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습격 (3) >
잠시 후 올리버의 부름에 머피가 나왔다.
"이, 이건 도대체….. 흑마법사님께서 잡으신 겁니까?”
"예."
"폭발 소리가 엄청났는데….. 도대체 어떻게?”
"쿼터스태프로 때려서요. 그보다 저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아, 예.... 뭘 도와드리면 될지 말씀하십시오.”
"저 대신 이분 좀 인질로 잡아 주시겠어요?”
“예?”
"도저히 이분까지 챙길만한 손이 없어서. 아마 인질로 잡고 있으면 도움이 될 겁니다.”
올리버가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며 말했다.
창고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마법사들이 몹시도 화가 난 상태임에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는 게 그 증거였다.
그들은 불쾌함, 수치심, 창피, 분노로 요동치면서도 동시에 올리버에게 붙잡힌 폭렬 마법사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무모하게 공격해 들어와서 자신 있는 건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이리 잡힐 것을 아예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용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겁이 없었던 것.
즉,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였다.
"인질 때문이라도 아까 전처럼 함부로 창고를 공격하지 못할 겁니다.”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머피를 비롯한 경비원들은 바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그사이 저는 바깥의 마법사들을 상대하고 있을게요.”
올리버가 그리 대답하며 마법사를 넘겼다.
머피는 여태까지 보여준 침착한 태도와 달리 마법사를 무슨 맹수 대하듯 조심히 대했는데, 좀 이상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대부분 어느 정도의 용기를 가졌는데, 마법사에 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겁을 먹었다.
‘음..…. 전쟁터에서 마법사들의 위력을 봤기 때문인가? 이야기할 때 경외감과 두려움이 비쳤으니. 아, 혹시 이거 때문에 마법사들이 군에 나가는 건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힘을 과시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려고?’
근거 없는 과한 생각 같기도 했지만, 참전군인들의 태도로 봤을 때 아주 틀린 것 같지도 않았다.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올리버는 아직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머피에게 말했다.
“머피 씨.”
“….예. 흑마법사님.”
"의뢰인께 이런 일 부탁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부탁드릴 수밖에 없네요. 창고를 지키려면 머피 씨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제야 머피가 동요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올리버가 안도시킬 겸 몇마다 더 했다.
"갈비뼈가 몇 대 부러졌으니, 아마 정신을 차려도 제대로 움직이긴 힘들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마법사들이 이 마법사를 꽤나 신경 쓰는 것 같으니까요.”
"전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예?”
머피가 대답 대신 폭렬 마법사의 커프스단추를 보여줬다.
단추에는 포효하는 사자가 새겨져 있었다.
"로어 가문입니다. 명문 종군 마법사 가문이지요.”
"군인 마법사 말씀입니까?”
"예. 수많은 마법사를 거느린 대가문으로 식민지와 대륙 전쟁에 앞장서서 수많은 공훈을 세운 명문 군인 가문입니다. 최근에는 정치 쪽으로도 진출하고 있고.…. 한 마디로 있는 집 도련님인 거고, 그래서 함부로 공격 못 하는 거 같습니다.”
"아......."
올리버가 탄성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거라면 공격 못 한 것도 이해 갔다.
"그런데 그런 분이 왜 여기 온 거죠?”
"그건 저도 잘..…. 마법사들은 괴팍한 구석이 있어….”
"괴팍함이 아니다. 부교수님을 구하기 위해서지.”
치지직 거리는 잡음과 함께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알록달록한 마력이 네모 형태로 떠 있었다.
"이건?”
"통신 마법 ‘스피커’입니다. 마력에 의지와 목소리를 담아 전달하는…..”
"하…. 갱 주제에 제법 똑똑하네.”
아까 전과 달리 잡음이 훨씬 줄어들고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꽤나 젊은 목소리였다.
"너희가 우리 부교수를 납치한 거 안다. 그러니 당장 부교수를 풀어주고, 존도 풀어줘. 그럼, 이대로 물러나 주마.”
존? 아무래도 폭렬 마법사의 이름인 듯했다. 존 로어라…..
갑작스러운 마법사들의 말에 다들 당황하며 우물쭈물했는데, 심지어 머피조차 입을 다물었다.
순간, 그에게서 두려움이 피어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럼에도 마음속 한구석에는 무엇이 이익일지 치밀하게 계산하는 용기 또한 보였다.
올리버는 그런 그를 말 없이 바라보며 관찰했다.
"......."
마법사가 다시 말했다.
"내 말 안 들리나? 쓰레기들, 당장 부교수와 우리 측 인원을 풀어줘라. 만약, 거절하면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너흴 싹 다 쓸어버릴 거다. 하지만 요구에 따르면 이대로 물러나 주지.”
일방적인 통보. 마력을 실은 탓인지 앳된 목소리임에도 제법 위엄이 서려 있었다.
거기다 단순한 느낌에 그치지 않고 사람의 심리와 육체에 울리는 감각을 줘 직접적인 압박을 가했다.
어째서인지 올리버에겐 효과가 없었지만.
여하튼, 창고 인원들은 마법사의 발언에 적잖은 동요를 보였다.
그리 이상하지도 않았다.
비록 한 차례 공격을 막긴 했지만. 매직 미사일과 폭발 마법은 위협적이었으니.
아까 전 저들이 보여준 화력이라면 충분히 창고도 날릴 수 있었다.
올리버는 자신의 고용주인 머피를 바라봤다.
일단 그가 고용주이니 그가 하자는 대로 따를 생각이었는데, 그는 난장판이 된 주변을 둘러보곤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맥없이 물러날지, 아니면 마법사와 싸울지.
솔직히 객관적으로 보면 후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화력도 화력이었지만, 사거리 역시 저쪽과 상대가 안 됐다. 아마,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다가 결국 이쪽이 먼저 나가떨어질 게 뻔했다.
흑마법도 결국 한정적인 감정을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기에 소모전으로 가면 이길 가능성이 낮았다.
음……. 확실히 자원이라던가 화력이라던가 흑마법이 마법에 비해 모자라는 게 많아 보였다.
‘대량으로 감정을 사면 괜찮으려나?….. 그건 그렇고.....'
올리버는 고민하는 머피를 바라봤다. 그는 아직도 갈등하고 있었다.
물러설지, 맞서 싸울지. 웃긴 이야기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단순히 돈벌이를 놓친다는 것 이상의 굴욕감, 좌절감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왜 이 사업을 하는 건지. 왜 돈을 벌려는 건지.
‘….이 나라에서 돈이 없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음..…. 머피 씨. 고용인으로서 몇 마디 조언을 드려도 될지요?”
“예? 무슨…..”
"우선 마법사님들 말씀 중 반은 사실입니다.”
"...?"
"이 창고를 날려 버리겠다는 거요.”
썩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는지, 머피를 비롯한 창고 인원들이 동요했다.
스피커도 침묵하며 올리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 했다.
그 사이 올리버는 주변에 깔아둔 미니언에게 창고 곳곳에 심어놓은 감정을 모아오게 명령했다. 조금 더 시간을 끌어야 했다.
"근데, 그냥 물러나겠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저분들 화가 많이 나셔서 그냥 물러날 생각이 없어요. 오히려 풀어주면 마음껏 공격할 겁니다.”
그 말에 고민으로 흐릿하던 머피의 눈에 초점이 맞춰졌다.
스피커가 끼어들었다.
"지금 내가 거짓말한다는 건가?”
"그건 모르겠지만, 감정이랑 말이랑 많이 달라서요. 계속 마력을 쏴서 이쪽을 엿보고 계시기도 하고요.”
“하….! 해결사 일이나 하는 얼치기 흑마법사가 마력을 느낀다고? 감히 마법사의 감정을 본다고? 허풍이 지나치군!”
".....허풍 아닌데요? 어쨌건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선택은 머피 씨께서 하시는 거지만, 창고를 지키려면 절대 풀어주면 안 됩니다."
"........"
머피는 뭔가를 결심한 듯 침묵했다.
스피커가 말했다.
"운 좋게 한 명 제압했다고 우릴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모두가 올리버를 봤다.
"운이 좋았던 건 사실입니다. 뭐, 그래도 일은 일이니까. 계속 싸우시겠다면 저도 싸우기는 할 건데. 뭐, 어떻게 하실 건지요?”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올리버의 말에 머피를 비롯한 다른 창고 측 인원이 용기를 얻었다.
".…흑마법사님. 제가 이 마법사만 인질로 삼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예. 그것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스피커가 소리쳤다.
"이봐! 우리가 인질 따위를 신경 쓸 것 같나?!”
"예. 조금은 신경 쓰시는 거 같은데요. 물론 더 화가 나시면 무시할 수도 있지만….. 서로 난감한 상황이네요? 전 창고를 무사히 지켜야 하고, 마법사님들은 인질을 무사히 구출하고 싶어 하시니.”
"......."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제가 창고 밖으로 나갈 테니 바깥에서 싸우는 거요. 만약, 절 쓰러뜨리면 그때 가서 머피 씨와 다시 협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저 멀리 있는 마법사에게서 차가운 분노가 이글거리는 게 느껴졌다.
“..…흑마법사가 감히 마탑의 마법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힘들 거 같긴 한데 좀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요?”
"......"
마법사는 분노했고, 머피의 부하들도 입을 가리며 놀랐다. 실수한 건가?
무겁고 어색한 침묵이 주변을 눌렀다.
올리버는 그 분위기에 합승하며 침묵했지만, 속으로는 감정회수를 마친 미니언을 제각기 지정한 포인트에 배치했다.
이런 잔재주라도 부려야 이길 가능성이 그나마 늘어나기에.
1초, 2초, 3초. 침묵이 점점 길어졌는데 긴장이 최고점에 오르자 스피커를 통해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그럼 놀아줄 테니, 이곳으로 와라. 마법사와 흑마법사의 차이를 알려줄 테니.”
올리버는 화답했다.
"제안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친절하시군요.”
"........"
스피커는 분노를 뿜으며 침묵했다. 그리고는 사라지며 통신이 끊겼다.
얼추 합의를 본 올리버는 생명력과 감정이 든 시험관을 3개씩 꺼냈다.
[블랙 슈트 ver. 2]x3
3겹의 블랙 슈츠를 장착한 다음 시험관을 추가로 더 꺼냈다.
상당한 거금을 들여 사 왔는데, 벌써 바닥이 보이고 있었다. 이거 잘못하면 죽을지도.
[어노업 빌드업]
[버닝 라이프]X3
[머슬 업]X2
[엔도런스 스킨]X3
올리버는 죽지 않기 위해 감정을 대량으로 사용해 블랙 슈트 위에 온갖 질병 마법을 덧씌웠다.
덕분에 올리버의 몸은 반투명한 어둠에 둘러싸였으며, 그 위로 검붉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그림자와 같았는데, 다들 그 모습을 보며 긴장했다.
“..…흑마법사님?”
“예, 머피 씨. 왜 그러시는지?”
올리버의 순수한 물음에 머피는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마법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으십니까?”
"글쎄요? 해봐야 알 거 같기는 한데. 옛날에 한 번 이기긴 했지만, 운이 좋았던 것도 있어서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돈 받고 하는 일이라 감사받을 것까지는….. 뭣보다 싫지 않거든요.”
“예?”
"뭔가 하려는 사람들요.…. 싫지 않습니다. 그런데 뭐 하나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예, 말씀하시죠.”
"이 마법사님께서 명문가 도련님이면 저기 밖에 있는 마법사들도 같은 도련님들일 확률이 높나요? 옛날에 도움을 주신 분께서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리니 조심하라고 해서요.”
“..…아마 맞을 겁니다.”
"호오.… 그럼 저분들도 죽으면 곤란하겠네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잡는 쪽이 훨씬 이익입니다.”
"음..…. 예. 알겠습니다. 마법사님 좀 잘 붙잡고 있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창고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올리버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참. 저기 저거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올리버가 어느새 갱들 근처에 자리 잡은 미니언 몇 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제야 미니언을 인식한 머피의 직원들이 깜짝 놀랐다.
"으익…! 이건 뭐….”
"혹시 몰라 놔둔 거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전을 위해 놔둔 거니 건들지만 마세요.”
갱들은 고기완자처럼 생긴 미니언의 흉흉한 외관에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는데, 그때, 머피가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흑마법사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머피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멀리 있는 마법사의 분노가 느껴졌는데, 마법사들 역시 올리버처럼 싸울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쿠르르릉———!
올리버가 요동치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번개네?”
그와 함께 푸른색 섬광이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