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회수 (1) >
마탑 전 부교수 허버튼 회수.
올리버는 임무를 수락하자마자 택시를 이용해 X구역 입구로 향했다.
란다 택시의 좋은 점은 X구역까지 가는 손님에겐 필요 이상으로 말을 걸지 않는다는 거였는데,
경험적으로 뭔가 위험한 일을 하거나 최소한 그런 일에 관련되어 있다고 아는 것 같았다.
그러한 택시 기사의 배려로 올리버는 포레스트에게 받은 정보를 대강 훑어보며, 그의 설명을 다시 떠올렸다.
임무를 수락하자마자 그는 간략한 설명을 넘어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해줬다.
‘좋아, 정식으로 수락했으니 일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주지. 우선 목표인 허버튼은 크게 주의 안 해도 될 거야. 마탑 출신이긴 하지만, 전문 분야는 연금술, 약초학이고 마법 실기 능력은 극히 떨어지는 편이거든. 괜히, 부교수가 아닌 거지.’
마법 실기.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와 숙련도, 마력 하트 용량 등등 마법사의 실전 실력을 아우르는 말로, ‘반드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법 실기 능력이 뛰어나면 강력한 마법사라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
반대로 말하면 마법 실기 능력이 낮은 허버튼 자체는 전투력이 낮아 크게 주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갱들도 마찬가지지. 대략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진짜 경비라기보다는 좀도둑을 막고 혹시 모를 바보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세워둔 위협용 허수아비에 가까워. 제대로 싸운다면 아마 곧바로 도망칠걸세.’
‘그렇습니까?’
‘그래, 제대로 된 실력도, 죽을 각오도 없는 존재들이거든. 그저 폭력이 주는 달콤한 열매만 원하는 파리와 같지…. 뭐, 그런 것밖에 모르는 것도 한몫하지만.’
뭔가 깊은 뜻이 있는 말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야.’
포레스트가 서랍에서 흑백사진 세 장을 꺼내며 말했다.
‘좌측부터…. 아니, 내 쪽에서 좌측 그래, 거기…. 좌측부터 너클 조, 니코, 큰 턱이라고 하네. 이놈들이 문제야.’
올리버는 사진을 한 번씩 훑어보며 말했다.
‘….이분은 좀 생긴 게 특이하네요.’
세 번째 사진. 큰 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름처럼 턱이 몹시도 컸기 때문인데, 그 외에도 이마가 툭 튀어나오고, 눈은 흰자보다 검은자가 더 많았다.
조금 심한 말일 수 있지만, 사람이라기보다는 맹견에 가까운 생김새였다.
‘제대로 봤군. 특이할 수밖에…. 돌연변이니까.’
돌연변이. 이 역시 캔트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공장으로 인한 환경오염 혹은 마법 실험의 여파로 탄생한 뒤틀어진 인간.
대부분 인간과 생김새가 달랐고, 그 탓에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이들을 저주받은 인간 혹은 인간과 비슷한 아류종으로 취급한다고 했다.
법적으로도 이들을 어찌 취급해야 할지 한창 다투고 있고….
주로 공장의 오폐수를 버리는 셈 강 인근의 빈민 혹은 노동자 거주 구역에서 태어난다고 했는데,
대부분 지능이 떨어지나 개중에는 놀라운 신체 능력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이들 모두 파이터 크루 소속이야.’
‘파이터 크루요?’
‘그래, 근래 생긴 신종 흑마법사 조직으로, 기존의 흑마법사 조직인 패밀리처럼 주인과 제자로 구성된 수직적 관계가 아닌 비교적 수평적 관계를 이루지. 물론, 아예 서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 그렇군요.’
새로운 정보를 머리에 저장하며 올리버가 대답했다.
‘아무튼, 이 파이터 크루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흑마법사 조직으로 약을 만드는 대신 용병 일을 업으로 삼고 있어. 폭력과 관련된 거라면 뭐든지 해. 습격, 파괴, 암살, 경호, 경비 등등. 그 탓에 기존 흑마법사 패밀리들과 경쟁하지도 않고 착실히 힘을 키우고 있지. 일종의 틈새시장을 노렸달까? 물론, 노린 거라기보다는 전투광들이 우연히 얻어걸린 것에 가깝지만.’
'대단하시네요. 포레스트 님. 그런 걸 다 어떻게 아시죠?’
'중개인이니까. 이 정도는 기본이지. 어찌 됐건 칭찬은 고맙네.’
그렇게 한번 이야기를 정리하고 포레스트는 다시 본론으로 넘어갔다.
‘이들 셋 모두 파이트 크루의 조직원. 말할 것도 없이 전투가 특기지. 너클 조는 별명처럼 근접 전투 전문으로 당연히 질병 계열을 다뤄.’
올리버는 자신의 쿼터스태프를 바라봤다. 근접 전투라….
‘니코는 화기 계열과 질병 계열. 해잇 불릿 스무 발을 동시에 쏠 수 있다더군. 꽤나 위협적인 화력이지. 조심하게.’
'.......'
‘세 번째 큰 턱은 보시다시피 저 아가리로 모든 걸 다 물어뜯네. 한 번이라도 물리면 끝이니 이 녀석은 특히 조심하게….. 혹시 궁금한 점 있나?’
‘음….. 궁금한 거라기보다는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안 들어주셔도 되기는 한데.’
'...뭔가?’
‘그런 정보를 어떻게 모으는 건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방법을 알려달라기보다는 그냥 시스템이 궁금해서.’
'왜 따로 조사하고 싶은 거라도 있나?’
'아뇨. 그냥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꼭… 마법 같아서요. 이렇게 많은 정보를 아는 게.’
‘그리 대단할 것 없네. 내가 다른 중개인들보다 5퍼센트 수수료를 더 받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니.’
‘그래도 대단합니다.’
포레스트는 잠시 올리버를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뭐, 좋아.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일을 처리해 준다니, 못 알려줄 것도 없지. 이러면 어떤가? 자네가 무사히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가 가르쳐주는 걸로.’
‘오, 그거 좋네요. 정말 좋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을 나오고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끼이이익-
차가 멈추며 현실로 돌아왔다.
"손님 X구역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이상은 갈 수 없습니다.”
올리버는 서류를 도로 집어넣으며 품 안에서 돈을 꺼냈다.
"아뇨. 여기까지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별말씀을. 응? 돈이 많습니다만?”
"위험한 곳까지 태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조금 더 얹어 드렸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뭐 하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무슨…?”
"내일 아침 9시쯤에 한번 여기로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 가는 길에는 두 배로 더 드리겠습니다.”
"두 배요?”
"예, 여기서 차를 잡는 게 쉽지가 않아서요. 아, 물론 곤란하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올리버가 부드럽게 말했다.
***
택시 기사와 대화를 끝마친 후 차에서 내리자 올리버는 여느 때와 같이 숨어서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두려웠지만, 두 번째, 세 번째가 되자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
올리버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앞으로 걸어가며 자연스럽게 품 안에 넣어둔 감정을 추출했다.
그리고는 그늘이 깔린 곳을 지날 때 자신에게 이레이저 엑시트를 걸었다.
부끄러움을 기반으로 한 은신 흑마법.
그저 기척을 죽이는 애매한 흑마법이었지만, 과거 상당한 효과를 봤는데,
실제로 지금도 어느 정도 먹혔는지, 이 흑마법을 쓰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자 어느새 하나둘 올리버에게 관심을 끄기 시작했다.
좋은 이야기였다. 아직 임무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은 없었으니.
어느 정도 시선을 떨쳐냈다고 판단한 후 올리버는 포레스트가 준 자료를 다시 확인해 허버튼 부교수가 있는 마법주 작업실로 향했다.
X구역 20번 거리로 아주 깊숙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올리버가 가본 곳치고는 꽤 깊은 곳에 속했다.
올리버는 미로 같은 길을 몇 번 헤맨 끝에 그곳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확실히 비인가 건물이 많은 탓인지 실제 X구역은 지도와 다른 곳이 많았다.
"음......."
올리버가 멀리서 허버튼의 마법주 작업실을 살피며 소리 냈다.
벽돌 같은 네모난 집들에서 하얀 연기가 나왔는데, 아무래도 저곳이 마법주를 생산하는 작업실인 듯했다.
그 증거로 그곳을 중심으로 여러 갱들이 돌아다니거나, 자리를 틀고 앉아 지키고 있었다.
올리버는 갱들을 관찰했다.
포레스트의 말대로 전문 훈련을 받은 이들이라기보다는 그저 위협용으로 데려다 놓은 사람인 것 같았는데, 기껏해야 거지들보다 나은 수준이었다.
겉모양새나 감정이나 모두 늘어져 있었으며, 무장 역시 수준이 낮고 통일성도 없었다.
아마, 올리버가 하고자 한다면 라스 붐을 먹인 미니언을 대량으로 투입해 한 번에 뒤흔들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렇게 하면 목표물도 다칠 수 있었으니 부적절하지만.
그렇다고 난감한 것은 아니었다.
그 외에도 방법이라면 무궁무진 많았으니.
가령, 화력이 강한 라스 붐 대신 상대방의 의지를 꺾는 크리피 스크림을 먹인 미니언을 대량으로 투입한 후, 해잇 불릿으로 위협 사격을 가하며 동시에 터트린다면 과거 두더지 때와 마찬가지로 갱들의 전의(戰意)를 한 번에 꺾을 수 있을 터였다.
혹은 해잇 불릿을 먹인 미니언을 대량으로 투입해 하나하나 확실하게 사살하는 방법도 있고.….
새삼 느끼는 거지만 흑마법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기초적인 흑마법을 몇 개 조합하는 것만으로 무궁무진한 활용법을 만들 수 있으니.
단순히 힘이 아닌 그 무한한 메커니즘이 경이로웠다.
문득 조셉의 서재에서 읽었던 책 내용이 떠올랐다.
화력으로 적을 찍어 눌러 제압하는 마법과 달리 흑마법은 적을 꿰뚫어 보는 눈과 적의 의표를 찌르는 교활함이 주 무기라고.
그렇기에 어찌 보면 마법보다 좀 더 세밀하고 고차원적인 학문이라고 했다.
실제 마법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올리버는 이를 쉬이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전격 마법사가 그런 구석이 있었으니. 아니지, 전격 마법사 하나만 보고 그런 판단을 내리는 건 부적절한가?
"아차차…. 또 딴 생각하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올리버가 자신을 다독이며 현실로 돌아왔다.
일단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것이 순서였다. 임무 성공률과 신용은 중요한 것이라고 캔트가 강조했으니.
올리버는 당장 코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은 올리버는 자리에 주저앉아 어떤 방식으로 임무에 들어갈지 고민했다.
어떻게 문제를 푸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재미있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우선 자신의 목표를 다시 한번 짚어봤다.
목표는 다름 아닌 마법주 제조업자 허버튼을 무사히 데려가는 것.
그렇다면 화력이 센 흑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가급적 자제해야 마땅했다.
혹시, 휘말려 다치거나 죽으면 안 되니.
괜히 소란스럽게 하면 도망칠 수도 있었고.
그를 추적할 흔적이 없는 지금에서 놓치면 꽤 난감할 수 있었다.
‘…아니지. 지금 저기 있는 감정들을 전부 기억해 두면 나중에 찾을 때 애를 덜 먹을지도?’
올리버는 바로 눈에 신경을 집중해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마법주 작업장 주변의 감정들을 기억해뒀다.
총인원 수는 60명. 갱뿐 아니라 작업장 내부 노동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좀 과한 것 같기도 했지만, 캔트도 조심성이 많아서 나쁠 것은 없다고 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올리버는 그렇게 감정들의 빛을 눈에 하나하나 새겨 넣었다. 언제든 다시 보면 떠올릴 수 있게.
감정을 다 확인한 후 다시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저들을 제압해 목표물을 데려갈지 말이다.
앞서 말한 대로 방법은 무수히 많았지만, 이왕이면 색다른 방법을 해보고 싶었다.
화력으로 찍어누르는 것과 다른 방식을 말이다.
아, 오해는 하지 마라. 올리버가 갑자기 힘에 도취해 만용을 부리려는 것은 아니니.
만용이라기보다는 그저 캔트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가급적 여러 방법으로 임무를 수행해 재주를 늘리라고 조언했다.
자신은 재주가 부족해 익숙한 방식을 고집했지만, 올리버가 목표하는 곳에 가려면 다양한 형태의 일을 숙지하는 것이 좋다고 말이다.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일해야 할 때도 있을 거라고. 가령, 강력한 화력 사용이 제한되는 순간이라던가.
그럼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근접 전투와 같은 것을.
그렇기에 이왕이면 여유가 될 때 수고스럽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일을 해보라 했다.
솔직히 나쁜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캔트의 말은 논리적이고, 말할 때의 감정도 거짓 없이 진심이었으니.
그런 와중에 때마침 질병 계열 흑마법을 쓰는 흑마법사를 만났다?
마치, 한번 시도해보라고 누군가 기회를 제공하는 거 같았다.
결국, 올리버는 캔트의 조언에 따라 이번에는 익숙하지 않은 색다른 방식으로 임무에 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했고, 올리버는 밤이 되길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