다.

"와..…. 원래 그렇게 친절한 성격이셨나?”

"아니, 똑똑한 거라고 말해줘, 흑마법사. 우리끼리 지켰으면 함락당했을 거거든. 인원도 물자도 부족한데, 저 좀비 군단을 어떻게 막아?”

맞는 말이었다.

그나마 여기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추가로 오는 인원들 덕분에 늘어난 인력과 물자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곧 한계야. 총알도 폭탄도 거의 다 떨어져 가.”

그 말에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총알이나 폭탄, 감정 따위가 떨어지면 그때 남는 것은 맨몸뿐.

물론 신체 능력이 뛰어난 이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수많은 좀비 군대를 상대로는 언제 죽느냐의 문제일 뿐이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이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긴 했지만, 올리버에겐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저렇게 많은 좀비를 어떻게 저리 세심하게 부리는 건지도 이해가 안 갔고,

무엇보다 왜 이렇게까지 해결사를 노리는 건지도 이해가 안 갔다.

그런 생각이 들자 문득 조셉이 떠올랐다.

자신의 제단으로 데려가기 위해 번거롭게 유인하던 스승님.

"이것 보시오, 흑마법사님. 다시 한번 부탁드리오. 아까 전처럼 강력한 화력으로 좀비들을 쓸어버리고 퇴로를 열어주시오. 그럼, 내 책임지고 흑마법사님을 보호하고, 이후 사례도 하겠소.”

용병대장 휴가 말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는데, 그만큼 이 상황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것 같았다.

올리버가 그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하려던 찰나, 갑자기 위층에서 경계를 서던 용병이 내려와 다급히 소리쳤다.

"대장. 빨리 올라와 봐!”

"뭐? 왜?! 좀비들이 다시 공격해오고 있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아무튼 올라와 봐.”

그 말에 휴가 올라갔고, 너클 조와 샘, 아서 외 다수의 사람들이 뒤따라 올라갔다.

당연히 올리버도 거기 포함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좀비들이 추가로 더 왔어. 그것만으로도 지랄 맞은데, 문제는 그 틈 사이로 좆같은 게 보여.”

"좆같은 거?”

"던켄 숲 공방전 기억나?”

"슬프게도.”

"그때 봤던 거랑 비슷해.”

“……씨발.”

휴는 나지막한 욕설과 함께 건물 꼭대기로 나갔다.

중화기로 무장한 용병과 해결사, 마법사, 흑마법사가 경계 중이었는데, 그들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향한 곳은 한 좀비 무리로, 놀랍게도 그들 좀비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듯 싱싱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여태까지 나온 좀비들과 질적으로 다른 무장을 하고 있었다.

아니, 무장만이 아니었다.

이 좀비들은 일반적인 좀비들과 달리 지성을 품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자의식이 있었는데, 올리버로서는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를 처음 보는 형태의 좀비였다.

흡사, 되살리다 실패한 좀비라고 할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올리버와는 다른 것에 관심 있는 듯했다.

"저거, 리치 아니야?”

올리버는 한 사람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좀비 무리 사이에 있는 한 좀비가 화려한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미라처럼 주름지고 말라비틀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휴가 너클 조에게 말했다.

"야..…. 저거 리치 맞아?

"몰라, 리치라는 게 실존했던 거냐?”

그 외에도 다른 이들 역시 주변의 흑마법사나 마법사에게 리치인지 물어봤는데, 그때, 올리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리치.… 는 아닌 것 같고, 송장인형 같습니다.”

"송장인형?”

"예, 흑마법과 기계장치, 특수 가공을 통해 만든 좀비 인형 같은 건데, 그걸로 보입니다.”

올리버가 확신하며 말했다.

과거 인형사 글립을 상대할 때 그의 작품을 봤는데, 건물 밖에 있는 저것은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남의 시체에 들어가 조종하는 특유의 이질감이 말이다.

올리버의 말에 딱히 반론하는 자는 없었는데, 휴 역시 이에 관심 없다는 듯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그럼, 저것도 같이 쓸어줄 수 있소?”

올리버는 눈에 시야를 집중시키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힘들 것 같습니다. 저 송장인형 외에도 숨어있는 거까지 합하면 송장인형이 다 합쳐 일곱 개나 더 있어요. 폭격으로 자잘한 좀비를 쓸어버린다 해도, 송장인형들이 나와 저희를 막을 겁니다. 한순간이라도 발목이 잡히면 좀비 떼가 어디선가 더 쏟아져나와 저희를 둘러쌀 거고요.”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본능적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걸 안 듯 침묵했다.

모두 배후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면 상대방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으니.

샘이 총알에 흑마법을 걸며 물었다.

"그 송장인형이란 것도 후딱 죽이고 앞으로 튀면 안 되는 거야?”

"송장인형이란 게 생각보다 강해서 쉽지 않을 듯합니다. 특히, 저 아래 있는 송장인형은 제가 전에 본 것보다 훨씬 더 잘 만든 거 같고요."

글립의 책을 통해 배운 지식을 근거 삼아 올리버가 말했다.

"그럼, 뭐 어쩌자고? 탄환이랑 감정 다 떨어지고 좀비들이 밀고 올 때까지 그냥 기다려?”

"음...... 그건 아니지만, 혹시 오염구역 주변을 지키는 군인분들 도움은 받을 수 없나요?”

"아니, 그건 불가능해. 시 방위군이 얼마나 제 몸을 알뜰살뜰 챙기는데, 애당초 위험을 감수하는 놈들이라면 자기들 대신 우릴 보내지 않지.”

"아..…. 그래도 지금 심상치 않은 상황 아닌가요?”

"물론 그렇지만 우리 다 죽은 뒤에나 움직이겠지. 뭣보다 도와달라고 연락한 방법이 없어. 오염구역에서는 통신이 잘 안 돼.”

“조 씨랑은 통신을 주고받았잖습니까?”

"그거야 같은 오염구역 내부니까 그런 거요. 외부와의 통신은 힘드오.”

휴가 끼어들며 치지직 거리는 통신장치를 보여줬다.

확실히 노이즈 외에는 들리는 게 없었다.

통신 불가, 탄환 및 감정의 소모, 끊임없는 좀비 떼.

상황 전체가 유리한 것이 없었다. 올리버는 차라리 이들은 전부 데리고 한번 강행돌파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최소한 혼자서는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은데.

‘블랙 슈트로 도망치는 데 온 힘을 집중하면 어떻게 되지 않으려나…..’

"젠장..…. 그럼 지하실 쪽에 운명을 걸어야 하나?”

휴가 갑자기 말했다.

"지하실이라뇨?”

"이 건물 지하실 쪽에 하수도와 연결된 지하 통로가 있어서, 지금 그쪽으로 몇몇 탐색하러 떠났소.”

샘이 반가운 듯 말했다.

"아, 진짜?!”

"어, 하지만 너무 깊고 복잡해서 다들 애먹고 있지. 심지어 질척거릴 정도로 어두워서 좌우는 물론 위아래도 구별이 안 되고. 마치 누군가 장난이라도 친 기분이야.”

"........."

건물 밖으로의 탈출이 힘들어지자 다들 그쪽으로 관심이 쏠렸는데, 그러던 중 신이 도우신 건지 저 아래층에서 누군가 올라왔다.

그는 먼지를 뒤집어썼는데, 몹시도 기뻐 보였다.

"대장아! 밑에 내려와 봐! 살길을 찾은 거 같다!”

***

호출에 사람들이 모조리 아래로 내려갔다.

휴의 말대로 건물 아래에는 지하실이 있었는데, 먼지가 많고 어두컴컴했다.

단순히 오래된 탓이 아닌 것 같았다.

지하실 자체는 용도가 없는 그저 지나가는 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그 먼지 구덩이 사이로 한 무리의 사람이 보였다.

대다수 용병과 군인이었는데, 그중 이질적인 사람이 있었다.

그 역시 안면이 있었다.

처음 자신에게 이것저것 알려준 사람.

“셰비 씨..…."

"하하….. 여기서 반가운 얼굴을 보는구먼.”

휴가 말했다.

"랜턴 좀 더 세게 틀어봐…、제대로 안 보이잖아!?”

더욱 강해지는 빛. 그러자 셰비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얻어맞은 건지 멍이 들어있었다. 신기했다. 멍이 들다니.

"어떻게 된 거야?”

"지하 통로를 따라 탈출로를 확인하던 중 만났어.”

"자네는 거기 왜 있었나?”

"헤헤..…. 마법사님께서 수색하라고 시켜서 그렇소”

"그쪽도 상황이 영 아닌가 보군.”

"그렇소.…. 안 죽은 것만으로 다행이지. 원래 안내 역으로 따라붙은 거였는데, 그마저도 못했으니.….”

"그들은 어디 있나? 마법사, 드루이드 말이야.”

"안전한 건물 안에서 회복 중이오. 좀비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서 마력을 다 써서..…."

"역시 그쪽도 우리랑 같은 상황인가 보군.”

휴가 곰곰이 생각에 빠지던 중 셰비가 말을 걸었다.

“..…혹시, 괜찮다면 우리 쪽으로 합류하는 건 어떻겠소?”

"뭐?”

"내가 안내하겠소. 다들 바보가 아니면 알지 않소? 지금 여기 뭔가 크게 잘못된걸? 사방에서 좀비 떼가 쏟아지고, 총도 쏘는데, 청소고 뭐고 일단 살아서 도망쳐야 하오. 힘을 합칩시다.”

딱히 고민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살기 위해서라도 서로 협력해야 했다.

"뭐, 좋아….. 마법사랑 힘을 합치면 살 확률이 올라가겠지. 그런데 한꺼번에 이동할 수 있나?”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좁은 통로를 따라 이동하는 데 한계가 있을 거야.”

"그럼 나눠서 이동해야 하나?”

"그것도 문젠데….. 누가 마지막에 나가고 싶겠어?”

"흠.… 그럼 제비뽑기라도 해야 하나?”

다들 이것저것 의견을 나누던 중 셰비가 끼어들어 조언했다.

"이왕이면 실력 있는 사람들이 먼저 가줬으면 하오. 가령, 휴 씨나 저기 흑마법사분들, 그리고 아서 씨 같은. 마법사님께서 지금 예민하셔서 실력 있는 친구들부터 봐야 협력할 거 같소. 아시잖소? 젊은 마법사가 얼마나 괴팍한지.”

그 말에 모두 고민을 하며 어떻게 이동할지 다시 의견을 나눴는데, 올리버는 저벅저벅 걸어가 셰비 앞에 멈춰 섰다.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저기요, 마법사님께서 어디 계시죠?”

“……어떤 건물에 숨어있어. 좀비를 피해서.”

"어떤 건물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까?”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오염구역에 대해 잘 아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잘 알지만, 전부 알지는 못하지.”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서 무슨 일인지 물으려고 했으나, 조가 다른 이들을 말렸다. 뭔가를 눈치챈 듯.

“그렇군요…..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당신은 누구죠? 셰비 말고, 안에 들어간 당신이요."

"......."

모두가 침묵했다.

"이런….. 언제 눈치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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