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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55화 (55/633)

< 55. 인형사 (2) >

열린 문 사이로 푸른 달빛이 스며들며 창고 내부 모습이 드러났다.

천장에 매달린 시체와 한쪽에 마련된 수술대.

그 옆에 있는 수술 도구와 공구 등.

창고라기보다는 일종의 실험실, 작업실에 적합해 보이는 광경이었다.

들리는 거라고는 후욱- 후욱-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뿐.

"너..…. 도대체 누구야?”

올리버가 그를 바라봤다.

넝마처럼 이곳저곳을 꿰맨 좀비에게 둘러싸인 남자를.

올리버는 그가 인형사 글립인 걸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

인사가 잘못됐는지, 그는 이질감, 당혹감 등을 느끼며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올리버 역시 그를 관찰했는데, 왜 인형을 통해 대화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기형적일 정도로 뚱뚱했는데, 빵 반죽처럼 살이 차오르다 못해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확실히 위험한 전투 현장에서는 어울리지 않은 체형이었다. 뭐, 깡마른 올리버도 비슷하긴 했지만.

올리버는 인형사 글립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서서 그를 바라봤고, 다행히 그는 입을 열어줬다.

"너…. 너, 도대체 뭐냐?”

“…? 올리버입니다. 아까 전 설명해 드렸지 않습니까?”

"....스승이 누구야?”

"예? 그것도 아까-”

“-거짓말하지 마!”

인형사가 축 늘어진 볼살이 흔들릴 정도로 소리쳤다.

"란다에서 조셉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어. 척 봐도 얼마 안 되는 나이인 거 같은데, 내 인형을…. 주인이 누구야?!"

올리버는 침묵했다.

자신은 진실을 이야기했는데, 상대는 믿지 않으니 어찌 설득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허나, 침묵 자체가 효과가 있었는지, 글립은 혼란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거, 거짓말이 아니야,

"예…. 제 주인님은 란다 밖에 계시던 분이라. 저도 막 올라왔습니다.”

글립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눈에 힘을 줬다.

올리버의 감정을 살피려는 거겠지. 자신 역시 자주 저랬으니 알 수 있었다.

"너, 너 뭐야?”

글립이 올리버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뒤뚱뒤뚱 뒷걸음질 치며 물었다.

올리버는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거 같았다.

"아, 주인님께서 말하길 제가 감정이 많이 약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냐, 그 정도 수준이 아니야.”

“예?”

올리버가 되물었지만, 인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혼란과 두려움, 공포로 혼탁해졌다.

마치 믿기지 않는 것을 본 듯.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혼란 사이로 진정이 비집고 나왔고, 두려움과 공포 역시 용기와 교활함이 뒤덮었다.

".....왜? 날 적대하는 거지?”

그가 물었다.

진짜 궁금하기보다는 올리버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올리버는 대답했다. 자신 역시 궁금한 게 있었기에.

"뭐, 어쩌다 보니까요? 저도 질문하나 해도 되나요?"

“…말해봐.”

"오면서 봤던 인형, 어떻게 한 거죠?”

"송장인형 말하는 거냐?”

"예. 아주 대단하더군요. 겉모습만 보면 정말 살아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진심으로 칭찬했지만, 글립은 기뻐하긴커녕 오히려 소름 끼쳐 했다.

마치 맹수를 앞에 둔 사람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러한 긴장과 두려움 사이로 기회를 잡으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걸까?

“..…내 주인께 배운 거다.”

진심.

"배운 거라고요?”

"그래, 내 위대한 주인인 퍼펫에게.”

글립은 뭔가 기대하고 말한 거 같으나, 정작 올리버의 반응은 심심했다.

"퍼펫…? 꼭두각시? 독특한 이름이네요?”

글립의 감정은 황당, 어이없음으로 빛났다.

“….너 설마 퍼펫이 누군지 모르나?”

"아.…. 알아야 하나요?”

“당연하지. 흑마법사라면 당연히 알아야지! 수백 년간 살아있는 흑마법 세계의 전설이신데.”

"아…. 죄송합니다. 제가 흑마법을 배운지 얼마 안 돼. 잘 모릅니다. 제 주인님께서도.… 일이 있어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했고요."

“…? 흑마법을 배운지 얼마나 됐는데?”

“음….. 몇 개월 정도요?”

손가락으로 헤아리며 올리버가 답했다.

언제 조셉에게 팔렸는지 기억이 안 나 대충 추측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글립은 이 대답이 영 만족스럽지 못한 듯했다.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 아무리 천재라도 내 평생 습득한 지식을 집약시킨 송장인형을….! 고작 몇 개월 배운 생초보가-!”

그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마치, 마주할 수 없는… 아니, 마주하면 안 될 것을 본 표정이었다.

그는 몹시도 분노했고, 부정했다.

허나, 그게 진실이었다.

"너…. 계약자냐?”

계약자.

올리버가 아는 단어였다.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힘을 얻는 존재.

조셉의 서재에서 봤던 내용에 의하면 재능, 평생의 노력을 뛰어넘는 힘을 단숨에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비유하자면 종을 뛰어넘는 진화와 같다고….

비록 그에 따른 대가를 짊어져야 했지만, 워낙 열매가 달콤해 유혹에 빠지는 흑마법사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흑마법사가 배척받는 거고.

"아쉽지만, 아닙니다.”

"아니라고?”

"예, 계약자를 본 적은 있지만, 계약자는 아닙니다.”

꿀꺽.

글립이 기회를 엿보며 침을 삼켰다. 그는 뭔가 결심했다.

"....계약자가 되고 싶나?”

"음…. 계약자에는 관심이 없지만, 악마를 만나보고 싶기는 합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거든요."

자신에게 인사하던 말을 탄 노인을 떠올리며 올리버가 대답했다.

그는 왜 자신에게 인사한 걸까? 그리고 왜 이질적이면서도 친숙한 걸까?

올리버는 알고 싶었다.

“…악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예….”

"내… 송장인형에도 관심이 있고?”

올리버가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예…. 흥미롭더군요.”

"넌 참….. 궁금한 게 많나 보군?”

"어떻게 아셨습니까? 궁금한게 정말 많이 있습니다.”

어느새 글립의 표정은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마치, 살길을, 아니 금덩어리를 주운 표정이었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도와주신다고요?”

“그래, 내가 도와준다. 네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게. 보아하니 넌 실력은 뛰어나지만, 상식은 부족한 거 같은데…어때? 네가 날 도와주면, 내가 널 도와준다.”

올리버는 글립을 바라봤다. 그는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속에 속셈이 숨어 있긴 했지만 도와준다는 것은 진심이었다.

“음….. 혹시, 검은손과 관련된 겁니까?”

“그래…. 두더지가 말해줬지?”

"예…. 제가 듣기로는 강력한 흑마법사들로 이뤄진 조직이라 하던데 맞나요?”

"그래…. 그것보다 훨씬 대단한 거지만, 대충 맞아. 뒷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강력한 조직이지. 살아있는 전설 같은 흑마법사들이 소속된 조직. 이곳에서는 수많은 자원과 금단의 지식을 다룬다. 정식으로 가입만 하게 된다면-”

"글립 씨의 주인인 퍼펫 씨도 거기 소속인가요?"

"그래! 이제 좀 말이 통하는군! 하지만 그분을 언급할 때는 님자를 붙이도록 해라.”

"아, 예…. 그런데 이해 안 가는 점이 있습니다.”

"뭐?"

“주인이 거기 소속인데, 왜 당신께서는 새로 가입하려고 하는 거죠?”

그 순간 글립이 동요했다.

아픈 곳을 찔린 것인데, 그는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 그건 주인님의 가르침…. 그래, 그분의 가르침 때문이다.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라는…. 시험 같은 거!"

거짓. 올리버는 글립의 속을 꿰뚫으며 생각했다.

그러나 굳이 따지지는 않았다.

딱히 따질만한 일이 아닌 것 같았으니.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그 검은손이라는 곳, 아주 대단한 곳이군요.”

"그래.”

"그럼, 가입하기가 쉽지 않겠죠?”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아, 다름이 아니라, 그곳에 가입하기 위해 두더지에게 거지들을 요구한 건가요? 이 밑에 있는 사람들처럼요?”

올리버가 창고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창고 아래에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감정이 다수 있었다.

그 질문에 글립의 표정은 험악해졌다.

"그래, 그게 뭐?…. 설마, 흑마법사가 그런 것에 신경 쓰는 거냐?”

신경 쓰냐라…. 올리버는 이마를 문지르며 생각에 빠졌다.

음, 자신이 신경 쓰는 걸까?

올리버는 자신이 와인햄을 떠난 이유를 생각해봤다.

캔트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이 잠시 잊고 있었다.

올리버는 왜 와인햄을 떠났을까?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아름다운 감정, 흑마법, 악마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조직을 운영하면서 그 궁금증을 풀기는 힘들 거 같았기에.

“아냐.....”

올리버는 중얼거렸다.

분명 저 이유가 주를 이뤘지만, 작은 불씨가 되어준 계기는 따로 있었다.

작게 지나가는 말. 허나, 올리버가 와인햄을 떠나게 된 결정적 한마디.

그 순간 한 여성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런 어둠에 있지 말고, 세상으로 나오세요.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으로 사는 법을 배우세요.’

"아.…."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은 듯 올리버가 탄성을 뱉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캔트를 만나게 됐다.

아무런 속셈도 없이 자신을 도와준 그를.

그저 자신이 봤다는 이유로 아무런 속셈 없이 도와줬다. 과거 자신이 그런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 외에도 그는 거지들을 지켜줬고, 목숨을 걸기까지 했다.

비록, 그의 감정이 유혹이나 답답함에 시달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했다.

아름다운 빛처럼 눈부시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은은한 그 빛은 뭐랄까… 아주….

"-내 질문에 대답해라!”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올리버가 정신을 차렸다.

눈앞의 인형사가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질문에 대답해…. 흑마법사가 고작 그따위 쓰레기들이 신경 쓰나?”

“음….. 한 분 정도는요?”

“…뭐?”

"뭐라고 할까…. 잘 표현이 안 되는데 여하튼 대단해요. 뭔가를 참으면서 의지를 지킨다는 게….. 꽤 예뻐요.”

"예쁘다고?”

"예, 감정이.…. 흑마법사면 아시겠죠?”

“.…아니 몰라. 네놈이 무슨 말이 하는지.”

“아, 그거 아쉽네요.”

“….다시 말한다. 네가 협조하면 네가 원하는 지식을 얻게 도와주겠다. 검은손에만 들어가면 조직 내의 지식과 가르침을 얻을 수 있고, 인맥을 이용해 블랙마켓도 이용할 수 있어.”

“음.…. 검은손, 블랙마켓이라. 죄송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두더지처럼 거지들을 넘겨야 하나요?”

"그래, 그것을 대가로 가입하는 거니까. 남는 장사지. 거리의 쓰레기들을 넘겨 엄청난 힘과 지식을 얻을 수 있으니."

“음....."

올리버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악마와 흑마법, 아름다운 빛. 알고 싶은 건 너무 많았고, 올리버는 그걸 어떻게 얻는지 몰랐다.

분명, 눈앞의 남자는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올리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분명 지식을 얻는 데 도움을 줄 터였다.

그 첫걸음으로 해야 하는 것은 거지들을 넘기는 것.

값싼 대가였다.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들은 수가 많았지만, 힘은 없어 올리버가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잡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뭐랄까.….

"좀 그래요.”

"뭐?”

"좀 그렇다고요. 음…. 지식을 분명 원하긴 하지만, 좀 그래요.”

"....지금 네놈이 얼마나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건지 알아?”

"예. 그래도 별로 안 내킵니다. 도움받은 것도 있고, 전 그 거지들이 그리 싫지 않거든요.”

"고작 그따위 하찮은 이유로 이 좋은 기회를 놓친다고? 검은손이야….. 모든 흑마법사가 꿈꾸는 기회라고!”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그 하찮은 이유로 인해 제가 당신을 만났으니 이것만으로도 재밌지 않습니까?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니 이런 즐거움도 있네요.”

"그러냐…. 그럼, 뒤져라-!”

분노에 휩싸인 채 인형사가 남은 좀비들에게 공격을 명했다.

올리버는 좀비들의 머리에 타겟팅을 건 후, 해잇 불릿을 쐈다.

앞의 송장인형과 달리 별다른 기능을 추가하지 못했는지 좀비들은 무력하게 파괴될 뿐이었다.

[미트 실드]

[본 스피어]

부서진 좀비로 방어막을 펼치고 뼈로 만들어진 창을 만드는 인형사.

허나, 올리버가 해잇 불릿을 쏟아붓자 그의 반격은 무의미할 정도로 철저히 박살 났다.

“.....꺽!”

이윽고 시체로 만든 방어막이 뚫리며 복부에 맞고 쓰러졌는데, 그가 다급히 말했다.

“이, 이런 개…! 조, 좋아…. 이대로 떠난다. 떠날 테니….”

"거짓말인 거 압니다.”

올리버가 다가오며 말했다.

"끄윽…. 내가 죽으면 내게서 물건을 받던 이가 보복을-”

“-그것도 거짓말인 거 압니다. 자신도 확신 못 하시죠?”

글립의 표정은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마치 낱낱이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이 가득했다.

올리버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정중히 물었다.

“검은손에 들어가는 거. 그게 당신의 주인인 퍼펫이 준 시험이라는 것도 거짓말인 거 압니다. 왜 거짓말하신 거죠?"

글립의 표정은 더 이상 일그러질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그의 감정은 공포와 수치심, 절망뿐이었는데, 그렇게 그는 헐떡이다 숨을 거뒀다.

공포와 수치심에 물든 채 말이다.

"음......."

올리버는 시체를 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어쩌면 아름다운 빛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막판에 의지보다 공포가 더 크게 작용했다. 도대체 왜?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자 과거 조셉의 공장에서 보았던, 비밀 통로 장치가 보였다.

올리버는 그곳으로 다가가 감정을 손에 쥔 채 벽에 손을 댔다.

검은빛이 차르륵 몇 번 움직였는데, 이윽고 비밀 통로가 열렸다.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자 침대와 탁자, 약간의 책, 금고, 기타 흑마법도구 그리고 철장 안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올리버는 그들을 보며 물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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