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70화 (70/633)

< 70. 직접 의뢰 (2) >

머피 킴벨.

첫인상을 이야기해보라면 석상 같은 남자라 할 수 있었다.

어깨가 딱 벌어졌으며, 몸은 다부졌는데, 눈과 표정은 생기가 없는 돌처럼 딱딱했다.

단순히 잘 단련했다기보다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느낌이었다.

그가 머리를 한쪽으로 쓸어 넘기며 다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흑마법사님. 머피 킴벨이라 합니다.”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나 똑같이 인사했다.

"예, 안녕하십니까? 데이브입니다.”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어색한 인사.

그때, 포레스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다면 고객님도 여기 앉게. 이미 둘이 인사를 나눴지만, 그래도 나는 내 일을 해야겠지…. 데이브 이쪽은 머피 킴벨. T구역 40거리에서 45거리까지 쥐고 있는 킴벨 패밀리의 두목일세.…. 킴벨, 이쪽은 데이브. 자네의 앓던 이를 시원하게 뽑아주신 흑마법사님이지.”

포레스트의 소개에 올리버는 머피와 다시 한번 인사를 나눴다.

다시 봐도 분위기가 묘한 남자였다.

그저 느낌일 뿐이었지만, 어째 올리버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많은 사선을 넘은 것 같았다.

마법사인 전격 마법사, 흑마법사인 조셉, 성기사 요안나를 포함해 말이다.

그러한 생각을 읽었는지 포레스트가 설명해줬다.

"머피는 참전군인 출신이네. 식민지 전쟁과 대륙 전쟁에 참전한 진정한 애국자지.”

“….다 지나간 이야깁니다. 지금은 그저 작은 사업이나 하고 있을 뿐이죠….. 어쨌건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흑마법사님. 이번 일을 도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덕분에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머피는 위압적인 겉모습과 달리 매우 예의 발랐다. 허나, 속마음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올리버가 진짜 임무를 성공한 건지 속으로 의심하며 수많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갱들은 믿을 수 없는 종자라고 늘 경계하라는 캔트의 조언이 머리를 스쳤다.

"아닙니다. 저야 제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그렇다 해도 감사합니다. 가져와 주신 장부와 서류 역시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합당한 대가는 받았으니, 괜찮습니다. 그보다 제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올리버가 본론으로 넘어가자 머피 역시 바로 따라와 줬다.

포레스트는 한발 뒤로 빠져 상황을 관망했다.

"예, 이미 들으셨겠지만, 우린 이 부교수라는 양반을 완전히 신용하지 않습니다. 배신자는 또 배신하는 법이거든요.”

“그렇군요…..”

"예, 그래서 그가 말한 마법주 작업장도 신뢰할 수 없습니다. 혹시 X구역에서 봤던 작업장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가 또 무슨 장난을 부리려고 할지 몰라서요.”

"전 그저 한 번 둘러봤을 뿐입니다. 작업장은 4개였는데, 그중 한곳밖에 못 둘러봤고요. 차라리 직접 그곳에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미 가봤습니다. 그런데, 작업장이 텅텅 비어있더군요.”

"비어있어요?”

"예, 단순 파손이 아닌 누군가 작업실을 뜯어 갔습니다.”

그 순간 올리버는 허버튼를 데리고 빠져나올 때 미니언으로 감지한 이방인을 떠올렸다.

느낌상으로 그들이 관련되어 있을 거 같았다.

"이런…. 제가 실수한 건가요?”

"아뇨, 저야 모자란 돈으로 기대 이상으로 해주신 흑마법사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그저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포레스트를 바라봤다.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포레스트에게 종이와 펜이 있는지 물어봤다.

"종이와 펜?”

"예.”

포레스트는 의아해하면서도 종이와 펜을 줬다.

올리버는 받자마자 선을 쭉쭉 그어 작업장의 도면을 그린 다음 기억나는 대로 물탱크, 증류기, 파이프, 재료를 제 위치에 그려나갔다.

참고로 기구의 경우 아는 범위 내에서 어떤 재질인지, 용량은 얼마인지, 역할이 무언지도 간략하게 적었다.

과거 필거렛을 만들고 관련 서적을 읽은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다니. 인생사 참으로 알 수 없는 것 같았다.

"대충 이랬습니다. 이 이상은 기억이 안 나네요.”

"......."

"......."

완벽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훌륭한 도면에 머피는 물론, 포레스트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둘 모두 놀란 상태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뇨. 아닙니다.…. 훌륭해서…. 정말, 이 그림 대로가 맞습니까?”

"제가 기억하기로는요?”

머피는 그 이상 묻지 않고 품 안에 올리버가 그린 종이를 조심히 접어 넣었다.

그는 큰 만족감을 느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부탁드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경비 일 말씀입니까?”

"예,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지금 계획하고 있는 마법주 작업장…. 아니, 마법주 공장은 아주 큰 사업입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합법적인 주류 못지않게 마법주 시장도 꽤 크거든요. 비록, 제조, 섭취의 위험성이 높지만, 그럼에도 늘 꾸준히 수요가 있죠. 제대로 된 제품을 지속해서 대량 생산할 수 있으면 어마어마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머피는 진심을 말했다. 올리버가 포레스트를 보자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이상으로 친절한 설명이었는데, 올리버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이 남자는 올리버가 몹시도 필요한 상태였다.

캔트가 말한 해결사들이 우위인 상황. 물론, 일이 끝나면 입을 싹 닦을 수 있었지만, 최소한 그전까지는 최대한 올리버에게 맞춰줄 터였다.

머피가 계속해 말했다.

"하지만, 큰 사업일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이런 뒷골목의 경쟁은 폭력이 수반되죠. 그래서 공장이 완성될 때까지 지켜줄 분이 필요합니다.”

"저기, 괜찮으시다면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질문요?”

"예, 허락해 주신다면요."

"물론 해드려야죠. 궁금하신 게 뭔지요?”

"완성되기 전부터 위협을 당하는데, 완성된 후에는 괜찮은 건가요?”

"예, 그때부터는 괜찮습니다. 우리 조직에서 만든 마법주의 질과 생산량 이를 통해 얻게 될 이익을 윗분들께 증명하면 자연스럽게 보호해줄 겁니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다지 납득가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조직이라는 게 올리버가 납득 안 가는 점이 많았으니.

그래도 크라임 펌이란 조직이 경쟁하면서도 협력한다는 게 대충 뭔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떼쓰는 게 실례인 걸 압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와 제 가족만으로 막아보려고 했습니다. 흑마법사님 앞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긴 하지만 저도 싸움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거든요.”

짐심.

“그럼?”

"허버튼과 암약하는 마탑 관계자들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민감한 부분을 언급했다.

"십중팔구 마법사일 텐데. 솔직히 그건 저희만으로 어떻게 할 방법이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리 실례를 무릅쓰고 도움을 청하러 온 겁니다.”

"저라고 마법사를 이길 보장은 없는데요?”

"어쩌면 실력 있는 흑마법사가 있다는 것만으로 생각을 접을지도 모르죠. 상식적으로 그쪽도 일을 크게 만들기 싫을 테니까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남자 올리버가 마법사를 막아주길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저 위협용으로 데려가려는 거였다.

"내키지 않는 제안인 건 압니다. 3천만으로 마법사, 그것도 마탑 출신 마법사와 싸울지도 모른다는 건 도저히 수지에 안 맞죠. 하지만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런 일을 해주실 분은 흑마법사님뿐이고, 이리 도움을 청합니다. 조건도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조건요?”

"예, 당장은 현금이 부족해 이 이상 보수를 얹어 드릴 수 없지만, 공장이 무사히 가동된다는 전제하에서 내년 가을 전까지 3천만 란다를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다 합쳐 6천만 란다죠.”

올리버가 포레스트를 봤다.

"미안하지만, 난 그런 불확실한 보수는 취급 안 하거든.”

"뭐, 포레스트씨 입장도 이해합니다. 그쪽 장사는 확실한 걸 선호하니. 하지만 전 진심입니다.”

올리버가 머피의 감정을 봤다. 그의 말대로 그는 진심이었다. 물론, 그 진심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공장을 무사히 완성 작동시켜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했지만.

"그 외에도 다른 쪽으로도 최대한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다른 쪽 도움이라뇨?”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뭐든지요. 가령 블랙마켓 같은 거요.”

올리버가 다시 포레스트를 봤다. 포레스트는 이번에 고개를 저었다.

"포레스트 씨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그저 제가 지레짐작한 거죠. 보아하니 맞춘 것 같네요.”

"어떻게 아신 거죠?”

"전쟁터에서 전 여러 곳을 전전했습니다. 흑마법사도 몇 번 마주쳤고요. 실력 있는 흑마법사가 혼자 돌아다니는 경우는 보기 드뭅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올리버는 동료라도 만들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혼자 돌아다니는 흑마법사는 생각 이상으로 눈에 띄는 존재인 것 같았다.

"블랙마켓이 아니더라도, 신분증이나 건물 등 크라임 펌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다리를 놓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신분증? 건물요?”

"예, 아무래도 활동하려면 신분증이 있는 게 더 편하실 테고, 숙소라던가 여관에서 지내는 것보다 방을 하나 장기 임대하는 게 더 싸게 먹힐 테니까요. 크라임 펌은 이 모든 사업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친절하시군요.”

"그만큼 흑마법사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만약, 도와주신다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허세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번 사업이 안착하면 크라임 펌에서 제 입지도 올라갈 테고,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흑마법사님에게도 그만큼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이 말 역시 진심이었다. 확신보다는 의지가 더 강하게 느껴졌지만, 그는 올리버와의 장기적 관계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포레스트 씨와 단둘이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잠시 상의해 보고 싶은데?”

"물론입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럼 옆방으로 잠시 나가 있을 테니 이야기 다 나누신 뒤 불러주십시오.”

머피는 흔쾌히 수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둘이 남은 올리버와 포레스트.

올리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말 사실인가요? 크라임 펌에서 입지가 높아지면 절 도와주겠다는 거요.”

"그건 사실일걸세. 저번에 말했다시피 크라임 펌 내부에서도 새로운 무력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자네에게 편의를 제공해주는 동안 자네에게 합당한 부탁을 할 수 있으니…. 쉽게 말해 이용하려는 거지만, 그만큼 최선을 다해 자넬 도와줄 걸세.”

썩 나쁘지 않게 들렸다. 이용하고 그만큼 대가를 지불한다는 거였으니. 애당초 이런 바닥이었다.

"머피라는 분이 그만큼 성장할까요?”

"솔직히 말해서 나도 모르네. 이 바닥에서 거물이 될 법한 인간이 다음 날 변사체로 셈 강에 떠다니기도 하고, 쥐새끼 같던 인물이 거물이 되기도 하니. 하지만 그럼에도 내 의견을 묻는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말하겠네.”

"가능성요?”

"그래,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데, 머피는 그걸 갖췄거든.”

"마법주 공장 때문인가요?”

"아니. 머피가 개조인간이기 때문이네. 의학과 마법의 힘으로 신체를 강화한 인간. 받는 데 기본 수천에서 수억이 드는 수술인데 그걸 공짜로 받았거든. 군에서.”

"오.…. 어떻게 말씀이죠?”

"스스로 모르모트를 자처해서. 덕분에 공짜로 개조인간이 되고 전역 후 이를 앞세워 다섯 개의 거리를 제압했지. 멀리 볼 줄 알고, 이를 위해 위험도 감수할 줄 알아. 대성한다면 아주 대성할 거야. 그래서 자네에게 만나볼 건지 물어본 거네.”

포레스트의 말이 뭔지 대강 알 거 같았다. 이번 의뢰는 중개인이나 해결사의 관점에서는 가치가 낮을지 몰라도, 올리버 개인에게 있어 괜찮은 투자일지도 몰랐다.

허나, 그것을 자신이 멋대로 판단할 수 없어 포레스트는 올리버에게 선택지를 제시해 준 거였다.

솔직히 단기적인 이익을 원하면 이건 그냥 무시하고 다른 돈 되는 일에 올리버를 투입해도 됐을 텐데….. 그는 그럼에도 이를 이야기 해준 거였다.

"배려 감사합니다.”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군. 난 그냥 선택지를 제시한 것뿐이야. 선택은 그대 몫이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어떻게 할 건지 정했나? 머피 저 친구도 사정이 급해 생각할 시간을 많이 못 줄 텐데.”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장기적 투자로 괜찮은 거래일 거 같았다.

크라임 펌에서 영향력 있는 지인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고.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에 포레스트는 머피를 불렀고, 머피는 문을 열고 나왔다.

"결정하셨습니까? 흑마법사님.”

"예, 그 경비 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뭐죠?”

"마법사랑 싸울지도 모른다고 하니, 대량의 감정과 생명력이 필요로 한데, 혹시 이를 구할 수 있는 곳 있나요? 그레이마켓을 하나 알고 있지만, 제품 품질이 조악해서요.”

"예, 그 정도는 당연히 제공해 드려야 하죠. 더 필요하신 것은?”

올리버는 고민했다. 더 요구할지 말지. 당장은 그 이상 당기는 게 없었다.

"..…그 외에는 딱히 없습니다. 혹시 나중에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짝-! 포레스트가 손뼉을 부딪치며 계약서를 꺼냈다.

"좋군. 그럼, 고용계약서를 쓰도록 하지.”

***

이후 올리버는 머피가 알려준 새로운 그레이마켓을 통해 감정과 생명력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이번에 소개받은 그레이마켓은 물건이 괜찮은 편이었다.

이에 관해 포레스트와 머피에게 말하자 그들은 그레이마켓의 특성 탓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블랙마켓과 연결되어 있지만 곁가지라 상대적으로 관리가 부실하다고, 그래서 좋은 물건이 들어올 때도 있고, 질 나쁜 물건도 들어올 때도 있으니. 한 번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꾸준히 찾아가라고 조언했다.

그럼 경험이 쌓여 언제쯤 좋은 물건이 들어오는지 알 수 있게 되고, 심지어 좋은 품질의 물건을 생각보다 헐값에 구매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정말 재래시장 같은 곳이었는데, 올리버는 그 말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건 그렇고 여기 맞나?”

올리버가 쪽지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T구역 42거리 13번지.]

공장과 창고가 밀집 지역을 한참이나 헤맨 끝에 온 곳인데, 보이는 거라고는 공장에 둘러싸인 허름한 창고밖에 없었다.

정말 이곳이 마법주 생산시설이 있는 곳인가 싶었는데,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셨군요. 흑마법사님.”

“머피 씨. 여기가 맞군요.”

"예, 오시자마자 죄송하지만, 어딜 지켜야 하는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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