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7화 (67/633)

< 67. 세계수 (1) >

노인의 외모는 추레한 편이었다.

물론, 올리버가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객관적으로 보아도 추레했다.

최소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포레스트에 비하면 말이다.

오래되어서 해진 코트, 푹 들어간 뺨, 달걀처럼 벗겨진 정수리, 길게 기른 주변머리….. 어째 캔트를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책…. 보러 오셨소이까?”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올리버가 대답했다.

"아, 예…. 혹시 무슨 책이 있죠. 어르신.”

어르신. 그 말에 노인이 하핫! 큰 웃음을 터트렸다.

"...?"

"아, 미안하오. 어르신이라고 불린 게 얼마 만인지 몰라서…. 젊은 분인데도 예의가 바르시구려…. 책은 이것저것 있소이다. 젊을 적에 책을 모으는 게 취미였던 지라. 어디 한 번 살펴보시겠소?”

노인이 자신의 뒤쪽 작은 책방을 가리켰다.

가게와 가게 사이에 껴 있는 작은 공간으로, 어둡고 비좁고 먼지도 많아 보였다.

재래시장에 사람이 많은데도 왜 이곳만 사람이 없는지 알 정도였다.

허나, 다행히 올리버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둡고 비좁고 먼지가 많은 곳은 이미 지난 삶의 일부였으니.

오히려 그 안에 있는 책에 더 많은 관심이 갔다. 안쪽에 빽빽이 꽂힌 책들에 말이다.

물론 그 못지않게, 찰나의 순간 엄청난 마력을 뿜었던 이 책방 노인에게도 관심이 갔고.

그래서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좀 살펴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요. 젊은 친구. 얼마든지 보시오.”

노인의 친절에 올리버는 고개를 숙여 예로 화답했다. 친절에는 친절로 보답해야 한다고 했으니.

좁다란 책방은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보던 것에 비해 훨씬 더 좁았는데, 사람 하나 지나가기 힘들 정도였다.

체격이 조금만 좋은 사람이라면 들어오자마자 숨이 막힐 지경.

그러나 올리버는 개의치 않고 책을 살피는 척하며 눈에 신경을 집중해 노인을 살펴봤다.

솔직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감정 상태는 여느 장사꾼들처럼 일반적인 상태였으며, 전격 마법사나 마법 도구에서 보았던 마력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전 느낀 강대한 마력이 일 순간 착각이었던 것처럼.

허나, 올리버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를 착각으로 느낄 수 없는 것처럼.

그 정도 마력이라면 지금 올리버의 상태로는 이길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재밌는 게 없소? 젊은 친구.”

책방 노인이 갑자기 물었다.

올리버는 살펴보고 있다는 것을 들킨 듯 놀라며 대답했다.

"아뇨, 다 처음 보는 책들이라 조금 생소해서….. 응?”

딱딱한 양장본 책 사이를 살피던 중 올리버의 눈에 한가지가 띄었다.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딱딱한 글씨체에 정형화된 재미없는 제목이었지만, 한 단어가 눈을 잡아당겼다.

“..…세계수?"

"관심 있소?”

책방 노인의 물음에 올리버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약간요…. 저번에 일하던 중 한 번 들어 본 적이 있어서요.”

"그렇소? 대단하군. 일반인이 세계수를 언급하는 경우는 잘 없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볼 수 있겠소?”

올리버는 생각했다.

“….레스토랑 종업원이요.”

“종업원?”

"예….. 손님들이 하시는 말씀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노인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군. 글을 읽을 줄 아는 레스토랑 종업원이라….. 아, 참, 미안하오. 무시할 생각은 아니었소.”

"아뇨, 괜찮습니다…. 대신이라긴 뭣 하지만 저도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책방 노인은 다시 허허 웃었다.

"질문을 받는 것도 오랜만이군…. 말씀하시오. 젊은 친구.”

"박식한 분이신 것 같은데, 세계수가 뭔지 아시나요?”

“세계수….. 설명하기 약간 어렵구려. 워낙 그 개념이 다양하고 역할도 방대해.”

“아…..”

"뭐, 그래도 굳이 설명하자면, 아주 방대한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소.”

"백과사전 말씀입니까?”

"그렇소. 굳이 설명하자면 그게 가장 적당하다고 할 수 있소.”

"죄송하지만, 잘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러는데, 세계수라는 건 나무 아닙니까?”

"그렇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나무요.”

책방 노인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지만, 올리버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무가 책이라니.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라니.

올리버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거대한 나무를 펼쳐 정보를 찾는 자신의 모습을. 혹시 정보가 나뭇잎에 적혀 있는 건가?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것 투성이였다.

가령, 세계수를 통해 포레스트가 간접적으로 정보를 얻는다고 했는데, 이 역시 말이 맞지 않았다.

백과사전이란 결국 기록물.

이 바닥을 잘 모르긴 하지만 그런 걸로 파이터 크루의 멤버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느새 올리버는 그레이마켓에 대한 실망감을 잊은 채 강렬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가급적 이 호기심을 채우고 싶었는데, 그때, 책방 노인이 적절한 조언을 해줬다.

"궁금한 게 많은 눈치인데, 그럼, 그 책을 사는 건 어떻소? 젊은 친구.”

"이 책요?”

"그렇소. 비록, 아주 재미없고, 어렵지만, 의지만 있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 자고로 지식이란 남의 입을 통해 듣는 것보다 스스로 찾는 게 가치 있거든..... 물론 다 늙어빠진 노인의 괜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에 겸손을 더하긴 했지만, 올리버는 오랜만에 머리가 청명해질 정도로 옳은 소리를 들은 거 같았다.

노인의 말이 맞았다. 지식이란 스스로 탐구해야 하는 법.

그래야만 오롯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

올리버는 스스로를 질타했다. 쉽게 알 수 있는 책을 눈앞에 두고 묻다니…..

"아뇨.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이 책 얼마인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어르신.”

책방 노인은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감정을 어느 정도 꿰뚫을 수 있는 올리버도 그 속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괜찮다면 책 좀 볼 수 있겠소?”

노인이 손을 뻗으며 물었다. 올리버는 책을 건네줬다.

"어디 보자.…. 좀 오래되긴 했어도 상태가 좋고, 지금은 구하기 쉬운 책이 아닌데, 그동안의 보관 관리비 책 정가까지 다 합치면..… 20만 란다만 내주시오.”

“20만 란다요?”

"그렇소.”

올리버는 속으로 싸네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댔다.

애당초 책을 정식으로 사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다만, 올리버의 개인적 주관으로 20만 란다면 거저나 다름없었다.

기존 책 가격의 네 배이긴 했지만, 올리버는 몰랐고, 설사 안다고 해도 원하는 궁금증만 해소할 수 있다면 20만도 200만도 올리버에 겐 큰 의미가 없었다.

노인이 올리버를 보며 물었다.

"비싼가?”

"아뇨. 아닙니다. 어르신. 그냥 싸서요.”

"요즘 종업원은 돈을 많이 버나 보오? 그 정도면 한주 치 급여는 될 텐데.”

"그….. 팁을 많이 받아서 괜찮습니다.”

과거 거지패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팁? 오, 좋은 레스토랑에서 일하나 보오.”

"예…. 좋은 곳입니다.”

올리버는 대답하며 품 안에서 돈을 꺼냈다.

10만 란다권 고액 화폐로 주려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1만 란다권을 스무 장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책방 노인은 올리버가 건넨 지폐 뭉치를 헤아리지 않고 바로 꼬깃꼬깃 접어 품 안에 넣었다.

"여기 가지시오. 이제 당신 책이오.”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고맙소. 오랜만에 손님이라 짧지만 즐거웠소. 얼마 만에 대화를 나눈 것인지도 모르겠고. 잘 가시오.”

"예, 장사 잘하십시오.”

올리버가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떠났다. 그런데 가다 말고 멈추며 책방 노인을 뒤돌아봤다.

어쩌면 쓸데없는 위험을 낳을 행동일지도 몰랐지만, 언제나 그렇듯 흥미와 호기심이 조심성을 이겼다.

"어르신.”

"응? 왜 다시 돌아왔소? 환불은 가게 정책상 안 하오.”

"아뇨. 그게 아닙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책을 다 읽은 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여쭤보러 올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허허 웃었다.

"이런 허름한 중고책방 노인이 좋은 대답을 주기 어려울 것 같소만?”

"어떤 대답이든 그만한 가치가 있는 법이지요.”

노인은 빙긋 웃었다.

".……한 가지 조건만 지켜준다면 내 생각해 보겠소.”

"조건이라면 어떤 거 말씀하시는지요?”

"술이랑 안주 좀 사서 와주시오. 맨입으로 말하기 좀 그래서."

그 말과 함께 노인이 허허허 다시 웃었다.

***

숙소로 돌아온 후 올리버는 가볍게 식사했다.

과거 조셉 패밀리에 있었던 때라면 책을 읽을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식사를 건너뛰었겠지만,

식사를 제대로 하라는 캔트의 조언이 떠올라 차마 거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아까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 그래서 올리버는 한 가지 좋은 생각을 냈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풍채가 좋은 여관 여주인이 물었다.

"예, 주인아주머니. 혹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식사는 없을까요?”

"왜?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이 맛없어요?”

여주인이 허리에 팔을 딱 올리며 물었다. 그녀는 지금 몹시도 불쾌해 보였다.

올리버는 최대한 그녀의 기분에 맞춰 말을 이어갔다.

"아뇨. 늘 차려주시는 음식에 감사합니다. 맛도 훌륭하고요.”

한풀 꺾이는 불쾌함.

"다만, 가끔씩 제가 방 안에서 볼일을 봐야 해서 간단히 때울 것이 필요하거든요.”

"허! 무슨 일을 하신다고 밥 먹을 시간도 없어요?”

여관 여주인이 다시 강한 태도로 말했다.

허나, 올리버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애당초 이런 것에 반응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이 여관에 머무는 사람들이 대부분 험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란 것도 고려해야 했다.

감정이란 의외로 전염성을 가져 원하든 원치 않든 주변 사람들을 물들였다.

캔트처럼 긍정적인 예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예도 존재했다.

즉, 그녀는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좀 해보고 싶어서요.”

“공부?”

“예.….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그만뒀지만, 다시 공부하고 싶어서요.”

공부라는 단어에 여관 여주인의 마음은 한풀 누그러졌다.

그녀는 올리버의 사정을 모르나, 공부라는 단어에 자신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하고는 뭔가 납득한 듯했다.

“뭐….. 사정이 있는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곤란해요.”

"아.…. 그런가요?”

"예, 여기 머무는 사람이 당신 혼자도 아닌데, 특별 대우해줄 수 없는 노릇이잖아요? 당신 방에 음식을 가져다주면 다들 자기 방에도 직접 가져다 달라고 할거라고요. 그럼, 나랑 저 애는 하녀 취급당할 거라고요. 더 이상 하녀 노릇 하기 싫어요.”

여관 여주인은 지푸라기 머리에 깡마른 소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충 올리버와 비슷해 보이는 나이대였다.

"아, 맞는 말씀이네요.”

"그렇죠? 그러니 음식은 식당에서 드세요. 여주인으로 음식을 열심히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하녀 노릇은 안 해요.”

올리버가 침묵했다. 확실히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럼에도 약간 미련이 남아 한 가지 제안을 해봤다.

"돈을 더 내면 어떨까요?”

"돈을 더 내요?”

"예."

돈 이야기가 나오자 여관주인이 관심을 보였다. 다들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그건 근본적으로 올리버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올리버는 음식을 방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이 대화 자체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까 전 방문한 재래시장의 장사꾼과 손님이 흥정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통해 서로 원하는 의견을 끌어내던 그 행위를.

해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아 아쉬웠는데,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인 거 같았다.

탁一!

여관 여주인이 식탁을 내리쳤다.

"허튼소리 하지 말고. 음식은 식당에서 먹어요! 더 이상 시간 빼앗지도 말고. 음식 준비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번거로운 건지 알아요?!”

"아, 예.”

기대와 달리 흥정은 쉽게 끝나고 말았다.

아무래도 올리버에겐 흥정의 재능이 없는 거 같았다.

올리버는 음식을 다 먹은 후 식탁 위에 음식값을 올리고 올라갔다.

올라가던 중 여관 안주인 일을 도와주는 가게 아이가 다가와 물었다.

"저기…. 학생이셨어요?”

"예?”

"그 공부하셨다고 해서요….. 학교 다니셨어요?”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학교는 안 다녔어요. 한 은사님에게 조금 배웠을 뿐이에요.”

"아…. 그럼 글… 읽을 줄 아시겠네요?”

"예, 왜 그러세요?”

여관의 소년 일꾼은 우물쭈물거렸다.

갈망하는 감정이 빛났는데, 그와 함께 부끄러움, 두려움이 빛났다.

그러다 간신히 용기 내며 입을 열려는 순간 저 아래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로스번! 또 어디로 간 거니!”

사나운 여주인의 목소리에 로스번은 화들짝 놀라며 올리버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다음 내려갔다.

혼내는 듯한 고함소리가 아래에서 고래고래 들려왔는데, 올리버는 이내 신경을 끄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오늘 구매한 물건을 침대 위에 쏟아냈다.

질이 낮은 감정과 생명력, 조악한 품질의 흑마법 아이템 그리고 의도치 않게 구매한 책 한 권.

올리버는 책을 들어 책상으로 간 다음 펼쳐보았다.

과연 세계수가 무엇일지 궁금해하며.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