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재회 (1) >
오염구역 내부는 오랜 시간이 지나 몰락한 F구역이 아닐까 하는 광경을 하고 있었다.
마치 몰락한 란다로 시간여행을 온 기분이라 할 수 있었는데,
곳곳에 파손된 도로와 도보, 천천히 무너지고 있는 건물과 연구소, 낮임에도 어둠에 물든 골목 등 황량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말 그대로 버림받은 곳.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버림받았냐면 그건 아니었다.
원래 주인에게는 버림받았을지언정 저 멀리 있는 골목과 건물 안, 거리 심지어 땅 밑 아래까지 새로운 주민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으니.
‘좀 이상한 점이 있긴 하지만.’
올리버는 바로 움직이지 않고, 포레스트에게서 받은 지도와 사진을 확인했다.
이곳을 기준으로 대충 지리를 파악하고 움직일 심상이었는데, 그때,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가자 새끼들아.…!”
요란한 외침과 함께 칼과 도끼, 화기로 무장한 한 무리의 해결사들이 움직였다.
선두에서 가고 있는 이는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남자였는데, 가만 보니 아까 전 공무원에게 사람을 해치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본 칩이었다.
어째 단순히 좀비와 오염생물체만 잡으러 가는 거 같지는 않았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누군가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N구역의 유명 해결사인 아서였다.
"안녕하십니까? 아서 씨.…. 맞으시죠?”
"그래. 창고에서 나에 관해 물어봤지?”
"아, 예…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별로 불쾌한 건 아니야. 다들 아닌 척해도 눈에 띄는 해결사에 대해 서로 알아보고 간을 보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고. 어쨌건 만나서 반가워.”
아서는 그 말과 함께 돌로 된 손을 내밀었다.
딱히 속셈이 없었기에 올리버는 손을 맞잡았는데, 놀랍게도 돌로 이뤄진 의수는 차갑긴커녕 묘한 온기가 감돌았다.
"혹시 혼자 다닐 생각인가?”
“예?”
"아까 전에 경황이 없어서 못 물어봤거든. 특기 흑마법이 뭐지?”
특기라….. 올리버에게 딱히 특기랄 게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대답했다.
"화기 계열입니다.”
"오, 화기? 딱 좋네. 때마침 우리 쪽에는 원거리 화력이 부족했거든..…. 어때? 괜찮으면 우리와 같이 일하는 게. 자네 말고도 X구역 해결사 몇몇 더 있는데.”
아서는 등 뒤의 이십 명이 약간 안 되는 해결사들을 가리켰다.
실크햇을 쓴 여성 저격수, 기계 팔을 달고 고글을 낀 남성, 외골격 장갑으로 무장한 이들까지 그 구성이 꽤 다양했다.
느낌상 모두 나름대로 이름 있는 해결사인 듯했다.
실제로 이를 대변하듯 아서가 한가지 짚고 넘어갔다.
"아, 참고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
"예?”
"자네 소문을 듣긴 했지만, 그저 편하게 묻어가려고 권하는 게 아니거든.”
진심이었다.
"이쪽도 나름대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고 이름을 알린 이들이야. 애당초 시(市)에서 명령하지 않았으면, 이런 밑바닥 일 따위 할 인간은 없어….. 급전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아, 예.”
"자네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목표는 적당히 할당량만 채우고 최대한 몸 성히 여기서 빠져나가는 거야. 어때? 이쪽도 나름 실력자들만 모여있는데, 합심해서 빨리 끝내는 게.”
아서의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여기 있는 이들 모두 나름대로 해결사로서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올리버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도 더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하려는 것뿐이었는데, 솔직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캔트가 말하길 일을 하다 보면 여러 해결사들을 만날 텐데, 적으로 만난 게 아니면 어느 정도 친분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동종업계 사람과 친해지면 괜찮은 일이나, 정보를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여하튼 이들의 자신감과 말을 봤을 때 알아둬서 나쁜 사람들인 거 같지는 않았다. 허나..….
“….정말 감사한 제안이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아서는 딱히 놀라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 뒤에 있는 해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그런 분위기였다.
"뭐, 개인의 자유이니까….. 그래도 이리 만난 것도 인연이니. 조언 한마디 해주지. 좀비나 오염생물체뿐 아니라 사람도 조심해. 이곳에 우리 같은 이들을 노리는 약탈자도 많거든. 아까 전에 본, 칩 같은 해결사도 조심하고.”
"칩이요?”
"그래, 저놈은 좀비보다 여기 있는 약탈자나 주민, 흑마법사에게 더 관심이 많거든. 은근히 알부자들이 있어서….. 아마 같은 생각을 가진 용병도 있을 테니, 최대한 그런 놈들이랑 안 엮이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조언 감사합니다.”
"그래, 무사히 일 마치길 빌지.”
"아, 예. 아서 씨도요. 무사히 일 마치세요.”
***
아서 일행과의 짧은 대화 후 올리버도 잠시 있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기 전 몇몇 해결사가 다가와 협업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올리버는 앞서 그랬듯 정중히 거절했다.
애당초 이번 오염구역 청소의 목표는 오염구역을 둘러보며 쓸만한 물건을 챙기는 거였으니.
오염구역 방문이 자유로우면 아서 일행과 팀을 꾸려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올리버는 원래 계획을 고집했다.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다시 일할 기회가 생길 테니.
께에에에에에엑——!
크하하하하하학——!
[해잇 불릿]
영창과 함께 증오의 탄환이 다가오는 좀비의 목을 맞췄다.
닭목처럼 말라비틀어진 좀비의 목은 그대로 터져 머리와 몸뚱이가 분리되었는데, 그와 함께 좀비는 털썩 쓰러졌다.
다시 시체로 돌아간 거였는데, 움직이라는 것이라고는 생명력을 탐하며 딱딱거리는 턱뿐이었다.
확실히 자연적으로 발생한 좀비는 흑마법사가 만든 인위적인 좀비와 그 느낌이 아주 달랐다.
훅마법사가 되살린 좀비는 추가로 흑마법을 걸고 명령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지가 없는 인형에 불과했지만, 자연적으로 발생한 좀비는 스스로 움직여 끊임없이 생명력을 갈구했다.
앤서니의 서적에서 이러한 내용이 적힌 서적을 읽어봤지만, 그저 현상을 서술한 것일 뿐 원인에 대해서는 적힌 것이 없었는데,
올리버는 여유가 된다면 자신이 이에 한 번 조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하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일이 우선.”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로 좀비의 턱을 내리쳐 부순 후 조심히 좀비 대가리를 시에서 지급받은 마법 가방에 넣었다.
작은 가방 크기에 불과하지만, 좀비 대가리가 벌써 열다섯 개는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딱히 무게가 증가한 것을 느낄 순 없었다.
싸구려라도 하나에 기본 수천씩 한다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기에 오염구역 내 숨어 사는 약탈자들이 해결사들을 습격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빼앗으려는 거겠지.
"그런데 왜 안 나타날까?”
올리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포레스트가 준 자료에는 안전한 길목과 위험 구역 외에도 청소시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는데, 그중 오염구역 내부의 약탈자들에 관한 내용도 분명 적혀 있었다.
그들은 오염구역을 둘러싼 장벽 수백 미터까지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 지점을 넘어서면 간간이 나타나 방심하거나 다친 해결사를 노린다고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올리버는 지금까지 그들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물론, 약탈자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뭐라고 할까..…. 이질감이 느껴졌다.
처음 오염구역에 들어왔을 때 눈에 신경을 집중해 주변을 둘러봤지만, 좀비나 오염생물체만 있을 뿐 사람 따위는 보이지 않았는데, 꽤 깊숙이 들어온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때는 좀비들이 그나마 골고루 분포됐는데, 어느새 한두 마리만 외곽에 있을 뿐 나머지 좀비는 전부 안쪽으로 몰려가 보이지 않았다.
석연치 않았다. 애당초 청소하려는 게 좀비나 오염생물체가 너무 늘어나 오염구역을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인데, 막상 해결사가 나타나니 전부 안쪽으로 몰려가다니.
자연적으로 발생한 좀비는 생명을 갈구하기에 해결사를 보면 도망치긴커녕 달려들어야 하는데. 이 모든 상황이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문득 포레스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번 청소에 애당초 수상한 구석이 있다는.
원래 시작하는 건 4개월 후였는데, 갑자기 좀비와 오염생물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생겨났다고 했으니.
정말 그의 말대로 어떤 위험한 흑마법사가 인위적인 장난을 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것도 그 흑마법사의 작품일지 궁금했다.(그 흑마법사의 작품일까?)
[해잇 불릿]
올리버가 자리에서 튀어 올라 바닥을 향해 증오의 탄환을 쐈다.
그와 동시에 파손된 흙바닥에서 누런 이를 가진 거대한 쥐가 나타나 올리버에게 이를 들이밀었다.
찌지지지지지지익———!
귀를 찢는 듯한 소음에 흉측한 외모.
과거 본 적 있었다.
바로, 두더지의 아지트에서 본 벌거숭이쥐라는 오염생물체였다.
퍽——!
벌거숭이쥐는 올리버가 쏜 해잇 불릿을 맞고 그대로 쓰러졌는데, 올리버는 방심하지 않고 감정을 다시 추출해 자신의 그림자에 투여했다.
그런 다음 그림자에게 명령해 앞으로 쭉 뻗었는데, 그와 함께 무너진 담벼락을 타고 습격해 오는 흉측한 개와 고양이를 향해 바인 쉐도우를 써 붙잡은 후 그대로 목을 끊어 버렸다.
그저 사나운 오염생물체의 공격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조직적이었는데, 올리버는 혹시나 해 죽은 오염생물체들을 만져보며 살펴봤다.
예상과 달리 인형사 글립에게서 보았던 기계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내 생각이 틀린 건가? 아니면 오비디언스로만 통제한 건가? ....저기 죄송한데 슬슬 나와주실 수 없을까요? 신경이 쓰여서."
올리버가 허공에 대고 말했다.
몇 초 동안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잠시 후, 누군가 나타났다.
건물 뒤쪽에 숨어 있던 용병 한 무리로, 열 명이 채 안 됐는데, 그중 한 명은 아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네요. 너클 조 씨.”
“..…데이브.”
***
너클 조와 마주한 올리버.
꽤나 오랜만이었는데, 그래도 올리버는 자기 일을 먼저 했다.
바인 쉐도우를 이용해 오염생물체의 목을 조여 자른 후 마법 가방에 담는 거였는데.
다행히 너클 조와 그의 동료들은 최소한의 경계만 하며 기다려 주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손을 닦으며 조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딱히 살기라던가 악의가 보이지 않아 그런 거였는데, 그는 올리버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원래 그렇게 뻔뻔한 성격인가?”
"예?”
"저번에 내 고용인을 납치한 사람치고 너무 친근하게 굴어서.”
"아..…. 맞다. 그랬죠. 하지만 이해해 주실 줄 알았거든요.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이해?”
"예, 저번에 저랑 싸울 때 손에 무리가 간다고 제가 말했는데, 그 정도 각오도 안 하고 이 바닥 들어 왔는 줄 알았냐고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이런 바닥이지 않습니까?”
"......."
"뭐,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그게 제 일이고…. 또 엄밀히 말하면 허버튼 부교수님께서 먼저 약속을 어긴 거라 제 고용인들은 정당한 자기 권리를 행사한 거거든요. 여하튼 그때 일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너클 조는 작게 한숨을 내 쉬고는 "미친..…이라고 작게 읊조렸다.
더 이상 따질 기운도 없어 보였다.
“..…여긴 무슨 일 때문에 온 거지.”
"청소하러요.”
"청소하러 온 건 알아. 오염구역에 청소하러 왔겠지. 내가 물은 건 드넓은 오염구역 중 왜 하필 여기 왔냐는 거야.”
올리버는 침묵했다. 조의 질문은 그만큼 날카로웠다.
이곳 근방은 오툴 패밀리라는 흑마법사 집단이 관리하는 구역이었다.
포레스트가 준 정보에 따르면 오염구역에 버려지는 시체와 좀비들을 수거해 병기로 개조한 후, 오염구역 밖에 파는 이들이었는데.
제법 상당한 기술이었기에 올리버는 그들을 살펴보다 여차할 때 기습해 그들의 서적과 수술 도구를 빼앗을 생각이었다.
오염구역에서는 웬만한 일이 일어나도 없는 일이 되는 곳이라 하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이 비단 올리버만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우리도 그거 때문에 여기 왔지”
"아..…. 그렇군요. 그럼 오툴 패밀리의 서적을 얻으셨나요?”
조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미 털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