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9화 (69/633)

< 69. 직접 의뢰 (1) >

올리버는 알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사장실이 아닌 식료품 창고 옆에 있는 작은 쪽문으로 안내했다.

"여긴?”

"사장님께선 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평소와 다른 장소라..….

".…아까 포레스트 님께서 절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데이브 씨. 거기에 제가 대답할 권한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알의 말은 진심이었다. 대답하고 싶어도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평소였다면 그냥 넘어갔을 테지만, 올리버는 재래시장에서 보았던 흥정을 떠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예, 내려가시면 사장님께서 말씀해 주실 겁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음…. 그럼 대신이라긴 뭣하지만, 나중에 다른 질문에 대답해주실 수 있습니까?”

"다른 질문요?”

"예, 레스토랑 종업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알은 이해가 안 되는 듯 고개를 갸웃댔다.

"예, 물론 어렵지 않지만….. 그런데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갑자기 궁금해졌거든요.”

올리버가 책방 노인을 떠올리며 말했다.

알은 석연치 않은 듯했지만, 그렇다고 깊이 따지지도 않았다.

"예, 아침 일찍이나, 저녁 장사가 끝날 때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올리버는 알의 호의에 진심으로 인사했다.

알도 똑같이 인사하며 품 안에서 열쇠를 하나 꺼내 식료품 창고 옆 쪽문을 열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걸린 문이 열리자 그 아래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 계단이 보였다.

***

올리버는 희미하게 불이 들어오는 계단을 타고 아래로 쭉 내려갔다.

위에서 봤던 것 이상으로 깊었는데, 정상적인 곳은 아닌 것 같았다.

건물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깊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끝이 없는 건 아닌지 마침내 맨 아래층에 다다르렷다.

올리버는 안도의 한숨을 작게 쉬며 계단에서 내린 후 외길로 이어진 좁다란 복도를 따라 이동했다.

과거 조셉의 소시지 공장의 지하 공간에서 살았던 때가 떠올랐다. 차이가 있다면 이곳은 벽이나 바닥 마감이 잘 되어 있다는 것뿐.

어느새 복도 끝에 도착했다.

복도 끝에는 작은 쪽문만 있었는데, 내려온 길에 비하면 매우 평범한 문이었다.

똑- 똑-

올리버가 문을 두들겼다.

"들어오게.”

허락이 떨어지자 문을 바로 열었다.

올리버는 이 지하실이 레스토랑 사장 포레스트가 아닌, 중개인 포레스트의 사무실인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한쪽에 마련된 탁자와 의자, 거대한 카운터, 그 뒤로 가득 메워진 서류 캐비닛 등.

어떻게 그 작은 사무실에서 중개인 업무를 보는 건지 의문이었는데, 오늘 그 의문이 해소됐다.

"이런 음침한데 불러서 미안하네.”

포레스트가 캐비닛에서 막 꺼낸 자료를 정리하며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런데 뭐 하시는 건지?”

"갑자기 알아볼 게 생겨서. 자네와 상관있는 건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그런가요?”

"그래,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대단한 게 아니라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 같았지만, 구태여 캐묻지는 않았다.

이 바닥에서 개인에 대해 너무 캐물으면 오히려 경계대상이 된다고 했으니….. 아니지 이미 올리버는 이걸 넘었던가? 어쨌건…..

"절 기다리셨다고 하셨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서류 정리를 마친 포레스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서랍에서 돈을 꺼냈다.

10만 란다권으로 엮인 지폐 200장이었다.

"이건?”

"자네 거네.”

저번 임무 보수라면 받았습니다.”

"추가 보수지. 자네가 가져온 장부와 서류 그리고 포션 원액. 의뢰인께서 꽤 마음에 들어 했거든. 잠시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겠나?”

올리버 정중히 고개를 끄덕이며 포레스트 맞은편에 앉았다.

포레스트는 여느 때처럼 술을 한잔 따라 내밀었고, 올리버는 냄새를 살짝 맡곤 목에 넘겼다.

"먹을 만한가? 술을 생각보다 잘 마시는 거 같아 골라서 내놓았는데.”

미각이 둔한 올리버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자네가 가져온 서류와 장부 덕분에 의뢰인 사업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됐어.”

"그렇습니까?”

"물론, 장부에 적힌 거래처와 가격을 통해 마법주를 어떤 가격에 어디로 공급할지 더 많은 정보를 얻었으니까. 저런 건 블랙마켓에 가져가면 제법 비싸게 팔려.”

오….. 새로운 정보에 올리버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저걸 비싸게 팔 계획이었는데, 의뢰인께서 먼저 돈을 내놓았지. 보다시피 2천만 란다.”

"포레스트 님의 수수료는요?”

"이번엔 받지 않지. 애당초 한 것도 없고, 저쪽에서 먼저 돈을 내놓았으니.”

수수료를 떼 가도 상관은 없었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굳이 입을 열진 않았다.

돈이 차근차근 쌓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언제 돈이 필요할지 알 수 없었으나, 최대한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했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돈을 잘 주나요?”

"좋은 지적일세. 이제부터 본론이야. 그 돈은 분명 자네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맞지만, 동시에 뇌물이야."

"뇌물요?”

"그래, 일단 다시 짚지. 그 돈은 자네의 정당한 대가야. 그러니 그 돈을 받아도 자네는 절대 누군가에게 빚지는 게 아니야.”

"예…. 알겠습니다.”

"다만, 그와 별개로 의뢰인이 자넬 직접 만나고 싶어해.”

"절요? 왜 만나고 싶어하는 거죠?”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더군. 하지만 속마음은 실력 있는 흑마법사와 안면을 트고 싶은 거야. 알아둬서 나쁠 것 없으니."

"실력 있는 흑마법사요?”

"그래, 바로 자네. 왜? 그 정도로는 성에 안 차나?”

"아뇨.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이만큼 돈을 선뜻 내놓았다고요?”

정확한 지적이었다. 저번 의뢰 내용 중 의뢰인이 보수를 최소 수준으로 간신히 맞췄다고 했다.

그 말은 즉 일을 싸게 처리하려는 짠돌이거나, 혹은 돈이 쪼들리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간신히 맞춘 보수와 똑같은 액수를 선뜻 내놨다? 그저 인사하고 안면을 트려고?

그건 말이 안 됐다.

"물론, 아니지. 다 겉치레고, 당장 볼일이 있어 오는 거야. 직접 물어볼 게 하나 있고, 부탁할 것도 있어서.”

"물어볼 것과 부탁할 거요?”

"그래, 너무 귀찮아하지 말게. 이 바닥에서 실력 있는 해결사가 나타나면 온갖 조직과 중개인들이 질척이거든.”

올리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해결사로 점점 실력을 인정받는 거 같았다. 하긴, 아직 실패한 적은 없으니.

"물어볼 거란 게 뭐죠?”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자네가 마법주 작업장을 둘러봤으니, 대강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 좀 해달라는 거야.”

"허버튼 교수를 데려다줬으니 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야. 문제는 이미 한번 뒤통수 맞은 탓에 그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거지. 뭔가 대조할 수 있는 게 필요해. 아무리 불법 밀주 작업장이라도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니.”

맞는 말 같았다.

"그 정도는 괜찮을 거 같습니다.”

"다행이군. 그런데, 두 번째는 안 괜찮을 거야.”

"두 번째라면 부탁할 거요?”

"그래, 정확히는 부탁이 아니라 의뢰지.”

"무슨 의뢰인지요?”

"마법주 작업장이 제대로 가동될 때까지 지켜달라는 거야. 기간은 약 한 달.”

"그런데 왜 절 만나 부탁하려는 거죠? 정식 의뢰면 포레스트 님을 통해 전하면 될 일 아닌가요?”

"난 거절했거든.”

“거절요?”

"그래, 내 기준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서.”

올리버는 흥미가 동했다.

포레스트가 동의할 수 없는 조건이라니, 어떤 조건이길래? 그리고 포레스트는 왜 그럼에도 자신에게 이 이야기를 꺼낸 건지 궁금했다.

"조건이 많이 박한가요?”

"파이터 크루 멤버를 3명이나 쓰러뜨린 자네한테는. 자네가 안 나온 사이 이미 소문이 퍼져 자네 이름이 좀 알려졌어. 매해 나오는 다크호스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목하는 이들이 꽤 늘었지."

포레스트는 조금의 과장도 깎아내림도 없이 진심을 이야기했다.

뭐, 너클 조와 니코, 큰 턱이 제법 까다로운 적인 건 맞았으니. 그다지 이상한 것 같지도 않았다.

"의뢰인이 제시한 조건은 한 달 동안 작업장의 경비를 서주는 조건으로 선수금 천오백만 란다. 무사히 일을 마치면 같은 금액을 추가로 더 주겠다 하더군. 즉, 한 달 동안 무사히 지키면 삼천만 란다, 실패해도 천오백만 란다를 벌 수 있지.”

"제 생각에는 꽤 괜찮아 보이는데요?”

"물론, 일반적인 경우면 그렇지 혹시 기억나나? 의뢰인이 크라임 펌에 소속되어 있다는 거. 수많은 거대 조직의 하위 조직으로 말이야."

"예, 들었습니다.”

"자네도 알겠지만, 크라임 펌에 소속되어 있으면 꽤 괜찮아. 같은 소속 조직의 보호와 도움을 받을 수 있거든. 하지만 때때로 내부 경쟁에 휘말리기도 해.”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캔트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크라임 펌에 소속된 수많은 조직은 서로 경쟁하기도 해 그 안에서 처신을 잘해야 한다고.

"마법주 산업은 돈이 되는 사업이긴 해. 늘 수요는 넘치는 데 반해 공급은 부족한 편이니. 그렇기에 돈이 되고, 돈 많은 곳에는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

"그 말은 마법주 생산 작업장이 같은 크라임 펌 소속 조직에게 공격받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무조건은 아니지만, 꽤 높은 확률로. 의뢰인을 견제하는 사람이 많거든. 거기다 그게 끝이 아니야.”

"그게 끝이 아니라니요?”

포레스트가 품 안에서 둥그런 유리병을 꺼냈다. 겉면에는 인장이 찍혀 있었는데, 가만 보니 과거 올리버가 줬던 물건이었다.

"제가 저번에 드렸던 포션 아닙니까?”

"맞아. 다시 묻겠네. 이 물건 정말 허버튼 부교수의 작업장에서 찾은 거 맞나?"

"예.”

"이 물건은 마탑 물건일세.”

"마탑요?”

"그래, 이 인장이 그 증거지. 마탑 관리하에 있는 물건에 찍는 건데, 특수 처리까지 되어 있어서 알 수 있지. 조사도 해봤고.”

올리버가 찬찬히 고민하다 물었다.

“..…마탑 물건이 왜 거기 있던 거죠?”

"두 가지 가능성이 있지. 허버튼 교수가 놀랍게도 마탑에 수송되는 물건을 습격해 털었던가, 아니면 마탑 내부 관계자와 몰래 거래하고 있던 거겠지.”

"후자겠군요.”

"맞아, 마탑 물건이 습격으로 털렸으면 소문이 나 이 바닥도 나름 시끄러웠을 텐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으니 빼돌린 거겠지. 뭐, 그리 보기 드문 경우도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래, 마탑은 그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마법 지식과 자원을 다루는 곳이니까. 나쁜 마음 좀 먹으면 창고에 잠들어 있는 물건을 빼돌리거나, 서류 몇 번 만져 조작하는 건 일도 아니야. 그렇기에 정기적으로 간 큰 교수나 학생들이 이런 류의 일로 적발되기도 하고. 놀랍게도 이 나라의 자랑이자 란다의 엘리트층인 마탑 사람들은 뒷골목의 주요 거래처이기도 하다네.”

포레스트는 어째 즐거워 보였다.

"그 말은 경쟁 갱뿐 아니라, 마탑 관계자까지 습격할 수 있다는 겁니까?”

"확률은 낮지만 불가능하진 않아. 허버튼 교수의 장부를 살펴본 결과 적잖은 비중의 돈이 정체불명의 이들에게 넘어갔는데, 아마, 암약하고 있는 마탑 관계자겠지.”

올리버는 마법주 작업실에서 봤던 포션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마탑 관계자도 무모한 녀석이 아닌 이상 여기서 손을 떼겠지만, 이 바닥에 확실한 건 없거든. 허버튼의 마법주가 제법 인기가 많아 놈들이 받던 돈도 적잖았고. 또, 마법사란 존재는 자존심이나 호승심 같은 요소 때문에 행동도 쉽게 예측이 되지 않아."

"즉, 확률이 낮긴 하지만, 의뢰인을 습격할 수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겠군요.”

"맞아, 그래서 내가 거절한 거고. 마탑 소속 마법사랑 싸우는 것 자체가 위험한 건 둘째 치더라도 마법사랑 싸우는데 3천만 란다면 좀 그렇지. 큰돈이긴 하지만, 자네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더 편하고 안전하게 벌 수도 있어. 그래서 내가 거절한 걸세.”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레스트의 말은 전부 진심이었다. 캔트가 말하길 그는 해결사의 역량을 파악해 가장 안전하고도 효율적인 일을 맡겨준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거 같았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럼 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포레스트가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였다.

"의뢰인이 직접 설득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거든. 그래서 자네 의견을 물어보는 걸세. 개인적으로 관심 있게 지켜보는 친구이기도 해서.”

짐심.

"또, 왠지 자네 성격이면 크라임 펌 소속 사람을 만나고 싶어할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전부 내 지레짐작. 불편하다면 그냥 내 선에서 정리할 수도 있네. 그냥 자네 생각을 묻는 걸세.”

올리버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어지는 의뢰, 크라임 펌, 경쟁 갱, 마탑 관련자.…. 약간 흥미가 동했다.

올리버는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을 슬쩍 보며 대답했다.

"그럼, 일단 그냥 만나볼 수 있을까요?”

"물론, 만나고 나서 그냥 거절해도 되고. 이봐, 들어오게.”

그 말과 함께 사무실 한쪽 벽의 비밀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흑마법사님. 머피 킴벨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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