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79화 (79/633)

< 79. 준비 (1) >

이후, 올리버는 포레스트에게서 오염구역과 청소에 관해 추가로 더 설명을 들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5일.

이 정도면 이것저것 준비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사무실을 나가려는 찰나 포레스트가 서랍에서 작은 통신기기를 꺼냈다.

"이건 뭐죠?”

"판매상을 통해 산 비밀 통신장치일세. 나와 직통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지.”

올리버는 딱정벌레처럼 생긴 통신장치를 살펴보며 말했다.

"통신장치요?”

"그래, 나와 계약한 해결사 중 실적이 뛰어난 친구들에게만 지급하는 물건이야….. 원래는 더 빨리 줬어야 했지만, 이것도 절차라는 게 있거든.”

"괜찮습니다. 지금에서라도 받아 기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무슨 일이 있으면 그쪽으로 연락하게.”

"예….. 오염구역에서도 사용할 수 있나요?”

“음.…. 아니, 그건 힘들 거야.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오염구역은 통신에 제약이 따르거든, 가끔 될 때도 있지만, 잘 안 될 거야..... 아마, 2, 3일 후 청소 소집 장소가 결정될 텐데. 그때, 내가 연락하지.”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니, 잠깐만 한마디만 더 하지.”

"예? 무슨.”

포레스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아마, 청소에 들어가기 전에 해결사들끼리 잠시 모이는 자리를 가질 거야. 시에서 해결사를 투입하기 전 임무에 관해 설명하거든."

"예, 그렇군요.”

"그때 해결사들 중 몇몇이 자네에게 접근할 거야. 그중 또 몇 명은 내 이름을 팔 테고.”

"포레스트 님을요?”

“그래….. 결정은 자네가 해야 하겠지만, 누구든 너무 쉽게 믿지는 말게.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당연히 기억했다. 아까 전에 했던 말이니까.

"오염구역의 좀비, 오염생물체 외에도 용병, 해결사도 조심하라고 하셨죠.”

"그럼, 됐네. 다시 연락하도록 하지.”

***

이후 올리버는 사무실에서 나와 알과 정중히 인사를 나눈 후, 레스토랑을 빠져나와 곧장 그레이 마켓으로 향했다.

오염구역으로 가기까지 5일이라는 넉넉한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준비는 빠를수록 좋지 않은가?

올리버는 포레스트가 알려준 재래시장 그레이마켓과 머피가 알려준 지하 그레이마켓을 방문해 필요한 물품을 챙기기로 했다.

필요한 물품이라 해봐야 감정과 생명력 그리고 먹보 주머니 같은 흑마법 도구였지만.

포레스트의 말로 미뤄봤을 때 오염구역은 단순히 오염생물체만 날뛰는 곳이 아니라, 약탈자와 흑마법사도 적잖게 둥지를 튼 무법지대였다.

올리버는 그런 오염구역을 방문해 쓸만한 물건을 한 번 챙겨 볼 생각이었다.

흑마법사 패밀리가 있다면 흑마법 서적이나, 악마에 관한 서적이 있을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그래서 오염구역 청소를 흔쾌히 수락한 거였다.

"혹시 더 큰 먹보 주머니 없나요?”

"앙? 더 큰 거?”

"네."

올리버가 그레이마켓 한쪽에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파는 흑마법사에게 물었다.

그는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나이가 많아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데 왜 더 큰 걸 찾아?!”

노인이 성질을 부렸다. 뭐 노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 흑마법 아이템을 찾는 건 갱이나 소매치기, 도둑들이 주를 이뤘으니.

그들에게 있어 지갑 크기의 먹보 주머니면 충분했다.

기껏해야 시계와 반지 같은 장물이나, 지폐 정도만 넣어둘 테니.

허나, 올리버는 그 이상을 원했다.

책이나, 수술 도구, 작업 도구 같은 것도 쉽게 삼킬 수 있는…..

그래서 이왕이면 큰 먹보 주머니가 필요했다.

올리버는 자신의 사정을 우회적으로 설명하며 노인에게 다른 물건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노인은 그딴 거 없으니 살 거 없으면 썩 꺼지라고 했다.

이후 다른 흑마법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찾아봤지만, 그들 역시 노인과 같이 고개를 저었다.

뭐라고 할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열정이 없어 보였다.

한두 번만 다닌 탓에 생긴 착각이 아니었는데, 그러던 중 한 남자가 끼어들었다.

"이봐요. 형씨!”

올리버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좌판 가장 안 좋은 자리 구석. 한 통통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올리버를 봤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흥분하며 말했다.

"그래, 당신!….. 이쪽으로!”

올리버는 남자가 말하는 대로 순순히 다가갔다.

불러서 온 것도 있지만, 남자에게 흥미가 갔기 때문이다.

그는 통통한 외관에 유쾌한 척 웃고 있었지만, 속은 엄청나게 떨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잘못 말한 게 아닌가? 너무 깝신거리는 게 아닌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자문했는데,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용기를 내 태연한 척 입을 놀렸다.

"아까 전부터 보니까 큰 먹보 주머니를 찾는 것 같던 맞나? 아,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맞소?"

뻘뻘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묘하게 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개의치 않고,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아까 전처럼 설명했다.

어느 정도 듣자 통통한 남자가 수첩을 꺼냈다.

"다시 좀 설명해 주시오. 구체적으로 어떤 걸 원한다고?”

"책이나 작업 도구를 담을 수 있는 먹보 주머니를 원합니다. 좀 많이 담을 수 있으면 좋겠고, 들고 다니기 편하게 접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통통한 남자는 마치 전문가처럼 멋진 필기체로 올리버의 요구 사항을 하나하나 적어갔다.

"구체적으로 크기는?”

크기라…….

"사람 정도 크기요?”

올리버가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대충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그러나 통통한 남자는 놀란 눈으로 올려다봤다.

“….진심이요?”

"사람 정도 크기면 많이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뭔가 잘 모르는 거 같아서.”

“예?”

"혹시 먹보 주머니가 마법 가방처럼 그저 들고 다니기 편한 가방으로만 인식하는 건 아니지?”

뚱보가 인위적인 태도를 버리고. 좀 더 자연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아닌가요?”

"당연히 아니지! 이래서 초짜들은 안 된다니까….. 여보쇼. 먹보 주머니가 지갑 크기라 안 위험한 거지. 사람 크기면 아주 위험하고 그래요.”

호오..…. 올리버는 흥미를 보였다.

올리버가 읽은 서적 중에 이와 같은 내용을 다룬 책은 없었기에 더 듣고 싶었다.

"어째서죠?”

"먹보 주머니는 자아가 있는 인공 생명체에 가깝소. 그래서 스스로 움직이는 거고…. 지갑 크기 정도로 작을 때야 힘이 약하니 시키는 대로 따르겠지만, 덩치가 사람만큼 커지면 시키는 대로 할 거 같소?”

올리버는 과거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포레스트와 처음 만나 해결사가 된 후, 여관에 처음 머물 때.

그때 미래 계획을 세우기 위해 먹보 주머니에게 돈을 토해내라 명령했다.

먹보 주머니는 짧게나마 싫다고 반항했고.

아, 별것이 아닌 건 줄 알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흥미로운 반응이었던 거였다.

“..…꽤 잘 아시는군요. 대단하네요.”

올리버가 진심으로 말했다.

"당연하지요! 이걸로 먹고 사는데, 이건 기본이지.”

통통한 남자는 그리 말했지만, 내심 싫은 눈치가 아닌 듯했다.

이미 처음 만들었던 인위적인 장사치의 태도는 온대 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럼, 다시 이야기해 보시오. 그럼 내 최대한 맞춰 볼 테니. 이래 봬도 마법 도구 만드는 데는 일가견이 있소….. 아! 아기 크기 정도면 어떻게 얌전하게 만들 수 있소. 어린이 크기가 돼도 반항이 심해져서. 어느 크기를 원하오?”

"사람 성인 크기요.”

올리버가 처음보다 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이요?”

"예. 안 되나요?”

"안 되는 건 아닌데….. 하지만 진짜 위험하오. 제 주인을 잡아먹는 먹보 주머니도 꽤 있소.”

지폐를 삼키던 탐욕스러운 모습을 볼 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먹보 주머니.…. 그저 인간의 피부와 치아를 감정과 함께 가공한 건 줄 알았는데, 어쩌면 그것보다 더 재밌는 물건일지도.

"예, 상관없습니다.”

올리버의 변함 없는 태도에 통통한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 그도 설득하길 포기한 것 같았다.

"좋소…. 그런데 이런 물건 만들려면 시간도 돈도 제법 필요한데, 돈은 얼마나 있소?”

"얼마나 필요하죠?”

"어디 보자.…. 재료비랑 내 인건비, 위험수당을 포함해..…. 3천, 아니, 적어도 4천만 란다는 받아야겠소. 이런 물건은 나도 몇 번 못 만들어서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한 거니 한 푼도 깎을 생각 마시오.”

통통한 남자는 그 순간 아주 단호했다. 자신의 물건에 대한 자부심과 자기 실력에 대한 자존심이 엿보일 정도였다.

4천만 란다라……. 이 정도면 올리버가 해결사 일을 3, 4번은 해야 하는 적잖은 비용.

하지만 필요한 물건이라는 점과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분히 지불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정을 내린 올리버는 품 안에서 먹보 주머니를 꺼낸 다음 억지로 아가리에 손을 집어넣어 십만 란다 이백 장을 꺼냈다.

꺼내는 와중 먹보 주머니가 이상한 소리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꾸엑…! 꾸쿠꾸르르르륵...... 끄으우엑….!

"선수금으로 반 드리고, 나머지는 물건이 완성된 후 더 드리면 어떨까요?”

"진짜?! 아, 아니. 내 말은 좋소이다.”

"그런데 물건은 언제쯤 받을 수 있죠?”

"재료를 구하고 만드는 시간을 포함하면.…. 한 일주일?”

“5일 안에 제가 필요한데, 3, 4일 내로는 안 될까요?”

"아니, 나도 다른 생계가 있는데, 그렇게는 못 하지."

"일 끝나고 천만 란다 더 얹어드려도 안 될까요?”

그러자 통통한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갑자기 가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올리버가 물었다.

"뭐 하시는 건지요?”

"뭐하긴요. 물건 빨리 필요하다면서요. 그럼 빨리 만들어야지!”

***

이후 시간이 지났다.

통통한 남자는 다행히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는데, 3일째 되던 날 찾아가 보니 눈이 퀭해진 채 올리버를 맞이했다.

올리버의 주문에 맞춰 사람 크기만 한 먹보 주머니를 만들고, 그걸 접어서 보관할 수 있는 가죽 케이스와 허리띠까지 줬는데, 올리버는 친절한 배려에 감사를 표하곤 약속한 잔금 삼천만 란다를 건네줬다.

적잖은 지출이었지만, 그다지 아깝지 않았다.

애당초 이러려고 모은 돈이었으니.

떠나기 전 그는 자기 물건에 대해 경고했다.

‘예상대로 험한 물건이요. 크기가 사람만 해지니 완력도 사람 못지않게 세고, 포악하긴 훨씬 포악해졌소. 난 미리 쇠사슬에 구속해서 별일 없이 넘어갔지만, 사용할 때 특별히 조심하길 바라오. 고집도 세져 물건을 삼키고 안 뱉어낼 수 있는데, 그때는 아쉽지만 배를 가르도록 하시오. 난 경고했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실제로 몇 번이고 접혀 가죽 케이스에 담긴 먹보 주머니를 만져보니 적잖은 반항심과 포악성이 느껴졌다.

쉽게 쉽게 사용할 수 있을 법한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통통한 흑마법사가 다시 말했다.

‘조심하시오. 첫 번째 손님이 내 물건에 먹혀 죽었다는 이야기는 듣기 싫으니.’

올리버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그런 다음 포레스트가 말한 약속 장소로 왔다.

"여기가 맞나?”

올리버가 오염구역 근처에 있는 한 입구 앞에서 말했다.

F구역은 여러 연구시설이 모인 허브(HUB)답게 크고 신기한 형태의 건물이 많았지만, 그것도 오염구역과 가까워지니 무색해졌다.

오염구역 반경 500미터부터는 시 방위군이 지키고 있는데, 반짝반짝한 F구역과 달리 철 울타리와 개인 화기로 무장한 군인들 탓에 매우 음침해 보였다.

"중개인 조합에서 왔소?”

통제 구역 입구에서 누군가 나타나며 말을 걸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군인이었는데,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레스트에게 받은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명함을 확인하더니 작은 쪽문을 열어 올리버를 억지로 끌고 가다시피 어딘가로 데려갔다.

"어디로 가는 거죠?”

"해결사들 모이는 곳. 조용히 따라오시오.”

여러 시멘트 장애물과 감시탑, 철 울타리, 철조망을 지나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 건물은 미적 감각을 포기하는 대신 방어에만 집중한 듯한 벙커 같은 건물이 있었는데,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있었다. 해결사들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시오.”

군인이 올리버에게 말했고, 올리버는 군인이 시키는 대로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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