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해결사 (1) >
올리버가 돌아왔을 때 거지 연합은 한창 파티 중이었다.
수십 명이나 되는 거지들은 작게는 옷가지, 크게는 시계와 귀중품을 두고 싸웠다.
허나, 그것도 잠시. 올리버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소란은 거짓말처럼 잦아들고 모두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아…. 흑마법사님.”
몇몇 거지들이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고는 길을 열었다.
올리버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아주곤 앞으로 쭉 나아갔다.
통로 끝에 다다르자 캔트를 비롯한 거지패 대가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기어이 두더지의 비밀 금고를 찾아냈는지, 적잖은 양의 돈다발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좋아. 다들 이 정도면 문제없지?”
"어."
"나도.”
"이 맛에 두더지 놈이 그 지랄을 떨었던 거구만?”
"그러..…. 응? 흑마법사님!”
우락부락하게 생긴 거지, 작고 교활하게 생긴 거지, 인상의 좋은 거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올리버에게 인사했다.
그들은 올리버에 대한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하긴, 머릿수도 장비도 두더지패에 밀렸는데, 이리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올리버의 존재 덕분이었으니.
만약 올리버가 없었다면 통로 입구에서 개 늙은이와 총으로 무장한 거지들에게 당해 큰 피해를 입고 도망쳤을 터였다.
그럼, 다음 날 두더지패에게 역습당해 모두 끝장났을 테고.
올리버 덕분에 별 피해 없이 넘어가 그렇지, 그들은 한번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캔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두더지의 뒤를 봐주던 흑마법사는 처리했나?”
"예."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흑마법사에게서 노획한 먹보 주머니를 증거로 들어 보였다.
인피와 치아, 탐욕의 감정으로 만든 흑마법 아이템.
충분한 증거가 됐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했다.
그러던 중 캔트가 올리버의 뒤를 보곤 질문했다.
"수고했네. 그런데 뒤에 따라온 사람들은.…?"
올리버는 뒤를 봤다.
"아.… 흑마법사에게 붙잡혀 있던 사람들입니다.”
“붙잡혀?”
"예, 어디 팔려 가기로 했다더군요.”
"그렇군. 근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흑마법사님! 두더지의 뒤를 봐주고 있다던 흑마법사를 쓰러뜨리셨다뇨….. 아! 여기 이거 받으십시오.”
누군가 끼어들었다. W구역 2번 거리의 빕이었다.
그는 명랑한 손짓으로 한 쪽에 쌓인 돈다발을 가리켰다.
"흑마법사님 몫입니다.”
올리버의 몫이라….. 한순간 올리버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애당초 도와준 이유는 캔트 하나뿐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굳이 주는 걸 거절하진 않았다. 어느 정도의 돈은 필요했으니까.
"감사합니다.”
"아뇨, 아뇨. 감사라뇨…. 그런데 혹시, 다른 일도 하십니까?”
빕이 바로 본심을 꺼냈다.
"저희와 일당 문제로 싸우는 포주가 있는데, 거 괜찮으시다면 얼굴을 좀 비춰주실 수 있으십니까? 흑마법사님이 등장한 것만으로…."
관심이 없는 올리버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눈치 빠른 빕이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다들 올리버의 묘하게 달라진 태도에 바짝 긴장했다.
"저기…. 혹시 괜찮으시면 캔트 님과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예? 아…. 예! 예! 이, 이봐. 다들 물러나자고.”
긴장하고 있던 대가리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기쁘게 자리를 피했다.
덕분에 전 두더지의 소굴에는 올리버와 캔트 그리고 글립에게서 구출한 사람들만 남게 됐다.
“캔트 님.”
"그래, 왜 그러나?”
"일단, 먼저 여쭤볼 게 있는데, 이분들…. 거두어주시겠습니까?”
"응?"
흑마법사에게 붙잡혀 있던 사람들인데, 갈 데가 없다고 해서요. 혹시 맡아주실 생각 있으십니까?”
캔트의 표정은 약간 어두워졌다.
여자, 아이 다 합쳐 스무 명 가까이 됐으니 충분히 그럴만했다.
결코, 적잖은 수.
두더지를 쓰러뜨리고 노획한 돈이 있다 해도 부담이었다.
“하아….. 왜 내게 데려왔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철창에 갇혀 있었는데, 내버려 두고 오면 다 굶어 죽을 거 같아서요. 검은손이라는 데 넘기려고 했다던데.…. 도와줄 것 같은 분은 캔트 님뿐이라. 아니면 그냥 내보낼까요?”
올리버의 발언에 캔트는 고뇌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맡지.”
대답을 듣자 올리버를 따라온 거지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캔트에게서 거절당하면 거리로 내몰려 굶어 죽어야 했으니.
올리버는 그런 그들에게 잠시 나가서 기다려달라고 한 뒤, 다시 캔트를 불렀다.
“캔트 님.”
"또, 다른 할 말이 있나?”
"예, 조금. 여쭤볼 것이 있어…..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 말해보게.”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두건을 벗으며 인사했다.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았는지, 캔트가 긴장하며 물었다.
"그래, 할 말이 뭔가?”
"혹시…. 검은손이란 조직에 대해 아시는 대로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검은손?"
"예, 갑자기 관심이 가서요. 조금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흑마법사가 주를 이루는 뒷세계의 조직이야. 세력의 한 축을 이루는.”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금단의 지식을 다루며, 모든 흑마법사가 꿈꾸는 곳이라는 것도 들었고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없을까요?”
저의를 알 수 없는 올리버의 물음. 허나, 평소와 달리 압박감이 있었다.
“….자세한 건 몰라. 나도 그저 주워들은 이야기만 있을 뿐. 그래도 괜찮나?”
"예, 물론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강력한 흑마법사들이 모여 탄생한 조직이라고 알고 있어. 이 바닥에서는 반은 전설 같은 존재지.”
“그런가요?”
"어. 필거렛, 생명의 영약, 용병, 불법시술, 범죄 조직 후원, 악마숭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동하지만, 실체가 드러난 적이 없거든. 그럼에도 모두 두려워하지.”
"어째서죠?”
"소문이긴 하지만 검은손에는 고위험등급 범죄자들이 다수 가입되어 있거든.”
"고위험등급 범죄자?”
"전 세계에서 악으로 규정하는 최악의 범죄자들. 범죄자라고 칭한 건 그 이상의 단어가 없기 때문이야. 재판 없이 살해할 수 있고, 엄청난 현상금을 받을 수도 있지. 세계의 적이라고 보면 돼.”
“오….. 누구누구가 있죠?”
"영생의 퍼펫, 유괴범 피리 부는 사나이, 영원한 아이 팬, 인육 요리사 같은…. 참고로 이들 역시 뒷세계에서 반은 전설 같은 존재야. 망태기 할아버지나 마귀할멈처럼.”
"음.…. 그렇군요.”
"미안하지만 왜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 건지 물어봐도 되나? 약간 겁나거든.”
"아,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두더지 뒤를 봐주던 흑마법사가 제게 제안했거든요.”
"무슨 제안?”
"자기랑 손잡고 같이 검은손에 들어가자고요. 그렇게 해주면 제가 원하는 걸 제공해 주겠다 하더군요."
캔트의 표정은 침착했지만, 속은 아니었다. 그는 혼란스러웠고, 동시에 두려워했다.
“….대답은?”
"거절했습니다.”
"하아…. 실례되는 질문 해서 미안하네.”
"아뇨. 괜찮습니다. 사실 수락할까 했거든요.”
"......."
"제가 궁금한 게 많은데, 거기 가입하면 쉽게 배울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다루는 지식도 많고, 블랙마켓도 이용할 수 있다고."
".…그런데 왜 거절했나?”
"음….. 좀 그래서요? 조직 같은 데 소속되는 것도 영 안 내키기도 하고…. 혹시 블랙마켓에 대해서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캔트가 이번에도 순순히 대답해줬다.
"블랙 마켓….. 검은손과 같은 반쯤 전설 같은 곳이지.”
"그런가요?”
"최소한 나한테는….. 책, 약, 동물, 식물, 마석, 정보, 사람, 인력 등등 구할 수 없는 거 빼고는 전부 다 구할 수 있는 곳이지."
"어떻게 이용할 수 있죠?”
"미안하지만, 일반인은 이용할 수 없어. 어설프게 찾으려고 했다간 그림자도 못 보고,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지.”
“아….. 정말요? 그러면 안 되는데. 혹시, 이용하는 방법은 아시나요?”
".…확실하진 않지만 하나 알고는 있지.”
"오, 알려주시겠습니까?”
"그전에 왜 블랙 마켓을 이용하려고 하는 건지 대답해주게.”
"음…. 알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뭘 알고 싶지?”
"흑마법이나, 악마에 관해서요. 아름다운 감정에 대해서도요.”
"아름다운 감정?”
캔트의 혼란의 빛을 띠며 다시 요동쳤다.
그와 함께 공포도 스멀스멀 올라왔는데, 그럼에도 그는 침착함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최대한 올리버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하아……. 흑마법사니까, 흑마법에 관심 가지는 건 그렇다 쳐도, 악마는 왜? 악마가 어떤 존재인지 아나?”
"글쎄요? 흑마법사와 거래하는 존재?”
"맞아…. 하지만 그 대가로 더 많은 걸 요구하지. 인간계를 위협하기 위해 제물을 요구하고, 범죄를 부추기며, 더 심할 경우 자신을 소환하라 명하지.”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악마는 인간계를 위협하죠?”
"...? 그거야 악마니까. 신에게 반하고, 인간을 질투 증오하는 존재.”
“……그게 끝인가요? 악마니까?”
"그 외에 더 있어야 하나?”
“전….. 납득이 안 가는데요? 악마라서 인간계를 위협한다니. 그게 어떻게 이유가 될 수 있습니까?"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불은 모든 걸 태우는 것과 같은 이치지. 그 외 무슨 이유가 필요하나?”
"그걸 알고 싶어서 블랙마켓을 이용하고 싶은 겁니다.”
“…그걸 왜 알고 싶나?”
"궁금하니까요? 그래서 알고 싶습니다.”
캔트는 멍한 표정으로 올리버를 봤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올리버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질적인 뭔가로 바라보는.
허나, 혐오감이나 두려움보다는 궁금증이 더 컸다.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나?”
"예, 물론입니다."
"내가 은퇴한 지 얼마 안 되긴 하지만, 자네만큼 뛰어난 흑마법사는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네.”
"그런가요?”
"그래,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이야…. 그런데 왜 날 따라왔지? 아니, 그전에 자네에게 시비를 걸던 녀석들을 왜 가만히 내버려둔 거지? 자네 힘이면 순식간에 끝장낼 수 있었을 텐데…."
".....딱히 사람을 죽이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
"필요하면 해야겠지만. 그냥 죽이는 건 좀 별로…..”
".…그럼, 날 왜 따라왔나?”
"궁금해서요. 절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도와줘서…. 그 이유를 알고 싶어 따라왔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해소했고요."
“……자넨 정말 이상하구만.”
"그런가요? 하긴, 그분도 제가 망가졌다고 했으니까요.”
"그분?”
"요안나라고 옛날에 만난 분이요. 절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어긋나서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말하길 제가 망가졌다더군요. 저더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어울리라고 했는데, 그래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캔트의 감정에서 죄악감이 올라왔다. 올리버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사과하지. 도움을 받았는데. 내가 실수했어.”
"예? 무슨….?”
"자넨 이상한 게 아니야. 망가진 것도.…. 그냥 다른 거지.”
“….전 딱히 상관없습니다.”
"내가 상관있어….. 미안하네, 함부로 말해서.”
“..…괜찮습니다.”
"흐음…. 아까 전 질문에 대답하지. 해결사가 되는 거야.”
"예?"
"블랙마켓을 이용하는 법. 해결사가 되는 거라고. 엄청난 해결사가.”
"엄청난 해결사라면?”
"단순한 뒷골목 갱이 아닌, 자본가, 공장주, 정치인, 크라임 펌의 수장들이 찾는 그런 해결사. 그런 자들일수록 뛰어난 해결사를 찾지. 그럼, 이를 통한 인맥과 명성을 이용해 블랙마켓을 이용할 수 있고. 하지만 확실한 건 아니야. 난 그런 수준까지는 못 갔거든.”
“음…..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해결사는 어떻게 할 수 있죠?”
"내가 중개인을 소개해주지. 전에 일했던 곳인데, 첫 출발로는 나쁘지 않을 거야. 괜찮은 사람이거든.”
"아, 감사합니다.”
"단, 조건이 있네.”
"조건요?”
"그래, 몇 주간 내게서 교육 좀 받게.”
"교육이라뇨?”
"그쪽 세계로 갈 거면 최소한의 상식과 태도는 알고 가야지. 안 그랬다간 이용당하거나, 배신당해 죽기 십상이야. 자네 실력은 알지만.… 실력만으로도 안심할 수 없는 바닥이기도 해. 할 수 있는 한 내 모든 걸 가르쳐주지… 쿼터스태프도. 재주는 많을수록 좋거든. 어떻나?”
올리버는 잠시 생각했다. 나쁜 이야기 같지 않았다. 글립의 송장인형들에게 잠시 애먹은 것을 생각하니 쿼터스태프를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예,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는 내가 해야지. 두더지와 흑마법사를 처리해 줬으니.”
"뭐, 그건 별로…、그럼, 바로 가르쳐 줄 수 있습니까?”
"잠시 기다려 줄 수 있나? 자넬 바로 도와주고 싶긴 하지만, 할 게 많아서. 자네가 데려온 사람들 처우도 생각해봐야 하고.”
"아, 맞다. 캔트 님.”
올리버가 캔트를 부르며 먹보 주머니를 하나 건넸다.
"응? 이건 뭔가?”
"흑마법사 금고에 있던 돈입니다."
"돈?”
"예. 꽤 되던데, 캔트 님 가지세요.”
캔트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게 무슨….?”
"전 돈이 생겼으니까. 이 돈은 필요 없을 거 같아서요.”
올리버가 거지패에게서 받은 돈다발을 가리켰다.
몇 달은 지낼 수 있는 액수. 허나, 인형사에게서 빼앗은 돈에 비하면 푼돈이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필요 없으신가요?”
"그건 아니지만, 이 돈은 자네 돈이잖나? 혼자서 얻은 돈.”
"전 당장은 필요 없어서…. 캔트 님이 쓰세요.”
캔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올리버를 바라봤다.
"왜 이러는 건가? 돈에 관심 없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자네 돈이야.”
"보고 싶거든요.”
“뭐?”
“캔트 님이 그 돈으로 뭘 할 건지 보고 싶거든요. 그러니 그냥 받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