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습격 (4) >
새파란 섬광과 함께 지면을 내리찍는 푸른 번개.
올리버가 간신히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반사신경이나, 흑마법으로 강화한 육체 덕분이 아니었다.
번개가 내려치기 직전 좌표를 찾아 먼저 내려온 가느다란 마력 한 줄기 덕분이었다.
그 마력을 느끼자마자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뛰어갔고 간발의 차로 번개를 피할 수 있었다.
콰아아앙——!
번쩍이는 푸른색 섬광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그리고 몇 초 후 굉음과 함께 번개로 인한 흙먼지, 돌 파편 따위가 이곳저곳에 흩뿌려졌다.
실로 엄청난 위력.
'이게 마법…….'
올리버는 계속해서 앞으로 달리며 떠올렸다. 과거 싸웠던 전격 마법사를 말이다.
같은 전격 계열 마법사라 그런지 그가 떠올랐는데, 마력을 다루는 방식뿐 아니라 느낌마저도 비슷했다.
혹시, 친구인가 싶었지만, 계속해서 쏟아지는 번개를 피하느라 그리 오래 생각할 수는 없었다.
‘역시 위협적이네. 왜 머피 씨가 두려워하는 건지 알겠어.’
부서지고, 금이 간 바닥을 보며 올리버가 생각했다.
확실히 이런 공격이면 많은 숫자는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았다.
겉보기에 위력만 세고 범위는 그다지 넓어 보이지 않았지만, 번개가 지면에 닿는 순간 수 미터 정도로 전기 충격을 퍼트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시청각적으로도 위협적이었고.
창고 안 사람들이 두려움에 물드는 게 그 증거.
올리버는 타겟팅을 사용해 건물 위로 올라갔다.
마법사들은 처음 그 자리에서 서서 올리버가 다가오는 걸 내려다볼 뿐이었는데, 올리버는 그렇게 번개를 피하며, 점점 그들에게 다가갔다.
가는 도중 미리 배치해 놓은 미니언을 흡수해 감정을 보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리를 반쯤 줄였을 때, 잠잠하던 번개가 다시 내리쳤다.
[타켓팅]
쉬이이이——! 콰광—!
타겟팅으로 몸을 당겨 이번에도 피했다.
왜 과거 전격 마법사가 이 번개 마법을 사용 안 했는지 알 거 같았다.
물론, 못 사용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낙뢰 마법은 위력은 강해도 집단이 아닌 개인에게 쓰기에는 부적절했다.
피하기가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비책을 가진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고, 위력이 과하게 강해 소모되는 마력 역시 적잖았다.
처음에 비해 낙뢰의 위력이 줄어든 것이 그 증거.
확실하게 발목을 잡아 피할 수 없게 하지 않는 이상 올리버를 맞추기란 쉽지 않을 듯했다.
"응……? 블랙 실드.”
타겟팅을 이용해 아슬아슬 피한 직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마력 덩어리를 느끼며 검은색 장막을 펼쳤다.
터더덩----! 소리와 함께 3개의 매직 미사일이 실드에 부딪혔는데, 그 위력이 제법 상당했다.
그러나 진짜는 이게 아니었다. 실드를 펼친다고 멈춘 그 사이 낙뢰의 좌표가 올리버를 찔렀다.
피하기에는 한 박자 늦었다.
‘블랙 슈트를 3개나 입었으니, 최소한 한두 번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싸우기도 전에 슈트를 소모하면 안 되는데.….’
판단을 마친 올리버는 순식간에 감정을 추출해 작은 미니언을 만들어 낙뢰의 좌표를 교란했다.
미니언을 옆으로 던져 착각을 일으킨 거였는데, 그 직후 푸른색 섬광이 다시 한번 내리쳤다.
콰과과과광————!
무슨 행운이었을까?
어쩌다 보니 생각한 방어법이 먹힌 것인데, 간발의 차이로 좌표가 이동해 낙뢰가 올리버가 아닌 그 옆의 미니언에게 꽂혔다.
비록 위력이 상당해 주변에 추가 피해를 줬지만, 다행히 블랙 슈트 덕분에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다.
하늘에서 우우웅 맴돌고 있던 마력이 사라진 것을 보면 오히려 이익.
다시 한번 매직 미사일이 날아왔다.
아까 전보다 더욱 응축된 마력으로.
"마력을 회복한 건가? 어떻게..…. 해잇 불릿.”
올리버는 감정을 추출에 증오의 탄환으로 만든 다음 매직 미사일을 영격했다.
정확히 위력을 맞춘 덕분에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허공에서 터져 사라졌다.
"......!"
멀리 있어 마법사의 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감정 상태로 볼 땐 적잖게 당황한 눈치였다.
그 외에도 한가지 모습이 더 눈에 띄었다.
푸른색 포션을 마시는 전격 마법사.
'아, 저런 식으로 마력을 회복한 거구나….. 그런데 남용하면 안 될 것 같은데?’
포션을 마시자마자 심장을 중심으로 비상식적인 속도로 회복하는 마력이 보였다.
포션이란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이 아닌, 몸에 무리를 주는 약물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러는 사이 매직 미사일이 다시 날아왔다. 아까 전보다 더 강하게, 더 많게.
[타켓팅]
[라스 불릿]
동시에 사용한 두 개의 흑마법.
마법사의 몸에 검은색 다트판이 생기고, 분노의 폭탄을 머금은 탄환이 매직 미사일과 부딪혔다.
부딪히자마자 분노의 폭탄이 허공에서 쾅 터지며 뒤이어 오던 매직 미사일을 상쇄시키는 동시에, 연기로 양쪽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연기로 시야가 가려지자 마법사들은 1, 2초 동안 당황했는데, 올리버는 그 순간 미리 붙여놓은 타겟팅을 향해 흑마법을 사용했다. [해잇 불릿]
여러 발의 증오의 탄환이 기관총과 같이 쏟아졌다.
마법사들은 깜짝 놀라며 실드를 전개해 방어했지만, 완벽하게 막지 못했는지, 몇몇 앓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빛나는 마법사들의 당혹, 공포, 두려움.
처음 왔을 때의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는데, 그들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올리버는 다리에 블랙 슈트의 기운을 집중시켜 단숨에 뛰어 마법사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대로 근접전을 벌여 폭렬 마법사와 같이 기절시키면..…. 응?’
올리버의 눈앞에 창고에서 보았던 공간의 균열과 함께 번개를 머금은 손이 튀어나왔다.
굳은살이 박이지 않은 곱다란 손.
갑자기 나타난 그 손은 올리버의 얼굴에 덮더니 그대로 건물 아래로 처박았다.
건물 위를 뛰어다니던 중이라 그 충격이 가히 대단했는데, 그럼에도 블랙 슈트 덕분에 허리가 부러지지는 않았다.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렸다.
"감히…! 가짜 마법사 주제에..…! 일렉트로닉 쇼크!”
영창과 함께 몸을 뒤덮는 전기.
낙뢰 마법이 다수를 상대로 좋은 공격이었다면, 일렉트로닉 쇼크는 한 명을 상대로 적당한 공격이었다.
낙뢰 때 사용한 마력을 한 명에게 집중시켰으니.
원리는 단순했지만, 효과적이었는데. 실시간으로 소모되고 있는 블랙 슈트가 이 효율성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대로 통구이로 만들어 주마!”
마법사가 소리쳤다. 움직여 반격해보려 했지만, 전기의 위력 탓인지 블랙 슈트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충분히 위기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올리버는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아무래도 열 받은 이 전격 마법사가 올리버의 속을 꿰뚫고 먼저 근접전을 벌인 것 같았는데, 나머지 마법사 둘은 어디 있는 건지 궁금했다.
지금 협공해 온다면 진짜 위험할 텐데.
눈에 신경을 집중하자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폭렬 마법사 때와 마찬가지로 마법을 통해 창고로 이동 중이었다.
"보이나?! 내 친구들이 어디 갔는지! 이대로 네가 지키는 갱 놈들도 같이 휩쓸어 주마! 절망하며 뒤져라!”
"아..... 고맙습니다.”
올리버가 그리 대답하곤, 창고로 시선을 돌렸다.
전격 마법사의 말대로 마법사 둘은 창고 안으로 이동해 당황한 갱들을 상대로 공격을 감행했다.
올리버는 그때 창고에 배치해 놓은 미니언에게 신호를 내렸다.
"미니언, 부탁드려요.”
그 말과 함께 창고에서 작은 폭발음이 들리더니 응축되던 마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곳에 배치한 미니언이 터지며 창고 전체에 클링 스파이더 웹을 뿌린 거였다.
육체의 자유를 빼앗는 구속 흑마법.
외부 충격에 약한 것만 빼면 포획한 대상을 완벽하게 속박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마법사한테도 먹히는 것 같았다.
"너……!”
무슨 오해를 한 건지 마법사는 포션을 통해 억지로 회복한 마력을 더욱 때려 박았다.
지지직거리던 전기는 치치치찌찍-! 소리고 바뀌더니 아까 전보다 더 빠르게 블랙 슈트를 녹이기 시작했다.
분노로 힘이 더 강해진 거였는데, 올리버는 사실을 이야기해 오해를 풀까 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감정을 머금은 미니언이 거의 도착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마법사가 분노로 시야가 좁아진 덕분에 이를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치치치치치치찌찌찌찍-!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두 번째 블랙 슈트가 파쇄되고, 세 번째 블랙 슈트가 파괴되어 갔다.
이제 전기가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뒤져라! 가짜!”
[임프리전]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온 미니언을 향해 그리 명했다.
그러자 미니언은 머금고 있던 대량의 감정을 토해냈고, 검고 질척질척한 감정은 자신들끼리 뒤엉켜 점성을 가진 진흙처럼 변했다.
"이건..…!”
당황한 전격 마법사.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던 전격 마법사도 주변을 보지 못해 당했는데, 참으로 재밌는 우연인 것 같았다.
수많은 감정이 뒤엉킨 임프리전이 소용돌이처럼 다가와 전격 마법사를 포위해 덮으려 했다.
전격 마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감정을 향해 공격해 저항했지만, 올리버를 태워 죽이기 위해 과하게 힘을 쓴 탓에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공격해봤자 그 잠깐만 포위가 풀릴 뿐 압박은 더욱 거세졌고, 결국 그는 힘을 짜내 아까 전처럼 몸에 전격을 둘러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탁-!
허나, 소용없었다. 도약하려고 하면 질척거리는 감정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으니.
올리버는 아까 전 폭렬 마법사와의 싸움을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몸이 상할 것도 각오하며 계속해 마법을 써 결국 임프리전을 풀었는데, 만약 이번에도 그때처럼 풀리면 꽤나 위험할 수 있었기에 올리버는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임프리전을 계속해 조종했다.
그저 발동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컨트롤을.
전격 마법사는 발악하며 온몸에서 전기를 뿜어대 자신을 뒤덮는 감정을 소모 시켰고, 올리버 역시 임프리전을 조종해 마법사를 삼키려고 애썼다.
이 과정에서 임프리전이 반 정도 소모됐는데, 마법사는 조금만 버티면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소리쳤다.
"역시 가짜 마법사 따위!”
그때 올리버는 한쪽 손을 허공에 뻗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마법사의 투쟁심, 분노, 당혹 등 수많은 감정을 뽑아냈다.
슈화하하아아아악———!
"......!!!"
놀란 마법사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추출한 감정을 그대로 임프리전에 추가했다.
줄어들었던 임프리전은 마법사의 감정을 얻자 아까 전 보다 더 강해졌는데, 마법사는 이에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마치 늪에 빠진 듯.
그 덕분에 올리버는 더 효율적으로 감정을 뽑아내 임프리전을 강화했고, 어느새 전격 마법사는 완전히 말려들어 처음 봤을 때의 기세를 잃고 말았다.
올리버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몰아붙여 전격 마법사를 한 번에 삼켰다.
꿀꺽-
"......."
질척이는 감정에 뒤덮여 침묵하는 전격 마법사.
올리버는 조심히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슬슬 지쳤는데, 그 순간 붙잡힌 전격 마법사를 중심으로 마력이 응집되더니, 폭렬 마법사 때와 마찬가지로 사방에서 번개를 뿜으며 임프리전을 떨쳐냈다.
그는 바닥까지 긁어 무리하게 마력을 뿜어댔다.
"이따위 잡기술 얼마一”
—꽉!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내질렀다. 딥 슬립을 때려 박은 쿼터스태프를.
마법사는 저항했지만, 몇 인분에 달하는 딥 슬립을 전부 주입하자 결국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그런 마법사를 내려다보며 올리버가 말했다.
“……후우. 힘드네요.”
***
쓰러진 전격 마법사를 어깨에 들쳐메고 올리버는 창고로 돌아왔다.
예상대로 창고 전체에 클링 스파이더 웹이 퍼져있어 창고 안 사람들을 모조리 구속한 상태였다.
움직일 수 있는 거라고는 뒤룩뒤룩 구르는 눈알뿐.
올리버는 자신을 보고 놀라는 마법사들을 봤다. 아니 어쩌면 붙잡힌 전격 마법사를 보고 놀란 걸지도.
날카로운 인상의 짧은 머리 여성과 둥그런 인상의 곱슬머리 남성이 있었는데, 올리버는 전격 마법사를 내려놓은 다음 쿼터스태프에 딥 슬립을 부여해 구속된 마법사들을 찔렀다.
이로써 마법사들을 모조리 붙잡았다.
올리버는 자기 일을 무사히 끝마쳤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고는 클링 스파이더 웹에 붙잡힌 머피 일행을 풀어줬다.
놀란 머피를 향해 물었다.
"혹시 별일 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