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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80화 (80/633)

< 80. 준비 (2) >

웅성 웅성.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백여 명은 족히 넘는 것 같았는데, 모두 해결사인 듯했다.

그 증거로 여기 모인 이들 제각각 크고 작은 무기로 무장하였는데, 그 종류도 다양했다.

단순히 총기로 무장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개조된 화기와 방어복, 칼과 철 코트로 무장한 이들도 있었고, 심지어 머피와 같은 개조인간도 보였다.

X구역의 갱이나, 킴벨 패밀리 직원들과 비교해 확실히 개성적.

하지만 그런 그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자들이 있었다. 가령.….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시구만.”

갑작스럽게 끼어든 목소리.

올리버가 고개를 돌려 옆을 봤다.

그곳에는 넓은 이마에 가름한 턱. 코에 사마귀가 돋은 초라한 남자가 서 있었다.

“저 친구 보고 있었지?”

초라한 남자가 다짜고짜 한 남자를 가리켰다.

올리버가 바라본 남자가 맞는데, 양손이 돌로 이뤄져 있었다.

농담이나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돌이었는데, 심지어 돌 하나하나에 정교하게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예….. 팔에 저건 뭐죠?”

"하하. 처음 보나 보구만? 저건 골렘 의수(義手)야.”

"골렘 의수요?”

"그래, 골렘 의수! 골렘 조합에서 만든 신제품인데, 현재 태엽 공장의 의지(義版) 시장을 위협하고 있지! ....이런 내가 자기소개도 없이 말이 너무 많이 했구만. 만나서 반갑네. 셰비(shabby)라고 하네. 흑마법사지.”

넉살이 좋다 못해 뻔뻔한 자칭 흑마법사는 웃음으로 연명하는 자 특유의 아첨하는 미소를 지었다.

마치 자신을 우습게 봐 달라고 일부러 짓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는데,

올리버는 남자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정중히 인사를 받아줬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셰비 씨. 전 데이브라고 합니다.”

"알아. 그래서 말을 건 거네.”

“…? 절 아시나요?”

"물론! 막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다크호스이지 않나? T구역의 반(半) 은퇴자 포레스트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반(半) 은퇴자? 새로운 희망?

올리버는 과거 넷 세일링(net sailing) 와중 읽은 포레스트의 정보가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확실히 비슷한 걸 본 적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뭐였지?

“....새로운 희망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자신을 셰비라고 소개한 남자가 하하 힘없이 웃으며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았다. 제법 자연스러웠다.

“겸손한 건가? 아니면 내 정보력을 떠보는 건가? 자넨 근래 활약하고 있는 젊은 다크호스 중 하나지 않나? 그리고 다크호스는 중개인들의 큰 재산이고….. 바로 저 친구처럼.”

셰비는 이번에 다른 남자를 가리켰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선명히 보일 정도로 눈에 띄었다.

그는 키가 2미터가 넘는 장신이었으며, 독특하게도 머리를 녹색으로 물들였는데, 그 외에도 얼굴에 문신을 했다.

올리버의 시선을 읽었는지 셰비가 바로 설명했다.

“드루이드의 데이비드. H구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다크호스지. 사이비 혹은 파계승이라고 불리지만, 스스로는 드루이드의 신흥종파인 인조이먼트를 따르는 것뿐이라 주장하지.”

"인조이먼트요?”

"아, 모르나? 구(舊)드루이드 종파와 신(新)드루이드 종파가 싸우는 와중에 생긴 신생 종파인데? 드루이드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자는 개방적인 종파야. 물론, 그 탓에 사이비 취급을 받지만.”

드루이드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올리버로서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꽤 흥미가 갔는데, 그 덕분에 눈앞의 남자에게 더욱 관심이 쏠렸다.

"잘 아시는군요.”

남자가 또 아첨하듯 웃었다.

"하하…. 그나마 특기라. 칭찬 고맙네.”

"혹시 다른 분들도 아시나요?"

“다른 이들?”

"예."

올리버의 질문에 셰비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그 외에도 다른 다크호스들이 있지. 아까 전 골렘 의수를 한 남자 기억하나? 저기 있구만.”

"예, 보이네요.”

“퇴역군인 아서라네. 훈장도 받은 베테랑 군인이라던데, 전쟁 중 양팔이 날아가 퇴역하고 쥐꼬리 같은 연금을 받으면서 살았다더군. 그러다 저 골렘 의수를 이식받고 해결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지. 지금은 돌주먹 아서라고 불리는데, N구역에서 그 이름을 떨치고 있지. 혼자서 갱단 하나를 하룻밤 만에 쓸어버렸다더군.”

올리버는 아서라는 남자를 봤다. 그의 주변에는 같은 군인 출신으로 보이는 해결사들이 열댓 명 있었다.

머피의 창고에서 퇴역군인을 많이 봐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었는데, 그러다 올리버가 다시 질문했다.

“..…그럼 B구역의 다크호스는 누구인가요?”

“오, B구역이 참가했다는 걸 아나?”

"예, B, H, N, T 이렇게 네 구역이 청소에 참가한다고 들었습니다. H구역의 드루이드, N구역의 퇴역군인….. B구역의 유명인사에 대해서도 아시는 게 있나요?”

"물론, 바로 저분이지.”

셰비라는 남자가 멀찍이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남자는 후드가 달린 두꺼운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저분이 B구역의 다크호스이시지. 마탑 소속이신 콜린 님!”

“마탑 소속이요? ..…마탑 출신이 아니라요?”

"그래, 마탑 출신이 아닌 소속이지. 아직도 소속되어 있거든. 그저 학파의 가르침을 이행하고자 잠시 밖으로 나와 수양을 쌓고 있는 것뿐이야.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이라 할 수 있지.”

셰비라는 남자가 노골적으로 아부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자네도 나랑 같이 저분께 합류하는 게 어떻겠나? 내가 소개하면 받아주실 텐데.”

“예?”

“아니.…. 오해하지 마. 오염구역은 위험한 곳이거든. 아는지 모르겠지만, 좀비나 오염생물체만 있는 게 아니야. 우리 같은 선량한 일꾼을 노리는 약탈자도 많아. 시(市)에서 지급받은 아이템이나 장기를 노리는 약탈자.…. 그러니 서로 뭉치는 게 낫지 않나?”

올리버는 셰비를 가만히 바라봤다.

남들에 비해 감정을 읽는 게 쉽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흐릿하게나마 속셈, 교활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속없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 별 볼 일 없는 흑마법사 빤히 바라보지 말게. 진심이니. 이미 마법사님 쪽에 드루이드도 같이 협력하기로 했어. 그게 효율적이고 안전하니. 자네도 우리와 함께 하는 거 어떻나?”

“.…대답에 앞서 질문하나 해도 될까요?”

"질문?”

"예, 셰비 씨는 어떻게 그런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됐죠?”

"오호호.…. 날카로운 질문이군. 조금 수상쩍게 들릴 수 있지만, 내가 저쪽을 좀 알거든. 오염구역 말이야.”

"......."

"난 이미 열 번도 넘게 이 청소에 참여했거든. 그래서 저기 안쪽에 관해 좀 빠삭해. 안전한 길목과 쉴 공간. 심지어 좀비가 모여있는 곳도 알지. 난 이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저기 합류했어. 그러니 자네도 합류하지. 훨씬 편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 거야."

올리버는 고민하는 척했다.

"음…. 죄송합니다. 말씀이 감사하기는 한데, 모르는 분들하고 같이 임무에 들어가는 게 어렵네요.”

“하하. 어려울 게 뭐 있나? 강한 사람들끼리 힘을 합치자는 건데. 내가 무슨 속셈이 있어 보이나? 그래 사실 있기는 하지. T구역의 다크호스와 좋은 관계를 맺어보려는. 자랑은 아니지만 나랑 친해져서 나쁠 건 없을 거야. 실력은 별로라도 이 바닥에 꽤 빠삭하거든.”

"죄송합니다. 모르는 사람이랑 협업할 때 고민을 많이 해보라고 배웠거든요.”

"꼭 말하는 게 애새끼처럼 말하네.”

제3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B구역의 마법사였다.

그는 몸에서 우우웅 마력을 뿜어댔는데, 머피의 임무 중 만난 마법사보다 더 순수하고 방대한 마력이었다.

공기가 무거워졌는데, 다른 이들도 이를 느꼈는지 아까 전부터 묘한 기 싸움을 펼치던 해결사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탑 소속 마법사는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이봐, 가짜 마법사….. 네가 뭐라도 된 거 같나?”

"예?”

“아니, 가짜가 진짜랑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거절해서 분수를 모르는 건가 싶어서 말이야."

마법사의 말은 진심이었다. 과거 봤던 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자신감이 엿보였다.

"아뇨, 우습게 보지 않습니다. 그저 배운 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

마법사가 올리버에게 가까이 다가와 눈을 마주 봤다.

청회색 눈동자가 보였는데,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올리버를 찍어 누를 기세였다.

그가 마력을 머금은 목소리로 물었다.

"질문하나 하지. 정말 마탑 출신 마법사를 넷이나 쓰러뜨렸나?”

모두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쏠렸다.

"음..…. 글쎄요. 임무 중에 관한 이야기라 제 마음대로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내가 알게 해주는 방법을 알 것 같은데..…."

그때, 마력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설마 여기서 다툼이 일어나나 싶었는데, 그때, 터벅터벅 지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다들 기운도 좋으시네.”

차분하지만, 해결사들과 그 결이 다른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양복 차림의 시(市) 공무원이 외골격 장갑으로 무장한 군인을 데리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피곤한 티를 팍팍 내며 단출한 단상 위에 올라갔는데, 세상만사 다 귀찮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자, 빨리빨리 합시다. 해결사 양반들.”

***

공무원의 등장에 마법사도 잠시 고민하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흑마법사 셰비 역시 헤헤 속없이 웃으며 마법사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는데, 몇몇 해결사들은 그 모습에 질투, 부러움, 혐오와 같은 감정을 빛냈다.

아무래도 아부를 해 마법사와 한팀이 된 흑마법사가 꼴불견스럽고 못마땅한 것 같았다.

다시 웅성이는 분위기.

그러거나 말거나 공무원은 차근차근 제 할 일을 했다.

목소리나 감정이나 귀찮은 티가 역력했지만, 그는 형식적이더라도 해결사들이 해야 할 업무량과 이에 대한 보상, 혹시 모를 사태에 대한 피해 보상에 관해 빠짐없이 설명했다.

“..…이상 끝입니다. 혹시 질문이 있습니까?”

약속이라도 한 듯 해결사들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했다.

이미 어떻게 흘러갈지 안다는 듯 이런 형식적인 절차가 끝나길 바라고만 있었다.

물론, 그중 지루해하는 이들도 있고,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을 가진 이들은 나뉘었지만.

해결사들이 아무도 질문하지 않자 시 공무원은 단상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해결사로 외관에 걸맞은 악의를 품은 자였다.

“….뭔가요?”

"나? H구역의 칩이라 하오.”

칩. 그 단어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몇몇 경계하는 자들도 보였는데, 웅성대는 소리에 귀 기울이자 별명도 들을 수 있었다.

철거업자 칩, 약탈자 칩이라고.

본인도 그런 별명을 즐기듯 히죽히죽 웃었다.

"오염구역에 숨어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던데, 오염생물체와 좀비 소탕 중 이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떻게 되는 거요? 공무원 양반.”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말.

시 공무원은 지루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일단, 한가지 확실히 말씀드리죠. 오염구역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요…왜냐하면 시에서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 고로 여러분은 청소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사람이 다칠 일은 없으니 말이죠."

"......."

"허나, 만에 하나라도 사람이 다친다 해도 오염구역은 폐쇄구역이기에 조사가 힘들죠. 더욱이 여러분은 공식적으로 저기 들어가지 않은 거라 조사 자체가 이뤄지기 더 힘들고요. 그러니 여러분 역시 저 안에서 조심해야 할 겁니다. 다치거나 죽으셔도 시 보상금은 짠 편이니까…질문 더 있습니까?”

이번에도 모두 침묵으로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공무원이 담담한 어조로 군인들에게 명령했다.

"그럼, 인원 확인해주시고, 비공식 고용 계약서에 사인 좀 받아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군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능숙하게 해결사들에게서 사인을 받아 내기 시작했다.

해결사들 역시 상당수 익숙하게 줄을 섰는데, 보아하니 이곳에 오는 사람만 오는 눈치였다.

올리버는 눈치껏 줄을 선 뒤 서류에 사인하고, 시에서 제공한 마법 가방을 챙겨 오염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오면서 봤던 F구역의 멸망한 버전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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