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9화 (59/633)

< 59. 짐승 포획 (2) >

V구역에서 다시 T구역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고 있는 시간대였다.

낮에 비해 거리가 한산하였는데, 그렇다고 아주 조용한 것은 또 아니었다.

W구역, X구역과 달리 어느 정도 치안이 보장된 탓인지 골목이나 큰길에 크고 작은 주점이 문을 열어 손님들이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레스토랑 포레스트도 마찬가지였다.

달랑달랑.

올리버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처음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붉은 피부의 알이 나타나 맞이해 주셨다.

"안녕하십니까. 데이브 씨. 어서 오십시오. 또 뵈니 반갑습니다. 저기 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안내했고, 올리버도 구태여 묻지 않았다.

야만적인 시장 같으면서도 의외의 체계성과 세밀함을 갖췄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듯했다.

알의 말대로 레스토랑의 주인이자, 중개인인 포레스트는 정리를 마친 식당 한가운데 앉은 채 올리버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네. 다시 볼 기대는 했지만, 그게 오늘인지는 몰랐군.”

포레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올리버를 정중히 맞이해 줬다.

올리버 역시 그에 걸맞게 감사하다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아니, 정말 대단해서 하는 말이네. 잡는 건 살짝 기대했지만, 하루 만에 잡다니…. 조금 예상 밖이야.”

"그저 운이 좋았습니다.”

"요즘은 운도 실력이지. 식사는 하셨나?”

올리버가 생각해봤다. 자기가 식사를 했던가?

“….아뇨, 아직 안 했습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괜찮다면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허락해주겠나?”

올리버는 배가 고프지 않아 괜찮다고 거절하려고 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고 부탁한다고 대답했다.

포레스트는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호의를 베푸니 웬만한 건 그냥 받는 게 좋다고 캔트가 미리 조언했기 때문이다.

올리버가 수락하자마자 비교적 편한 복장의 직원들이 요리를 가져왔다.

소스를 뿌린 생선살 요리였다.

"생선 싫어하나?”

“아뇨…..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올리버는 포크와 나이프로 능숙하게 생선살을 잘라 먹었다.

포레스트도 비슷한 속도로 먹었는데, 그는 아닌 척하면서도 올리버를 관찰했다.

".…제법 잘 먹는군.”

"예?"

"아, 실례. 불쾌했다면 사과하겠네. 그저 자네처럼 품위 있게 먹는 친구는 오랜만에 봐서 나도 모르게 말했네.”

"그렇습니까?”

"그래, 대부분 제대로 된 음식 대신 술이나,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구워달라고 하거든. 캔트는 전자였고.”

"그렇군요.”

"그래…. 그래서 이렇게 예의 바르게 먹는 사람을 보니 신기하구만.”

"칭찬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캔트의 조언대로 짧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잘해가고 있었다.

포레스트는 그런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는데, 캔트와 약사, 제임스와 같이 사람을 꿰뚫는 눈빛이었다.

올리버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그저 평상시처럼 바라봤다.

포레스트는 이내 시선을 거두며 식사를 재개했다.

그냥 넘어간 건가?

올리버가 그리 생각하며 식사를 했다.

달그락. 달그락.

접시가 반쯤 비었을 때쯤, 포레스트는 식사를 멈추고 손짓해 종업원에게 명령했다.

잠시 후, 알이 고액화폐로 이뤄진 4200만 란다, 정확히는 3570만 란다를 가져왔다.

"포상금 3570만 란다. 들고 가기 편하게 고액권으로 묶었네. 원래 포상금은 4200만 란다지만, 그중 15퍼센트인 630만 란다는 내 수수료로 제했네. 질문 있나?”

"아뇨.”

올리버의 단답에 포레스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마치 기다리던 대답이 나오지 않은 사람과 같은 반응이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수수료가 조금 더 높은 건 신경 안 씁니다.”

"......."

"캔트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포레스트 님께서 다른 중개인들보다 수수료가 1.5배 더 높은 15퍼센트를 받지만, 그 정도 받을 자격은 있다고 말입니다.”

"....그 친구가 그랬나?”

"예. 매몰찬 구석이 있지만, 일에 관해서는 책임감이 강하시다고. 그리고 여러 서비스도 제공해 주신다고요. 그러니 믿고 거래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포레스트의 감정은 살짝 흔들렸다.

후회, 죄책감, 미안함, 몰이해, 그리움. 캔트와 뭔가 사연이 있는 거 같았는데, 그럼에도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정말 자기 일에 관해 강력한 의지가 있는 거 같았다.

포레스트는 양손 깍지를 끼고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좋은 말 감사하군…..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나?”

"예."

올리버도 식사를 멈추며 집중하는 티를 냈다.

"우선 정식으로 테스트를 통과해서 축하한다고 말하겠네. 약속했던 대로 자네의 중개인이 되어 주겠네. 알?”

포레스트의 부름에 알이란 종업원이 서류를 가져왔다.

"형식적인 절차이긴 하지만 작성해주게. 간단한 고용계약서일세.”

"한번 읽어봐도 됩니까?”

"물론, 당연하지. 기본적인 수수료와 그대가 지켜야 할 조항, 어길 시의 페널티, 내가 그대에게 제공해야 하는 의무와 서비스가 적혀 있네.”

올리버는 그 말을 들으며 눈으로는 서류를 쭉 읽었다.

책을 많이 읽은 덕분이었는지 물 흐르듯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다.

계약서에 문제가 되는 내용은 없었다.

포레스트의 말대로 수수료와 임무 중 발생하는 책임 분배, 서로 간에 지켜야 하는 조항이 적혀 있었다.

캔트가 과거 한번 설명해준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무 깐깐해 복잡하고, 정 없어 보이는 구석도 있었지만, 그만큼 책임 소재를 확실히 할 수 있어 오히려 깔끔하게 느껴졌다.

마치, 포레스트의 성격을 대변하듯 말이다.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뭔가?”

올리버가 하단 부분에 작성된 보호 조항을 가리켰다.

"이 부분은 뭡니까?”

"보는 그대로네. 나 같은 중개인은 란다 전역에 있네. 정치와 행정 구역인 A, B, C 구역에도. 우린 하나의 조합에 소속되어 서로 견제하고 도와주지.”

"예, 들었습니다.”

"다행이군. 그렇다면 우리 중개인 조합이 란다의 경찰국에 로비한다는 것도 알겠군. 덕분에 우리와 거래하는 해결사들은 약간의 혜택을 봐. 가령, 일정 이하의 범죄는 눈감아 주지. 물론, 이슈화가 되면 안 되지만, 일정 부분은 눈감아줘.”

"그렇군요.”

"그리고 자네와 같은 흑마법사도 마찬가지지. 흑마법은 인간을 재료로 쓰는 존재. 사실, 절차상으로는 흑마법사인 것만으로 구속할 수 있어.”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셉의 서재와 캔트를 통해 이것은 이미 파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흑마법사들은 아예 음지에 숨어버리거나, 가짜 신분을 통해 자신을 감췄다.

물론, 경찰국에서 잡으려고 한다면 상당수 잡을 수 있겠지만, 그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위험, 소란 때문에 그러지 않을 뿐이었다.

마치, 바퀴벌레가 보이지 않으면 안 잡고, 보이면 때려잡아 죽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 할 수 있었다.

"이해했습니다."

"그래, 하지만 나와 일하는 동안에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별문제는 없을 거야. 일하는 과정에 사고를 쳐도 일정 수준을 넘어가지 않으면 내가 어느 정도 보호해 줄 거고.”

"이해했습니다. 그럼, 이 항목에 있는 일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겁니까?”

올리버가 다시 가리킨 항목에는 악마숭배, 불법 인체 실험 등이 있었다.

"그래, 그건 절대 하면 안 되는 항목으로 하나라도 나오면 나와의 계약은 전부 자동 파기일세. 그 외에도 나를 통하지 않은 임무 중 발생하는 범죄는 보호해주지 않으며, 일상에서의 다른 소란도 마찬가지네. 이해했나?”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즉 포레스트의 보호를 받는 것은 얌전히 지낼 때와 그의 임무를 수행할 때뿐이었다.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당장 다른 일 할 계획이 없었고, 딱히 소란을 일으킬 생각도 없었으니.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인체 실험 항목은 약간 걸렸다. 혹시, 개나 짐승의 사체도 포함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인형사 글립에게서 얻은 서적에는 시체를 방부처리 하는 방법과 개조하는 방법, 원거리에서도 미세 조종할 수 있는 법이 적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호기심이 가는 내용인지라 여유만 된다면 바로 실험해보고 싶었다.

아쉬운 대로 짐승의 사체로라도.…. 물론 할 수만 있다면 사람의 시체로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서류에 적힌 내용이 신경 쓰였다.

"문제 있나?”

"아뇨, 없습니다.”

올리버는 지금 당장 묻기엔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질문을 미뤘다.

좀 더 경험을 쌓고 이름값을 높이면 개인적인 부탁도 가능하다고 하니, 그때 가서 물어봐도 괜찮을 거 같았다.

포레스트는 석연치 않은 눈치였지만, 굳이 캐묻지 않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어째 이야기하다 보니 너무 거창하게 했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게. 자네와 난 필요에 의해 계약한 거고, 그에 따라 서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가 있다는 것뿐이니. 단지 그뿐이야.”

"예, 이해했습니다.”

“.…더 질문할 건 없나?”

올리버는 블랙마켓에 관해 바로 묻고 싶었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다.

바로 블랙마켓에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올리버의 생각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일단 이곳에서 경험을 쌓고, 이 바닥의 생리를 익힌 다음, 어느 정도의 신용과 이름값이 생겼을 때 물어보는 게 순서일 듯했다.

아마, 블랙마켓을 언급한다면 이유를 물을 텐데. 이미 수차례 연습한 대로 흑마법에 대한 서적을 찾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생각이었다.

좋아, 완벽했다.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은 아쉽지만, 그 와중에도 분명 배울 것은 있을 터.

올리버는 그렇게 의지를 다졌다.

"없습니다.”

“좋아….. 이야기 끝이군. 앞으로 잘해보지.”

"예, 감사합니다. 아, 맞다…..”

올리버가 보수로 받은 지폐 다발 중 열 장을 꺼냈다.

10만 란다권 열 장으로, 올리버는 이걸 5만 란다와 1만 란다권으로 바꿔달라 부탁했다.

5만까지는 그렇다 쳐도 10만 란다권은 너무 고액화폐라 눈에 띄기 때문이었다.

"바꿔 달라고?”

"예, 포레스트 님께서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신다고 캔트 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럼, 환전 수수료는 10퍼센트인 것도 들었겠군.”

"예, 상관없습니다.”

"알았네 알 ’’

포레스트가 10만 란다 열 장을 들어 알에게 건넸고, 알은 잠시 사무실로 가더니, 각각 1만 란다, 5만 란다권으로 반씩 바꿔 가져왔다.

그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올리버에게 건넸는데, 올리버 역시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돈을 받았다.

볼일이 끝난 올리버는 남은 음식을 크게 썰어 먹은 다음 냅킨으로 입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으시다면 이만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고생했네.”

포레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올리버에게 손을 내밀었다.

올리버는 그 손을 맞잡은 뒤 조용히 물러났다.

마주친 종업원들에게도 일일이 인사하며.

***

"어떻게 생각하나?”

올리버가 떠난 후 남게 된 포레스트가 앉은 자리에서 생선 요리를 마저 먹으며 종업원인 알에게 물었다.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처럼 약간 순진한 구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괜찮은 분 같습니다. 말이 통하고, 괴팍한 구석도 없고. 마텔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확실히 실력도 있는 거 같습니다.”

"그게 문제야. 흑마법사가 실력도 좋은 데 성격도 좋은 경우를 난 못 봤거든. 마법사에 반(反)해서 태어난 존재지만, 근본적으로는 마법사와 비슷하지.”

알이 웃으며 조언했다.

"다른 흑마법사님들께서 썩 좋아하실만한 이야기는 아니군요.”

"그런가? 하지만 사실이지.”

다시 달그락달그락 식기 소리가 났다.

"그보다 어찌하실 겁니까? 사장님. 마텔에서 데이브 씨의 정보를 공유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수락하실 겁니까?”

포레스트는 침묵했다.

생명 마법학파가 세운 마텔 생명 연구소는 자본가의 돈과 마법사의 기술이 합쳐져 세워진 거대 연구 집단.

수많은 특허권을 가지고, 의료분야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가진 거대한 회사였다.

공식적인 이미지 역시 좋았지만, 실상은 마법 우월주의와 우생학에 심취한 미치광이들.

소문에 따르면 이번에 도망친 키메라 역시 사실은 놓친 게 아니라 일부러 풀어놓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자신들이 개발하는 생체 병기가 단독으로 얼마나 활약하는지 데이터를 뽑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카더라 수준이긴 했지만, 마텔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오늘 처음 들어온 스무 살 남짓 애송이 흑마법사에게 관심을 가진 거였다.

“..…일단 거절하게.”

포레스트의 대답에 종업원 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말하는 어감으로 봤을 때 일단 찔러보는 거야. 굳이 그런 것에 반응해줄 필요는 없지. 일단, 지켜보자고.”

"예, 알겠습니다.”

알은 그리 대답하곤 올리버가 깨끗이 비운 접시를 들고 사라졌다.

홀에는 포레스트만이 홀로 남았는데, 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째 한동안 심심하지 않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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