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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65화 (65/633)

< 65. 그레이마켓 (1) >

딱- 딱- 딱-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를 부딪치며 허버튼 부교수가 있는 마법주 작업실로 향했다.

그리 멀지는 않았는데, 가는 도중 블랙 다트에 맞아 쓰러진 갱들과 혹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 도망친 갱들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런 탓인지 눈에 신경을 집중하자 더 이상 방해꾼은 보이지 않았다.

방해꾼 외에도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도 급격히 줄었다.

물론, 한두 명의 호기심과 흥미, 약간의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 보였지만, 이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X구역에는 이런 식으로 남들을 염탐하는 이들이 많았으니. 실제로 캔트도 그렇다고 말했고.

일일이 신경 썼다가는 끝도 없으니, 정말 보안이 중요한 일이 아니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이용하기에 따라 이름값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고.

올리버는 혹시나 싶어 자기 얼굴을 만져봤다.

정확히는 얼굴 위에 뒤집어쓴 흑마법 아이템 가죽 가면을.

다행히 찢어지거나 망가진 곳은 없었다.

확인을 끝낸 올리버는 염탐하는 이들을 놔두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 얼굴로 다니는 동안에는 혹시 모를 위험이 닥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 차라리 할 수 있는 한 많은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혹시 누가 또 아는가? 이 덕분에 일이 좀 더 수월해질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올리버는 어느새 마법주 작업장에 도착했다.

"음........."

올리버는 작업장으로 쓰이는 네 개의 건물을 둘러봤다

각 작업장엔 각각 여덟, 여덟, 여섯, 아홉 명의 인원이 있었는데, 모두 공포와 두려움, 혼란 등의 감정으로 이성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개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장 큰 작업장으로, 거기에는 총 아홉 명의 사람이 있었고, 그중 한 명은 남들과 다른 감정 상태를 지니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건 비슷했지만, 그렇다고 공황에 빠져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의지를 발휘해 용기를 내고, 머리를 굴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려는 희망을 품었다.

그와 함께 언뜻언뜻 빛나는 푸른빛도 보였고.

그 푸른 빛은 감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생명력도 아니었다.

이 2개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는데, 어디서 한번 본 적도 있었다.

언제였더라..…. 아! 전격 마법사.

올리버는 저 빛이 마력이라는 걸 곧 인지했다.

"그럼 저 사람이 마법사겠네?”

올리버는 목표물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적의를 품은 자나, 어떠한 속셈을 지닌 자가 보이지 않았기에 단번에 작업장으로 들어갔는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텁텁한 먼지 냄새와 시큼한 알코올 냄새를 동시에 맡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천장을 따라 복잡하게 연결된 파이프, 여러 용도로 쓰이는 물탱크, 증류기도 보였다.

한쪽 벽에 쌓인 감자와 옥수수, 상자에 담긴 포션 원액도.

주변을 천천히 관찰하던 중 책상 아래나 기구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곤 말했다.

"거기 계시는 거 압니다. 나오세요.”

침묵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정확히는 침묵과 공포가.

"해치지 않을 테니 전부 다 나오세요. 부탁입니다.”

이번에는 설득이 통했는지, 한 명이 양손을 든 채 느릿느릿 나왔다.

지저분한 작업복에 작업모를 썼는데, 싸울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단순 노동자인 듯했다.

“흐으으…. 제, 제발 살려….."

"나가셔도 됩니다.”

올리버가 정중히 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뭔가 실수를 했는지 그는 안심하는 대신 혼란을 느끼더니 나중에는 거의 공황 상태가 되어 도망치듯 밖으로 뛰쳐나갔다.

"히이이이익..…!”

“..…다른 분들께선 안 나가실 겁니까?”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노동자들이 느릿느릿 나와 눈치를 살피더니 아까 전 처음 나간 사람과 똑같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찌 됐건 덕분에 얼추 안을 정리할 수 있었다.

올리버는 주변을 둘러보며 마법사가 있는 작업실 깊숙한 곳을 향해 들어갔다.

복도로 이어진 증류기와 각종 기계, 한쪽 벽에 쌓인 붉은 형광빛 술이 담긴 상자를 지나쳐 웬 좁고 지저분한 사무실에 도착했다.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텅 빈 사무실 안을 둘러봤다.

거대한 창문은 열려 차가운 바깥 공기가 들어왔고, 그 바람으로 인해 장부와 서류는 책상 위아래로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사무실 안쪽에 있는 금고는 반쯤 열린 채 약간의 현금과 함께 방치되어 있었고.

아마 보통 사람이 이곳을 봤다면 누군가 급히 돈을 챙겨 도망친 것이라 생각할 터였다.

딱히, 그게 어리석은 건 아니었다.

정황상으로 볼 때 그것이 합당한 추론이었으니.

아마, 올리버도 흑마법사의 시야를 가지지 않았다면 충분히 그쪽으로 생각이 쏠렸을 터였다.

‘신기하네.’

올리버가 티 내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는 눈을 깜빡여 일반적인 시야와 흑마법사의 시야를 바꿔, 사무실 한쪽 모퉁이에 숨죽이고 서 있는 허버튼 부교수를 살폈다.

마법을 쓴 것인지 일반적인 인간의 시야로는 그가 보이지 않았지만, 흑마법사의 시야로 보니 감정은 보였다.

아마, 셰이드 클록과 같은 은신 기능이 있는 마법인 듯했는데, 성능 자체는 훨씬 훌륭해 보였다.

셰이드 클록은 필수적으로 어둠이 필요한 데 반해, 허버튼 부교수는 그냥 안 보였으니.

단, 그래서 전부 우월하냐면 그건 아니었다.

그의 감정, 생명력과 함께 보이는 마력은 실시간으로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필시, 저 투명화 마법을 유지 시키기 위해서 일 텐데.

그의 마력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마법이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 건지 이대로 있으면 곧 마력이 다 떨어져 투명화 상태가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부교수의 긴장과 두려움이 점점 커지는 거고.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금고 앞으로 걸어갔다.

딱-딱-

쿼터스태프가 땅에 닿을 때마다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올리버는 그대로 쭈그려 앉아 금고의 돈을 살펴봤다.

적잖은 현금이 들어있었는데, 솔직히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올리버는 앞으로 많은 현금이 필요할 예정이니 돈은 많을수록 좋았다.

허나, 지금 올리버에게 있어 눈앞의 돈만큼이나 관심 있는 것은 등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허버튼 부교수의 반응이었다.

바로, 쿼터스태프로 딥 슬립을 투여해 잠재울 방법도 있지만, 올리버는 스스로 설명하지 못할 이유로 그를 떠보고 있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며 말이다.

어째서일까? 올리버는 자신에게 자문했다.

전격 마법사 이후 처음 만나는 마법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전격 마법사가 보여줬던 아름다운 빛을 보여줄지 몰라서일까?

올리버는 자신도 설명하기 힘든 기대를 하며 부교수를 관찰했다.

허버튼 부교수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탐욕과 절제, 공포와 용기, 현명과 오기 등 수많은 감정이 교체됐는데, 이윽고 그는 결심한 듯 조용히 다가왔다.

스윽-

아무래도 그는 부교수 출신이라 그런지 싸움에는 경험이 없는 듯했다.

감정은 조심히 조심히 노래를 불렀으나, 발소리는 전혀 숨기질 못했다.

지금 쓰는 마법에 소리를 없애는 기능이 없는 건가? 그럼, 왜 부여하지 않은 걸까? 소리를 없애는 마법이 없어서? 아니면 마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어느새 허버튼 부교수가 올리버 바로 뒤까지 왔다.

올리버는 마탑에서 왔다던 부교수가 어떤 공격을 할지 긴장을 머금은 채 기다렸는데, 잠시 후 믿기지 않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一

一콱!

총을 장전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올리버는 들고 있던 쿼터스태프로 뒤를 내질러 허버튼 부교수를 찔렀다.

그리 세게 찌르진 않았지만, 쿼터스태프에 부여한 딥 슬립 덕분에 그는 바로 쓰러졌는데, 그 모습을 보자 올리버의 흥미는 급히 식고 말았다.

그 뭐랄까…….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고 할까? 그래도 마탑 출신이라 뭔가를 기대했는데.

뭐, 이제는 아무래도 좋을 지경이었다.

올리버는 쓰러진 목표물이 다친 데가 없는지 확인한 후 잠시 일을 했다.

우선 먹보 주머니를 이용해 금고에 둔 돈을 챙기는가 하면, 딱히,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중요해 보이는 서류와 널브러진 장부를 챙겼다.

그리고는 오면서 봤던 포션 원액을 챙겼다. 둥그런 솥처럼 생긴 강화 유리 안에 든 포션에는 빨간색 인장이 찍혀 있었다.

"어.…. 먹보 주머니가 이제 없네?”

올리버는 그리 중얼거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포션 두세 개를 품 안에 넣었다.

더 챙기고 싶었지만, 이 이상은 번거로워 챙기기 어려웠는데, 더 챙길 게 뭐 없나 살피던 중 미리 주변에 뿌려놓은 미니언으로부터 신호가 왔다.

올리버가 한쪽 눈을 감아 시야를 공유했다.

웬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느낌상 흑마법사였다.

딱히 적의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 이상 오래 있으면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해 바로 움직이기로 했다.

올리버는 쓰러진 허버튼 부교수에게 다가간 다음 바로 오비디언스를 걸었다.

되살린 좀비나 동물 혹은 살아있는 사람의 정신을 지배 통제하는 흑마법을.

예상대로 딥 슬립으로 깊이 재워 저항력을 떨어뜨리니 쉽게 걸렸는데, 올리버는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하나 대충 주워 그에게 씌운 뒤 마법주 작업장을 나왔다.

그런 다음 이방인들이 있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눈에 신경을 계속 집중했는데, 다행히 그들은 쓰러진 너클 조만 챙겼다.

감정도 살펴봤지만, 그들은 이 사태에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흥미와 또 다른 기회를 포착한 즐거움만을 보였다.

마치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듯.

올리버는 그런 그들을 계속해 관찰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어느새 해가 뜨며 X구역 입구로 나왔다.

다행히 우려하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빵一! 빵一!

커다란 경적소리.

올리버가 소리가 난 방향을 보자 어제 이곳에 데려다줬던 택시 기사가 창문을 내린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살짝 좁힌 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약속대로 왔습니다. 그런데 뭔가..…. 아주 바쁜 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

올리버는 먼지를 뒤집어쓴 자신의 모습을 그제야 인지했다.

"아, 예. 조금 소란스럽고 재밌는 밤을 보냈습니다. 이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돈을 두 배로 준다고 해서 온 거니…. 그보다 어서 타시죠. 그.… 친구분이랑요.”

올리버는 허버튼을 봤다.

"아, 예…. 친구 맞습니다.”

***

"허버튼 씨 맞습니다. 사장님.”

올리버에게 조종당해 끌려온 허버튼을 확인한 알이 말했다.

그는 단순히 얼굴만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지문을 대조하고, 피를 뽑아 어떤 작은 장치에 넣어보기까지 했다.

"......."

"혈마법을 기초로 한 신분 확인 방법이야. 최신 기술이지. 얼굴도 지문도 바꿀 수 있지만, 피는 거짓말을 못 하거든."

"혈마법요?”

"그래, 생명 마법학파에서 나온 새로운 학파지. 생소한 것도 이해해. 정말 최근에 생긴 학문이거든. 정식 탄생은 약 12년 정도, 이름을 알린 건 근래 2, 3년이지.”

평소에도 친절한 편이지만, 지금의 포레스트는 어째 더 친절한 거 같았다.

곧 그 이유를 본인의 입으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정말 대단하구만. 키메라 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또 하루 만에 임무에 성공할 줄이야.”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거네. 아, 오해는 하지 말아줘. 자네가 실패하길 바란 것은 아니니. 진짜 놀라워 그래.”

"그렇습니까?”

"물론, 파이터 크루는 근래 생긴 조직이지만, 이미 실력을 입증한 조직이야. 비소속 갱단들은 물론, 크라임 펌 소속 중 일부도 그들과 거래할 정도지. 순수하게 힘을 중심으로 뭉친 집단이니. 그런데, 자넨 그런 그들을 하나도 아닌 셋이나 쓰러뜨렸어. 아주 대단한 거야.”

올리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세다는 건 인정했다.

올리버가 딱히 부상을 입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이긴 것은 아니었으니.

오히려 한 끗 차이였다.

그들이 흑마법을 좀 더 잘 다뤄 초반부터 제대로 된 유효타를 날렸다면 오히려 끝장나는 건 올리버였을지도 몰랐다.

방심은 죽음을 부른다는 캔트의 말이 새삼 실감 났다.

"자네 덕분에 의뢰인도 기뻐하고 있어. 돈을 걸어 일을 맡기긴 했지만, 또 이리 쉽게 풀릴 줄은 몰랐던 눈치였거든.”

"기쁘신 것 같군요.”

"물론,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언제나 기쁘지.”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드려도 될까요?”

"얼마든지. 물어보게. 때마침 나도 자네에게 해줄 선물이 하나 있으니.”

"선물요?”

"그래, 선물에 대해 말해주기에 앞서 나 먼저 질문 하나 하지. 보유한 감정이 얼마나 있나? 그리 많지 않을 거 같은데."

포레스트의 말은 반은 정답이었다.

조셉 패밀리를 떠나기 전 챙긴 감정은 이미 반 정도 소진한 상태.

아껴 쓴다고 아껴 썼지만, 거지패 때부터 계속 썼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기에 이번 임무에서 생각 이상으로 감정을 사용했고. 뭐, 아깝진 않았다.

인형사 글립에게서 얻은 감정이 있어 처음 나왔을 때와 엇비슷한 보유량을 유지했으니.

올리버는 고민 끝에 대답했다. 포레스트가 원하는 대답을.

"처음 보유한 것에 반 정도 남았습니다.”

"그럼 슬슬 보충해야겠군.”

"예, 그런데 조금 난감하네요. 감정을 함부로 뽑지 말라고 계약 내용에 적혀 있었는데요?"

"그렇지. 정확히는 일반인들. 그건 나도 우리 조합도 보호해줄 만한 사안이 아니거든.”

"그래서 임무 중 적들의 감정을 뽑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싸우는 중에.…? 대단하구만. 잘못하면 죽거나 다칠 수 있는데.”

"뭐..…. 그런데 이 이야기는 왜 하시는 건지 여쭙고 싶습니다.”

"소개시켜 줄까 하거든.”

"예? 무엇을 말씀이죠?”

“그레이마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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