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78화 (78/633)

< 78. 청소 시즌 (2) >

청소 시즌.

그것은 란다에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비공식 행사라 하였다.

이름 그대로 청소를 하는 것인데, 당연히 빗자루와 걸레를 이용한 청소는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어딜 청소한다는 거지요?”

“F구역에 있는 오염구역입니다.”

"오염구역요?”

"예, 란다의 F구역 내에 있는 폐쇄구역인데, 시(市)에서 막아 놓은 곳입니다. 위험한 오염생물체와 좀비 떼들이 주기적으로 출몰하죠.”

F구역이라면 란다의 수많은 연구실이 모여있는 허브(Hub) 그리고 F구역과 밀집한 G구역부터는 상류층이 사는 거주 구역이었다.

어쩌다 이런 곳에 오염구역이라는 위험한 곳이 있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청소란 오염구역의 위험도가 높아질 때마다 한 번씩 들어가 날뛰는 좀비와 오염생물체, 돌연변이를 처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중개인 조합과 시(市)의 비밀 협정에 따라 저희도 인력을 제공합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주변의 해결사들을 둘러봤다.

다들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올리버는 눈치껏 질문했다.

"혹시, 그 청소라는 거 개인의 선택 사항입니까?”

알은 눈을 감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아닙니다.”

***

코코 양이 나오고, 다른 해결사들이 몇몇이 들어갔다 나온 후 마침내 올리버의 차례가 되었다.

레스토랑 안쪽에 있는 사장 사무실에 들어가자 피곤한 듯 옷깃을 풀어헤친 포레스트가 보였다.

그는 올리버를 보자마자 바로 옷을 다듬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안녕하십니까? 포레스트 님.”

"오랜만이군, 데이브. 만나서 반갑네.”

그의 말은 반은 진심이었으나, 반은 거짓이었다.

어째서인지 올리버에게 뭔가 말하기 힘든 듯 약간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밖에서 무슨 이야기 들었나?”

"네. 제가 무슨 일 있는지 물어봤는데, 알 씨가 말씀해주셨습니다. 오염구역하고 청소 시즌에 대해서요. 좀 더 자세한 이야기 들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 앉아주게.”

올리버는 포레스트의 제안대로 자리에 앉았다.

포레스트는 여느 때처럼 술을 따라 한 잔 줬다.

"그래, 오염구역과 청소 시즌에 대해서 들었다고?”

"예, 좀비와 오염생물체가 득실거리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도망친 범죄자나 위험한 흑마법사가 숨는 곳이기도 하지.”

"그렇습니까?”

"그래, 그 외에도 처리하기 힘든 시체를 버리는 쓰레기장이기도 하고.…. 왜 정기적으로 좀비 떼가 나타나겠나?"

"하지만 알 씨가 말씀하시길 그곳은 시(市)에 의해 폐쇄되어 있다고 하던데요?”

"지상은 그럴지 몰라도 이 아래는 아니지.”

포레스트가 땅 밑을 가리켰다.

란다 아래에는 하수도와 땅굴로 이뤄진 또 다른 도시가 있다는 캔트의 말이 떠올랐다.

"설사 시에서 막았다고 해도, 힘과 세력이 있는 조직이라면 정기적으로 오염구역을 지키는 시 방위군에게 용돈을 줘서 뒷문 정도는 이용할 수 있어.”

"그런 위험한 곳이 어쩌다 F구역에 있는 거죠?”

"좋은 질문이군. 마법 실험의 여파, 대재앙 때 미처 치우지 못한 재앙의 흔적 등 무성한 소문이 있긴 하지만, 사실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몰라.”

"그렇습니까?”

"그렇네. 그게 란다의 일상적인 생리거든. 거대하고 지독한 일이 터져도 수많은 거짓을 퍼트려 밀가루 반죽처럼 뭉개지. 대다수 사람은 먹고살기 바빠 이내 관심을 꺼버리고, 그래서 이 도시에서 진실은 더욱 가치 있고 위험하지.”

“….평소에도 친절하셨지만, 오늘은 더욱 친절하시군요.”

포레스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에게 부탁할 게 있거든.”

"혹시 오염구역 청소에 관한 겁니까?”

"그래,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에서 이번 청소 때 자기들이 인력을 지정하겠다더군. 저번 청소 때 무능한 놈들만 보내 청소가 제대로 안 되었다고 말이야.”

올리버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히 질문했다.

"정말 그렇습니까?”

"반 정도는? 유능한 친구들은 대부분 안 보내려고 하는 건 맞으니까. 돈도 안 되고, 위험하기까지 한 일에 유능한 친구를 보낼 수 없지.… 하지만, 반은 거짓이야.”

"거짓이요?”

"그래, 유능한 친구들을 아끼긴 하지만 청소는 제대로 하고 있어. 최소 수준은. 안 그랬다간 한동안 시 관계자들에게 시달려야하니까. 저번 청소도 평소만큼 했고. 그런데 갑자기 다짜고짜 억지를 쓰며 이런 요구를 해왔지. 우린 수락할 수밖에 없고.”

포레스트의 감정에서 약간의 분함과 무력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시(市)와 중개인 조합의 관계에서 중개인 조합이 많이 밀리는 듯했다.

포레스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시 관계자는 내게 자네를 요구했어.”

"저요?”

"그래, 자네가 마법사를 쓰러뜨렸다는 소문을 들은 모양이야. 뜬소문에 가깝지만, 그것만으로 눈에 띄긴 충분하지….. 원래 이런 일에 자넬 내보낼 생각이 없었지만, 상황이 이리됐으니 부탁하지. 이번 청소 좀 갔다 와주게….. 미안하네.”

포레스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올리버에게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했다.

규칙이 이렇다니 포레스트 입장상 못할 이야기도 아닌 거 같은데.

올리버 역시 그렇다 할 불만을 느끼지 못했다. 다들 하는 거라니까.

무엇보다 오염구역이라는 데 흥미가 동하기도 했고.

‘흑마법사들이 숨어 산다라…….'

하지만 그건 그거고 궁금한 건 궁금한 것. 혹시나 싶어 질문했다.

"만약에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되죠? 청소라는 거요.”

"시와의 비밀 협정을 위반했으니 나는 파산할 정도로 엄청난 벌금을 물거나, 중개인 자격을 잃게 되겠지. 자네는 범법자가 될 거고. 본보기를 삼기 위해 경찰국에서 작정하고 족치려고 할 테지.”

"아, 그럼 해야겠네요.”

"현명한 판단 고맙네. 그럼, 수락한 거로 알고 일에 관해 설명해줘도 되겠나?”

포레스트가 서류철을 꺼내며 물었다. 그는 아무래도 올리버를 그냥 보낼 생각이 아닌 거 같았다.

"물론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아, 일단 한가지 못 박고 가지. 이번 청소 시즌은 수상한 구석이 많아.”

"수상한 구석요?”

"그래, 참가 인원을 직접 요구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시기도 너무 앞당겨졌거든. 원래는 4개월 후인데, 갑자기 청소하겠단 통보를 해왔어. 오염구역 내 날뛰는 개체가 많아졌다고 말이야.”

"사실인가요?”

"그래, 그건 사실이야. 코코 양도 그렇다 하고, 헤임달에도 의뢰해 봤는데, 불과 한 달 사이 날뛰는 좀비 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더군.”

"오염구역에도 세계수가 있나요?”

"당연히 있….. 내가 자네에게 세계수에 관해 이야기해줬던가?”

"공부했거든요.”

"뭐?”

"공부했다고요.…. 무슨 문제라고 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어떻게….? 아니, 관두지. 어쨌건, 세계수는 오염구역에도 있어. 오염구역에서 좀비가 늘어난 건 사실이라더군. 그럼, 세 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지.”

"세 가지 이유요?”

"그래, 첫 번째 올해 죽은 사람들이 많아 오염구역에 시체가 대량으로 무단투기 된 거지. 의외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 두 번째는 검은 전염병이 퍼져 오염구역에 숨어 사는 사람들을 대거 감염시킨 거고.”

검은 전염병.

도미니크 패밀리의 서적에서 한번 읽은 적 있었다.

대량의 시체와 병균, 흑마법의 기운이 뒤섞여 발생하는 자연적인 전염병으로, 사람을 좀비화시키는 거였다.

일반적인 병보다 더 악질적이고, 치명적이라 심할 경우 통제 불가능할 재앙 수준의 피해를 일으킨다고 했다.

"세 번째는요?”

"위험한 흑마법사가 갑자기 둥지를 튼 경우지.”

"흑마법사요?”

"그래, 자네를 비하할 생각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법적 구애조차 받지 않는 흑마법사에겐 오염구역만큼 좋은 곳도 없거든. 실제로 오염구역을 되찾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 중 저곳에 둥지를 튼 위험한 흑마법사 패밀리도 한 줄 차지하고 있다네.”

아..….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이 갔다.

오염구역은 폐쇄구역. 그 말은 즉 법이나 도시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일종의 자유 구역인 셈이었다.

거기에 시체도 많다? 힘만 허락한다면 흑마법사에게 편한 곳일 수도 있었다.

심지어 올리버마저도 지금 이에 공감하며, 그 혜택을 누릴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할 정도였다.

"이보게 괜찮나?”

"예? 아, 예. 괜찮습니다.”

“……어쨌건, 이런 요소로 좀비가 늘어났다는 게 현재 내 추측이야. 위험하지. Y, Z구역 만큼이나 위험한 곳이야."

사실상 무법지인 Y, Z만큼이나 위험한 곳이라…..

".…포레스트 님. 괜찮으시다면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가?”

"그렇게 위험한 곳이면 무리해서라도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않나요? Y, Z구역은 그나마 구석진 곳에 있어 괜찮다지만, 오염구역은 란다 핵심 구역에 있는데….. 위험하지 않습니까?”

"좋은 말이야. 상식적으로는 그게 맞지. 하지만, 상식이라는 게 가끔은 허무한 법이거든. 오염구역이 생긴 초반 때만 해도 시끄러웠지만, 지금은 있어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분위기야.”

"...?"

"일단, 충분히 통제되고 있고, 연구소도 저기서 괜찮은 샘플을 얻을 수 있거든….. 뭣보다 연구소의 불법 실험체를 버리기도 좋고.”

올리버는 포레스트의 말을 이해했다.

오염구역은 현재 단순히 오염된 곳이 아니었다.

F구역의 실험체 샘플을 확보하는 일종의 밭이었고, 동시에 불법을 은닉할 편리한 쓰레기장이기도 했다.

그 편리성 탓에 오염구역을 놔두고 있다는 거였고.

“…거기다 이건 순전히 소문의 영역이긴 하지만, 오염구역과 F구역이 무언의 협정을 맺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너무 깊게 들어오지만 않으면 절대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누가 그런 협정을 맺었죠?”

포레스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도 모르지. 그래서 소문인 거고.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이거 받게나.”

포레스트가 십여 장의 서류를 건넸다.

"오염구역 청소 때 한 명이 해야 할 최소한의 업무량과 그에 따른 보상이야. 개값이긴 하지만 그래도 받는 게 낫지.”

그 말은 사실이었다.

포레스트가 준 서류 첫 장에는 해결사 한 명이 잡아야 할 최소한의 분량이 적혀 있었다.

좀비만 잡을 경우, 좀비와 오염생물체를 잡을 경우 등등 세세하게 분류하였는데, 그 할당량을 다 채우면 그제야 기본급 이외의 추가 보수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성과급을 받기 위해서는 증거로 머리를 가져와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위한 마법 가방도 제공한다고 했다.

참고로 마법 가방은 기본이 수천만 란다이니 조심하라는 경고가 적혀 있었다.

잃어버리거나 파손 시 물어내야 하며, 마법 가방을 노리는 약탈자들이 도사린다고.

"응? 여기 포획이라고 적혀 있는 항목은 뭐죠?”

"말 그대로네. 포획해서 산 채로 잡아 오면 돈을 주겠다는 거지.”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청소인데 왜 포획하라는 거죠?”

"마법 연구소 샘플로 쓰려는 거지. 시를 통한 마탑의 간접 의뢰야. 그래서 가격이 네, 다섯 배 하는 거고."

아..….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그런 낌새가 나긴 했지만, 확실히 이곳 란다에서 마법사들의 위상은 남다른 것 같았다.

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의뢰를 할 정도라니.

올리버가 서류를 계속 넘겨봤다.

뒤쪽에 웬 정체 모를 지도와 흑백사진이 첨가된 서류가 있었다.

"이건.…?”

"오염구역의 간략한 지도와 오염구역 내에서도 위험한 장소, 집단을 표시해 둔 거야.”

"시에서 이런 것도 제공하는 겁니까?”

"아니, 그건 나를 비롯한 중개인 몇몇이 힘을 합쳐 만든 거야. 말도 안 되는 일 시키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

".… 대단하시군요.”

"알아봐 줘서 고맙군….. 지도의 해골 표시 보이나?”

올리버가 확인했다.

"예."

"좀비가 가장 많이 출몰하는 곳과 위험한 흑마법사, 약탈자들이 있는 곳이야. 위험한 오염구역 내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이지. 반드시 참고하고 피하도록 하게.”

올리버는 해골 표시가 되어 있는 부분에 적혀 있는 숫자를 다른 서류와 대조해 확인했다.

포레스트의 말대로 좀비 출몰 지역이라는 문구와 흑마법 패밀리, 약탈자란 단어가 있었다.

오염구역이라 사람이 아예 없을 줄 알았는데, 이쪽 역시 열악한 환경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 마음을 꿰뚫었는지, 포레스트가 말했다.

"사람이라는 게 대단하지? 저런 곳에서도 사는 사람이 있으니. 하지만 위험한 건 그들만이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래, 해결사 외에도 시(市)에 약점이 잡힌 용병단도 이번에 대거 참여한다더군. 그들도 조심하게.”

"용병요?”

"해결사들도 조심하고. 흔하진 않지만, 가끔씩 악질적인 놈들이 있으니.”

포레스트의 감정에는 희미한 걱정이 빛났다. 확률은 낮았지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해결사는 얼마나 참가하죠?”

"내 쪽에서 자네를 포함해 아홉 명, 그 외에 B, H, N 구역에서도 해결사를 보낼걸세. 거의 백 명이 넘겠지."

"그럼, 언제 청소를 시작하죠?”

"오늘부로 5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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