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납치 (1)
“벌써 다 했다고?”
“그래.”
한 술집 뒤편.
근육질 사내가 접착제로 얼기설기 붙인 서류를 살펴봤다. 이 술집의 점주였다.
“음····. 이런 가게가 있었나? 새로 생긴데 같은데?”
“뒷골목에 불법 양조장은 비 온 뒤 버섯처럼 생기곤 하지.”
“하···. 고마워. 우리도 이쪽과 거래를 터야겠군.”
“고마운 건 말이 아니라, 돈으로 해줬으면 좋겠군.”
캔트는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말했다. 술집 주인은 피식 웃고는 품 안에서 돈뭉치를 꺼냈다.
넘겨주려는 찰나 술집 주인이 돈을 도로 가져가며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한 거지? 보통 의뢰를 맡기면 기본 몇 주는 걸렸잖아?”
“빨리해도 문젠가?”
“문제는 아니지만 궁금하긴 하지.”
“남의 사업 정보를 너무 쉽게 달라는구만. 돈이나 줬으면 좋겠는데.”
술집 주인은 캔트와 잠시 눈을 마주 보다 다시 돈을 내밀었다.
“혹시, 같은 속도로 한 번 더 일해줄 수 있나?”
“응? 무슨 말이야?”
“묻는 그대로지. 알다시피 우리 가게에 이래저래 다양한 손님이 오잖나? 때마침 당신네 재주가 필요한 손님이 있어서.”
“의뢰인이 누군데?”
“해결사야.”
“양은?”
“음···. 대략 40장 분량?”
“가격은?”
“전부 복구한다는 전제하에 큰 거 세 장. 원래 대로라면 수수료를 받아야겠지만, 안 받지. 단 일주일 안에 다 해야 해. 내 손님이 좀 급하거든.”
후한 조건에 캔트는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바로 수락하지 않고 올리버를 바라봤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자 캔트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 좋아. 맡지.”
“좋아. 잠깐, 기다려.”
술집 주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포대에 담은 쓰레기 뭉치를 가져왔다.
제법 부피가 컸는데, 캔트는 그걸 가볍게 둘러멨다.
사내가 경고하듯 말했다.
“난 이제 손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할 생각이야. 그 말은 즉, 자네가 실패하면 내가 실패한 거고, 그 말은 내 신용이 떨어진다는 거지. 경고하는데, 절대 실패하지 마. 난 내 신용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
“자네야말로 돈이나 잘 준비해 두게. 옛날처럼 헛소리하지 말고.”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도 기억해?”
“시간이 중요하지 않지. 했다는 게 중요하지.”
“끄으으응···. 한마디도 지지 않는군. 어서 가.”
주점 주인은 그리 말하며 뒷문을 쾅 닫았다.
올리버는 캔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죠?”
“응? 아아···. 옛날에 여기서 일했을 때 돈을 떼인 적이 있거든. 그래서 한바탕 난리를 피웠고.”
“아···.”
“뭐 덕분에 큰 싸움으로 번질 뻔했지만, 결국, 잘 해결됐지. 돈 떼일 일도 사라졌고.”
“그렇군요. 돈 떼이는 일이 많나요?”
“그래, 꽤 많지. 만만하다 싶으면···. 그렇기에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 안 떼이는 것도 중요해. 괜히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 한 푼 못 만지면 얼마나 억울해?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내 몫 뺏기지 않게.”
“····. 해결사 때도 그랬나요?”
“응? 뭐 그렇지. 경우에 따라 돈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잃을 수 있고.”
“음···.”
“자, 그럼 이번에는 내가 질문할 차례다. 성기사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뒤 어떻게 됐다고?”
이게 지금 무슨 대화냐면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처음 서류 작업을 도와줬을 때, 올리버는 두더지에 묻는 척하며 캔트와 전임 대가리에 관해 물어봤고 그걸 캔트에게 들키고 말았다.
캔트는 올리버를 따로 불러 그런 걸 왜 물어보는지 물어봤는데.
그냥 피할 수 없는 질문이라 판단해 솔직히 궁금해서라고 대답했다.
캔트 씨와 전임 대가리에 대해 다들 아는데, 자기만 몰라 너무 궁금하다고 말이다.
캔트는 그런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보더니, 다시 서류 맞추는 일을 시켰다.
올리버는 이것을 일종의 기회라 생각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해 남들 다 합친 것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서류를 완성했다.
그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캔트가 제안했다.
‘네가 계속 도와주면 궁금한 걸 내가 대답해 주마. 대신, 너도 내 질문에 대답해라.’
그렇게 올리버는 정식으로 캔트에게 질문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물론, 올리버도 캔트의 질문에 대답해야 했지만. 딱히 큰 문제는 없었다.
기존 사실에 약간의 변화만 준 것으로 얼추 넘어갈 수 있었으니.
가령, 광산에서 조셉을 만나 끌려온 건 솔직히 말하되, 조셉을 쓰러뜨린 것은 생략했다.
이상한 의식에 바쳐질 거라 일부 사실만 말했는데, 그때 흑마법사를 잡으러 온 성기사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또 일부 사실만 이야기했다.
약간의 생략만으로 훌륭한 거짓말이 탄생한 거였다.
“음···.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길가에 세워진 트럭에 숨어들었는데, 이곳에 왔고요.”
“어허····.”
캔트는 의심의 빛을 띄우며 올리버를 바라봤다.
그의 감정은 올리버의 말을 다 믿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따지지 않았다.
자세한 이유는 올리버도 알 수 없었다.
올리버는 감정을 읽을 뿐, 생각까지 읽는 게 아니었으니.
한 가지 확실한 건 캔트는 지금 올리버를 수상쩍게 여기되, 이에 대해 깊이 따지지 않았다는 거였다.
이유가 뭘까? 올리버가 지금 돈이 되는 일을 해줘서?
허나, 꼭 그렇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왜냐면 캔트는 올리버에게 희미한 연민의 빛을 보였기 때문이다.
올리버는 궁금했다. 왜 캔트가 자신에게 저런 감정을 품는 건지.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감정이 깊숙이 있어 질문해도 쉬이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래서 올리버는 비교적 대답하기 쉬운 질문부터 해 캔트의 자발적인 의지를 끌어냈다.
캔트가 다시 물었다.
“이해가 안 가는 게 있는데, 왜 성기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도망친 거냐?”
“어····. 흑마법사랑 갱들 때려죽이는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요.”
“하····. 꼴통 광신도한테 걸린 모양인가 보군. 그러면 그럴 수 있지.”
“광신도요?”
“그래, 성기사 중에 상식적인 놈도 있지만, 광신도 숫자도 적지 않거든···. 하긴, 요즘은 신보다 마법사의 시대니까.”
신보다 마법사의 시대라····. 뭔가 흥미로운 단어였다.
“캔트 님은 성기사에 대해 잘 아시나요?”
“응? 아니, 그냥 옛날에 해결사 노릇 하다가 우연히 보고 들은 게 전부야. 잘 아는 수준은 아니지.”
“그렇군요. 혹시 성기사가 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위대하신 신의 뜻을 따라 악으로부터 인간계를 지키는 인류의 수호자····”
판에 박힌 지루한 대답. 급격히 흥미가 식었는데, 캔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인 동시에 파테르교의 사설 무력이자,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무력 집단이지. 하지만 인류의 수호자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인류의 수호자라····.
“어떤 의미로 인류의 수호자라는 거죠?”
“왜 궁금한데?”
“···. 그들이 싸우는 걸 봤어요. 흑마법사 그 밑의 갱 가리지 않고 무참히 죽였는데, 대다수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거든요. 왜 인류의 수호자죠?”
“성기사와 그 밑의 서번트들이 맛이 간 구석이 있지···. 하지만 인류를 지키는 것도 맞아. 정신 나간 사교도들이 악마를 소환하려고 할 때마다 그들을 중심으로 이를 막거든.”
“악마 소환요?”
“그래····. 뭐, 요즘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악마 소환이라···. 거래뿐 아니라 소환까지 할 수 있다니.
조셉의 서재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올리버는 갈수록 자신의 무지함을 깨달았다.
이번엔 캔트가 질문했다.
“란다까지는 온 건 이해가 되는데, 어쩌다 X구역까지 왔나? 그것도 꽤 깊은 곳까지?”
“그냥 급하게 내려서 걷다 보니 어느새 거기 있게 됐습니다····. 그 처음 만났을 때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 거짓말 싫어하시는데.”
“뭐···. 됐어. 이런 곳에서 살려면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지.”
“감사합니다. 그럼, 다른 질문 하나 드려도 되나요?”
“오, 맙소사. 너 정말 궁금한 게 많구나.”
“아, 예····. 죄송합니다.”
“하아···. 궁금한 게 뭐냐?”
“캔트 님은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된 거죠? 아시는 것도 많고, 뛰어난 해결사라고 하시던데?”
캔트의 감정이 순간 요동쳤다.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인데, 한참의 침묵 후 그가 입을 열었다.
“····. 굳이 대답하자면 재수가 없었다고 해두지.”
“재수요?”
“그래, 갑자기 불행이 찾아와 여기로 굴러떨어졌지. 별거 없어. 널리고 널린 흔해 빠진 이야기야.”
캔트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허나, 겉으로 담담한 척하는 데 반해 내면에는 깊은 슬픔이 빛났다.
사실은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
올리버는 전부를 알고 싶었다.
“····. 또 궁금한 게 있는 거 같구만?”
“아, 예.”
“또 나에 대해서냐?”
“예.”
“진짜 궁금한데, 나한테 왜 이리 궁금한 게 많냐? 난 남자 취향이 아닌데?”
“남자 취향···?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다행이네. 모르는 게 낫지.”
“·····.”
“·····.”
“그냥 궁금합니다.”
“뭐가?”
“다른 동료분들은 모두 캔트 님을 아주 믿잖습니까? 캔트 님은 그럴 리가 없다고. 어떻게 그리 믿음을 받는 건지 궁금합니다.”
“하! 내가 좀 믿음직스러운 성격이긴 하지. 대단하지?”
“예, 대단하십니다. 저는 그런 걸 처음 봤거든요.”
“?”
“안 때리고, 위협 안 해도 믿고 따르는 거요····. 그래서 궁금합니다.”
캔트는 올리버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 그리 대단한 거 아니다. 그저 난 전임자가 한 걸 그냥 이어받은 거뿐이야. 난 그냥 유지하는 거지.”
“유지하는 것도 그냥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캔트가 가던 길을 멈추고 올리버를 내려다봤다.
“넌 정말 이상한 아이구나.”
“그런가요?”
“그래.”
그 순간 올리버의 턱밑까지 또 다른 질문이 올라왔다.
그 질문이란 다름 아닌 왜 그럼에도 자신을 데리고 다니냐는 거였다.
대개 올리버에게서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은 폭력을 행사하거나, 거리를 두고 경계했는데,
캔트는 이상함을 느낄지언정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도움을 주려는 감정을 띠었다. 약간의 그리움과 후회를 머금은 채.
너무나도 깊숙하고 은밀히 자리 잡고 있어 땅 밑의 보석과도 같았는데, 그렇기에 올리버는 더욱 알고 싶었다.
왜 처음 만났을 때 아무런 목적 없이 도와줬는지, 어찌해 수상함을 느끼는 지금도 도와주는지.
왜 편한 길을 놔두고 동료 거지들을 지키려는 건지 말이다.
올리버가 그렇게 속으로 수많은 질문을 곱씹는 와중 캔트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 종이 일주일 안에 다 맞출 수 있겠냐? 양을 보아하니, 몇 달 치는 될 거 같은데.”
올리버가 종이가 든 포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 가능할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곧 겨울이 다가오니, 얼어 죽지 않으려면 바짝 돈을 벌어 놔야 하거든.”
“그런가요?”
“그래, 정말 추운 날은 구빈원에 신세 져야 하는데, 거기도 돈이 필수야. 겨울철에는 적선 받기도 훨씬 힘들고··· 그런데 저건 뭐야?”
캔트가 갑자기 말하다 말고, 거처 입구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같은 패 거지들이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당혹스러운 감정을 품고 있었다.
뭐가 일이 난 것이다.
“캐, 캔트 씨····!”
심상치 않은 분위기. 캔트가 평소의 장난기를 벗은 채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크, 큰일 났습니다···. 하모니카가 납치당했습니다.”
“뭐?”
“하모니카가 납치당했다고요! 단속을 피해 빨간코랑 같이 오는 길에 습격을 당했는데 하모니카를 납치해갔습니다.”