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짐승 포획 (1) >
V구역 42거리.
포레스트의 말대로 낙후된 곳이었다.
언덕을 중심으로 조잡한 벽돌집과 판잣집이 빽빽하게 세워졌는데, 중간중간 여드름처럼 불규칙적으로 있는 쓰레기장도 보였다.
거리의 외관만 보면 X, W 구역과 비슷.
그럼에도 다른 점이라면 숨은 채 살기와 교활함을 풍기는 이들이 훨씬 적다는 거였다.
오히려 초조해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비유하자면 포식자와 피식자라고 할까?
“마텔 관계자이십니까?”
올리버가 동네 입구에 앉아있는 한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는 비교적 평범한 차림을 했지만, 그렇다 해도 이곳 사람들과 많이 달라 보였다.
옷이 깨끗했으며, 자세 역시 구부정하지 않고 발랐는데, 특히 가장 이질적인 것은 감정 상태였다.
키메라 탓인지는 몰라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어느 정도 가진 데 반해, 이 남자는 오직 귀찮음, 짜증과 같은 여유로운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 동네의 걱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타인처럼.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누구….?”
"데이브라고 합니다. 포레스트 씨가 보내서 왔습니다.”
포레스트가 시키는 대로 말하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마텔 연구소에 고용된 관계자로, 포레스트는 도착하자마자 이들부터 찾아가라고 했다.
우선 첫 번째는 올리버가 일하러 왔다는 걸 정식으로 알리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필요한 물품을 얻기 위해서라고 했다.
"샘플 얻을 수 있습니까?”
샘플. 그 말에 남자는 통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털이었다.
"주기는 주는데 별 소용 없을 거요. 이미, 댁처럼 털 가지고 추격한 사람 있었지만, 허탕 치거나, 죽었으니.”
"그렇군요.”
올리버가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캔트가 일부러 짧게만 대답하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말이 길어지면 괜한 소리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고.
해결사란 얼핏 용기가 필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라 했다.
두려움이 많아야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서로의 속을 알 수가 없으니.
그리고 그 말은 썩 틀리지 않은 거 같았다.
왜냐면 눈앞의 이 남자는 키메라가 잡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딱히 감정의 동요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키메라를 빨리 잡지 못하면 분명 곤란하다고 한 거 같은데.
그저 고용된 사람이라 이런 걸까?
"왜 그러시오?”
"아뇨, 아닙니다.”
“….자, 이거 받아 가시오.”
직원이 만년필처럼 생긴 막대기를 건넸다. 위에는 새빨간 단추가 있었다.
"이 단추를 누르면 위치를 알 수 있소. 만약, 포획하면 들고 오지 말고, 이걸 누르시오. 그럼, 우리가 수거하러 가겠소."
"예, 알겠습니다.”
올리버가 순순히 대답하곤 챙겨 가는데, 가는 도중 그가 올리버를 불러세우며 물었다.
"이 일 초짜인 것 같아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괜찮겠소? 이미 대부분 포기해서 당신 혼잔데. 괜히 죽을 수 있소."
“....아, 예,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예의 바르게 대답하며 가던 길을 갔다.
남자는 그런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
동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르막길이 나왔다.
길이 상당히 불친절했는데, 파손된 곳이 많아 험하기도 험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큰길 외에도 건물 사이를 통한 샛길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일종의 미로나 다름없어 올리버와 같은 초행자는 쉬이 길을 잃을 거 같았다. 아무래도 캔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해결사 일에서 힘은 필수지만, 힘만 있어서는 또 안 된다고.
최소한 올리버가 목표한 바를 이루려면 그 외 다양한 재주가 필요했다.
"음…. 연습개념으로 가벼운 일부터…..”
올리버는 그리 중얼거리며 아까 전 받아온 샘플을 꺼냈다.
키메라의 털.
아무리 길이 복잡해도 이것만 있으면 추격할 수 있었다.
센시브 노즈를 사용하면 수많은 냄새의 갈래 중 키메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망설여지는 건 직접 사용하기가 좀 그랬다는 거였다.
과거 하모니카를 찾을 때 질병 계열 흑마법이 몸에 부담을 준다는 것을 실감하였기에.
솔직히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수많은 냄새를 맡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고, 자칫 두통 때문에 여차하면 행동에 제약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올리버는 다른 방법을 한 번 써보기로 했다.
"미니언.”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미니언을 만든 다음. 반대 손으로 센시브 노즈를 만들어 미니언에게 부여했다.
그러자 고기 경단처럼 생긴 미니언에게 사람 코 같은 게 툭 하고 나타나더니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이 냄새를 찾아주세요.”
올리버가 키메라의 털을 꺼내며 부탁했다.
미니언은 키메라의 털 냄새를 맡더니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갑자기 한 쪽 방향을 향해 쭉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시험관에서 추출한 감정을 손에 머금은 채 미니언을 따라갔다.
터벅터벅터벅.
빈민가라 그런지 주변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는데, 눈에 신경을 집중하니 꼭 그런 것만이 아닌 걸 알았다.
건물 안과 주변 거리 사람들이 일부러 올리버를 피하는 거였다.
마치, 위험한 일에 휩쓸리기 싫은 사람들처럼, 두려움과 성가심을 가진 채 말이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센시브 노즈를 부여한 미니언은 올리버의 부탁대로 냄새를 추격했지만,
정작 키메라를 찾지 못하고 그의 대변이나, 털 쪼가리만 찾을 뿐이었다.
오히려 그사이 올리버는 어딘지도 모를 정도로 빈민촌 깊숙이 들어왔는데,
이쯤에 이르자 한가지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유인당한 건가?”
만약,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이를 부정했을 것이다.
키메라가 지능이 높고 교활하다고 할지언정 그래도 짐승.
어찌 짐승이 사람을 유인하겠냐고 말이다.
단순한 논리를 넘어 자존심 문제도 있었는데, 자존심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올리버는 곧바로 이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냄새를 추격해도 계속해 미끼만 나오고, 본체는 보이지가 않았으니.
올리버는 미니언을 잠시 멈추고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눈에 신경을 집중해 광범위한 탐색을 할까는 생각을 했다.
사람과 짐승의 감정은 달라 분명 수색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 허나, 동시에 조금 망설여졌다.
캔트는 할 수 있다면 다양한 재주를 키우라고 조언했다.
또 올리버가 생각하기에도 그게 맞는 거 같고.
바로 편한 방법을 쓸지 아니면 다른 탐색 방법을 써 경험을 키울지 고민했는데, 그때, 짐승 소리가 들렸다.
"캐캥-!”
올리버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바로 뛰어갔다.
얼마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곳에는 웬 삐쩍 마른 개가 정체 모를 가시에 찔려 죽어가고 있었다.
시뻘건 피를 흘린 채.
마치 올리버를 이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죽인 것 같았는데, 그것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카흐흐흥——!
짐승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울음소리와 함께 기척이 느껴졌다.
올리버는 고개를 획 돌려 그것을 봤다.
흑백 사진으로 보았던 괴짐승 키메라를.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컸는데, 등에는 닭 날개처럼 작은 날개가, 옆구리에는 위협적인 가시가 달려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옆구리에 핏줄이 돋으며 가시를 쏠려는 모습이 보였다.
아주 흥미로웠다.
짐승이 사람을 오히려 유인하고 기습하다니.
이게 마법의 힘인가 싶었다.
“캬으으응.......”
"응?"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쏠 기세였던 사나운 짐승이 올리버와 눈이 마주치자 이상하게도 겁을 집어먹은 거였다.
눈은 커지고, 귀는 젖히며, 꼬리를 말며 몸을 웅크렸는데, 이내 전의가 꺾이고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딱- 딱-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쿼터스태프를 바닥에 두들겨 바인 쉐도우를 사용했다.
이대로 놓치면 포획하기 힘들 거 같아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키메라는 다른 짐승보다도 감이 몇 배나 좋은지 그림자 촉수가 튀어나오자마자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성으로 이리저리 도망쳤다.
전부 아슬아슬 피했는데, 아예, 주변의 지형을 디딤발 삼아 건물 위로 도망치려고까지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지간히 올리버가 싫은 모양이었다.
다행인 점은 그것이 올리버에게 득으로 작용했다는 것.
딱- 딱- [블랙 큐브]
올리버는 검은색 장막을 여섯 장 만들었다.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대로,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검은 장막은 각 테두리끼리 연결돼 정육각형의 거대한 감옥이 되었다.
캬흥.…!
키메라는 당황하며 맹금류의 발톱과 이빨, 심지어 옆구리의 가시를 쏴 저항했는데, 매우 난폭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올리버는 블랙 큐브를 자신의 앞으로 가져온 다음 키메라를 살펴봤다.
공포, 공포, 공포.
감정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는데, 마치 자연재해를 마주한 것 같았다.
이대로면 날뛰다간 다칠 거 같았기에 올리버는 바로 행동을 취했다.
[딥 슬립]
올리버는 감정을 추출해 캔트가 준 쿼터스태프 끝에 딥 슬립을 부과한 다음 키메라를 톡 하고 건드렸다.
위해를 가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을 거 같아서 말이다.
예상과 달리 키메라는 바로 잠들지 않고 저항하다가 이내 스르륵 잠이 들었다.
올리버는 키메라가 확실히 잠든 걸 세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야 아까 전 받은 만년필 같은 기기를 꺼내 빨간 버튼을 눌렀다.
입구에서 만난 남자의 말이 맞다면 곧 사람이 올 터.
이제 올리버가 할 일은 사람들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음."
올리버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잠든 키메라를 살펴봤다.
잡는 것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그와 별개로 눈앞의 이 생물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여러 동물이 짜깁기한 처음 보는 형태의 동물.
등에 달린 조잡한 날개가 실패작임을 알려주는 것 같지만, 올리버의 눈에는 충분한 가능성이 보였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올리버를 유인하고 기습한 거였다.
마법이라는 걸로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는 건가 싶었는데, 그때, 올리버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희미해서 확실하진 않았지만.
“이건….?”
올리버가 키메라의 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까 전에 만났던 사람이 보였다.
비록, 얼굴을 가리고 있긴 했지만, 감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는 키메라를 만지려는 올리버를 보며 경계의 빛을 보였는데, 올리버는 바로 손을 떼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여기 상처가 생겼나 싶어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남자는 올리버를 가만히 바라봤고, 올리버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캔트의 가르침이었다. 신뢰를 주되 만만히 보이지는 마라.
다행히 그 조언이 통했는지, 남자는 먼저 올리버의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어디 말이오?”
“여기…..”
"음…. 아, 이 정도는 괜찮소.”
"다행이네요.”
남자는 올리버를 다시 올려다보곤 같이 따라온 동료들에게 손짓해 명령했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거대한 자루를 꺼내 키메라를 안에 넣었는데, 올리버는 자루에 마력이 흐르는 것 볼 수 있었다.
"왜 그러시죠?”
"제 일은 이게 끝인가요?”
"예. 이제부터는 우리 일이오…. 포레스트 씨께서 보내셨다고?”
"예."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을 꺼내 적었다.
"음, 음.…. 뭐 그쪽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보상금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드릴 거요. 어쩌면 중개인이 바로 줄 수도 있고.”
"감사합니다.”
"그보다 대단하오. 다른 해결사들은 허탕 치거나, 실려서 나가던데…. 덕분에 난 요 앞에 2주 동안 대기하고 있었고. 사실 이 바닥에 오래 있었던 거요?”
"아뇨. 그저 운이 좋았습니다.”
"아…. 운이 좋으셨다고?”
"예."
올리버가 적당히 맞장구치며 대답을 최소로 했다.
악의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눈앞의 남자는 올리버를 계속 가늠하며 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기에.
“…괜찮으시다면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아, 물론.”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올리버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지났다. 그때, 남자가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수고하셨소, 데이브 씨.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