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질문 (1) -여기서부터 유료입니다 - >
온몸이 점액질로 더럽혀진 올리버와 캔트, 왕주먹이 쓰레기통 아래로 내려갔다.
얼마나 오래 묵힌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엄청나게 진득거리고 냄새가 나 거지임에도 옷을 버려야 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올리버, 캔트, 왕주먹에게 풍기는 냄새보다 땅 밑 하수도의 냄새가 훨씬 심했으니.
슬슬 코가 아프다 못해 머리가 지끈거리려고 하여, 올리버는 센시브 노즈를 풀었다.
냄새는 여전히 고약했지만, 아까 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최소한 머리가 깨질 것 같지는 않았으니.
"오, 세상에 맙소사….. 이런 비밀 하수도를 또 볼 줄이야.”
익숙한 듯 말하는 캔트. 올리버가 물었다.
"이런 곳이 또 있나요?”
"어…. 란다가 과거 한번 크게 망하긴 했어도, 역사가 깊은 도시. 고대제국의 전초기지이기도 했고 이후로도 중요 도시나 거점 역할을 했지. 그 탓에 오랜 세월에 걸쳐 땅 밑도 개발했고. 고대 하수도부터, 중세 하수도, 현대 하수도까지. 2중 3중에 걸쳐.”
"오…."
"그래서 란다에는 도시 밑에도 도시가 있다고 하지. 보통 갱 조직이나, 해결사, 뒷세계의 거물들이 주로 쓰고.”
"음...... 거지들은 안 쓰나요? 냄새가 심하긴 하지만, 따뜻해서 사용하기 좋아 보이는데요?”
"좋은 지적이군. 하지만 그럼에도 거지들은 잘 안 써. 대부분 하수도는 저마다 연결되어 있어 자칫 잘못하면 흉악한 무리와 조우 할 수 있거든. 거지가 죽는 건 땅 위에서도 별 게 아니지만, 땅 밑에서는 별 게 아닌 것조차 못되지.”
"아.…. 그런데, 두더지 패거리가 여길 쓰고 있다는 건?”
".... 정신이 나갔거나, 아니면 믿을 만한 뭔가가 있다는 거지.”
"믿을 만한 거라면?”
“글쎄….. 자기들 머릿수가 많아져 자신감이 생겼거나, 혹은 뒷배가 생긴 거지.”
"그렇군요.”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는 올리버와 캔트.
그때, 뒤에서 따라오던 왕주먹이 끼어들었다.
“잠깐만..… 올리버, 너..!“
"예?”
"여기 비밀통로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야?”
"어, 나중에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지금 말씀드리기 조금 그래서….”
"아니, 지금 대답해. 너 너무 수상해.”
“어, 그게……."
난감해하는 올리버. 그때, 캔트가 말했다.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캔트?”
"지금 중요한 건, 하모니카를 구하는 거지. 어떻게 찾은 게 아니지 않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왕주먹은 캔트에게 따지려고 했으나, 그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와 함께 부글부글 끓는 분노가 보였는데,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올리버. 지금 하모니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나?”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냄새 탓에 센시브 노즈를 풀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왔으니 별문제 없었다.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와 함께 흑마법사의 시야가 더욱 강화했는데, 어둠 속에서 빛나는 여러 감정이 보였다.
어른 열댓 명, 아이 스무 명..…. 하수도 깊숙이 있었다.
"저기 안쪽에 있습니다.”
"후…. 다행이군.”
"그런데, 아이들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 필시, 아이들을 납치한 놈일 터였다.
캔트는 예상했다는 듯 쿼터스태프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상관없어. 안내해라. 최대한 조용하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히 걷기 시작했다.
사방이 어둠이었지만, 흑마법사의 시야로 움직이는 올리버에겐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캔트도 익숙한 듯 잘 따라왔는데, 의외로 왕주먹이 따라오는 데 애를 먹었다.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걸까?
"아, 전 신경 쓰지 마십시오.”
왕주먹이 낮게 속삭였다.
얼굴은 짜증과 수치심이 엿보였지만, 이상하게도 감정에는 그런 빛 보다는 뱀과 같은 교활함이 엿보였다.
마치, 딴생각을 품듯.
허나, 캔트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올리버에게 계속 앞으로 갈 것을 명했고, 올리버는 시키는 대로 하수도 안쪽으로 갔다.
저벅. 저벅. 저벅.
감정이 가까워지며 미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캔트는 올리버의 어깨를 잡아 멈춘 뒤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발소리는 이윽고 선명해졌고, 거기에 말소리까지 들렸다.
“아..… 시벌 거 언제까지 애새끼들 감시해야 해?”
"왜 시발? 애새끼들 감시하는 거로 돈 벌 수 있는데. 뭐 힘들다고.”
"애새끼들 울면 짜증 난다고. 머리가 울려….”
"그래서 아까 전에 겁내 팼잖아? 적당히 패…. 너 저번에도 그러다 헨리 씨에게 혼났잖아. 상품 상한다고?”
"별로 안 때렸어. 애들은 원래 때리면서 키우는 거 아니야? 뭣보다 난 이 냄새 나는 곳에 있는 게 싫을 뿐이라고.”
"쿵. 쿵. 별로 안 심한데?”
“그건 네가 익숙해진 거지.”
"아, 그만 투덜대. 어쨌건 이건 짭짤하니…. 근데, 그건 그렇고, 저 애새끼들 어디 팔려는 거지? 앵벌이 꼬마도 더 이상 필요 없는데. 아무리 나라도 애새끼 팔 자르는 건 그만 보고 싶다고.”
"글쎄? 어디 공장이나 농장에 팔려는 거 아닐까? 여자애들은 매음굴?”
“악! 큰일 났네. 쟤네는 얼굴이 별론데 좋은 데는 못 가겠어.”
그 말과 함께 놈들을 크크크 웃기 시작했다.
이 일에 매우 익숙해 보였고, 그 탓인지 방심하고 있었다.
올리버는 캔트를 봤다.
그는 감정은 혐오와 분노로 일렁거렸다. 그렇지만 무분별하지 않고 차분했다.
그는 조용히 손가락을 입술에 댄 뒤, 품 안에서 나이프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한 손에 쿼터스태프를 길게 잡았다.
그는 고양이처럼 몸을 낮게 낮추며 소리 없이 천천히 다가갔다.
마치 짐승처럼 조용했는데,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캔트는 쿼터스태프를 내질러 한 명의 목을 깊게 찌른 뒤. 당황한 다른 한 명의 목에 칼을 박아버렸다.
“끅....!”
사람의 생명은 의외로 질겼다.
칼에 찔린 놈이 눈을 부릅뜨고 저항하려 했다.
그러나 캔트는 당황하지 않고, 칼을 비틀어 끝장낸 다음 곧바로 다른 거지의 뒷덜미에 칼을 박아넣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는 동작.
더욱 놀라운 것은 두 명을 동시에 해치웠음에도 비명소리 하나 새어나가지 않았다는 거였다.
흑마법을 쓰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맨몸으로 저러다니.
꽤 신선한 장면이었다.
"치우는 거 좀 도와주겠나?”
캔트의 요청에 왕주먹이 다가가 시체를 안 보이는 곳에 숨겼다.
일행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깊숙이 들어갈수록 마석 램프가 사방을 밝히고,
사람은 많아져 움직이기 어려웠는데, 캔트가 적절한 지점에서 주먹을 쥐어 숨을 것을 명했다.
그리고는 슬쩍 시선을 빼 앞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블랙잭이나, 몽둥이로 무장한 거지들과 두려움에 떤 채 한쪽에 쭈그려 앉은 아이들이 있었다,
“빌어먹을......"
캔트가 그 모습을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캔트.”
"저기 하모니카가 있군.”
왕주먹이 캔트와 같이 앞을 슬쩍 보며 물었다.
"..... 인원수가 제법 되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지금 저희 수가 너무 적으니 일단 나가서 다른 사람들 불러오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음….. 아니, 나갔다 오는 길에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이미, 오늘 길에 둘 죽였어. 지금 여기서 해결해야 해.”
"하, 하지만-”
“-내가 앞으로 가서 시선을 끌 테니. 자네와 올리버가 저쪽 옆으로 빠져서 하모니카를 데리고 탈출해. 다른 아이들도 같이 도망치게 하고.”
“다른 아이들이요?”
"그래, 전부는 탈출 못 해도 상당수 탈출할지도 모르지….. 할 수 있겠나?”
“....예.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부탁 좀 하지.”
그 말과 함께 캔트는 아까 전처럼 나이프를 들고 몸을 숙인 채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방심하고 있는 거지들을 향해 나이프를 던졌는데, 놀랍게도 나이프는 단 한 번에 거지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
"뭐야?”
"....응?"
당황한 거지들.
캔트는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거지패 가운데로 들어가 쿼터스태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나무막대기를 휘두르는 게 아닌 정형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문외한인 올리버가 보기에도 매우 숙련되고 세밀해 보였다.
쿼터스태프 양 끝은 무기이자 방패로, 다가오는 적을 후려치고 밀어냈다.
"이런 씨발! 어디서 갑자기…!”
“둘러싸! 둘러!”
"씨발 네가 해봐! 이 새끼 존나게 케엑-!”
적 거지들도 몽둥이를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캔트의 쿼터스태프에 비하면 길이도 실력도 부족해 숫자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둘러싸는가 할 때면 캔트는 어김없이 쿼터스태프를 크게 휘둘러 포위를 풀고 다시 거지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혼자임에도 다수의 적을 압도했는데, 바로, 그때였다.
탕一!
총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모두의 시선이 총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했다.
중절모를 쓴 거지가 나타난 거였다.
“거기까지다.”
총이 등장하자 캔트의 주변에 있던 거지들이 멀리 도망쳤다.
혹여 자신이 맞을까 겁먹은 거였다.
"음….. 아! 기억난다. 얼마 전 나한테 얻어맞은 녀석이군.”
캔트의 도발이 아픈 곳을 정확히 긁었는지 중절모 거지는 크게 분노했다.
그는 총을 칼처럼 휘두르며 소리쳤다.
“하…! 끝까지 강한 척이군. 어디 몸에 구멍 나서도 그럴 수 있는지 한번 볼까? 앙?!”
"왜? 총 쏘시게? 드는 자세 보니 제대로 쏠 줄도 모르는 거 같은데…? 괜찮겠나? 더 망신만 당할걸? 다리 절뚝이는 늙은이한테 총까지 들고 덤볐다가 발렸다고?”
캔트가 그 말과 함께 서서히 거리를 좁혔는데, 중절모 거지가 캔트의 뒤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 다 믿는 구석이 있거든.”
의미심장한 발언.
캔트는 이상함을 느끼며 뒤를 돌아봤다.
그때, 올리버와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는 왕주먹에게 붙잡힌 올리버를.
"이게 무슨…..”
중절모 거지가 조롱하듯 지껄였다.
"계획에서 좀 틀어졌지만, 뭐 상관없지…. 네 밑에 다 병신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 말이 통하는 친구도 있었어. 미래를 볼 줄 아는 친구 말이야.”
캔트는 자신을 배신한 왕주먹을 바라보며 물었다.
“...... 왜 이러는 건가?”
"캔트…. 절 거둬준 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씨발 평생 거지들 뒷바라지만 하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전 평생 당신 밑에서 거지로 살기 싫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거지꼴에서 벗어날 거라고요! 그러니 무기 버리세요.”
왕주먹은 위협하듯 캔트에게 소리쳤다.
악에 받친 그의 목소리가 하수도에서 크게 울려 퍼졌는데, 캔트는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연약하지만 예쁜 빛을 뿜으며, 들고 있던 쿼터스태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 왜?’
탕-! 떼구르르르…….
쿼터스태프가 떨어진 쓸쓸한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하나둘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하….. 병신새끼, 쓸모없는 거지새끼 때문에 진짜 무기를 놓았네!”
"그러게…. 병신 죽으면 다 끝인데. 그거 알아? 지금쯤 네놈 패거리도 끝장났을 거야! 원래 계획은 거기였거든.”
"암! 우리 친구들이 이미 갔거든!”
올리버는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봤다.
자기 때문에 무기를 버린 이와 그런 그를 비웃는 유괴범을.
솔직히 올리버도 유괴범들과 비슷한 심경이었다.
캔트가 무기를 버린 행위는 올리버가 보기에도 합리적이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을 위해 위험에 노출된다는 말인가..…. 아니, 오히려 그답다고 해야 하나?
아무런 속셈도 없이 올리버를 도와주고 자기 거지패에 지내게 해준 그였으니.
일관됐지만 이해할 수 없는 자기희생적인 태도. 이타심….. 올리버는 지금 이 순간 그 이유를 미친 듯이 알고 싶었다.
"씨발.…. 성격 같아선 며칠에 걸쳐 괴롭혀주고 싶지만, 이쪽도 바빠서. 그러니 이만 뒤져라.”
중절모 거지가 몇 발자국 다가와 총을 겨누며 말했다. 그와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탕一!
".... 응?"
모두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갑자기 나타나 캔트를 보호한 정체불명의 검은 장막을 보며.
그때, 누군가 말했다.
“저기 죄송한데 제가 그분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거든요.”
모두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봤다.
그곳엔 검은색 스파이크에 꿰뚫려 죽은 왕주먹과 그 앞에 태연하게 서 있는 올리버가 있었다.
모두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공포에 떨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