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납치 (2) >
"미,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
평소 유쾌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빨간코가 말했다.
그 태도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하모니카에 대한 죄책감, 캔트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했다.
본인 얼굴조차 엉망인데 말이다.
그 마음을 알아서일까? 캔트는 분노했음에도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미안하고 말고는 나중 문제고.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해 봐.”
빨간코는 부풀어 오른 얼굴을 부여잡고 입을 열었다.
"끄으응.… 단속이 떠서 평소대로 샛길로 도망쳤어.”
"샛길이라면 우리만 아는 샛길이겠지?”
“그래…, .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우리가 올 걸 미리 알고 있는 눈치였어. 혹시-”
“-굳이 확실치 않을 걸 입 밖에 내지 말지. 어쨌건?”
“미안…. 어쨌건, 잘 가던 중에 괴한이 튀어나와 몽둥이 같은 걸로 내 얼굴을 후려쳤어.”
빨간코가 심하게 부은 자신의 한쪽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이후로는….. 기억나는 게 거의 없어. 여기저기서 주먹질과 발길질이 날아와 맞기도 바빴거든. 다만-”
“-다만?”
"하모니카를 끌고 가던 중 챙이 뜯어진 중절모를 쓴 놈이 내 얼굴에 침을 뱉고, 배를 발로 밟았던 건 기억해."
챙이 뜯긴 중절모. 올리버는 누군가 떠올랐다.
얼마 전 캔트에게 두들겨 맞은 두더지패의 거지였다.
올리버만 그 생각을 한 게 아닌지 주변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두더지 아니야?”
"설마…. 캔트 씨가 있는데?”
"혹시 아예 작정하고.”
"에이…. 설마. 옛날에 덤볐다가 망신당했는데.”
"그래서 원한을 품은 걸 수 있잖아?”
"그래, 지금 부하도 늘어났고, 돈도 많이 벌고 있다 하는데….”
불안한 감정은 이야기를 주고받을수록 커졌고, 이내 공포로 확산했다.
어느새 납치당한 하모니카에 대한 걱정보다 자신들도 같은 꼴을 당하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캔트만 빼고.
“전부 진정해…. 빨간코. 납치당한 지 얼마나 됐지?”
"끄응…. 세, 네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우왕좌왕하는 거지들과 달리 캔트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애를 납치했다 해도 그 정도면 멀리 못 데려갔을 거야. 왕주먹, 애들 모아라. 바로 찾아본다.”
그때, 한 거지가 말했다.
"찾으러 가시는 건가요?”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 패거리의 아이인데.”
“두, 두더지가 그런 거 같은데, 그쪽에 따지러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따진다고 해결될 일이면 애당초 벌리지 않았겠지. 따지는 건 나중에 따지고 지금은 하모니카를 찾는 게 우선이야. 하모니카를 못 찾으면 계속 모르쇠로 일관할 테니….. 빌어먹을 놈.”
캔트는 몹시도 화가 나 보였다.
겉으로는 침착해 보일지 올라도, 하모니카가 납치된 사실에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아무도 캔트에게 뭐라 토를 달지 못했다.
단 한 명 왕주먹만 빼고.
"저기 캔트..…. 모두가 하모니카를 찾으러 가는 건 썩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 뭐?”
"그렇지 않습니까? 애들 다 데리고 나가면 여긴 누가 지킵니까?”
"......."
“과한 생각일 수 있지만, 우리가 자리를 비운 틈에 이쪽으로 쳐들어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희미한 불안함은 확실한 두려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두더지가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니.
"저, 저기 캔트…. 왕주먹 말이 썩 틀린 거 같지는 않은데…."
"얘, 일단, 진정하고…."
“진정이라니….. 다들 소문을 들어 알고 있지 않나? 두더지한테 납치당한 애들이 어떻게 되는지? 신체가 훼손되고, 어디 노예로 팔릴 지도 몰라…. 그런데 가만있자는 말인가? 그 아이가 벌어온 돈으로 먹고살았는데?”
"그거야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무신경한 올리버조차 이들이 하고자 하는 말이 대강은 이해됐다.
납치당한 하모니카 보다 자신들의 신변이 더 걱정인 거였다.
뭐,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오히려 이해가 안 되는 건 하모니카를 구하고, 이들을 품고 가려는 캔트의 태도였다.
몹시도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가는 감정…. 허나, 그 탓인지 올리버의 눈에는 뭔가 색다른 감이 있었다.
성기사와 비슷하면서도 또 달랐다.
그렇게 올리버가 관찰하는 사이 왕주먹이 의견을 냈다.
"그럼, 캔트. 애들은 대부분 여기 남기고 저랑 같이 찾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뭐?”
"솔직히 캔트도 이대로 손 놓고 있는 건 납득하지 못하실 거잖습니까? 그러니 저랑 단둘이 찾으러 가시죠…. 어차피 사람을 많이 푸는 것 보다,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만 가는 게 더 나을 겁니다.”
내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던 캔트에게 왕주먹의 의견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웠고, 캔트는 이를 바로 수락했다.
다른 이들은 캔트가 떠나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지만, 캔트의 성격을 아는지라 뭐라 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캔트와 왕주먹이 같이 떠나려고 하는 찰나 올리버가 손을 들었다.
“.… 뭐야?”
"어….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네가?”
"예, 어차피 여기 있어도 전 딱히 도움 되는 게 없는데, 괜찮으시다면 같이 가고 싶습니다.”
"뭔 개….. 방해만 될 게 뻔한데, 그냥 두고 가죠.”
끼어드는 왕주먹. 올리버는 그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듯 말했다.
"데려가시면 반드시 도움이 되겠습니다.”
"반드시 도움은 무슨…. 어이 애송이. 재주 좀 있는 거는 아는데, 그건 이거랑 달라. 할 수 없는 말 입에 담는 거 아니야. 좋은 말로 할 때 주제 파악해라.”
"좋아, 따라와라.”
가만히 살펴보던 캔트가 대뜸 말했다.
왕주먹이 놀라 따지려고 했는데, 캔트는 이를 무시했다.
".... 어차피 한 명 더 데려간다고 뭔 문제가 있겠어? 다만, 놀러가는 게 아니다. 방해하면 가만 안 둔다.”
“예, 절대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올리버의 확언에 캔트가 고개를 끄덕였고, 왕주먹은 인상을 찌푸렸다.
캔트가 말했다.
“좋아, 그럼 가지."
***
올리버는 캔트, 왕주먹과 함께 빨간코가 얻어맞은 샛길에 도착했다.
얼마 가지 않아 핏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곳에서 습격당한 것 같았다.
여기저기 튄 피가 폭력의 강도를 대변해줬는데, 한순간 의아함이 들었다.
하모니카를 납치하고, 빨간코도 거침없이 패는 인간들인데, 정작 빨간코를 죽이진 않다니.
때린 수준으로 봤을 때 일정 선을 지키는 인간 같지는 않은데….
올리버는 왕주먹을 바라봤다.
혹시 이 같은 상황이 뱀처럼 꽈리를 튼 그의 감정과 관련 있는가 해서.
여긴 딱히 흔적이 없습니다. 캔트. 그쪽은 뭐 찾은 거 있습니까?”
"아니.…. 없- 아! 여기 하모니카 발견했다.”
캔트가 구석에 떨어진 하모니카를 주우며 말했다.
그는 한순간 찾은 흔적에 잠시 기뻐했지만, 딱 그뿐이라는 사실에 다시 분개했다.
"근데, 그 외에는 없군.”
"여기 이거 보십시오.”
왕주먹이 건물 틈새 사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흙과 먼지가 가득했는데, 그곳에는 오랫동안 서 있는 것으로 추정된 발자국이 보였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 이 자국은 몽둥이를 땅에 댄 거 같고요…. 정말 우리 거지패에 배신자가 있는 거 아닐까요?”
캔트의 감정은 미묘하게 빛났다.
충격을 받은 것 같으면서도 어느 정도 예상한 듯한.
“작정하고 노렸다라…. 하아.…. 그 외의 흔적은?”
“죄송하지만, 이 이상은 없습니다. 끌려간 자국이나 핏자국은…..”
“저기, 캔트…..”
"뭐냐? 올리버.”
"괜찮으시면, 그 하모니카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엉뚱한 질문에 캔트는 올리버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윽고 하모니카를 넘겨줬다.
올리버는 그 하모니카를 가지고 잠시 뒤로 가 흔적을 찾아보는 척했다.
실상은 시험관을 꺼내 감정을 추출한 거였지만.
[센시브 노즈]
올리버는 추출한 감정을 사용해 자신에게 흑마법을 걸었다.
그와 함께 후각이 강해졌는데, 올리버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냄새에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익숙해진 지린내와 퀴퀴한 냄새, 분뇨, 썩은 음식물, 땀, 먼지 등 강렬한 냄새가 하나로 엮여 머리를 직접 강타하는 기분이었다.
과거 도미니크가 썼던 흑마법을 떠올리며 쓴 거였는데,
책에 적힌 대로 질병 계열 흑마법은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거 같았다.
올리버는 지끈거리는 코와 머리를 주무르며 하모니카의 냄새를 맡았다.
그 아이의 진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킁- 킁-
올리버가 개처럼 코를 킁킁댔다.
강렬한 냄새가 코를 괴롭혔지만, 이윽고 수없이 많이 엉켜있는 냄새의 실타래 가운데서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는 하모니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완전히 사라질 뻔했는데.
"지금 뭐 하는 거냐?”
허공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고 있던 올리버를 보며 캔트가 물었다.
"찾았습니다. 따라오시면 됩니다.”
“뭐?”
"하모니카를 찾았습니다.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올리버는 그와 함께 앞으로 냅다 뛰어갔다.
캔트의 불필요한 질문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냄새가 점점 사라지려고 한 것도 있었다.
다행히 캔트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일단 올리버가 시키는 대로 말없이 따라와 줬다.
왕주먹이 다급히 뛰어오며 말했다.
“지, 지금 어디 가는 겁니까?”
"하모니카의 흔적을 찾았다는군.”
"저 녀석이요?”
"그래 저 녀석이.”
"지금 그 말을-”
“-따지는 건 나중에 해도 되니 일단 쫓아가지. 어차피 지금 별 뾰족한 수도 없잖나?”
캔트는 그렇게 왕주먹의 말을 가로막으며 절뚝절뚝 뛰었다.
킁- 킁-
냄새를 맡으며 뛰던 올리버는 갑자기 샛길에 세워진 커다란 쓰레기통 앞에 멈춰 섰다.
거대한 쓰레기통은 기이할 정도로 더러웠다.
겉면이 여기저기 녹이 슬었는가 하면, 끈적이고 냄새나는 검은색 점액질 같은 것이 묻어 있어, 거지조차도 다가가기 꺼려질 정도였다.
꼭 누군가 일부러 이렇게 만든 느낌마저 들었다.
올리버는 쓰레기통의 뚜껑을 열려고 했다.
녹이 슬어 쉽사리 열리지 않았는데, 그때 뒤쫓아온 캔트가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뚜껑 여는 것을 도와줬다.
끼이이익一 소름 끼치는 쇳소리와 함께 열리는 쓰레기통.
안은 더 가관이었다.
불쾌한 악취와 검고 끈적이는 점액질이 사방에 가득 붙어 있었다.
"오……. 좀 심하군.”
비위가 상한 캔트가 코를 가리며 말했다.
센시브 노즈로 후각이 강화된 올리버에겐 더욱 끔찍했고.
머리를 후려치는 느낌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버는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갔다.
저 끔찍한 악취 속에 하모니카의 냄새가 한 가닥 남아있었기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후 올리버는 쭈그려 앉아 바닥을 뒤졌다.
물컹물컹 진득진득한 점액질에 손을 담그며 말이다.
왕주먹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금 도대체 무슨……."
-철컥!
올리버가 바닥 깊숙이 숨겨진 무언가를 잡아당겼다.
그와 함께 쓰레기통 밑바닥이 열리더니 성인 남자가 들어갈 수 있는 비밀통로가 나타났다.
"..... 하모니카는 이 밑에 있는 거 같습니다? 그 외 다른 아이들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