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인형사 (1) >
"여기가 X구역 입니다. 흑마법사님.”
한 거지가 올리버를 안내하며 그리 말했다.
올리버는 W구역과 얼핏 비슷하지만, 훨씬 위험으로 가득 찬 거리를 둘러봤다.
"여기요?”
"예, 여기가 X.... 죄송하지만, 괜찮다면 저는 이만…..”
"아, 예. 이만 돌아가 보세요.”
“가, 감사합니다. 부디 무사하길 빌겠습니다. 흑마법사님.”
두려움에 떨던 거지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곤 왔던 길을 돌아갔다.
원래는 캔트도 같이 오겠다 했지만, 뒤처리와 같은 문제 탓에 결국 안내인만 붙여줬는데, 솔직히 올리버는 상관없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혼자인 게 편했다.
와인햄을 떠나고 처음 만나는 흑마법사.
이왕이면 혼자서 만나보고 싶었다.
감시자의 눈(눈알 목걸이)을 통해 본 게 맞다면 분명 이곳에 두더지의 뒷배인 흑마법사가 있을 터.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올리버는 느낄 수 있었다.
눈알을 통해 자신을 보는 상대방을.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디 있냐는 건데...…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했지만, 구체적인 위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안 됐다.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사방에 있는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올리버를 찾아온 자도.
"혹시 제게 볼일이 있습니까?”
꺼진 가로등 사이로 누군가 나왔다.
“용케 눈치챘군요.”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여자로, 매우 화려한 복장을 한 미녀였다.
“호……."
굳이, 비유하자면 인형이라 할까?
굽이 높은 가죽 구두에, 레이스가 잔뜩 달린 펑퍼짐한 치마, 그에 반해 가슴은 반쯤 드러내었고 허리는 꽉 조였다.
목에는 리본을 묶고, 머리에는 화려한 깃털 모자를 썼는데,
피부는 분칠한 듯 하얗고, 입술은 불타는 듯 붉었다.
올리버가 처음 보는 유형이었다.
여자가 물었다.
"당신이 거지들이 데려온 흑마법사인가요?”
"어…. 예. 올리버라 합니다.”
“올리버라….. 제 위대한 주인인 인형사 글립 님께서 당신이 싸우는 걸 봤습니다. 놀랍게도 흥미를 보이셨고요. 그분께서 당신을 보자 하십니다. 가히 영광인 줄 아세요.”
오만한 태도는 연극배우를 연상케 했다.
허나, 올리버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 역시 그를 만나고 싶었으니.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길 안내를 시작했다.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만 조용히 울려 퍼졌는데, 올리버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란다의 X구역.
주인님인 조셉이 살았던 곳. 이번이 세 번째 방문.
캔트가 말하길, 거지 소굴인 V, W구역과 달리 X구역부터는 범죄자와 도망자의 소굴이라 했다.
정확히는 진짜 괴물들이 사는 Y, Z의 경계지 같은 곳이지만.
어쨌건 W구역에 비하면 위험한 건 사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올리버는 자신들 둘러싼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또각또각 소리 내서 걷던 여자가 갑자기 멈췄다.
"아, 그런데 올리버. 제 위대한 주인께선 한 번 더 당신을 테스트해보라 그랬습니다. 그분은 격 떨어지는 존재는 상대하지 않기에.”
“아.…. 그럼?”
"일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세요.”
여인은 배우처럼 손가락을 튕겼고, 그와 함께 골목 사이사이에서 숨어 있던 좀비들이 튀어나왔다.
크르를르르르르ㅡㅡㅡㅡ!
카흐흐흫흥ㅡㅡㅡㅡ!
쿠라라라라라라락ㅡㅡㅡㅡ!
좀비들은 하나 같이 칼과 송곳 같은 것을 달고 있었다.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해 수많은 좀비의 수를 파악했다.
대략 오십.
과거 조셉과의 싸움이 떠올랐는데, 올리버는 그때처럼 바인 쉐도우를 써 좀비들을 붙잡은 다음 치즈처럼 몸을 토막 냈다.
그때였다.
[해잇 불릿]
[해잇 불릿]
허공에서 부딪히며 사라지는 증오의 탄환.
시험관을 쥔 여자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호 웃었다.
“대단하군요. 기본은 돼요…. 조작계열이 특기인데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화기 계열 흑마법도 쓸 수 있다니.”
"...?"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했다. 조작계열 흑마법이 특기라니?
"두더지의 목걸이를 통해 봤어요. 당신 특기가 조작계열인걸. 아마, 그림자 조작계열만 죽도록 팠겠죠. 그 정도 숙련도를 얻을 정도면…. 스승이 누구죠?”
“음….. 대답해드리면 제 질문에도 대답해 주시겠어요?”
"호호…. 재밌네요. 반대로 질문을 제안할 줄은. 좋아요. 대답해드리죠.”
"아, 감사합니다. 조셉이란 분입니다.”
"조셉.…. 들어본 적이 없는 자로군요. 삼류야.”
"뭐….. 저는 잘 모르지만. 이번에 제가 물어봐도 될까요?”
“예. 맞춰볼까요? 왜 제 위대한 스승님이 당신께 왜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려는 거겠죠?”
“…? 아뇨. 왜 남자분께서 여자 흉내를 내며 시체를 조종하는 건지 여쭤보려는 겁니다.”
"......."
"혹시, 그렇게 하면 훨씬 조종하기 쉽나요? 일종의 요령?”
여자…. 아니, 여자 좀비의 표정은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그녀, 아니 그를 칭찬했다.
"개인적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단순한 좀비를 넘어 하나의 살아있는 사람처럼 시체를 조종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거든요. 혹시, 대상을 흉내 내야 훨씬 쉽게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까?”
“…..닥쳐.”
건드리지 말아야 할 곳을 건드렸는지 그녀(그)의 감정은 불쾌감과 수치심, 분노로 요동쳤다.
"재주가 귀여워 적당히 테스트해주려고 했더니, 감히, 날 우롱해?”
“예? 아뇨, 우롱이 아니라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닥쳐! 해잇 불릿!”
여자는 감정을 추출해 증오의 탄환 열 발을 동시에 쐈다.
올리버는 똑같이 증오의 탄환을 쏴 날아오는 탄환들을 영격했다.
파방一! 팡一! 파바바방ㅡㅡㅡ!
폭죽처럼 허공에서 터진 증오의 탄환.
충격 탓에 머리가 흩날렸지만, 올리버는 개의치 않고 눈앞의 여자를 살펴봤다.
참으로 신묘했다.
가공처리를 통해 살아있는 사람과 비슷한 외모를 할 수 있다 해도 흑마법까지 쓰다니.
조종하는 술사가 시체를 통해 쓰는 건가?
음….. 아니,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
"그 시체, 흑마법사로 만든 거군요?”
“…너! 어떻게?!”
“책에서 봤습니다. 리치…. 랑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네요. 송장인형이 더 적절한가요….? 바인 쉐도우."
그림자 촉수가 여자의 팔을 휘감았다.
벌거숭이쥐처럼 묶어놓고 관찰할 요량이었다.
"하-! 바보 놈!”
팔이 붙잡히자마자 여자는 자기 팔을 잘라버렸다.
정확히는 도마뱀 꼬리처럼 떨어진 거지만.
달칵- 소리와 함께 팔이 떨어지고,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사마귀의 그것과 같은 칼날이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왔는데, 가만 보니 펑퍼짐한 치마 밑으로 거미 다리 같은 것이 여러 가닥 달려 있었다.
그저 화장만 시킨 게 아니었다.
"팔다리를 잘라서 데려가 주마!”
"미니언.”
그 말과 함께 올리버의 품 안에 있던 미니언이 튀어나와 코앞까지 달려온 여자를 향해 ‘쓰러스트’를 쐈다.
충격파를 발사해 표적을 파괴하고, 밀어내는 흑마법.
"이까짓 거-!”
송장인형은 겉모습과 달리 생각보다 튼튼해 그저 뒤로 밀려날 뿐이었는데, 올리버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타켓팅]X9
[해잇 불릿]X9
아홉 발의 증오의 탄환이 하반신에 4발, 양어깨와 가슴에 각각 2발, 입에 1발씩 들어갔다.
증오의 탄환이 적중한 곳은 반파되며 방부 처리된 가죽과 살점, 태엽, 힘줄, 뼈대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파손이 심했는지, 더 이상 꼼짝하지 못했는데. 올리버는 그 상태로 송장인형을 살펴봤다
"오..…. 개조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보니 또 다르네요? 다리에는 거미 다리로 기동성을 높이고, 양팔과 가슴에는 칼날과 송곳, 입에도 총도….. 보통 솜씨가 아니에요. 인형사라는 이름에 어울려요.”
올리버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정체를 파악하자 유일하게 멀쩡한 눈이 동요했다.
개인적으로 의아하기도 했다.
스스로 본인임을 밝히면 될 걸 왜 구태여 자신의 제자라고 사칭한 건지.
솜씨가 조악하다고 생각해서인가? 충분히 훌륭한데?
올리버는 이해할 수 없었다.
뭐, 직접 보면 되겠지.
올리버는 송장인형의 눈을 바라보며 두더지 때와 마찬가지로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송장인형은 눈을 감으려 했지만, 올리버가 강제로 벌려 억지로 눈을 마주했다.
잠시 후, 아까 전보다 더 빨리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이 골목 끝에 있는 창고 건물이었다.
의외로 아주 가까운 데 있었다.
볼일을 끝마치자마자 올리버는 송장인형의 생명력을 모두 뽑아낸 다음, 아까 전에 모아둔 플라스크 시험관에 넣었다.
그리고는 바로 인형사 글립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좀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그는 상당히 초조해 보였다.
어째서? 올리버는 이 놀라운 솜씨에 관해 묻고 싶을 뿐이었는데.
벌거숭이쥐와 송장인형 등 그의 시체 다루는 솜씨는 훌륭한 편이었다.
기계장치와 시체를 이런 식으로 접목하다니.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한 건지, 어떻게 배운 건지 묻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가르침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작 본인은 그게 싫은 듯했지만.
"우어어어어어어어엉ㅡㅡㅡ!”
골목 끝 창고 앞까지 도착했을 때, 약물로 강화된 근육질 거인이 벽을 부수며 등장했다.
머리에 박힌 대못과 부패한 육체.
그 역시 글립의 송장인형이었다.
여자와 달리 방부처리는 하지 않았는데,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버닝 라이프]
[머슬 업]
또 다른 송장인형이 나타나 근육질 송장인형에게 흑마법을 걸어주었다.
생명력과 분노의 힘을 받자 부패한 근육은 한층 부풀어 올랐다.
아무래도 인형사 글립이란 자는 복수의 송장인형도 정교하게 다룰 수 있는 것 같았다.
짐승도 포함해 말이다.
카르르르르르릉ㅡㅡㅡ!
카르르르르르릉ㅡㅡㅡ!
여섯 개의 다리와 강철 이빨을 단, 죽은 개 두 마리가 놀라운 속도로 달려와 올리버의 양 측면을 동시에 공격했다.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해잇 불릿으로도 맞추기 힘들었는데,
거기의 흑마법사 송장인형이 원거리 공격으로 지원까지 해줬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
[블랙 마블]
파방ㅡㅡ!
탕! 카륵一!
탕! 크륵一!
전신을 굴러 싼 구체의 방어막이 간발의 차로 올리버를 구해줬다.
아마, 조금만 늦었어도 양다리를 물어뜯기거나, 원거리 공격에 당했을 터.
하지만 안심하긴 아직 일렀다.
"캬하하하하하학ㅡㅡㅡ!”
근육질 송장인형은 예상이라도 한 듯 방어마법으로 기동성이 봉인된 올리버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본래 근력에 흑마법이 더해지자 가히 위력적이어서, 얇은 블랙 마블은 한 번에 실금이 가고 말았다.
“캬하하하하하학ㅡㅡㅡ!”
텅一!
찌직-
텅一!
찌지직-
텅ㅡㅡ!
쩌저적-
올리버는 부서지는 방어막을 보며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정면에서 무직하게 밀고 들어오는 근육질 송장인형.
그 뒤에서 지원을 담당하는 흑마법사 송장인형.
퇴로를 끊듯 주변을 맴도는 사냥개 송장인형.
아까 전 여자 송장인형보다 못했지만, 오히려 각 특성에만 집중해 훨씬 뛰어난 전투력을 보였다.
다루는 이도 익숙해 보였고.
올리버가 수세에 몰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흐음......."
생각을 정리한 올리버는 아까 전 추출한 생명력을 꺼내 마셨다.
그다음 자신의 몸에 흑마법을 걸었다.
[버닝 라이프]
생명력을 태워 신체 능력 전반을 올리는 흑마법.
아마, 마신 생명력만 태우면 별문제는 없을 터였다.
그와 함께 올리버는 블랙 마블을 스스로 해제하고 근육질 송장인형이 헛손질하는 순간 파고들었다.
평소라면 힘들었겠지만, 흑마법의 힘을 빌리자 올리버는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붕——!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망치와 그로 인한 풍압으로 흔들리는 머릿결.
주변을 맴돌던 시체 개들이 쫓아왔지만, 올리버는 개의치 않고 가장 뒤쪽에 있는 흑마법사 송장인형에게 달려들었다.
[해잇 불릿]X20
근거리에서 쏜 스무 발의 증오의 탄환은 흑마법사 송장인형을 강타했다.
물론, 송장인형도 방어 하려고 노력했지만, 단독 화력에서 올리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것은 철저하게 파괴됐는데, 올리버는 곧바로 뒤를 돌아 코앞까지 다가온 사냥개를 향해 흑마법을 걸었다.
[오비디언스]
되살린 시체를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기초적인 흑마법.
올리버는 이미 통제권을 가진 시체에게 자신의 통제권을 심으려고 했다.
크르륵……!
끼이이익..…!
놀랍게도 개들은 괴로운 듯 머리를 흔들었다.
책에서는 상대방보다 월등한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말이다.
올리버는 근육질 송장인형을 통해 저 너머 공포에 빠진 흑마법사의 감정을 볼 수 있었다.
[라스 불릿]
[해잇 불릿]X6
당황하며 행동이 멈춘 송장인형을 향해 올리버가 제각각 탄환을 날렸다.
흑마법으로 강화된 송장인형에게 라스 불릿 한 발을.
사냥개에게 각각 해잇 불릿 세 발씩을.
송장인형은 산산이 박살 났고, 개들은 기능이 정지하는 수준으로만 부서졌다.
그러나 올리버는 멈추지 않았다.
인형사 글립을 만나기 위해 건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