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새로운 일 (1) >
포레스트가 알과 올리버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올리버는 두 번째 일에 들어갔다.
첫 번째 일은 당연히 포레스트와 안면을 터 해결사가 되는 것이었고,
두 번째 일은 첫 번째 일 못지않게 중요하고 어떤 의미로 더 어려운 거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숙소를 잡는 것.
..…안다. 이게 헛소리 같다는 거. 허나, 사실이었다.
물건을 사거나,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등 일상적인 경험이 부족한 올리버에게 있어 숙소를 잡는 것은 생각 외로 어려운 일이었다.
바보 같은 소리일 수는 있지만, 키메라를 잡는 것보다 더 난해했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미 캔트가 괜찮은 숙소를 몇 개 가르쳐 줬고, 어떻게 방을 잡는지, 장기 숙박 형태로 방값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몇 번 역할극을 하기까지 했는데, 그 덕분에 올리버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포레스트의 레스토랑에서 좀 떨어진 꽤 괜찮은 숙박업소에서 방을 잡을 수 있었다.
밤새도록 장사를 하는 곳이라 별다른 잡음 없이 방을 구할 수 있었는데, 캔트의 조언대로 1개월 치 방세를 미리 지급해 방값도 어느 정도 깎을 수 있었다.
딸깍-
문을 열고 들어온 올리버는 방을 살펴봤다.
가격에 걸맞게 그리 좋은 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넓은 편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거지소굴에서 잠을 잤던 올리버에겐 충분히 훌륭한 방이었고.
올리버는 가방을 내리고, 쿼터스태프를 벽에 세우며, 겉옷을 벗었다. 그리고 작은 만족감을 느꼈다.
거지패를 떠난 첫날치고는 참으로 성공적인 하루라 할 수 있었다.
예상과 다르긴 하지만, 어찌 됐건 포레스트를 만나 해결사가 됐고, 한동안 지낼 숙소를 잡았으니….. 꽤 괜찮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에 불과했다.
왜냐면 이걸로 시작 지점에 선 것에 불과했으니.
올리버의 목표는 엄연히 혼자 힘으로 블랙마켓을 이용해 원하는 서적과 지식을 얻는 것.
허나, 그 목표에 비하면 오늘 한 것은 시작 지점…. 아니, 시작 지점에 선 것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캔트가 말하길 블랙마켓은 아무나 이용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 했다.
어느 정도 뒷세계의 경험이 있는 캔트가 그 정도로 말할 정도면, 이제 막 발을 들인 올리버가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게 자명했다.
또, 설사 이용할 자격을 얻는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왜냐면 돈이 필요했으니까.
캔트 본인 역시 블랙마켓을 이용하지 못해 자세한 것은 모르나, 그 명성을 미뤄봤을 때 한번 이용하는 데만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할 것이라 했다.
심지어 올리버가 원하는 것은 흑마법과 악마에 관한 희귀서적이니 훨씬 더 많이 필요할 거라 했다.
올리버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하는 바였고.
올바른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필거렛조차 한 개 피에 10만 란다. 한 갑에 200만 란다였다.
올리버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그게 말이다.
그러니 그보다 더 희귀하고 위험한 흑마법 서적과 악마에 관한 서적은 더 비싼 것이 자연스러운 추론.
이런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 듯 이어지자 올리버는 약간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긴커녕 오히려 정신이 더 맑아졌다.
이 문제에 관해 다시 한번 정리하지 않으면 오늘 편히 잠들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올리버는 생각을 정리할 겸 웃옷을 벗고 벽에 세워둔 쿼터스태프를 다시 들었다.
끝을 잡고 앞으로 쭉 뻗자 반대편 벽에 닿을 정도가 됐는데.
올리버는 그 상태로 캔트와 연습했을 때처럼 쿼터스태프를 당겨 휘두르기 시작했다.
붕- 붕- 공기 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처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올리버는 그런 일련의 동작을 기계적으로 계속 반복하며 앞으로 어찌할지 생각했다.
처음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목표.
그 목표란 두말할 것도 없이 블랙마켓이었다.
비록 우연히 들은 이야기에서 시작된 것이긴 했지만, 지금 올리버의 관심인 아름다운 빛, 흑마법, 악마에 관해 알기 위해서는 블랙마켓이 필수 경유지였다.
그 경유지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실력 있는 해결사가 돼 명성을 쌓고, 거물과 인맥을 형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 란다를 지배하는 자본가, 정치인 혹은 크라임 펌이라는 거물 범죄조직의 수장들과 같은..….
캔트가 말하길 올리버의 실력이면 수요는 충분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솔직히 그 말은 의문이었다.
왜냐면 올리버는 자신이 충분히 강한 건지 약한 건지 감을 못 잡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태까지 만난 흑마법사 중에선 올리버가 못 이긴 적은 없지만, 올리버는 그것으로 우쭐해지거나, 자신감을 얻기 힘들었다.
과거 전격 마법사라던가, 조셉 등 올리버를 죽일 뻔한 사람도 있었고,
특히, 말을 탄 노인을 마주한 순간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살점과 내장이 뒤엉킨 조잡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올리버는 그것과 싸워서 이길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두려움보다는 알 수 없는 친숙함이 더 강하긴 했지만, 만약, 그것이 인사가 아닌 공격을 했다면 올리버는 지금 이 자리 없을 게 거의 확실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본능이었지만, 그 어떠한 증거보다도 확실했다.
올리버가 살아남은 것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올리버는 가급적 조심하려고 했다. 캔트도 그러라고 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올리버는 죽기 싫었다.
죽는 것은 무서운 것이었고, 지금처럼 궁금한 것이 많은 와중에는 더더욱 무서운 것이었다.
캔트는 그런 무서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보를 수집하라고 조언했다.
그 덕분에 자신도 안 죽고 살아남은 거라고.
물론, 올리버는 그 조언을 무조건 따를 생각이었다.
중개사 포레스트의 조언대로 차근차근 의뢰를 해결해 경력을 쌓고, 신뢰를 얻어 이 바닥에 대해 알아갈 생각이었다.
조금 조급하긴 했지만, 캔트가 일하던 때와 달라졌다고 하니, 충분히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올리버는 이 바닥과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감으로써 블랙마켓에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다가갈 계획을 세웠다.
과거였다면 이리 깊게 생각할 수는 없었겠지만, 캔트가 늘 귀에 못 박히게 설명해준 덕분에 이제는 이게 필요한 것임을 인지했다.
위험을 최대한 줄여 목표에 다가간다는 것을.
‘뭐, 그렇다 해도 블랙마켓을 이용할만한 해결사가 되려면 필시 위험을 마주하겠지만.’
캔트의 자신감 없는 목소리가 갑자기 귓가에 울렸다.
그는 지난 3개월 동안 올리버를 열심히 가르쳐줬지만, 그럼에도 블랙마켓으로 가는 길은 자신이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늘 불안하게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올리버를 막고 싶다는 듯.
"......."
올리버는 휘두르던 쿼터스태프를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캔트가 못 내켜 하는 걸 떠올리는 것은 의미 없는 행위였다.
어차피 이 길은 올리버가 가야 할 길이었다.
궁금증은 잠시 참을 수 있어도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아…. 돈도 문제네.”
온몸에서 땀을 흘리는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쿼터스태프를 한쪽 벽에 세운 뒤 걸어놓은 겉옷 안쪽에서 먹보 주머니와 오늘 포레스트에게 받은 돈다발을 꺼냈다.
인피와 치아, 눈알, 탐욕의 감정으로 만들어진 먹보 주머니는 책상 위에서 눈을 떠 주변을 살펴봤다.
근처에 혹시 돈이나 귀금속 따위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
먹보 주머니가 자기 옆에 있는 돈다발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아무것도 없던 살덩어리에서 팔다리 같은 게 돋아나 뒤뚱뒤뚱 돈다발을 향해 달려갔다.
탁-
먹보 주머니가 지폐 다발을 집으려는 순간 올리버가 손으로 그사이를 막았다.
먹보 주머니가 올리버를 불만스럽게 올려다봤다.
올리버는 웃으며 부탁했다.
"먹보 주머니. 미안하지만, 제가 넣어둔 돈 전부 꺼내주시겠어요?”
먹보 주머니는 처음에는 팔을 휘두르며 화를 냈지만, 올리버가 말없이 바라보자 이내 겁을 집어먹으며 자기 입에 억지로 팔을 쑤셔 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꿰엑-! 꿰에에엑-!
마치 구토를 하듯 기괴한 소리를 내며 지폐 다발을 쏟아냈다.
지금 토해내는 돈은 거지 연합에게 받은 보수였는데, 올리버는 촤르륵 쏟아지는 돈다발을 하나씩 짚어 차분히 정리해 나갔다.
정리를 마친 돈은 포레스트에게서 받은 보수와 함께 놔뒀다.
다 합쳐 대략 팔천만 란다.
불과 얼마 전 광산 고아 노동자인 걸 고려하면 엄청난 액수였다.
올리버도 동의하는 바였고.
허나, 현재 올리버에게 있어 부족한 금액이었다.
블랙마켓을 이용하는 것도 있지만, 그 외에도 올리버가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도 있었기에.
가령, 송장인형을 만드는..….
인형사 글립에게서 얻은 서적에는 시체의 방부처리, 원격 조종, 송장인형으로의 개조 방법이 적힌 책이 소량 있었는데.
올리버는 이를 읽고 한번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물론, 사람 시체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동물의 사체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문제는 이 작업에도 상당한 돈이 필요했다는 점이었다.
글립이 꼼꼼한 성격이라 작업에 필요한 비용을 일일이 적어놓았는데,
작업장을 구하는 비용을 시작으로 방부제를 비롯한 각종 약물, 기계장치, 작업 도구, 감정, 생명력 등 비싸지 않은 것이 없었다.
대충 계산해도 송장인형을 만드는 초기 비용은 최소 수천만에서 수억 란다는 깨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작업장이 안정화되면 다소 비용이 줄어들겠지만, 뭐가 됐건 상당한 돈이 필요했는데, 그 말은 즉 올리버는 당장 송장인형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돈이 없어 못 한다니.
피터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왜 그토록 돈을 갈망하는지 알 거 같았다.
돈은 필수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말이다.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넘어 잠을 자고, 음식을 먹는 것까지 돈이 개입하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는 이 당연한 사실이 생애 처음으로 피부에 와 닿았다.
“……재밌네.”
올리버가 가만히 침묵하다 말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고아원, 광산, 흑마법사 조직, 거지패 등등 여태까지는 시키는 것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올리버가 원하든 원치 않든 계속 스스로 생각해야 했다.
어떻게 블랙마켓에 접근할 수 있는 해결사가 될지, 어떻게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지 등등.
솔직히 귀찮고 남에게 떠넘기고 싶은 일임을 부정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올리버는 지금까지와 색다른 기분을 맛봤다.
앞으로 어찌할지 스스로 생각하는 기분 말이다. 이건, 꽤 흥미로웠다.
"......."
올리버는 자신의 전 재산 중 이백만 란다만 소액 화폐로 챙긴 뒤 먹보 주머니에게 다시 말했다.
"나머지는 도로 다시 드세요.”
그 말에 허기로 괴로워하던 먹보 주머니는 바로 돈다발에 달려들어 그 위에 올라타 돈을 게걸스럽게 삼키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아주 게걸스러웠는데, 올리버는 그 모습을 말없이 보며 중얼거렸다.
“일단, 돈부터 벌어야겠네. 이렇게.”
***
다음 날 아침.
올리버는 평소대로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까지 지냈던 거지소굴에 비하면 궁전이나 다름없어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올리버는 세수하고, 옷을 정갈하게 입은 후 여관에서 제공하는 가벼운 아침 식사를 한 뒤 숙소를 나와 포레스트가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다행히 레스토랑은 아침 일찍부터 운영하고 있었는데, 알이라는 종업원이 언제나처럼 맞이해 줬다.
"데이브 씨….. 이른 아침에 어쩐 일이십니까?”
올리버는 종업원 알의 감정을 살펴봤다. 악의는 없지만 뭔가 숨기는 거 같았다.
서로 속을 알 수 없는 곳이라더니 캔트의 말이 딱 맞았다.
“안녕하십니까. 알 씨. 혹시 일이 또 있나해서 찾아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사장님에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편하게 알이라 부르셔도 됩니다. 자, 따라오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